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8)
18 화 조우.
조우.
새빨간 피가 튀었다.
잘려나간 검은 짐승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침착하게 고개를 숙이자 새하얀 발톱이 방금 내 머리가 있던 자리를 매섭게 할퀴고 지나갔다.
왜애애애애애애앵!
휘두른다.
거칠게 회전하는 톱니 날들이 발톱 주인의 머리를 갈아버렸다. 또다시 피와 살점들이 쏟아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전신의 근육들이 거친 김을 뿜어냈다.
끝없이 밀려드는 짐승과 괴물들의 물결.
숨 돌릴 시간이 없었다.
– 캬아아아아악!
검은 표범을 닮은 괴물이 달려들었다. 재빨리 도살자를 휘둘러 앞발째로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하얀 사제복은 어느새 더러운 피와 체액들로 물들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괴물과 짐승들을 갈아버렸다. 어두운 밤길을 약간의 달빛에 의존해 계속 나아갔다.
영주의 말대로 신성이 느껴지는 장소는 네 곳. 나는 그중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계속 걸어나갔다.
‘살해!!!’
잠깐 상념에 빠진 틈을 노리고 날카로운 이빨이 내 어깨를 파고들었다. 왼손을 뻗어 내 어깨를 문 짐승 머리통을 손아귀 힘으로 으깨버렸다. 물컹한 뇌수와 피, 살점들이 손바닥 피부 너머로 느껴졌다.
어깨에 뚫렸던 이빨 자국들이 서서히 아물었다. 나는 회복하는 와중에도 기계적으로 도살자를 휘둘러 새로운 고깃덩어리들을 착실하게 만들어 나갔다.
“분명 제가 다가가고 있는 걸 뻔히 알 텐데도 마중 나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군요. 이거 손님 대접 상당히 별로인 것 같습니다.”
‘살해!’
또 뒤에서 공격이 온다는 어머니의 경고.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공격을 흘려보내고 도살자를 휘둘렀다.
왜애애애애애앵!
비산하는 체액. 옷깃으로 얼굴을 훔쳐 시야를 확보했다. 주변을 훑어보니 모여드는 짐승과 괴물들의 구성이 조금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점점 나타나는 눈 거미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었다.
“매일이 이런 식이라면 세숫대야보다 욕조를 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살해!’
농담할 시간에 집중이나 더하라는 핀잔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제 걱정해주시는 건 어머니밖에 없···.”
-끼에에에에에에에!
거칠게 달려드는 새하얀 눈거미. 치켜든 앞발톱을 베어내고 그대로 도살자를 녀석의 머리통에 박아넣고 시동을 켰다.
왜애애애애앵!!!
머리 안쪽에서부터 갈려 나가는 충격에 눈거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호쾌한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착실하게 괴물들을 처리하면서 기운을 따라 이동한 결과, 마침내 한 장소가 나를 반겼다.
거대한 동굴.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은 동굴은 거인의 집이라도 되는지, 정말이지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날 뒤쫓던 짐승들은 내가 거대한 동굴의 입구 안으로 들어서자 감히 쫓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 끼이이이이이!!!
딱 하나, 눈 거미들을 제외하고는. 다시 한바탕 눈거미들과 드잡이질을 한 뒤에야 나는 주변을 살필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흐음.”
내가 처리한 눈거미들의 살점과 체액 때문에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바닥에는 검붉은 핏자국들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보였다. 눈거미들의 체액과는 확연히 다른 그 색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도살자를 손에 쥔 채로, 적막한 동굴 안을 향해 걸어나가자 여기저기 부서진 나뭇조각과 파편들이 보였다.
습격당한 마차가 텅 비어있던 건, 이 괴물들이 물건들을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신성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악신의 숭배자가 동굴 깊숙한 곳에서 웅크린 채, 내가 직접 두 발로 걸어 들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앙큼한 초대로군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게 정말이지 귀엽습니다.”
‘살해!’
“어머니. 걱정 마시길. 저는 방심 같은 건 안 합니다.”
조금 뒤 있을 결전을 대비해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껏 달아오른 육체가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조금씩 식어나갔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실로 엉킨 고치들이 보였다. 다가가서 그 실 뭉치들을 갈라내자 체액을 모조리 빨려 성별조차 알아보기 힘든 시체가 튀어나왔다.
“다 먹었으면 치우는 게 맞건만, 다 먹은 음식들로 동굴을 꾸며놓다니. 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로군요.”
안으로 나아갈수록 고치들의 수가 점차 많아졌다. 대체 몇이나 되는 인간을 먹어치운 거지? 지금 보이는 이 고치들의 개수는 겨우 3일 동안 먹어치웠다기엔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통로의 끝에 도착하자 거대한 공동이 날 반겼다. 여태까지 걸어왔던 통로가 거인들이 지나다닐 법한 길이라면, 이 공동은 마치 여러 거인이 살고 있을 집만 한 크기였다.
