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
2 화 삶이란?
삶이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계란이다. 삶은 계란.
이게 무슨 의미냐?
아무리 애써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거다.
기껏 용써서 살아왔더니 결국 게임 속에 떨어진 나처럼.
***
일단 가슴에 손 얹고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나는 에디터(Editor)를 사용해서 세이브 파일을 조작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
나는 게임에 에디터를 사용한 데 있어서 단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다.
첫째. 이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이 게임은 싱글 게임이다. 즉, 내가 세이브 파일에 무슨 짓을 하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진정한 게이머라면 순정으로 게임을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옳다. 그 말은 분명 옳다.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성취에 대한 흥미를 죽여버리는 에디터의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명하겠다. 이십 대 후반으로 접어든 내 인생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취미인 게임을 하기엔 너무나 바쁘고 피곤했다. 나는 그래서 현실과 타협했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서 시작하는 데까지만 에디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렇다. 나는 애초에 내가 이 게임을 사게 된 계기인 ‘부패의 사제’로 전직하는 시점까지 에디터를 썼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 게임은 ‘무한한 자유도’를 모토로 발매된 게임이었고, 그만큼 수없이 많은 직업들로 가득 찬 자유로운 세계였다. 나는 늘 그래 왔듯이 틈틈이 새로운 게임에 관한 뉴스와 정보를 찾아봤고, 이 게임의 직업 중 하나인 ‘부패의 사제’에 꽂혀버렸다.
부패의 교단.
딱 듣기에도 세계의 공적 같은 이름이 아니겠는가? 만약 부패의 교단이 세계에 이로운 교단이었다면 ‘발효의 교단’정도로 불렸겠지. 아, 김치 손으로 쭉 찢어서 먹고 싶다.
하여튼.
게임 속 부패의 교단은 이미 전멸해버린 교단이었다. 플레이어는 그 교단의 흔적을 쫓아 고된 시련들과 희귀한 재료들을 모아서 마침내 부패의 사제로 전직에 성공하면 전 세계에 퍼진 13개의 성물을 찾는 것을 목표로 여정을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부패의 사제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뒤는 스포일러라 안 읽었다.
부패의 사제 플레이에 대한 평가는 아주 간단했다.
– 전직 난이도도 극악. 플레이 난이도도 극악. 성능도 구림.
이 단 한 줄의 평가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성능이 구려? 그 말은 즉, 대부분의 사람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난 게임을 하면 고인 취급 받는 직업을 하는 걸 즐겼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힙스터 기질이라고 비판하겠지만, 구린 직업을 보면 가슴이 뛰는 걸 어쩌겠는가?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나버린 것을.
나는 그래서 당장에 게임을 지르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에디터를 사용해서 캐릭터에게 부패의 사제 전직에 필요한 재료를 다 넣어두고 전직 장소로 캐릭터를 이동시켰다.
이건 지금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선택 중 하나다.
어째서 나는 좀 더 편의를 추구하지 않았는가?
모든 스텟을 최대로 찍어둔다든지, 주머니에 막대한 돈을 넣어둔다든지, 아니면 아예 무적을 켜놓는다든지!
게임 속으로 떨어질 줄 알았으면 그냥 사기캐릭터를 만들어두는 거였는데.
모든 전직 재료가 준비된 나는 전직 퀘스트를 보며 기계적으로 엔터를 눌러댔다. 재료가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순식간에 전직 퀘스트가 진행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전직 퀘스트에 ‘예’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이 게임 속으로 떨어졌다.
한 명의 ‘부패의 사제’가 되어서.
***
가슴 주머니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손이 꿈틀댔다.
그리고 내 머릿속으로 한 가지 말이 형태를 갖추어 흘러들어왔다.
‘살해!’
‘살해! 살해!’
그래, 이 한물간 데스메탈 가수처럼 외쳐대는 게 내가 모시는 ‘부패의 어머니’시다.
사실, 이것도 장족의 발전을 한 것으로 첫 번째 성물의 신성을 흡수한 뒤에야 말을 전하실 수 있게 되셨다.
첫 번째 성물을 탈취하기 전까지는 저 말 한마디도 내게 전하시지 못한 채, 그냥 저 말라비틀어진 손을 최대한 용써서 꿈틀대며 제 의사를 전했었다. 물론, 중요한 메시지는 전혀 없었다.
