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05)
205 화 배부른 곤욕.
배부른 곤욕.
갑자기 나한테 사제이냐 묻더니 악신의 숭배자를 잡아달라고? 뭔가 조금 수상했다.
사제들이 일반인들보다 강할 확률이 높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제가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더욱 이상한 점은 이 통실통실한 사내는 내가 평범한 악신의 숭배자 하나둘쯤은 이길 능력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사내는 턱살을 출렁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마르낙 사제님께서도 눈치채셨다시피 바로 이곳, 펄떡이는 잉어의 주인인 악시눔입니다.”
“저는 제 이름을 밝힌 기억이 없습니다만…”
“제가 몸은 둔해도 나름 귀는 제법 밝은 편인 데다 ‘호기심’도 무척 많습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아둬야 요리실력도 잘 느는 법이거든요!”
악시눔은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강조했다. 마치 내게 무언가를 알아차려 달라는 듯이.
내가 아는 호기심은 하나밖에 없는데. 설마?
나는 몸을 낮추고 그의 귓가에 아주 자그맣게 내가 깨달은 사실을 속삭였다.
“당신도 ‘버둥대는 호기심’과 같은 부류의 존재입니까?”
순간, 통통한 사내의 눈에서 낯선 분위기의 정광이 일렁였다. 그는 냉큼 내 손을 붙잡더니 어디론가 나를 이끌었다.
“제게 마침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한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위층으로 안 올라가면 브레임 치안감이 수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두 분, 친한 사이십니까? 제가 보기엔 딱히 그런 사이는 아니신 듯했습니다만.”
“음…”
자연스럽게 같이 다녀서 잠깐 착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딱히 브레임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나야 내 물건만 되찾으면 될 뿐이고.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안내해 주십시오.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브레임 치안감께선 점원들에게 루보르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느라 한참 바쁘실 테니 말이죠.”
그는 ‘그리고 아마 아무것도 못 알아내실 테지요.’라고 작게 덧붙였다. 악시눔이 나를 인도한 곳은 브레임이 향한 위층과 정반대인 지하였다.
수도에 도착한 이래 매번 지하로 이끌려가는 것만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서늘한 지하는 위층이 식당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듯 수많은 식재료가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있었다. 악시눔은 비대한 몸으로 가지런한 식재료들의 나열 사이를 가볍게 가로지르며 한 문으로 날 안내했다.
그는 두꺼운 석문 앞에 도착하자 몸을 돌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사람을 물렸으니, 다시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마르낙 사제님께서 짐작한 바와 같이 흔히들 말하는 악마, ‘배부른 곤욕’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번 빙의 생활에서의 취미는 요리고요.”
악마, 배부른 곤욕은 자신의 두툼한 뱃살을 툭툭 두드리며 넉살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어치워야 하는지 마르낙 사제님께선 죽어도 모르실 겁니다.”
“버둥대는 호기심께 제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맞습니다! 이미 대가 끊긴 줄로만 알았던 부패의 아들! 귀스의 악마도살자! 악신의 대적자이자 에라디코의 구원자이신 마르낙 사제님을 이리 보게 되어 정말이지 흥미롭기 그지없군요!”
악마는 정말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건가. 잊을만하다 싶을 때면 악마가 튀어나오니.
“제가 지기엔 과한 수식어들입니다. 과장과 오해도 여럿 섞여 있는 명칭들이기도 하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다짜고짜 악신의 숭배자 하나를 잡아달라니, 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배부른 곤욕은 자신의 뒤에 있는 문을 가리키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이 문 뒤에 있는 문젯거리를 좀 해결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마르낙 사제님이 루보르라는 자를 왜 찾으시지는 모르겠지만, 그자는 지금 대체 뭐에 씐 건지 하루만에 악신의 숭배자가 되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누구한테 들은 건지는 몰라도 제가 악마인 것까지 알고 있고요.”
루보르가 이곳에 있다니 찾는 수고는 덜었네.
“무언가에 씌웠다니, 그건 무슨 뜻입니까?”