내 발걸음 소리만 울리는 적막 속에서 공동을 가로질렀다. 일렁이는 신성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나오시지요. 다 알고 있습니다.”
내 나직한 목소리가 공동을 타고 울리기 무섭게 눈거미들의 비명이 내 말소리를 집어삼켰다.
– 끼이이이이이이!
– 끼이이이이이이!
– 끼이이이이이이!
소름 끼치는 화음 속에서 마침내 그것이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쿵!
각각이 마차 하나만 한 거대한 다리들, 움직이는 건물만 한 새하얀 몸통, 사람 머리통보다 더 거대한 8개의 붉은 눈.
눈 거미들의 여왕이 제 존재를 드러냈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고통 속을 헤엄치는 여인의 비명을 닮은 포효가 공동을 가득 메웠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도살자를 틀어쥐었다.
‘살해!’
자칫 방심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어머니의 경고.
저 거대한 거미여왕은 거대한 발톱 구석구석까지 신성이 타고 흐르고 있었다. 신성이 담겨있지만 않다면 그 어떤 상처도 재생해낼 수 있는 내 몸이었지만, 신성이 남긴 상처 앞에선 이 몸도 그저 평범한 인간의 몸과 다를 바 없었다.
죽음의 가능성.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 목을 조금씩 조여왔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왼손을 들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머니. 그어주십시오.”
어두운 녹색빛이 내 몸을 타고 흘러내려 동굴 바닥 위를 빠르게 기어나갔다. 부패의 신성이 공동의 입구에 하나의 선을 그었다.
‘산 자는 넘을 수 없는 선’을.
이로써 부패의 신성이 공동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도.
나는 거대한 거미 여왕을 마주 보며 조용히 바랐다.
“당신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부패의 어머니시여.”
어머니께선 늘 그렇듯이 내 바람에 응답해주셨다. 허공이 찌그러지며 거대한 거인이 튀어나와 포효를 내질렀다.
– 그 아 아….
부패의 거인은 평소와 달리 포효를 내지르다 말고 고개를 돌려서 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번엔 버리고 가서 죄송했습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내 사과를 들은 부패의 거인이 그제야 거미 여왕을 향해 만족감이 담긴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암녹빛으로 빛나는 부패의 문(文)이 내 피부 위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꺼냈다. 심장이 거칠게 두근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내 목을 조르고 있었지만, 그 또한 자그마한 즐거움에 불과할 뿐.
“어머니. 오늘 밤, 저 사람 먹는 거미의 머리통을 어머니께 바치겠습니다.”
‘살해!’
다치지나 말라는 어머니의 대답과 동시에 전투는 시작됐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부패의 거인이 거칠게 공동을 가로질러 눈 거미들의 여왕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거미여왕은 집채만 한 발톱을 들어 그대로 부패의 거인의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발톱은 거인의 머리통을 으깨며 몸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머리 없는 거인의 주먹이 여왕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거미여왕은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부패의 거인의 몸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두 거대한 생명이 충돌의 여파가 공동을 휩쓸자, 내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눈거미들이 떨어졌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던 건 전부 여기에 몰려있어서였나.
왜애애애애애앵!
도살자가 거친 시동음을 내뱉었다.
– 끼에에에에에에!
– 끼에에에에에에!
– 끼에에에에에에!
부패의 문(文)으로 증폭된 근력을 이용해 자리를 박차고 거침없이 눈거미들의 무리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기껏 말라붙었던 체액들의 위로 새로운 체액과 살점들이 튀었다.
나는 거미들을 토막 내며 거인과 여왕의 싸움을 관찰했다. 불행히도 부패의 거인은 여왕에 비해 체급이 작았다. 눈대중으로 살펴본 결과, 거미 여왕은 부패의 거인 크기의 대략 두 배정도. 부패의 거인은 포효하며 분전했지만, 서서히 밀리고 있음이 뚜렷했다.
내가 도와야 했다.
하지만 쏟아져 내리는 눈거미들은 내가 자신들의 여왕에게 다가가는 걸 집요하게 막아섰다.
왜애애애애앵!
또 한 마리의 눈거미를 갈아버렸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승리할 수 없었다. 부패의 거인을 쓰러뜨린 여왕이 이리로 합류한다면 나는 분명 여기서 죽고 말 게 분명했으니까.
나는 결심을 굳혔다.
몸에 깃든 신성을 모조리 다리로 보냈다. 내 다리 위에 나타난 문신이 선명한 암녹빛을 토해냈다. 근육의 힘을 한계까지 쥐어 짜내 자리를 박찼다.