오 년.
내가 열세가지 성물 중 첫 번째 성물을 탈취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오 년 전. 이 게임 속에서 깨어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건 부패의 교단 사제복 한 벌과 내 가슴 위에서 꿈틀대고 있던 손 하나.
이 ‘부패의 어머니의 손’은 부패의 사제 마지막 전직 재료로서 원래는 전직과 동시에 사라졌어야 할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사라지지 않고 내 가슴 위에서 꿈틀대고 있던 이 말라비틀어진 손은 나와 ‘부패의 어머니’를 이어주는 무전기 역할을 했다.
손 너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의 존재감 덕에 나는 정말 내가 게임 속 세계로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보다 쉽게 인정했다.
특히나 이 부패의 사제는 현대인인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에 최적화된 몸이었다.
게임 설정상 부패의 사제는 약물로 신체를 개조한 강화 인간이다.
세계의 공적인 교단답게 부패의 사제는 소수 정예를 지향했고, 부패의 사제가 되는 퀘스트의 대부분은 신체를 개조하는 데 필요한 희귀한 재료를 모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몸이 무엇보다 좋은 점을 딱 하나 꼽자면 ‘신성’이 담기지 않은 공격으론 부패의 사제를 죽일 수 없다는 것.
그 덕에 아까 날 쫓아온 레인저들에게 머리가 날아갔음에도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었다.
뛰어난 신체능력과 예민한 오감. 신성이 아니면 죽지 않는 몸. 마치 현대인이 판타지 세계에서 살아갈 것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몸이라고 해도 좋았다.
다만, 막상 이 개조된 몸이 내 몸이 되어버리니 치명적인 단점들이 존재했다.
뇌의 어딘가가 맛이 갔는지, 예민한 오감에 비해 뭔가 감정이 동하는 부분이 조금 망가진 듯했다. 피도 잘 못 보던 내가 이젠, 그 어떤 잔인한 광경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이건 오히려 장점에 가깝겠지.
문제는 내가 더 이상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각을 잃어버렸다.
미각을 잃어버린 건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큰 단점으로 다가왔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 진짜 정말로. 자글자글 구운 삼겹살을 김치에 싸서 먹고 싶다! 이리저리 볶은 김치 볶음밥을 먹고 싶다! 짜장면이랑 탕수육도 먹고 싶다!
‘살해!’
부패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 상념에서 끌어내렸다.
“그리 재촉하지 않으셔도 움직일 겁니다. 부패의 어머니시여.”
나는 눈밭을 가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두텁게 쌓인 눈들은 내 걸음걸음을 집요하게 방해했지만, 강철 같은 내 몸은 아무렇지 않게 눈밭을 헤치며 걸어나갔다.
‘살해!’
“아무리 그렇게 떼쓰셔도, 다음 성물을 바로 찾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이번 소동이 진정될 때까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잠시 잠적해 있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머니.”
일구이언 이부지자(一口二言 二父之子)라.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아빠가 둘이라더니. 에디터 한 번 썼다고 졸지에 나는 엄마가 둘이 돼버렸다.
그래도 ‘부패의 어머니’는 이 세계에서 한 점 의심 없이 믿어도 되는 유일한 내 편이었다.
나는 모두에게 미움받는 여신의 유일한 사제였으니까. 그래서 매일 칭얼대는 여신의 목소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해가 지자, 숲에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지독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다행히 강화 인간인 나는 약간의 빛만으로도 충분히 앞을 볼 수 있었고, 지칠 줄 모르는 두 다리가 내 몸을 이끌었다.
살을 베어내는 듯한 추위가 바람을 타고 내 얼굴 때려댔다.
추위쯤이야 견딜만 했지만, 온갖 상념이 머리를 들쑤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내게 늘 말씀한대로 사짜로 끝나는 직업이나 고를걸.
전사. 마법사. 주술사. 이런 사짜 직업들.
만약 저런 직업을 골랐다면 적어도 이 눈밭에서 머리가 한 번 날아가는 경험은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바람을 타고 눈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눈보라다.
아무리 강화인간이라도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펴서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잠시 몸을 누일 곳을 찾았다.
마침 저 멀리 어두운 동굴이 보였다.
어느새 허벅지까지 쌓여버린 눈을 헤치며 어두운 동굴에 들어서자, 한 쌍의 눈동자가 날 노려보았다.