“딱 보니, 이상한 광석으로 만든 검에 홀린 듯해 보이더군요. 지금 루보르는 검에 남아있는 사념에 반쯤 집어 먹힌 상태입니다. 얼른 그와 검을 떼어놓지 않으면 아마 본래의 인격은 흔적조차 남지 않겠지요.”
배부른 곤욕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뿐이었다.
대체 스승님은 나한테 뭘 주려고 한 거지? 저거 진짜 받아도 괜찮은 검 맞나? 이름이 절망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직접 처리하지 않으시고 절 이리 부르신 이유는 뭡니까?”
“사제님, 마르낙 사제님. 제 몸을 보십시오. 마르낙 사제님이 보시기엔 이 몸이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하기에 적합하다 여겨지십니까?”
제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자신의 발등조차 안 보일 정도로 튀어나온 배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흐르는 몸은 확실히 전투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몸을 이루는 살 밑에는 제법 단단한 근육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비대한 몸으로 하루종일 요리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일 테니.
“악마분들은 곧잘 변신해서 잘 싸우시던데, 그리 싸우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배부른 곤욕은 결연한 눈빛으로 나를 뜨겁게 바라보았다.
“달아오른 팬의 감촉. 익어가는 재료들의 냄새. 자글자글한 소리. 그 과정에서 색색이 제 색을 드러내는 결과물.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 확인하는 맛! 요리는 오감을 전부 사용해야 하는 기예입니다!”
자신의 요리관을 내보인 악마는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마르낙 사제님! 저는 더욱 요리에 정진하기 위해 지금의 몸 상태에서 그 무엇 하나 잃고 싶지 않습니다! 애초에 저는 누군가와 직접 싸운다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리 잘하지도 않고요. 그러니 이런 절 가여이 여기시고, 저 석문 너머에 있는 루보르를 좀 치워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사제님께 제가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무료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 나는 부담스럽게 가까이 다가온 배부른 곤욕을 조금 밀어냈다.
“어차피 루보르라는 자에게 용무가 있어 제가 데려가려던 차였습니다. 굳이 이렇게 안 매달리셔도 데려갈 테니 조금 진정하시지요.”
“그러시군요! 이 어찌나 감사한지! 그래도 마냥 도움받기만 할 수는 없으니, 일이 잘 끝나면 제가 풀코스로 요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유명한 식당이라고 하니,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맛보여 드리면 딱 되겠네.
“혹시 그 대접, 제 동료분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받아도 괜찮겠습니까? 사실, 제가 미각을 잃어버렸는지라 맛을 못 느낍니다.”
“헛?!”
깜짝 놀란 악마는 무척이나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연민을 한가득 담고서.
“맛을 못 느낀다니… 정말이지 슬픈 일이군요. 그런데 혹시 냄새도 못 맡으십니까?”
“냄새는 제법 잘 맡습니다.”
“촉각도 살아계시고요?”
“예.”
배부른 곤욕은 투실한 턱살을 붙잡고 무언갈 한참 골똘히 고민했다. 잠시 후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막 마르낙 사제님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만한 요리를 몇 가지 떠올렸습니다. 모쪼록 제가 떠올린 요리들을 대접할 수 있게 루보르를 데려가 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맛을 못 느끼는데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있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굉장히 기대되는군요. 그나저나 루보르 그자는 대체 뭘 원해서 이곳을 찾아온 것입니까?”
배부른 곤욕은 ‘그것도 괜찮겠고, 촉각이 살아있으면 그 요리도 괜찮겠네.’라며 혼자 뭔갈 중얼거리다 내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아, 루보르말입니까? 그자는 그냥 이곳에 다짜고짜 찾아와선 제가 악마인 걸 때려 맞추더니 거래를 하자고 하더군요. 뭐, 요즘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묻는 꼴이 딱 한 백 년쯤 어딘가에 갇혀있다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사실, 그 정도쯤이야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죠.”
“그럼?”
순간, 배부른 곤욕의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내 질문에 답했다.