거친 공기의 저항이 얼굴을 때렸다. 거침없이 날아올랐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로 나는 다시 낙하했다.
– 끼에에에에에에!!!
지상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벌어지는 수십 개의 입들. 나는 이를 악물고 눈거미 하나의 머리통을 박차고 다시 뛰어 올랐다. 그 잠깐의 순간, 눈거미들의 발톱들이 무방비한 내 몸을 거칠게 할퀴며 깊은 상흔을 남겼다. 아릿한 고통이 뇌를 뜨겁게 달궜다.
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인간으로서의 본능을 짓눌렀다. 생을 갈구하는 갈망을 억압했다.
이 몸은 아직, 아니 ‘나’는 아직 더 할 수 있었다. 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쾅!
수십 번의 도약 끝에, 나는 마침내 지긋지긋한 거미들의 포위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지만,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달려드십시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만신창이가 된 부패의 거인이 방어를 도외시하며 여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여왕과 거인이 뒤엉키며 공동이 거칠게 흔들렸다. 한계까지 신성을 받아들인 몸이 거인의 등줄기를 타고 뛰어올랐다. 흔들리는 여왕의 몸 위를 내달려 도착했다.
내가 노리는 곳은 단 한 곳.
거대한 몸통의 중간에 위치한 두흉부와 복부를 나누는 그 경계.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도살자의 톱날들이 내 바람에 응하듯, 그 어느 때보다 거칠게 회전했다.
“하아아압!”
도살자의 톱니가 여왕의 허리를 끊기 위해 갑각을 파고들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디디고선 몸통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 위에서 단단히 중심을 굳힌 나는 갈아내고, 갈아내고, 또 갈아냈다. 여왕의 몸을 반 토막 내기 위해서.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부패의 거인은 집요하게 여왕의 몸을 붙잡고 늘어졌다. 나는 기계적으로 도살자를 휘둘렀다.
쿵.
마침내 여왕의 거대한 복부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두흉부만 남은 여왕이 꺼져가는 비명을 내뱉었다.
– 끼이이이이이…
이겼다. 내가 이겼다.
나는 체액투성이가 된 채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죽은 여왕의 머리통에서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새하얀 백발을 늘어뜨린 미인이 붉은 눈을 치켜뜨며 거칠게 소리쳤다.
“시발!!!”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사람이었군요.”
여인은 날 노려보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이 시발!!! 넌 대체 어디서 태어난 개잡종자이길래 갑자기 튀어나와서 방해하고 지랄이야! 너도 시발 나랑 별다를 거 없는 악신의 숭배자면서! 내가 시발 이 여왕을 종속시키느라 얼마나 노력을 들여야 했는지 알아? 아냐고!!!”
나는 천천히 걸어 여인에게 다가갔다.
“켈톤을 포위한 목적이 뭡니까?”
“내가 왜 그걸 너한테 말해줘야…! 꺄아아악! 아프잖아! 이 개새끼야!!!”
검집에서 튀어나온 서리강철 검이 여인의 어깨를 꿰뚫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켈톤을 포위한 목적이 뭡니까?”
선홍빛 눈동자가 명백한 분노를 담고 날 노려보았다.
“이 또라이 새끼야!!! 시발!! 아파! 아프다고!!!”
나는 박아넣은 서리강철 검을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여인의 새된 비명이 공동에 울려 퍼졌다.
“켈톤을 포위한 목적이 뭡니까?”
세 번째 물음. 고통으로 여인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시발! 시발! 시발!!! 죽어도 안 말해! 새끼야!!!”
“그럼 안녕히.”
“뭐?! 진···.”
서걱.
잘려나간 여인의 머리가 여왕의 몸을 타고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검날에 맺힌 피를 털어내며 미소 지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어머니, 저는 살인자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별다른 죄책감 없이 죽여도 괜찮으니까요. 이 여인의 시체를 어머니께 바치겠습니다. 기껍게 받아가 주시길.”
이 백발의 악마숭배자는 손가락 세 개 반짜리 인간이었다. 부패해 사라져가는 몸뚱이에서 일천의 신성이 흘러나와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신성 : 5582]“다음 권능까지 가야 할 길의 반을 넘어섰군요.”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절 기다리고 있을 다음 악신의 숭배자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과연, 몇 번째 악신의 숭배자가 제게 이번 일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를 해줄까요?”
‘살해!’
“세 번째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그럼 네 번째에 걸겠습니다.”
부패의 거인을 되돌려보내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아직 밤이 안 끝났건만, 밝은 빛들이 어두운 대지를 뜨겁게 밝혔다.
그 광경을 보며 진심으로 놀랐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내가 떠나온 도시, 켈톤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주 밝고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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