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00)
200 화 추궁.
추궁.
“…기억이 흐릿해?!”
솔도스의 얼굴이 명백한 경멸을 담고 일그러졌다.
“감히 이 나라를 모욕하고 능멸한 그 깊은 죄를 기억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완전 화난 거 같지 않습니까? 스승님?”
“그런 것 같구나.”
스승님은 어깨를 으쓱이시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우리는 솔도스의 면전에서 이 대화를 나눴고 대화 내용은 전부 솔도스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이 버릇없는 자식들이!!! 내 참으려 했건만, 도저히 못 참겠다!!! 검을 들어라!!! 이 극악무도한 악적아!!!”
생각보다 예의가 있는 사내였던 건지, 솔도스는 화를 내며 전투 자세를 취하는 와중에도 스승님이 검을 들어 자세를 취하라며 윽박질렀다. 그에 스승님은 오히려 검을 늘어뜨리곤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쪽 말고 키필리스를 불러줬으면 하는데…”
“키필리스 선배는 남부 전선 최전방에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네가 멋대로 오라 가라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솔도스의 허리가 낮아지고, 그의 봉 끝이 정확하게 스승님의 중심을 노렸다. 스승님은 솔도스의 눈을 향해 검을 휘휘 내저었다.
“한 가지만 물어도 괜찮을까?”
“뭐냐!!!”
“이 검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안 들어?”
푸른 날을 가진 스승님의 애검. ‘절명’. 스승님은 마치 그 검에 어떠한 사연이 있다는 듯이 솔도스의 면전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내밀었다.
“너 같은 무도한 자의 검 따위!!! 내가 알 바가 아니다!!!”
“하아.”
또 한 번의 한숨. 스승님이 검 끝을 들어 올렸다. 프리디야 스승님의 얼굴엔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어린 달인이란 역시 너무 귀찮구나. 갓 백 년 살아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 자아는 너무 강하지.”
“너 같이 제힘을 멋대로 휘둘러온 자에게 훈계받을 내가 아니…”
까앙!!!
선공은 스승님이었다. 스승님께서 늘상 내게 해주신 ‘적이라 판단된 상대의 말을 굳이 끝까지 들어줄 필요가 없다.’라는 가르침처럼 스승님은 가볍게 솔도스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공간을 내달려 솔도스를 공격했다.
“큭?!”
검과 봉이 맞부딪히고 양측 모두 튕겨냈다. 더 많이 밀려난 것은 예상대로 솔도스였다. 그는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목소리를 잃어버렸고, 나의 스승님은 표정을 버렸다.
무기질적이며 살의에 가득 찬 검로. 푸른 검은 한 마리 맹수처럼 솔도스를 몰아쳤다. 솔도스는 바삐 손을 놀리며 스승님의 공세를 빗겨내고 막아냈다.
인지의 영역을 벗어나는 공방. 그 자체만으로 솔도스가 한 명의 어엿한 ‘달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스승님께서 솔도스를 상대하는 사이, 나도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몰래 내빼고 있던 수석 치안감 브레임은 내 부름에 몸을 움찔 멈췄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가시기 전에 혹시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잠시간의 침묵. 그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는 듯 보였다. 여태 스승님의 등 뒤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나와 당장 솔도스에게 발이 묶인 스승님. 짧은 고민의 끝에 그가 달한 답은 내게 그리 기꺼운 것이 아니었다.
“너에게 답해줄 말 따윈 없다!!!”
그는 거침없이 책장을 걷어차 내 쪽으로 넘어뜨리고 도주를 재개했다.
역시 만만하게 보인 건가.
나는 가볍게 넘어지는 책장을 피해 그의 뒤를 쫓았다. 스승님이 여전히 솔도스와 접전을 펼치고 계셨지만, 우리 프리디야 스승님이 솔도스에게 당할 거란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당장 멈추시면 안 아프게 묻겠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구나!!! 아주 염치가 없어!!! 나는 제국의 수석 치안감이다!!! 그깟 협박에 굴…”
쾅!!!
걷어차인 몸이 데굴데굴 굴러 벽에 처박혔다.
“끄으으으…”
당연히 그가 날고 기는 재주가 있지 않은 이상, 범인의 능력을 넘어선 내 육체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가 정신을 차리길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게 멈추시라고 했잖습니까. 아프게 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닥쳐라! 네가 나였으면 안 도망쳤겠느냐!”
하긴, 나라도 도망쳤지.
