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87)
187 화 고자질.
고자질.
고요한 적막.
펄리에게 부둥켜안긴 채 체감상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마개’의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위기감이 가시고, 서로 안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올 때 즈음.
다키아가 잔뜩 쫄아 있는 지젤과 쟈멜을 대신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정말 오는 거 맞아요?”
펄리는 네 개의 동공이 든 왼쪽 눈을 데굴 굴려 다키아를 바라보았다. 그 기괴한 눈동자에 다키아는 조금 움츠러 들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재차 말을 던졌다.
“펄리?”
“흐음…”
펄리는 자신이 만들어 낸 고치 밖의 광경을 힐끔 내다보았다. 무척이나 투명해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실들 너머로. 물론, 내다볼 수 있는 건 일방향이라 밖에선 저 스스로를 숨긴 고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이상하네… 와도 아주 옛적에 왔어야 했는데. 어째서 안 오지? 분명 거처를 나서는 걸 제대로 봤는데?”
“봤다고요? 선지자가 거처를 나서는걸?”
펄리의 중얼거림에 그제야 다키아는 그녀의 수상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상함이.
어째서 특유의 시끄러운 말투가 아니지? 레클레스의 거처로 간다고 이야기를 해 두기는 했지만, 이곳 하수 처리 시설에 도달하게 된 건 완전 우연의 결과물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정확하게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온 거지?
“당신.”
다키아의 황금빛 눈동자가 의심을 담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죠?”
펄리의 보랏빛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장난기를 한가득 담고서.
“그렇게 묻는다고 대답해 줄 거면, 내가 굳이 귀찮게 숨겼겠어? 너 몸만 다 컸지, 아직 애 같은 점이 많구나? 너무 순진무구해. 딱 남들에게 민폐가 될 만큼. 마르낙은 너 같은 애를 왜 데리고 다니는지 당최 모르겠네. 하긴, 따지고 보면 걔가 좀 이상한 애긴 하지만.”
“뭐라고요?”
생각도 못 한 폭언에 다키아는 말문이 막혔다. 펄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놀랐어? 내가 너한테 친절하게 굴지 않아서? 그런데 그거 알아? 나한테 필요한 건 마르낙이지, 너나 다른 애들이 아니거든. 굳이 귀찮게 너희를 구하러 온 것도 전부 마르낙 때문이고. 사실, 나는 그다지 친절한 성격은 아니거든.”
네 개의 동공이 시계 방향으로 빙글 돌았다. 순간, 다키아는 그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징그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사람이 신경 잔뜩 곤두세워서 선지자가 오나 안 오나 예민하게 살피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짜증 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자꾸 캐물으면 내가 기분이 어떻겠어? 아주 나쁘겠지? 그치?”
“…그건 전부 당신이 의심할 만한 짓을 해서 그런 거잖아요!”
펄리는 피식 웃었다. 그 명백한 비웃음에 다키아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 진짜 애니? 의심이 들었으면 당장 그 자리에서 캐물을 게 아니라 의심의 꼬리를 붙잡을 수 있도록 덫을 펼치고 기다려야지. 애초에 내가 너희한테 해를 끼치려고 했으면 진작에 했지, 이렇게 쓸데없이 너희를 껴안고 이 비좁은 고치를 만들었을까? 나, 여자들이랑 이렇게 붙어 있는 거 그렇게 안 좋아하거든?”
“이… 읍?!”
할 말을 잃은 다키아가 분을 삭이고 겨우 입을 연 그 순간. 펄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곧 그녀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다키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펄리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다키아의 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입 다물어 봐. 거기서 딱 한 마디만 더 꺼내면 키스해서 입 막아 버릴 거야.”
“…?!”
다시금 돌아온 적막. 다키아는 대체 무엇이 변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은밀하게 방 곳곳에 실을 퍼뜨려 둔 펄리만이 눈치를 챘을 뿐.
잘그락.
방 한가운데 놓여 있는 찻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곧 자그마한 바닥의 빈틈 사이로 녹색 줄기들이 돋아났다. 길게 자라난 줄기들은 곧 얽히고설켜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방 한가운데서 자라난 노인,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우묵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드러난 피부와 얼굴이 자글자글한 주름으로 가득함에도, 노인의 주변에는 범인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분위기가 풍겼다. 등짐을 지고 있던 노인이 손을 뻗자 바닥에서 돋아난 줄기가 딱딱한 지팡이로 변해 그의 손에 쥐였다.
‘마르낙 사제님…’
노인의 눈길이 투명한 고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쟈멜은 본능적으로 마르낙을 찾았다. 몇 번이고 열심히 일한 그녀의 직감이 비명을 질러 댔다. 절대, 절대 저 노인에게 들켜선 안 된다고.
