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94)
194 화 장미궁.
장미궁.
“꼴깍.”
침을 꿀떡 삼킨 쟈멜의 두 눈이 반짝였다.
“용왕족이 준비해 준 만찬이라니!!! 대체 얼마나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나올까요!!! 왕족들이 먹는 고기! 왕족들이 먹는 풀! 왕족들이 먹는 빵!!! 어떤 맛일지 상상이 가세요?”
‘살…해…’
잔뜩 신이 난 쟈멜의 물음에 어머니는 분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도저히 상상도 안 간다는 듯이.
“저도 상상이 안 가긴 해요! 하지만 뭘 상상하든 그거보단 대단하겠죠! 막 십 층으로 쌓인 케이크가 후식으로 나올지도 몰라요! 닫힌 쟁반을 열었더니, 팔뚝만 한 푸딩이 탱글탱글한 모습을 짠 하고 자랑할지도 모르고요! 으히히히! 엇?!”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쟈멜의 두 눈이 땡그래졌다. 곧,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걱정을 한가득 담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진짜 궁전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평소처럼 입고 가도 되는 걸까요… 갔다가 용왕녀님이 무례하다고 내쫓으면 기껏 나온 음식 입에도 못 대고 나와야 하잖아요…”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세요.”
다키아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싱긋 웃었다.
“르소나 공주님이 직접 초대한 이상, 너무 지저분하지만 않아도 쫓겨날 일은 없을 거예요. 게다가 애초에 채 하루도 안 되는 시간만 주셨을 때부터 저희 복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신 거나 다름없거든요. 아시겠어요?”
“역시… 엄청 대영주 가문의 아가씨… 여유가 엄청 넘쳐서 멋져요… 저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귀족 아가씨 쟈멜이었으면 여유가 철철 넘쳤을까요…?”
나는 쟈멜이 귀족 아가씨 쟈멜이었어도 용왕녀에게 초대받았으면 오늘처럼 호들갑 잔뜩 떨었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사람의 본성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럼요. 긴장을 한다는 건 그저 익숙지 않다는 것일 뿐인 이야기니까요.”
“으히히히. 그렇죠?”
다키아는 그렇게 공수표를 팡팡 찍어서 쟈멜에게 건넸다. 쟈멜은 그 공수표에 깜박 넘어가 버렸고.
마침 지젤도 준비를 끝마치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돌아온 뒤로 방에 틀어박힌 카디쇼를 찾아갔다.
“카디쇼. 진짜 같이 안 가도 괜찮겠어요?”
카디쇼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우우우… 나 같은 건… 가 봤자 또 힘을 억누르지 못하고 폭주할 게 분명하다. 또 네게 민폐만 끼치고 말겠지… 나는 이렇게 침대에 틀어박히는 게 낫다. 그러면 적어도 폭주해서 사고를 치진 않을 테니…”
어제 깨어나자마자 내게 연신 사과를 한 뒤로 그녀는 자신의 침대 속을 파고들어 고개조차 빼꼼 내밀지 않았다. 그래, 카디쇼는 아비디타스 저택에서의 일로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달래서 기운을 차리게 해 주기도 뭐한 게, 나는 사제인 그녀와 갈라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지라 여기서 달래줘 봤자 카디쇼는 더욱 내게 의존하게 될 뿐이었다.
“연아.”
방문이 열리고, 잔잔하게 가라앉은 푸른 눈이 내 얼굴을 한가득 담았다. 물 흐르는 듯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온 프리디야 스승님은 내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셨다.
“네, 스승님.”
“카디쇼는 내게 맡기고, 너는 마음 편히 만찬을 즐기고 오렴.”
“스승님께선 저희랑 같이 안 가실 겁니까?”
푸른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스승님은 깔끔하게 정리한 내 옷깃을 툭툭 두드리고 슬쩍 뒤로 물러났다.
“북제국의 황궁에는 혹시 내 얼굴을 알아볼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그들과 마주치면 분명 귀찮은 일이 조금 생길지도 모르니, 나는 이곳에 남아 있는 편이 좋을 거라 판단했단다.”
