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01)
201 화 달래기.
달래기.
“황제께서…?”
황궁에 전전대 황제가 직접 죄를 묻지 않았다는 스승님의 설명에 솔도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게 그 사실을 미리 설명하지 않은 것이냐? 그렇다면 나도 좀 더 말로 상황을 풀어보려 했을 텐데.”
스승님은 솔도스의 가슴팍을 짓누르던 발을 떼고 어깨를 으쓱였다.
“어린 달인들은 대개 듣는 귀가 반쯤 막혀 있는 법이니. 내가 그 내막을 말했던들 네가 믿었을까?”
“…”
솔도스는 침묵으로 답했다. 아마 아까 이 사실을 말했다면 그저 궁지에 몰린 범죄자의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으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아까의 내 언행은 사과하겠다. 다만, 하나만 더 묻겠다. 어째서 치안청을 습격하고 건물에 불을 지른 이유는 무엇인가?”
“불은 아까 이미 껐다. 그리고 멋대로 습격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것을 훔쳐간 도둑의 뒤를 치안청의 누군가가 봐준 것 같아 배후를 알아내려 한 것뿐인데…”
스승님은 빙그레 웃으며 나와 브레임을 바라보았다.
“내 제자 연이가 이미 나름의 협조를 구한 것 같으니 이만 조용히 사라져줄 생각이라. 어린 달인아. 너도 나처럼 조용히 물러갔으면 하는데.”
“뭐라고…? 지, 지금 나보고 불의에서 눈을 돌려라! 이 말인 것이냐!!!”
소리 자체는 무척이나 위협적인 포효였지만, 지금 솔도스의 얼굴은 대체 뭐로 두들겨 맞은 것인지 여기저기 팅팅 부어있어 그 누가 보아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포효에 프리디야 스승님은 그저 검집에서 슬쩍 푸른 검날을 내보이는 것으로 답했다.
“싫다면 내가 널 더는 살려둘 이유가 없어지는데.”
“…”
나직한 위협에 솔도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곧, 그의 입이 열렸다.
“나를 죽이고 내 시체를 넘어가라.”
솔도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졌던 자신의 봉을 집어 들었다.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이 솔도스 가란디발트. 생에 단 한 번도 법도에 어긋나는 이를 좌시한 적 없나니. 여기서 중앙치안청을 습격한 신원불명의 그대들을 눈 뜨고 놓아준다는 것은…”
부어오른 양 눈두덩이와 수많은 자상. 다친 달인이 봉을 쥐고 몸을 낮췄다.
“곧 내 신념의 죽음과 다름이 없다. 나는 이 비루먹은 육체가 오늘 죽을지언정, 신념만은 지키겠다.”
결사의 각오. 솔도스는 꽉 막힌 외골수의 사내였다. 나라면 이 정도 일이야, 일단 목숨부터 챙기고 보았을 텐데. 다만, 저런 외골수적인 면모였기에 그가 지금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
“흐음.”
그 광경은 프리디야 스승님은 무표정했다. 처음 나와 대화를 나누던 그 시절처럼. 하얀 손이 천천히 움직여 집어넣었던 검 손잡이를 잡았다. 검은 무척이나 부드럽게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기서 정말 널 죽이면 내 입장이 곤란해지는 걸 계산하고 뻗대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필사의 각오로 임하면 정말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천천히 움직이던 검 끝이 솔도스의 목을 노리고 멈춰 섰다. 스승님은 가벼운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어느 손잡이지? 오른손? 왼손?”
“어째서 묻는 거지?”
“자주 안 쓰는 쪽 정도는 남겨줄까 싶어서?”
“그렇다면…”
솔도스는 퉁퉁 부어오른 입술을 벌리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건 그가 등장한 이래 가장 밝은 웃음이었다.
“양손잡이라고 답하지.”
프리디야 스승님은 유리알 같은 푸른 눈으로 솔도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남자의 말은 내가 근래 들은 말 중에 가장 멍청한 말이구나. 연아.”
“예?”
스승님은 봉 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살리는 것이 아니니, 아까와 달리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다. 연이 넌 먼저 그 치안감과 함께 먼저 가보렴. 얼른 뒤따라 가마.”
