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96)
196 화 인사
인사.
“이리 와 보시오. 그대들과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우니, 이별의 포옹이라도 해야겠소.”
“네?”
다키아가 황금빛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지만, 르소나는 한 발 거침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르소나는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키가 컸던 탓에 자연스럽게 다키아는 용왕녀의 풍만한 여체에 얼굴을 파묻게 되었다.
“읍?!”
단어 그대로 가슴으로 다키아를 껴안은 르소나는 다키아의 은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인자하게 웃었다.
“오늘 그대가 찾아와주어 참으로 즐거웠소. 나는 오늘부터 그대들을 오래된 친우처럼 여기기로 했으니,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소. 어떻소?”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르소나의 뒤에 조용히 서 있던 힐덴이 그녀의 실수를 짚어주었다.
“르소나 공주님, 대답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손부터 살짝 떼주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읍읍읍!!”
다키아의 대답은 가슴의 언덕에 파묻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르소나는 싱긋 미소 짓더니 다키아를 누르고 있던 손을 슬쩍 떼어주었다.
“아차,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내가 보기엔 용왕녀의 저 설렁설렁한 태도로 미뤄보아, 일련의 행위는 실수가 아니라 그저 짓궂은 장난일 게 분명했다.
“푸하아아!!!”
겨우 풀려난 다키아는 잽싸게 르소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러나 숨을 가다듬었다.
“좋다고 한 거로 알겠소.”
르소나는 그런 다키아를 보며 싱긋 웃으며 한마디 하곤, 이내 다음 희생자를 냉큼 잡아챘다. 그다음 타겟은 안타깝게도 바로 어머니셨다.
“이별의 포옹도 않고 어딜 그리 바삐 가려 하시오?”
‘살햇?!’
순식간에 잡힌 어머니의 얼굴은 그대로 용왕녀의 흉포한 두 언덕에 파묻혀버렸다. 용왕녀는 기를 쓰고 버둥대는 어머니는 아이 다루듯이 꼭 껴안고 어화둥둥 흔들어댔다.
“그리도 좋소?”
‘살해애애애앳!!!’
그냥 나가 죽으라는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당연히 그 소리가 용왕녀의 귀에 닿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다키아가 조금 진정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용왕녀님께선 저희를 차례대로 다 한 번씩 껴안을 생각이신가 본데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는군요.”
“한 번 안기는 거로 용왕녀라는 연줄을 만들 수 있다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안길 수 있지. 그럼 다음은 내가 안기러 가볼게.”
피식 웃은 지젤이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걸어 마치 줄을 서듯 용왕녀의 앞에 섰다. 옆에서 두 눈을 끔벅이던 쟈멜이 질세라 지젤의 뒤에 줄을 섰다.
“나도! 나도 인맥 만들 거야! 마르낙 사제님도 얼른 와서 줄 서세요! 저 다음에 용왕녀님께 안기시는 거예요!”
쟈멜의 한마디와 함께 어디선가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다. 당연히 그 눈빛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다키아 혼자였으니. 다키아는 두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말 줄 서실 거예요?”
“흠흠. 아닙니다.”
마음이 참으로 넓은 용왕녀와의 프리허그에 아예 흥미가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냅다 달려가서 줄을 설만큼 굶주리지도 않았다.
‘살햇!!!’
겨우 풀려난 어머니는 용왕녀에게 한 사발의 욕과 함께 양손의 중지를 대차게 먹여주시곤 냅다 달려와 내 허리에 매달려오셨다.
‘살해살해!’
불쾌한 지방에 파묻혀 죽을 뻔했노라며 한껏 성을 내는 어머니를 토닥여 달래는 사이, 지젤과 쟈멜이 용왕녀와의 포옹을 끝마쳤다. 둘의 포옹시간은 확실히 어머니나 다키아 때보다 확실히 짧았다.
“흠… 많이 부드럽긴 하네.”
지젤의 중얼거림에 쟈멜은 자신의 가슴을 슬쩍 내려다보곤 양 손바닥을 꼬물거렸다.
“이것이 바로… 부드러운 폭력… 대단해…”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과 작별 인사가 끝나자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뱀을 닮은 황금빛 동공이 반짝이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르소나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두 팔을 슬쩍 벌려 보였다.
