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78)
178 화 자연.
자연.
유리 벽 너머로 꿈틀대는 부정형의 살덩이. 비위가 약한 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입을 부여잡을 그것을 노인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위에 깊게 새겨진 자글자글한 주름. 말라비틀어진 가죽과도 같은 피부 너머에 있을 세월은 감히 추측하기도 힘들었다.
“곧, 곧 이로군. 드디어… 신께서 이 대지 위로…”
말라비틀어진 눈가 위로 촉촉한 눈물방울이 맺히고, 떨어져 내렸다. 노인은 품속에서 부드러운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눈가를 닦아냈다.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 노인은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노인이 문앞에 당도하자, 문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제 스스로 몸을 움직여 노인이 지나갈 길을 터주었다.
“하바스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내는 깊게 부복하며 노인의 이름을 불렀다. 리베라티오를 이끄는 여섯 선지자 중 일인인 그의 이름을.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어쩐 일이… 아니, 일단 안에 들어와서 이야기하지. 들어오게.”
노인이 등을 돌려 다시 방안으로 사라지자, 사내는 일어나서 그의 뒤를 쫓았다. 곧, 그는 먼발치에 보이는 부정형의 살덩이를 마주하고 경외에 찬 눈빛을 보냈다.
“이, 이것이 바로…”
“그래, 신께서 강림할 그릇이지.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차 한 잔 마시겠나? 차 종류는 한 가지 밖에 없다네.”
“주신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게.”
노인은 무척이나 느긋한 손짓으로 차를 올리고 우려내기 시작했다.
“마침 끓여 놓았던 걸 다 마셔버려서 말이야. 조금만 기다리게. 혹, 내게 건네려던 말이 급한 것이었나? 그렇다면 지금 당장 듣지.”
사내는 짧게 고민했지만, 이내 자신이 꺼내려는 주제가 설득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차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아닙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노인의 인자함이 넘치는 목소리와 말투는 손주를 맞이한 노인네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리베라티오를 이끄는 여섯 선지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사내는 제멋대로 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여태 들어온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스스로 노화를 거스를 수 있음에도, 그것이 단지 자연(自然)스럽다는 이유로 노화를 받아드린 이였다.
자연(自然)스러움. 그것은 하바스가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위에 놓는 가치였다.
하바스는 신이 존재한다면, 그들 또한 이 땅 위를 거니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었다. 하찮은 인간이 저 드높은 천상의 신을 모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믿었고.
탁.
“기다려줘서 고맙네. 차란 건 말이지 즐기기 위해서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거든. 한 번 들어보게.”
나무로 이루어진 찻잔 한가득 담긴 차. 하바스가 담아온 차에선 향긋한 향기가 풍겼다. 사내는 코끝을 스치는 감미로움에 작게 감탄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부드러운 목 넘김. 사내는 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차가 무척이나 귀한 종류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슬슬 자네가 이곳에 온 이유를 들어봐도 괜찮겠나.”
“예.”
사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사실, 그는 자신의 상관에게 불만을 토로했을 때, 이렇게 여섯 선지자와 직접 마주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이것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사내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최근에 말입니다.”
노인은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빙그레 웃었다. 마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라는 듯이. 사내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본심을 꺼냈다.
“용인족 남매에게 입는 피해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오호. 그런가?”
“예. 끊임없이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하고 있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수도라는 공간에 한정해서 만들고 있는 이상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주름진 눈을 감았다.
“그래서 자네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저희에게 응전을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작금의 피해 규모는 용인족 남매가 쳐들어오면 맞붙지 말고 무조건 퇴각하라는 지침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만약 응전을 허락해주신다면 반드시 그 둘의 목을 잘라 하바스님께 그 영광을 바치겠습니다.”
“흐음…”
노인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침묵에 잠겨 들었다. 할 말을 다 꺼낸 사내는 인내심 있게 선지자의 답을 기다렸다.
“그렇군. 그런 일이 있었군. 일선에서 일하는 자네들이 참 고생이 많아.”
이야기가 잘 풀려가는 듯했다. 사내가 상관에게 항의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던 찰나. 하바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자네는 그 두 도마뱀의 목에 영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예?”
“우리가 그 둘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지? 그러긴 힘들겠지만, 만약 자네들이 그 두 용의 목을 잘랐다 치세. 마룡왕이 과연 가만히 있겠나?”
하바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듯한 액체가 말라붙은 그의 목을 적셨다.