“흐음…”
‘힉!’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쟈멜과 우묵한 노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쟈멜은 저것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지, 그저 우연의 일치로 맞물린 것인지 구분이 가질…
“나와라. 워낙 시끄럽게 투닥대는 통에 이미 알아차렸으니.”
“히끅!”
쟈멜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감과 동시에 고치가 갈라지며 펄리가 몸을 일으켰다.
“뭐야. 이미 다 알았어? 그럼 진작에 말했어야지. 여전히 성격이 나쁘네. 하바스.”
하바스는 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모습과 눈. 넌 페르페쇼의 동생인가. 기억대로 건방진 건 여전하군. 그런데…”
노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이 짓거리를 벌인 것도 너인가? 아무리 네 언니가 나와 같은 선지자라고 해도, 이번 일은 선을 넘었다. 펄리.”
“언니 앞에선 찍소리도 못 할 거면서 내 앞에선 아주 잘만 재잘재잘 떠들어 대네.”
“그건 그저 네 언니가 미쳤기 때문이지. 그녀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펄리의 등 뒤에서 돋아난 세 쌍의 손 중 하나가 은밀하게 움직여 문을 가리켰다. 몰래 빠져나가라는 그 손짓에 다키아와 다른 이들이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내가 도망치는 걸 허락해 줄 것 같으냐.”
쿵.
지팡이가 가볍게 땅을 치는 그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인 존재가 있었다.
타앙!!!
부패의 어머니의 손에 쥐인 학살자의 총구가 불을 토해 내자 노인의 머리통이 그대로 터졌다. 일말의 망설임 없는 선제 공격. 그 공격에 놀란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부패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탕! 탕! 탕! 탕! 탕!
총구가 또다시 불을 토해 냈다. 지체 없이 남은 탄환을 모조리 쏟아부은 부패의 어머니는 평소 연습한 대로 동전 주머니에서 마르낙이 신중하게 쓰라고 연신 당부하며 챙겨 준 실탄을 학살자의 탄창에 채워 넣고 총을 장전했다.
철컥.
그 장전음에 모두의 정신이 돌아왔다.
콰앙!!!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펄리가 재빠르게 문을 부수며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쟤 절대 저 정도로 안 죽으니까!!! 일단 마르낙을 찾아내서 같이 도망쳐!!! 알겠어?”
“네, 넵!!!”
누구보다 빠르게 발을 뗀 쟈멜이 가장 먼저 총알같이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뒤이어 반응한 부패의 어머니 뒤로 지젤과 다키아가 따라 방문을 나섰다.
그녀들이 향해야 할 곳은 분명했다. 지금 당장도 거친 신성이 일렁이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 바로, 마르낙이 있는 식당이었다.
“뭐지?”
얽힌 줄기들 사이로 순식간에 재생을 끝마친 하바스의 고개가 갸우뚱 돌아갔다. 그저 총탄에 맞았을 뿐인데 기묘하게 재생이 느렸다. 애초에 총탄 몇 발을 맞았다고 권능의 발현이 끊어진 것부터 말이 되질 않았다.
“지금부터 조금 빠르게 움직여야겠군.”
“노친네야.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돌아가는 게 어때?”
펄리의 가시 돋친 말에 하바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의가 없는 것 하나만큼은 제 언니를 똑 빼닮았군. 네 언니 얼굴을 봐서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네가 정말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면 당장 내 앞에서 비켜라. 네 언니를 봐서 딱 이번 한 번만 모른 척 넘어가 주겠다.”
“뭐래.”
네 쌍의 손가락 끝에서 신성이 일렁이는 실들이 뿜어져 나왔다. 문답무용의 태도에 하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겐 그걸로 충분한 답이 되었다.”
딱.
지팡이가 바닥을 친 순간. 방 전체가 무너지며 식물의 줄기들이 펄리를 향해 덮쳐들었다. 펄리는 여덟 개의 손을 휘둘러 자신의 향해 다가오는 줄기들을 실로 베어 냈다.
“뻔해! 너무 뻔해! 언제 봐도 재미없는 노친네라니까! 변화가 너무 없는 것 아냐?”
“쯧.”
하바스는 짧게 혀를 찼다.
“변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주름진 손이 펄리의 몸을 가리켰다.
“그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 가거라.”
잘려 나간 줄기의 단면이 갈라지며 새로운 줄기들이 튀어나와 제 몸을 불렸다. 펄리는 그대로 불어난 줄기들에 붙잡혀 팔다리가 뭉개져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겨우 몸뚱이와 머리만 남은 펄리가 꺼져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노친네가 쓸데없이 힘만 세서는.”
“죽어 가는 척 하지 마라. 펄리. 어차피 인형이란 걸 알고 있다.”
다 죽어 가던 펄리가 히죽 웃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히히!”
“어차피 네 목적은 뻔히 다 보인다. 펄리. 미리 당부해 두지.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넌 절대 신의 그릇을 가질 수 없다. 이 내가 있는 이상. 알겠느냐?”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겠지. 내가 쓸 그릇. 곧 찾으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 보관이나 잘 해 둬! 그럼 안녕!”