“그대가 원한다면 그대에게도 내 특별히 이별의 포옹을 해드리겠소. 그것도 아주 진하게 말이오. 살짝 덧붙이자면 그대는 내가 처음으로 이별의 포옹을 권유한 남성이오.”
“저는…”
내가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의 두 눈이 가늘어지며 암녹빛 두 동공이 까맣게 죽어 들어갔다.
‘살해…?’
정말 저기 가서 저 지방주머니 달린 도마뱀에게 안길 거냐는 물음. 나는 잽싸게 말을 덧붙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르소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짓궂게 물어왔다.
“이 나의 제안을 거절하고도 정녕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소?”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농을 맞받아쳤다.
“벌써 후회하고 있으니, 농은 그만 거둬주셨으면 합니다.”
“그대가 싫다니, 여기서 억지로 더 권하는 것도 내 체면이 살지 않겠소. 게다가…”
르소나는 황금빛 눈으로 내 주위를 훑더니 짧게 덧붙였다.
“멋대로 그대에게 이별의 포옹을 했다간, 몇몇에게 조금 미움을 받을지도 모르겠소.”
말을 하며 불쑥 다가온 용왕녀가 내게 자신의 하얀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그대에겐 이별의 악수 정도면 족할 거라 판단되오.”
나는 공손하게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르소나는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은근슬쩍 검지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부드럽게 긁었다.
무척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그건…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엔 조금 미묘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리 와 보시오. 내 마지막으로 그대에게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소.”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그녀는 곧 앞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곤 내 귓가에 작게 속삭여왔다.
“내 이토록 편하고 친근한 사람이니, 혹시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거든 이웃 친구를 부르듯 언제든 편하게 부르시오.”
“정말이십니까?”
“그렇소.”
조각 난 열쇠도 완성한 이상, 이 앞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리베라티오와 충돌뿐이었다.
신의 그릇과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을 탈취하기 위해서. 게다가 이번 성물에서 성공적으로 어머니의 신성을 회수한다면 그건 내게도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었다.
특히나 열셋으로 찢긴 어머니의 신성중에서 일곱을 신성을 되찾아 과반을 넘게 되기에.
그런 점에서 쓸 수 있는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용왕녀라는 패는 솔직히 내가 완전히 다루기엔 어디로 튈지 몰라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뭐, 어떻게든 잘 쓰면 되겠지.
예를 들자면 새로운 선지자가 나타나면 용왕녀를 던져주고 시간을 끌게 한다든지. 곧 죽어도 용이니만큼 이기지는 못해도 쉽게 당하지는 않으리라.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후회하셔도 모릅니다.”
황금빛 용의 눈이 반짝였다. 여태까지보다 더 밝게.
“그대는 날 잊지 말고 부르기나 하시오.”
***
“음헤헤헤.”
르소나는 일국의 공주답게 통이 컸다. 우리에게 장미궁에서 입었던 비싸 보이던 예복들을 그대로 선물해줬을 뿐만 아니라 가져가서 맛보라며 이것저것을 한 보따리 챙겨주었다.
단지, 선물 받은 물건 중 대부분이 술이었지만.
“음흐흐흫.”
쟈멜은 길을 걷는 와중에도 양손에 든 포도주병을 바라보며 연신 히죽히죽 웃어댔다. 나는 그 모습에 슬쩍 궁금증이 일었다.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쟈멜은 연녹빛 눈을 활짝 뜨고서 내게 양손에 든 포도주를 찰랑찰랑 흔들었다.
“마르낙 사제님! 이거 한 병에 금화 다섯 닢은 족히 넘는 비싼 거예요!!! 제 꿈 중 하나가 비싼 술을 흥청망청 마셔서 취해보는 건데 이거 두 병이면 아주 얼큰하게 취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헤헤헤.”
옆에서 나란히 걷던 지젤이 피식 웃었다.
“두 병은 무슨. 너네 손에 든 그게 ‘요조숙녀의 포효’인 건 알고 말하는 거야? 그거 비싼 만큼 엄청 독하기로 유명한 술인데, 너 그거 몇 잔만 마셔도 아주 만취해서 바닥에 널브러질걸?”
“뭐래! 지젤 넌, 술의 ‘ㅅ’도 모르잖아! 나 술 엄청 잘 마시거든!”
쟈멜은 작은 체구치곤 술을 엄청 잘 마시는 편이긴 했다. 조금만 마셔도 맛이 가기 시작해서 그렇지.