“음… 스승님?”
“왜 부르니?”
“저 남자가 죽으면 조금 곤란합니다.”
치안대원 몇 죽는 것과 달인이 죽는 것. 그 둘의 무게는 완전히 달랐다. 달인은 그 나라의 몇 없는 전략 병기나 다름없는데, 그 어떤 나라가 자신의 병기를 잃고 가만히 있겠는가. 스승님께서도 나름 방법을 생각해두셨겠지만, 저 사내가 안 죽고 제 발로 물러가게 하는 것.
그게 가장 최선이었다.
스승님은 그제야 봉에서 눈을 떼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파란 두 눈동자는 솔도스를 바라볼 때와 확연히 다른 빛으로 반짝였다.
“연이, 네게 뾰족한 수가 있나 보구나. 그렇다면 이 관대한 스승님이 반발자국 정도는 물러나 줄 수 있단다.”
자신이 뱉은 말대로 스승님은 내게 마음대로 해보라는 듯이 가볍게 뒤로 살짝 물러났다.
“뾰족하다고 할만한 것까지는 아닙니다만…”
나는 여전히 위협적으로 봉을 든 채 서 있는 솔도스를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갔다.
“솔도스님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는 내 얼굴을 힐끔 보곤, 재빨리 다시 시선의 끝을 스승님에게로 향했다.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이.
“솔도스님이든, 솔도스든 편한대로 불러라. 나는 내 적이 날 어떻게 부르든 상관치 않으니.”
“그럼 일단 솔도스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황제 폐하를 직접 호위하시는 분이시니만큼 경칭을 붙이는 편이 맞는 것 같군요.”
“말 끌지 말고, 요건만 간단하게 말해라.”
요점은 간단했다. 솔도스가 하고자 하는 건, 언제 어디로 사라져 도주할지 모르는 신원불명의 범인들을 이대로 놓아줄 수 없다는 것.
“솔도스님께선 황제 폐하를 호위하시니만큼 궁 안의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계실 테지요. 그러니 솔도스님께서 안심하고 물러나실 수 있도록 저희의 신원을 보증해줄 분이 계십니다. 저희의 신원만 확실 파악하신다면, 나중에 따로 제국의 지엄한 법에 따라 죄를 물으면 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든, 달인을 죽이고 도주하는 것보다야 가볍겠지. 거기다 법적으로 들어가면 나름 쓸 수 있는 뒷배가 있기도 한데다, 얼마 전 만났던 황제가 내게 호의적이었던 걸 보면, 그 쓸모가 다할 때까지 내가 쉬이 잡히게 하지 않으리란 판단이 섰다.
조금 솔깃한 제안이었는지, 솔도스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역시 이 자리에서 스승님한테 죽고 싶은 건 아닌 듯했다.
“…그래서 누가 너희의 신원을 보증해준다는 거지?”
“바로 용왕국의 공주이시며, 최근 장미궁에서 손님으로 지내시는 르소나 드라코 공주님이십니다. 용왕녀님께 가셔서 마르낙이라는 이름을 말씀하시면 아마도 흔쾌히 제 신원을 보증해주실 겁니다.”
그녀가 친우처럼 여기라 했던 걸 이리도 빨리 써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솔도스는 나와 스승님을 번갈아 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작금의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 아무 이름이나 가져다 대지 않았다고 내가 어떻게 믿지?”
솔도스의 의심은 타당했다. 다만, 나는 당연히 저 물음이 나올 줄 알았기에 그 답도 미리 준비해둔 뒤였다.
“잠깐 다가오셔서 귀 기울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큰소리로 하기엔 다소 비밀스러운 것이라.”
그는 순순히 내게 다가와 귀를 내밀었다. 아마 그가 보기엔 스승님만 아니면 자신을 위협할 존재가 없겠지.
“해봐라.”
나야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이 상황만 모면하면 될 뿐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전 어제 장미궁의 화원을 관리하시던 황제 폐하와 밀담을 나눴습니다. 이제 조금 믿을 만 하시겠습니까?”
“음…”
황제라는 단어가 나오자 솔도스의 기세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직접 장미궁의 화원을 관리하러 다니신다는 그리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지.”