한동안 칩거했던 스승님과 구면인 자들이라. 분명 나이도 좀 먹고 위치도 높은 자일 테지.
“그러시다면야 어쩔 수 없죠. 그럼 카디쇼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렴. 다만…”
스승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자신이 선물한 반지를 톡톡 두드렸다.
“내일 아침까지 네가 아무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널 찾아갈 테니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거든 일단은 협력하는 척하면서 시간만 끌려무나. 알겠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도 좋단다.”
싱그러운 미소가 날 배웅했다. 나 또한 미소로 답했다.
“다녀오겠습니다.”
***
마르낙이 떠나고, 프리디야는 카디쇼의 침대 옆에 앉아 챙겨 온 책을 펼쳤다. 그녀가 채 몇 글자도 읽기 전에 자그마한 목소리가 이불 속에서 새어 나왔다.
“혹시 조언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카디쇼는 언제나처럼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프리디야는 글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세요.”
마르낙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말투. 방금 전까지 넘치던 생기는 자취를 감추고 푸른 두 눈은 마치 유리알처럼 그저 투명하게 이불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카디쇼의 얼굴을 비쳤다. 카디쇼는 몇 번이고 말을 고른 끝에 신중하게 질문을 꺼냈다.
“혹시 폭주해서 힘을 통제 못 한 탓에… 민폐를 끼쳐 버렸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세상에 통제 못 할 힘은 없어요. 만약 힘이 제멋대로 날뛴다면, 그건 단지 요령의 문제일 뿐이에요. 특히나 당신은 운이 좋아요.”
“네? 운이 좋다니… 그게 무슨…?”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책이 접혔다. 프리디야는 가까운 책상 위에 책을 올려두며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자신의 힘조차 통제 못 하고 휩쓸림에도 그런 당신의 뒷감당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마르낙의 이야기였다. 카디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건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민폐만 끼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요?”
온기 하나 없는 답. 그렇다고 그 답에 증오나 미움이 담겨 있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아 그저 허무하고 공허할 뿐.
카디쇼는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눈앞의 인형 같은 여인이 얼마나 강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녀는 규격 외의 존재. 자신은 그녀의 밑바닥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카디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제가 제 힘을 통제할 수 있도록.”
“흐음.”
프리디야는 우두커니 앉아 말없이 카디쇼를 한참 바라보았다. 무거운 기다림. 그 기다림의 끝에 프리디야의 입이 열렸다.
“연이 얼굴을 봐서 아주 조금만 도와드릴게요. 무기 들고 따라오세요.”
떨어진 승낙. 카디쇼는 천운과도 같은 기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크게 허리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저한테 하는 감사는 됐으니, 앞으로 연이 말이나 잘 들으세요.”
프리디야가 일어나고 카디쇼는 잽싸게 무장을 챙겨 방을 나섰다. 그녀는 갑판으로 향하는 프리디야의 등 뒤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 주실 생각이신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대개 자신의 힘을 주체 못 하고 날뛰는 부류는 폭주한 상태로 죽기 직전까지 몇 번 다져 놓으면 다들 정신을 차려서 재잘재잘 잘 떠들어요.”
“예…?”
뭔가 대답이 이상했다. 불길한 예감에 카디쇼의 등골을 따라 식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하나만 더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세요.”
“혹시 살아오면서 자신의 힘을 통제 못 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프리디야는 고개를 까딱이며 두 눈을 깜빡였다.
“제 몸은 온전히 제 것인지라, 그런 칠칠맞지 못한 경험은 해 본 적이 없네요.”
“…!”
***
“어서 오시오. 다들 예상보다 빨리 와 줘서 일이 편하게 되었소.”
마차에서 내리자,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황금과도 같은 여인이 우리를 반겼다.