‘쯧.’하고 혀를 찬 지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몸에 뭐 좋은 거라고 그리 찾아들 마시는지 모르겠다니까.”
쟈멜의 입가로 승자의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건 대화의 당사자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얄미운 미소였다.
“히히히. 그건 지젤, 네가 아직 ‘인생’을 몰라서가 아닐까? 나는 살다 보니 술이 참 맛있고 달게 느껴지더라고.”
“이 쪼그만한 게 진짜!!! 야! 네가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게다가 내가 마음먹고 마시면 너보다도 말술이거든?!”
“헹! 그럼 붙어보던가!”
항상 침착하고 분위기를 살피는 지젤이었지만, 어찌 된 게 쟈멜과 단둘이 붙여놓으면 매번 애가 둘이 되어버렸다. 옆을 슬쩍 보니 어머니가 쟈멜의 손에 든 술병을 빤히 보며 입술을 살짝 핥으시는 게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물제비호로 돌아가면 한바탕 술판이 벌어질 듯했다.
뭐, 하루쯤 이렇게 쉬어가도 괜찮겠지.
***
물제비호에 도착한 우리는 챙겨온 짐을 풀어 정리하고 받아온 술과 음식들을 풀어 한바탕 마실 준비를 끝마쳤다.
스승님과 펄리도 함께 술잔을 나눴지만, 안타깝게도 카디쇼는 끼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그녀는 스승님한테 흠씬 두들겨 맞아 방안에 드러누워 끙끙대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별일 아니라 했으니, 아마도 무슨 훈련 같은 걸 한듯싶었지만.
쿵.
술잔이 오가고 결국, 발갛게 달아오른 지젤의 얼굴이 탁자에 처박혔다.
“적셔!!! 내가 이겼따!!!”
포도주가 든 잔을 든 쟈멜이 알딸딸한 표정으로 넘실대는 잔을 절묘하게 휘휘 휘둘러댔다. 두 친구 간의 주량 싸움은 그렇게 쟈멜의 완승으로 끝났다. 승자인 쟈멜도 혀가 풀려 제 상태는 아닌 듯했지만.
‘ㅅ…ㅏ…ㄹ…ㅎ…ㅐ…’
요조숙녀도 마시면 길가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게 만든다는 ‘요조숙녀의 포효’ 두 잔 만에 인사불성이 된 어머니는 완전 취한 탓인지 내가 있는 곳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프리디야 스승님의 품에 안겨있었다.
스승님은 매번 얼굴 보자마자 도망치기 바쁜 어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품에 와 안긴 게 퍽 재미있으신지 어머니의 볼을 연신 쿡쿡 찔러대며 놀고 계셨다.
쿡쿡.
그리고 누군가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고개를 돌리자 하나도 취하지 않은 채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날 반겼다.
“슬슬 무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도 이야기해줘야지! 장미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펄리의 말에 나는 주변을 훑어보곤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나가서 이야기하죠.”
나도 그녀에게 따로 물어볼 게 있었다.
“그래! 그래! 바람 좀 쐬지 뭐!”
선실을 벗어나 갑판 위로 나오자 강 특유의 습한 냄새가 풍겨왔다. 밤거리는 이미 묘한 안개가 집어삼킨 뒤였다.
“그래서!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보시면 아실 겁니다.”
나는 품속에서 황제에게 건네받은 열쇠 조각을 꺼내 보였다. 열쇠를 본 펄리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멍하니 끔벅거렸다.
“그거 마지막 조각 맞지?”
“예.”
이내 그녀의 입가로 환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잘했어! 잘했어! 역시 네가 최고! 최고야!”
폴짝폴짝 뛰던 그녀가 칭찬과 함께 은근슬쩍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린 열쇠 조각을 낚아채 가려 시도했다. 나는 가볍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녀의 손길을 피해냈다.
“열쇠는 제가 보관할 겁니다.”
“뭐, 좋아! 좋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열쇠를 찾은 것도 너니까!”
순순히 납득한 펄리가 생글생글 웃어댔다.
“그럼 이제 그릇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갈 겁니까?”
“아니! 아니! 전에도 말했지만, 아직 그릇은 미완성이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 참아! 내가 진짜 딱 완벽한 때에 네 손을 꼭 잡고 그릇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게!”