보랏빛 눈이 꺼지고, 인형의 고개가 꺾였다. 하바스는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남이 만든 걸 당연히 자기 것이라 여기다니… 버릇이 없어도 한참 없군. 딱 제 언니처럼. 아니, 그쪽이 더 심한가.”
하수 처리 시설 쪽이 당한 건 나름 뼈아팠지만, 어차피 이곳의 쓸모는 다한 지 오래였다.
“사제 놈들이 들쑤시기 전에 대충 마무리만 하고 가야겠군.”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하바스가 턱을 까딱이자 그의 몸이 바닥 사이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
왜애애애애앵!!!
귀찮게 바람을 쓰며 끝까지 반항하던 아라스의 목을 베어 버리고 그의 신성을 흡수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 ! !
일을 끝마친 부패의 거인이 돌아갔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자 가려진 망막 위로 활자들이 떠올랐다.
[신성 : 38349]불어난 신성의 숫자를 보니, 굳이 이곳을 정리하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개’를 정리하고 이 정도로 신성을 얻었으니, ‘금화’랑 ‘발판’도 정리하고 나면 임페트로가 내게 모으라 한 오만의 신성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적금을 하듯 차곡차곡 강해지고 있으니 마음 한편이 뿌듯했다.
“그리고 이게 아마 열쇠겠지.”
바스러진 ‘마개’가 입고 있던 옷 사이로 떨어져 있는 열쇠 조각을 주워 들었다.
역시 들고 다녔네.
‘마개’가 열쇠 조각을 목걸이처럼 만들어 들고 다녔으니, 나머지 ‘금화’랑 ‘발판’도 비슷하게 들고 다닐 게 분명했다. 그 말인즉, 열쇠를 찾으려거든 본인들을 족치면 된다는 뜻이었다.
금화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제 발판의 정체만 밝혀내면 되는 건데.
일단 배로 돌아가서 다 같이 상의를 해 보는 게 최선이겠지.
“슬슬 돌아가 볼까.”
“아라스가 죽었나…”
노인의 목소리. 기척이 없이 나타난 노인은 내 앞에 놓인 옷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안타깝군. 어릴 때부터 손수 키워 입히며 길렀건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그런가?”
나는 조용히 도살자를 치켜들었다. 저 노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위험한 자임에는 분명했다. 내가 나타나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면 이들도 내 알 바가 아니겠군.”
그가 손에 쥔 지팡이를 탁하고 두드리자, 식당의 복도 너머로 네 명의 여인들이 나타났다. 굵은 나무줄기로 묶인 채로.
“읍읍!!”
이 새끼가.
어머니를 비롯한 넷의 상태를 재빨리 눈으로 훑었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넷 다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원하는 게 뭡니까?”
“갑자기 공손해졌군. 넷 다 자네에게 소중한 이들인가?”
노인의 목소리에선 진득한 여유가 한가득 느껴졌다. 나는 투구 너머로 빙그레 웃었다.
“만약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하면 태어난 걸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독하게 뻔뻔하군. 펄리가 데려온 이들이라 그런가. 자네가 먼저 내가 손수 키운 아라스를 죽이지 않았나? 그런데 어째서 내게 화를 내는 거지? 전부 자네의 업보일세. 하지만 내 특별히 자네에게 아량을 베풀어 기회를 한 번 주겠네.”
노인은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목숨 하나의 값은 목숨 하나로 받는 게 옳겠지. 넷 중 자네에게 가장 소중하지 않은 이를 선택하게. 내 딱 그 사람만 죽이고 나머지는 자네에게 온전히 돌려주겠네. 특별히.”
노인의 인자함을 가장한 미소 뒤엔 비뚤어진 악의가 가득했다. 그는 복수심이 아니라, 그저 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누구를 선택할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좋아. 결심했어.”
“그래. 넷 중 누굴 선택하겠나?”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노인을 가리켰다.
“넌 이제 뒤졌어.”
“흐음… 그건 내가 기다린 답이 아닌 것 같네만. 자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이 내가 저 여인들을 뭉개 버리는 게 더 빠를 걸세.”
“그렇겠지. ‘내가’ 움직인다면 다 구하지 못하겠지.”
“그게 무슨…”
“보면 알아.”
공명하는 반지가 누군가의 위치를 끊임없이 내게 알려 왔다.
콰앙!!!
천장이 무너지며 푸른 선이 떨어졌다. 찰나의 번쩍임과 동시에 모든 식물의 줄기들이 베여 나뒹굴었다.
깔끔하게 네 명을 구해 낸 프리디야 스승님의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연아, 누가 네게 나쁘게 대했니?”
나는 손가락을 뻗어 노인을 가리켰다.
“바로 저놈이 절 겁박했습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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