“그럼 이제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대답만 제대로 해주시면 당장 몸 성히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잠깐 침묵하더니 주저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대답을 하고 말고는 내가 선택할 것이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우리를 속여 달인을 부른 것이나 작금의 순순한 태도로 보건대 이 자는 굽힐 줄을 알면서도 뜻이 강직한 자였다. 어디 몇 군데 망가뜨리는 거로 쉬이 답하진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럼 묻겠습니다. 대체 누가 스승님의 물건을 훔쳐간 것입니까?”
“어째서 내게 그걸 묻느냐! 나는 모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은 스승님의 물건을 훔쳐간 이들이 속한 조직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지요? 청장님과 뜻을 같이한다고. 당신은 이미 짐작해버린 것 아닙니까? 장인의 거리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자들의 정체를요.”
“…”
브레임은 대답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여기서부턴 내가 그를 달래야 할 차례였다.
“당신도 보셨다시피 제 스승님은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황제를 호위하는 달인께서도 인증한 극악무도한 황궁 반파의 진범이시지요.”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제 스승님은 그 검을 되찾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진정 당신들의 ‘거사’가 어그러지길 바라는 겁니까?”
거사라는 단어에 브레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못하는 인간의 눈은 쉬이 진실을 토해내는 법. 그의 눈에 집중하길 잘했다. 나는 조금 더 두루뭉술한 단어와 내가 추리해낸 바로 그를 자극했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로 이 나라의 근간을 흔들 만큼 큰일을 도모하고 있는 거겠지요. 양질의 무기가 다량 필요할 만한 일은 그것밖에 없을 테니.”
“…허튼소리를 하는군.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만.”
“이미 일이 많이 꼬였습니다. 청장은 아마 치안청의 권한을 이용해 최대한 이번 일을 쉬쉬해 황제의 귀에 늦게 들어가려고 했을 테지요. 하지만 이미 치안청이 푸른 불꽃에 휩싸였단 이야기가 이 수도 방방곡곡으로 퍼졌을 겁니다.”
나는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마 황제의 귀까지 그 이야기가 들어갈 테고, 북제국의 황제는 이 이야기의 뒷사정을 궁금해할 겁니다. 그 정도. 딱, 그 정도 선에서 이번 사건을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을 살짝 숙여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황제를 옥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요.”
동공이 아까보다 더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 무어라 반사적으로 외치려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 반응을 보니, 제 추측에 확신이 더해지는군요.”
혹시나 싶어서 찔러본 건데. 이렇게 들어맞으면 오히려 곤란한데.
북제국의 황제가 그의 거미들을 풀어 그토록 강경한 노선으로 반전파들을 숙청하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로 그 자리를 메우는데 귀족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리가 없었다. 벌레도 밟으면 제가 살기 위해 꿈틀하는 법이니.
귀족들이 다 늙은 황제를 죽이기까진 않더라도, 갈아치우려고 시도는 하겠지 싶었는데. 다만, 그 방법이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무기를 통한 강경책일 줄이야.
“이거 이 나라의 수도가 앞으로 참 시끄러워지겠습니다.”
“…언제부터 안 것이냐?”
“뭐, 저도 나름 여러 일을 겪은 탓이기는 합니다만. 그중에서도 하나 꼽자면, 당신은 제국의 치안감이나 되면서 제가 황제를 길가의 행인 부르듯, 대충 부르는 데도 별 상관을 않더군요. 보통은 예를 취하라 지적하지 않습니까?”
브레임은 입을 앙다물었다.
“내가 너무 정신이 없었군.”
“예상외로 순순히 인정하시는군요. 좀 더 아니라고 뻗대실 줄 알았습니다만.”
“너와 네 스승이 황제에게 일을 고했다간 일이 더 곤란해질 따름이니까. 그리고…”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작게 말을 덧붙였다.
“그 사람 죽이는 인형 같던 네 스승보다는 네가 말이 더 잘 통할 것 같았다.”
“흐음. 후한 평가는 감사합니다만, 그래서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없어진 것이 검이라 했나?”
“예.”
스승님한테 어떻게 생긴 검인지 물어보고 오는 거였는데. 그걸 깜박했네.
브레임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사실, 아까 너도 봤다시피 나도 이번 일에 대해선 자세한 그 내막을 모른다. 그래도 내가 가진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그 검을 되찾아 건네줄 테니,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강직한 자인 것과 별개로 믿을만한 지는 다른 문제였다.
“싫습니다. 당신은 이미 저와 스승님을 이미 한 번 속였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를 쉬이 믿을 수는 없지요.”