내가 그녀를 완전히 믿지 않고 열쇠를 주지 않은 것처럼, 그녀 또한 내게 그릇이 만들어지고 있는 장소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마 내가 성물만 먹고 튈 걸 걱정하는 것이겠지.
“뭐, 좋습니다.”
“나도 좋아! 그럼 한동안은 푹 쉬고 있어! 아마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만약 몰래 열쇠를 빼돌리려고 하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냐! 아냐! 걱정 마!”
펄리는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유능한 너랑은 아주 길고 오래가려고 생각 중이거든! 다음에도 같이 일해야지! 나는! 나는! 정말 네가 딱 마음에 들었어! 너무너무 잘해줘서 이거 어쩌지! 안 되겠다! 내가 찐하게 뽀뽀라도 해줄게!!!”
“예?”
이해할 수 없는 대화 흐름과 함께 기습적으로 펄리의 입술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움?!”
내가 막기도 전에 기습적인 뽀뽀 시도는 살짝 달아오른 하얀 손바닥에 막혔다.
“거기까지만 하세요.”
한마디의 말과 함께 진한 포도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발갛게 달아오른 두 볼과 살짝 풀린 황금빛 두 눈. 펄리의 기습 뽀뽀를 막아낸 건 어느새 우리를 따라 나온 다키아였다.
다키아는 펄리를 가볍게 밀어내고 나와 펄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다키아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녀의 체온으로 달아오른 새하얀 김이 그녀의 숨을 따라 새어 나왔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에요.”
“나는 네가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걸?”
펄리가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달큰하게 취한 다키아는 명백한 적의를 품고 펄리를 노려보았다.
“저는 당신처럼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는 사람을 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고 이 기회에 똑바로 말해둘게요. 앞으로 마르낙 사제님한테 버릇없이 멋대로 굴지 마세요.”
펄리는 두 눈을 데굴 굴려 나와 다키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끅끅 웃음을 참았다.
“킥킥! 그래! 그래! 네가 뭐 때문에 그리 열불을 내는지는 알겠으니까! 굳이 토를 달진 않을게! 게다가 나는 취한 사람이랑 드잡이질하는 취미는 없거든! 나는 그럼 먼저 자러 간다! 둘 다 잘자! 잘자!”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손바닥을 팔랑이며 냉큼 선실 안으로 사라졌다. 취기 탓에 귀까지 빨간 다키아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작게 물어왔다.
“혹시… 괜한… 참견이었을까요…?”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웃었다.
“아뇨. 잘하셨습니다. 펄리와는 나름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슬슬 들어가서 술자리를 정리하면 딱 될 것 같습니다. 들어가시죠.”
“아뇨.”
다키아가 불쑥 내 손목을 꼭 붙잡았다.
“저도 따로 드릴 말이 있어서 그런데 마르낙 사제님은 사제님 방에 먼저 가서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죠.”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든 듣고 나서 술자리를 정리해도 늦지 않았다. 애초에 급한 일도 아니었고.
“네, 그럼 저 먼저 잠시 들어가 볼게요. 준비할 게 있어서요.”
다키아는 여전히 달아오른 귀와 함께 선실 쪽으로 쏙하고 사라졌다. 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내 방으로 향했다.
***
똑똑.
방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들어오시면 됩니다.”
끼익 거리는 소리. 문이 열리자 나는 곧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키아?”
몸에 달라붙는 검은 천들이 다키아가 평소 한 겹 더 챙겨 입어 숨기던 몸매를 드러냈다. 건강미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조화된 곡선. 검은 드레스의 한쪽 어깨 위에는 그녀의 은빛 머리칼을 닮은 은하수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래, 다키아는 어찌 된 것인지 낮에 만찬회 때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서 내 방에 다시 찾아왔다. 여전히 발갛게 취한 채로.
“어, 어때요? 마르낙 사제님?”
“무척 잘 어울리십니다. 낮에도 말씀드렸지만요. 그런데… 이 한밤중에 그 옷은 왜 다시…?”
“그건…”
취기로 살짝 풀린 황금빛 두 눈이 묘한 열기로 번뜩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살짝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다키아는 붉은 입술을 오물거린 끝에 한마디를 꺼냈다.
“낮에 혼자 못하신 작별 인사… 그거 제가 대신해드릴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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