“그자가 자기 자식들을 별로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거야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이건 애정 문제가 아니라, 왕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지. 자네는 타국으로 보낸 아들딸이 사라졌는데도 마룡왕이 움직이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사내는 무례를 무릅쓰고 반박을 뱉었다.
“…하지만 손해가 너무 커져 가고 있습니다.”
“자네의 심정은 이해하네. 그러니 조금만 참아줄 수 있겠나.”
노인의 눈이 유리벽 너머에서 꿈틀대는 살점에게로 향했다.
“신의 그릇이 얼마 안 가 완성될 거네. 신께서 이 땅 위에 강림하신다면, 우리를 갸륵히 여겨 어련히 우리의 고충을 해결해주시지 않겠나?”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자칫 무례할 수도 있는 물음이었지만 하바스는 그저 부드럽게 웃었다.
“자네는 궁금한 것이 참 많군. 그렇기에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겠지만. 슬슬 돌아가 보게. 내가 자네에게 해줄 말은 이미 다 해줬다네. 심을 것도 다 심었고 말이지.”
심을 것? 사내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에 의문을 표했다.
“심으셨다니요?”
하바스는 주름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자네는 내가 내온 차를 마셨지 않나. 그 차 속에 들어있을 씨앗이 슬슬 자네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을 걸세.”
“예?!”
“별거 아니니 걱정 말게. 이제 자네 상관의 말에 거스르거나 이곳의 정보를 누설하려고 하면, 머리에 든 씨앗이 발아해 자네 뇌를 먹어치울 뿐이니까.”
“그, 그런…”
노인의 눈빛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처음 그를 맞았을 때처럼.
“내 뜻을 거스르려는 자가 있다면 이곳으로 보내라고 내가 그리 시켰지. 애초에 이곳에 오는 사람은 내가 직접 부른 이나 부른 적 없는 자, 이 두 종류밖에 없네. 나는 후자의 이들에겐 늘 차를 대접하지.”
“너무합니다!!! 이건 너무 부당한 처사입니다!!!”
하바스는 눈을 크게 떴다. 악신의 숭배자들이 워낙에 제멋대로인 이들 투성이였지만, 자기 목숨줄을 저당 잡힌 상태에서도 큰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이는 몇 없었다.
“자네는 아주 용기가 넘치는군. 그렇다면 인생의 선배로서 약간의 가르침을 내려주겠네.”
딱.
“컥?!”
경쾌한 손가락 튕김과 동시에 사내는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몸을 들쑤셨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점은 마음대로 정신을 잃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잘 생각해보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토끼가 늑대에게 불만을 토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할 것도 없이 토끼는 늑대의 커다란 입속으로 집어 삼켜지고 만다네. 자연(自然)이란 그런 것이지. 약자는 항상 제 목소리가 향할 곳을 신중히 골라야하는 법이라네. 그런 점에서 자네는 운이 좋았지. 내가 피에 굶주린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서 살았지 않나.”
“커…컥…제…발…자…비…를…”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혀를 쯧쯧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아프겠구만. 내가 이 차를 다 마실 때까지만 그러고 있게.”
노인은 사내의 신음을 들으며 남은 차를 마셨다. 아주 느긋하고 천천히.
***
“우리는 그럼 대장간들이 모인 거리로 갔다 오지. 저녁때까진 돌아오겠다.”
“연아, 잘 다녀오렴.”
스승님은 부서져 버린 서리 강철 검을 대신할 검을 자신이 직접 한 자루 골라오겠고 하셨고, 카디쇼는 악신의 숭배자들과 맞서기 전에 갑옷을 한 벌 구해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둘은 우리와 따로 떨어져 대장간들이 있는 거리로 향했다.
카디쇼는 오랜 기간 독신을 유지해온 스승님에게서 묘한 친근감과 존경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지만, 정작 매사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프리디야 스승님은 독신이라는 주제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이셨다.
펄리는 배에 남아서 쉰다고 했고. 아마 그녀의 성격상 다른 인형을 움직여서 자기 일을 처리할 게 분명하겠지.
우리의 강철 친구 테르지오는… 배에서 내렸다간 괜히 지나다니는 금인족들의 관심을 한바탕 받을 게 분명해서 배에 남기로 결정했다.
“마르낙 사제님, 상단에 넣은 연락이 닿았나 봐요. 저기 마중을 오네요.”
다키아의 말대로 도로를 따라 네 쌍의 말이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가 우리의 앞에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린 마부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타시지요. 상단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와오오…”
쟈멜은 커다란 마차에 찰싹 달라붙어서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이, 이렇게 크고 호화로운 마차는 처음 봐요! 설마 이거 겉에 붙어 있는 노랗고 반짝이는 거 다 진짜 금이에요?!”