“진짜 문제는 바로 그자가 제게 거래의 조건으로 내민 것이었습니다. 그자는 제가 악마인 걸 꼬투리 삼아 감히 음식점과 손님들을 인질로 삼았죠! 악마인 것이 밝혀져 여태까지 쌓아온 것을 잃기 싫거든 자신에게 협조하라는 거지 뭡니까! 대체 어떤 사람이 그렇게 염치가 없을 수 있습니까?”
악마가 투실투실한 주먹을 붕붕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루보르가 정말 제대로 악마의 역린을 건드린 듯했다.
“제 다른 동포들은 참으로 건방지고 재밌다며 그자와 거래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감히 제 소중한 것을 인질로 삼는 자와는 절대 거래하지 않죠!”
“그래서 일단 저 안에서 기다리라 하신 겁니까?”
“사제님 말이 딱 맞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칼잡이 몇을 구할까 고민하던 차에 딱 이야기로만 듣던 마르낙 사제님이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니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는 것 같군요!”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단번에 내 얼굴을 알아본 거나 다른 사소한 점들 어찌 됐든 좋았다. 악마가 나만 이리 데리고 온 것을 보면 그가 계산하기엔 나 혼자 충분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겠지.
“루보르부터 처리하고 마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듣던 대로 호쾌하고 시원하신 분이시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다만…”
그는 잠깐 말끝을 흐리더니 내 눈치를 슬쩍 보았다.
“제 건물 지하가 방음 하나는 잘 되는 편이기는 하나, 막 엄청 단단한 소재로 지은 것은 아니라서요. 웬만하면 싸울 때 조금이라도 덜 부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한마디로도 충분한지 배부른 곤욕이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어서 들어가시죠! 저는 위층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악마가 어딘가를 조작하자 두꺼운 석문이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문 뒤에 있었던 건 무척 짧은 복도와 또 하나의 문이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방음을 위해서인지 석문이 다시금 닫혔다. 복도를 가로질러 또 하나의 문을 열자, 거대한 방안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눈에 들었다.
어딘가 나른한 인상. 반짝이는 금발의 사이사이로 묘한 빛으로 색을 잃어버린 회색 머리칼들. 넉넉히 쳐줘야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얼굴.
나는 루보르의 얼굴을 모르지만, 저자가 바로 그 루보르임을 단번에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의 손아귀엔 스승님의 검을 똑 닮은 푸른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으니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넌… 아까 그 돼지 악마가 아니군.”
“사람을 돼지라 부르는 건 무척 실례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그 악마분은 돼지가 아니라 그저 풍채가 남달리 좋은 분이실 뿐이고요.”
“뒤룩뒤룩 먹어서 찐 걸 돼지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르나.”
루보르는 비스듬히 올려져 있던 다리를 치우고 제대로 자세를 잡고 앉았다.
“그 돼지가 네게 날 치워달라 부탁한 건가? 참으로 괘씸한 돼지로군. 뭐, 어쩔 수 없나.”
그는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널 베고, 그 돼지 악마에게 자신이 얼마나 무용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수밖에.”
“당신 손에 들린 그 검, 제게 줄 선물로 낙점되어 있던 물건이니 슬슬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검을 가리키자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한 번 힐긋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물건인지나 알고 말하는 건가?”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검은 네겐 과분한 것이다.”
“알 바입니까?”
“…?”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오른팔의 팔찌가 늘어나 오른 손아귀를 덮었다. 곧이어 갈라진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도살자를 잡아 쥐었다.
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물건이 제게 과분한지 안 한 지는 한낱 좀도둑 놈이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루보르의 이마 위로 굵은 계곡이 파였다.
“지금 날 감히 좀도둑이라 칭한…”
왜애애애애애앵!!!
도살자가 내뱉은 말을 씹어 짓이기듯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도살자를 치켜들며 활짝 웃었다.
“제 선물이 얼마나 쓸만한 물건인지 시험 좀 해보겠습니다. 부디 제가 그 검을 안 깨부숴 먹게 최대한 열심히 발버둥 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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