당연히 하녀들이 우리를 안내할 거라 생각했는데, 용왕녀 본인이 직접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다니. 진짜 이 왕녀님은 대체 무슨 교육을 받고 자란 거지? 바티스도 그렇고 용왕국의 교육이 원래 자유분방한 건가.
예상치도 못한 맞이에 우리는 조금 당황했지만, 르소나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우리의 인사를 기다렸다.
가장 잽싸게 반응한 건 쟈멜이었다. 그녀는 배꼽 인사를 하며 힘차게 소리쳤다.
“아, 안녕하세요!!! 만찬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궁궐에서 밥 먹어 보는 건 처음이에요!!!”
권력 앞에서 절로 숙어지는 허리. 그 힘찬 인사에 르소나는 직접 하얀 손을 뻗어 쟈멜의 허리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아앗?!”
“나를 너무 어렵게 대하지 마시오. 나는 그렇게 딱딱한 사람이 아니오.”
쟈멜의 몸은 갑작스러운 용왕녀의 접촉에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녀는 허리만 꼿꼿이 세우고서 두 눈을 데굴 굴려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얼른 이 용왕녀님을 떼어달라는 듯이.
“점심 만찬에 초대해 주신 데다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와 주시다니, 르소나 왕녀님의 지극한 환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구원자는 은발 머리를 하고 쟈멜을 찾아왔다. 다키아의 정중한 인사에 르소나는 쟈멜에게서 손을 떼고 볼을 살짝 부풀렸다. 나이에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자유로운 분위기 탓인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분명 편하게 대해 달라 했던 것이오만, 그리 인사하면 더욱 거리가 느껴지지 않소.”
르소나의 걸음에 다키아와 그녀의 거리가 성큼 줄어들었다. 다키아의 코앞에 다가온 용왕녀는 스스럼없이 다키아를 폭 하고 껴안았다. 용왕녀는 보통 여인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큰 장신이었기에 다키아는 졸지에 르소나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혔다.
“르, 르소나 왕녀님?”
“저번에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소. 꼭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다키아를 품에서 떼어낸 르소나가 싱긋 웃었다.
“여인들은 나를 따라오시오. 이 내가 어제 바삐 움직여서 그대들을 위해 아름다운 드레스를 미리 준비해 뒀소. 인사는 가면서 마저 나누겠소. 마르낙, 그대는 조금만 여기서 기다리시오. 그대를 안내해 줄 하인이 올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르소나는 다키아의 손을 잡고 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젤과 쟈멜이 그 뒤를 따랐고, 어머니는 내 눈치를 힐긋 보곤 내가 고개를 끄적이자 종종걸음으로 떠나셨다.
그렇게 서서 기다리길 잠시.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두 사내가 등장했다.
“아니, 르소나 걔는 어째서 다키아가 이곳으로 오는데도 내게 비밀로 한 거지?”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멋대로 마중을 나갈 줄 알고 르소나 왕녀님께선 말을 아끼신 거겠지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힐덴이라는 대머리 중년 사내와 샛노란 장발을 찰랑대는 용왕자 바티스 드라코. 둘이 날 마중 나왔다. 저들이 말을 나눈 바에 의하면 원래 나를 맞이하러 나올 사람은 힐덴 혼자였겠지만.
바티스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르낙, 다키아는 어디 가고 왜 너만 여기 왜 있어?”
언제 봤다고 냉큼 이름을 부르며 친한 척을 하는 건지.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저 단세포 용왕자랑 드잡이질을 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제 일행은 르소나 왕녀님께서 친히 데리고 가셨습니다.”
“뭐? 아, 이거 한발 늦었네. 그런데 넌 왜 여기 가만히 서 있는 건데?”
“그거야 제가 이제부터 안내할 거니까요.”
힐덴의 대꾸에 바티스가 입술을 삐죽였다.
“여기 놀고 있는 놈들 많은 거로 아는데, 왜 르소나는 자꾸 널 부려 먹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야, 너 진짜 르소나로 갈아탄 거 아니지?”
힐덴은 놀랐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슬슬 갈아타려고 했는데, 벌써 알아채 버리셨습니까?”