“예. 맞습니다.”
“우와아아아…”
“그럼 타시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며 정중하게 권유했다. 쟈멜은 커다랗고 비싸 보이는 마차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진짜 비싸보여… 그래서 더 멋있어…”
“야. 궁상은 그만 떨고 빨리 타. 얼른!”
“아, 알았어.”
지젤의 재촉에 쟈멜은 그제야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뜨렸던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마차 안은 무척이나 아늑하고 편안했다. 마차가 출발했음에도 자그마한 덜컹거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쟈멜은 자신의 보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다키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거 다 팔아도 이 마차는 못 사겠죠…?”
“아마…? 이 정도 마차면 아마 기성품이 아니라 주문 제작한 물건일 거예요. 거기다 곳곳에 충격을 완화하고 방어를 위한 유물과 성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 걸요? 그 보따리 안에 든 물건으로는 솔직히 택도 없죠.”
“아앗…”
이 마차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보따리를 볼 때마다 세상 가장 소중한 것을 바라보듯 빛나던 쟈멜의 두 눈이 빛을 잃었다.
“택도 없다니… 이것이… 바로 진짜 부자와 서민의 격차… 너무 커…”
쟈멜이 너무 눈에 띄게 침울해 하는 통에 다키아가 당황했다.
“쟈멜도 차곡차곡 모으다보면 언젠가 이런 마차도 살 수 있을 거예요! 분명요!”
“진짜요…? 그 말 진짜죠?”
내 옆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지젤이 짓궂게 웃었다.
“그거 알아? 이 마차, 따지고 보면 네 옆에 있는 다키아 거나 다름없는 거?”
“…”
쟈멜은 말없이 다키아와 조금 거리를 벌리고 앉아 마차의 창밖 너머를 보았다. 우수에 잠긴 눈으로.
“쟈멜…?”
“오늘은 왠지 다키아랑 거리감이 많이 느껴져요… 이것이 진짜 부자들의 기만인 건가… 내가 다키아한테 보따리를 자랑하고 있을 때, 다키아는 속으로 절 비웃고 있었을 게 분명해요…”
“제가 쟈멜을 왜 비웃어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돈으로 살 수 없다고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어디 있어요!”
다키아의 달램에 쟈멜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이 크고 멋있는 마차도 따지고 보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잖아요!”
다키아는 쟈멜을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 사이의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해요. 돈으로 산 관계는 돈이 없으면 사라질 따름이니까요. 게다가 저는 쟈멜을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걸요. 절대 속으로 비웃거나 하지 않아요.”
“진짜요…?”
“그럼요. 아, 상단 쪽에 도착하면 선물 하나 사드릴까요?”
“만세! 다키아 만세! 다키아 찬양해!!!”
늘 그렇듯 쟈멜의 기분은 순식간에 풀렸지만, 내 마음속 한 켠은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방금 저게 바로 관계를 돈으로 산 게 아닌가…?
***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마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커다란 상단 건물에서 통통한 사내가 활짝 웃으며 튀어나왔다.
“하이고!!! 공녀님 오셨습니까!!!”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통통한 중년 사내는 다키아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다키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레클레스 씨도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공녀님 덕분에 저는 언제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공녀님과 일행분들을 이렇게 서 계시게 하다니! 자세한 소개는 안에 들어가서 하겠습니다! 얼른 따라오시죠! 이 레클레스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레클레스 상단의 주인인 레크레스는 예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사근사근 친근한 사내였다.
우리가 그를 따라 상단의 건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방금 뛰쳐나간 거 여기 상단주 맞지? 아니, 내가 보자고 할 때는 코빼기 한 번 안 내보였으면서… 다키아…?”
샛노란 머리칼을 휘날리며 걸어온 잘생긴 사내가 우뚝 멈춰섰다.
용왕국의 삼왕자, 바티스 드라코는 멍한 눈으로 다키아를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나와 일행을 빠르게 훑었다.
“마르낙 네놈…”
그는 명백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고 소리쳤다.
“다키아가 있는데도, 여자나 주렁주렁 달고 다니다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레클레스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다키아에게 물었다.
“용왕국 삼 왕자분과 아시는 사이셨습니까?”
다키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는 저렇게 무례한 사람은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뭐, 뭣?!”
“얼른 올라가요. 더 귀찮게 굴기 전에.”
“예.”
우리는 그렇게 상처받은 한 남자를 뒤로 한 채, 상단의 접객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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