집채만 한 곰이었다.
‘살해!’
“안 싸울 겁니다. 부패의 어머니시여.”
나는 경계심 가득한 시선 속에서 동굴의 앞쪽에 자리를 틀고 주저앉았다. 저 거대한 곰이 날 먼저 공격하진 않을 테니까.
게임 속 부패의 사제에겐 대부분의 몬스터와 동물이 중립이었다. 즉, 선공을 취하지 않는 이상 저쪽이 날 공격해올 일이 없다는 것.
내가 직접 이 몸으로 생활해온 바로는 지성이 있는 생명체들은 느끼지 못하는 부정한 기운들을 동물과 몬스터들이 느끼는 듯했다.
덕분에 특이한 몇 종류의 동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날 꺼렸다.
곰의 시선 속에서 나는 두 눈을 감고 내면속으로 침전했다. 모든 것이 생략된 상태창이 머릿속에 천천히 떠올랐다.
[신성 : 1623]원래 있었을 온갖 능력치들은 사라지고, 내 상태창에 남은 건 신성 하나뿐이었다.
저 신성은 ‘부패의 사제’에게 있어서 일종의 스킬포인트 역할.
교환비는 아주 간단했다.
1만의 신성을 지불 하면 1개의 ‘권능’을 얻는다.
자판기도 아니고, 신성을 넣은 대로 권능이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그 자판기 같은 시스템 덕에 나는 얼마 전 성물 하나의 신성을 통째로 흡수하고 ‘권능’ 하나를 일깨우는 데 성공했다. 대놓고 사용하면 당장에 온갖 교단들의 추적을 한몸에 받을 ‘권능’ 하나를.
차가운 동굴 벽에 몸을 기대고 있자니 살짝 서러움이 밀려왔다.
하필이면 게임 속에 떨어져 이 무슨 고생인가.
‘살해!’
“안 우울해 했습니다. 부패의 어머니시여. 걱정은 접어두시지요.”
나는 품속에 있는 말라비틀어진 손을 꼭 부여잡았다.
그래도 내 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일까. 이 말라비틀어진 손을 부여잡고 있을 때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래, 13개의 성물. 아니, 이제 12개 남은 성물의 신성을 모두 모으면 ‘부패의 어머니’께서 내 모든 바람을 이뤄주신다고 했다.
그럼 일단 미각부터 회복시켜 달라고 해야지.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진 뒤로 마음속으로 늘 하는 자기 암시를 되새겼다.
이 세상은 결국 게임일 뿐이고, 나는 조금 현실적인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 삶을 즐기자.
울퉁불퉁한 돌바닥 때문에 엉덩이가 살짝 시려웠다. 나는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조금 서럽네.”
***
“거기 멈추십시오.”
날 막아서는 경비병. 잘 관리된 장비들이 이들의 군기가 상당히 잘 잡혀 있음을 나타냈다.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
나는 최대한 경건하게 미소 지으며 신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난 단출한 두 칸짜리 인벤토리 중 하나에서 사제복을 꺼내 입은 상태였으니까.
“그대의 삶에 흔들림 없는 행복이 유지(維持)되길. 신분증은 오는 길에 조난한 탓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경비병이 짧게 물었다.
“어느 교단 사제분이십니까?”
“매일의 삶을 수호하는 유지(維持)의 여신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제가 모시는 신의 이름을 거짓으로 고하는 것은 굉장한 중죄. 그 벌은 교단이 아니라 신이 직접 사제에게 내렸다. 사제가 아닌 자들이 사제를 사칭하는 것 또한 천벌의 대상. 사제를 사칭한 자들은 신의 노여움을 사서 ‘낙인’이 새겨졌다. 해당 교단의 신도들에게만 보이는 죄의 ‘낙인’이.
경비병이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귀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사제님. 다만, 들어가시거든 바로 신분증부터 새로 만드시는 것이 좋으실 겁니다.”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살해!’
우리 자애로운 부패의 어머니께선 이런 사칭에 굉장히 관대하셨다. 부패의 어머니가 대가를 막아주시는 덕분에 나는 어떠한 사칭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서 다른 사제의 흉내가 가능했다.
그렇게 난 눈투성이가 된 몸으로 모시는 신을 사칭한 채, 북부의 도시 귀스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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