“야!!! 너, 너! 의, 의리 없게 그러기야!!!”
“장난입니다. 장난.”
“뭐 인마?!”
입을 떡하니 벌린 바티스를 뒤로하고, 힐덴은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르낙 사제님은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아, 예.”
그렇게 힐덴을 따라 장미궁 안으로 발을 들이자, 정신을 차린 바티스가 우리에게 따라붙었다. 그는 나를 지그시 째려보았다. 뒤통수가 살짝 따가울 정도로.
“나는 다 알아!!!”
“뭘 말씀이십니까?”
“네놈이 그 희멀건 상판으로 여자들을 등쳐 먹고 다닌다는 걸!!!”
“아, 그렇습니까?”
“뭘 태연하게 대꾸하고 있어!!! 네 이야기거든? 이 나쁜 자식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고함에 힐덴이 고개를 돌려 바티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바티스 왕자님. 르소나 왕녀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마르낙 사제님께 시비를 걸어서 만찬을 망친다면 이 장미궁에서 방을 빼셔야 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이곳에서 방 뺄 생각이 전혀 없으니, 길바닥에 나앉는 건 바티스 왕자님 혼자가 되겠죠.”
“뭐?!”
“오늘 밤도 등 따숩고 배부르게 지내고 싶으시면, 마르낙 사제님께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 주셔야 할 겁니다. 정 싫으시거든 만찬 때까지 방에 들어가 계시든지요.”
“힐덴, 너 진짜 내 편 맞아?”
힐덴은 바티스를 지그시 째려보았다.
“제가 왕자님 편이니까, 이렇게 충언을 드리는 겁니다. 아니면 진작에 때려치웠죠.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십쇼. 그나마 요즘 또 조용히 잘 지내시더니, 여태 쌓아 온 거 이번에 다 날려 먹을 생각입니까? 그럼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그냥 저 때려치우고 르소나 왕녀님한테 취직하겠습니다!!!”
조곤조곤하게 시작한 말이었지만, 뒤에 가서는 거의 울분 섞인 외침에 가까웠다. 바티스는 조금 당황한 눈으로 힐덴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그거야 여기까지 오면서 마르낙 사제님한테 제발 시비 걸지만 마시라고 제가 계속 이야기했으니까요!!! 아깐 절대 시비 안 거시겠다면서요!!! 제가 이러실 거면 제발 그냥 방에서 기다려 달라 했지 않았습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이제 진짜 시비 안 걸 테니까. 그만 고함 질러!!! 이 자식아!!!”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대머리 사내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바티스를 어르고 달래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뒤로 방에 도착할 때까지 바티스는 정말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탐탁지 않다는 듯이 째려보기만 했지.
“방 안에 미리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저희 르소나 왕녀님의 눈대중은 마법처럼 정확한 편이니 아마 몸에 꼭 맞으실 겁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힐덴은 머쓱한 표정으로 저만치 멀리 서 있는 바티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저희 바티스 왕자님의 시비에 반응하지 않아 주신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죠.”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몇 마디를 보탰다.
“아직 아이 같은 면모가 많으신지라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본성이 악한 분은 아닙니다. 저희 왕자님을 너무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담아 두고 있지 않으니, 편히 돌아가셔도 됩니다.”
정말 나는 저 도마뱀 왕자한테 별생각 없었다. 나한테 틱틱대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신경 쓸 거리조차 못 되는 것에 가까웠지만.
“감사합니다.”
힐덴은 깊게 고개를 숙이곤, 툴툴대는 바티스를 데리고 떠나갔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힐덴의 말대로 미리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화려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깔끔한 디자인의 검은 연미복이었다. 덤으로 정말 내 몸을 직접 재 보기라도 한 듯이 딱 맞았고.
이거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돈데.
똑똑.
커다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와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장미궁의 하녀로 보이는 여인이 내게 고개를 숙여 왔다.
“르소나 왕녀님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장미의 화원으로 나와 달라 하셨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따로 보자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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