“이제 좀 믿음이 가십니까?”
“아니. 나는 내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는다. 다만…”
짧게 말을 끊었던 그가 말을 이었다.
“…확인해볼 가치가 있긴 하겠군.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너희의 죄를 묻기 위해 사람을 보낼 테니, 감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막연히 그가 보낸다는 사람이 안 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의중을 알 수 없던 노황제가 날 아직 제대로 써먹지 못했으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그리고 하시는 김에 중앙치안청장의 뒤도 좀 조사해주셨으면 합니다. 아까 들으셨겠지만, 장인들의 거리가 습격당했는데 아무래도 치안청장이 그 도적들의 뒤를 봐준 것 같더군요.”
솔도스는 콧김을 흥하고 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건은 당연히 조사대상이다. 정말 치안청장이 제 직분을 다 하지 않고 도적들을 방관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내 직접 그를 단죄할 것이니 걱정 말고 너희는 너희의 죄에 대해서나 걱정해라.”
“그러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봐도 괜찮겠습니까? 도적들이 저희 물건을 언제 처분해버릴지 몰라서 말이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봉을 거뒀다.
“하지만 명심해라. 내가 너희를 이렇게 순순히 보내주는 것은 네 스승이라는 자의 무력에 굴한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죽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예.”
내 대답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깨부순 창문을 향해 달려가 그 구멍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그래, 한 걸음 물러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겠지. 그 누구도 개죽음을 바라진 않으니. 솔도스가 올곧으면서도 생각보다 약간의 융통성이 있던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한 건 해냈네.
나는 살짝 숙였던 허리를 한 번 쭉 펴고 스승님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스승님, 그럼 저희도 이만 가보도록 하죠.”
스승님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연이 넌 사람을 살살 달래는데 아주 재주가 있구나.”
“다 스승님 덕이지요.”
처음에 스승님과 지낼 때 눈치를 얼마나 봤던지. 살짝 기분을 거슬렀다간 수련할 때 아주 죽도록 굴리시니 알아서 눈치껏 기는 법을 아주 몸으로 체득하고 말았다.
프리디야 스승님은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내 덕? 나는 네게 사람 달래는 재주를 가르친 기억이 없다만…?”
“그럼 안 가르쳐주셨나 봅니다. 그럼 슬슬, 제 검 찾으러 가는 게 어떻습니까? 브레임 치안감님 얼른 안내를 시작해주시죠.”
내 부름에 여태 눈치만 보고 있던 브레임 치안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내가 그의 등 뒤를 따라 걷는데도 스승님은 가만히 서서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스승님, 어서 오시죠. 그런데 대체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네 대답 속에 든 뜻을 파악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방금 막 그 뜻을 깨달았지.”
내가 슬쩍 비꼰 걸 눈치챘다고? 식은땀 한 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연이, 네 그 달래는 재주는 아마 내 빨래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겠지?”
“네?”
“원래 깨달음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 찾아올 때가 있는 법이니, 아마도 연이 넌 차가운 강물에서 빨래를 두드리며 사람을 달래는 재주를 문득 깨달았던 거구나.”
“…”
스승님은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 어여쁜 스승님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한 번 제자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거로구나. 빨래를 네게 맡겼던 게 도움이 되었다니 참으로 기쁘단다.”
“…얼른 선물이나 되찾으러 가시죠.”
***
브레임의 부탁대로 두꺼운 로브를 걸치고 모자를 푹 눌러쓴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복잡한 수도의 뒷골목을 이리저리 누볐다.
“그런데 스승님.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보렴.”
“황궁은 대체 왜 부수신 겁니까?”
스승님도 질풍노도의 시기란 게 있었던 것일까. 워낙 자신의 옛날이야기는 잘 안 해주시니 그 내막이 무척 궁금했다.
“꼭 듣고 싶니?”
“예.”
프리디야 스승님은 ‘후우.’하고 짧게 한숨을 폭 내쉬고는 쓰게 웃었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했단다.”
“어떤 오해 말입니까?”
“그 당시 황제의 황후가 나와 황제가 외도를 한다고 오해를 했단다. 그래,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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