“그럼 나보고 뭘 어쩌란 건가?”
“안내하십시오.”
“…안내?”
빙그레 웃으며 브레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내 손이 닿을 때마다 그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수석 치안감쯤 되면 짐작 가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속한 그 조직이 물건들을 보관해둘 만한 곳의 위치를요.”
“내가 이 입으로 너한테 그 장소를 가르쳐줄 거라 생각하는가? 네게 그곳들을 가르쳐 줄 바에야, 차라리 이곳에서 혀 깨물고 죽겠다!!!”
브레임의 입이 벌어지고 진짜 혀 깨물고 죽을 기세기에 나는 재빨리 내 손을 브레임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으득.
“끄으으으으?!”
내 살을 파고든 브레임의 이빨 몇 개가 깨졌다. 그도 그럴 게 이제 내 손가락뼈는 이모탈리움이었으니. 연약한 인간의 이가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거 아십니까?”
“…”
“전 어제 황제와 밀담까지 나눈 사이입니다.”
장미궁에서 정원사인 척하던 황제긴 했지만.
“…?!”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황제와 밀담을 나눌 수 있는 위치기도 하고요.”
거짓말을 조금 보탰다. 어차피 황제 본인은 이 장소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당신이 여기서 혀 깨물고 죽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는 순간, 저는 어쩔 수 없이 이 나라의 황제께 제가 알아낸 것들을 고하고 잃어버린 물건에 준하는 보상을 받아낼 테니. 이제 당신의 처지를 조금 아시겠습니까?”
나는 그의 머리를 토닥이며 빙그레 웃었다.
“이미 외통수에 걸렸습니다. 당신은 그저 제발 제가 여기서 한 수를 더 두지 않도록 간절히 매달려와야 하는 처지고요. 아, 손 빼겠습니다.”
브레임의 입에서 내 손을 빼내자 그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친절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절 한 번 믿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정된 파멸로 당신의 동료들을 처박겠습니까? 아마 가장 먼저 당신이 모시는 치안청장부터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되겠지요.”
“…너를 믿을 수 없다.”
거의 다 넘어왔네.
“그럼 혀 깨물고 자살하십시오. 이번엔 말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아까 보셨다시피 저랑 제 스승님은 딱히 체제에 순응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닙니다. 저는 황제의 자리에 누가 앉는가에 대해 정말로 단 한 푼의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세 번째 침묵.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안내하겠다. 어젯밤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 훔친 물자들이 모두 한곳에 있을 거다.”
나는 그를 일으켜주며 활짝 웃었다.
“아주 현명한 결단이십…”
콰앙!!!
청장실 벽을 부서지고 튀어나온 한 남자가 바닥에 처박혔다. 뒤이어 푸른 선 하나가 빛살처럼 내리꽂혀 솔도스의 가슴을 짓눌렀다.
“크윽… 제길…”
데구르르.
튕겨난 봉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얼굴은 얼마나 얻어터진 건지 완전 만신창이였다. 여기저기 든 멍과 얕게 남은 자상들. 그가 입고 있던 하얀 도복도 여기저기 찢긴 데다 먼지투성이였다.
반면, 스승님은 한쪽 뺨 위에 가벼운 찰과상 하나 입은 것 빼곤 무척 멀쩡한 상태였다.
스승님도 다치긴 하는구나. 대단한데. 나는 마음속으로 바닥에 드러누운 솔도스를 향해 약간의 경의를 표했다.
솔도스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댄 스승님은 한쪽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곤 무기질적인 눈으로 솔도스를 내려다보았다.
“주제 파악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어린 아이야.”
그 자신만만하던 솔도스는 비통한 신음을 토했다.
“크윽…”
스승님은 검면으로 솔도스를 뺨을 툭툭쳤다. 검면이 닿을 때마다 솔도스의 표정 위로 굴욕이 더욱 진하고 선명하게 퍼져나갔다.
“네가 어려 뭘 몰랐기에 살려준 것이 아니다. 아이야. 이 나라의 전전대 황제가 내게 보였던 호의에 나도 이제야 호의로 답한 것이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푸른 검이 다시금 검집 속으로 사라졌다. 스승님은 검을 거두고 가볍게 대답했다.
“내가 황궁을 부쉈던 그 날, 내게 죄를 묻지 않은 건 바로 당시 그 황궁의 주인인 전전대 황제였다는 이야기지. 너는 나이가 어리고 낮은 지위에 있어 그 속사정을 몰랐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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