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07)
207 화 루보르 웨르쇼.
루보르 웨르쇼.
배부른 곤욕이 날 안내한 장소는 그의 개인실로 보이는 널찍한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는 수수했지만, 그 크기는 그렇지 않았다. 거대한 침대는 웬만한 장정 서넛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 커다랬다.
비대한 그의 몸을 생각하면 저 정도 크기는 되어야 마음껏 이리저리 뒹굴 거리며 쉴 수 있을 듯하긴 했다.
나는 눈짓으로 거대한 침대를 가리켰다.
“저기 눕혀도 괜찮겠습니까?”
루보르는 당장 어디든 눕혀서 안정을 취해야만 하는 상태긴 했지만, 문제는 그는 나한테 얻어맞아 온몸이 피투성이였다는 점이었다. 악마의 입장에서 보면 루보르는 갑자기 자신의 가게에 들이닥친 불한당에 불과했고, 내가 당연하단 듯이 저 깨끗한 침대 위에 피투성이 루보르를 눕히면 그의 심기가 불편해질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당연히 눕히셔도 됩니다. 애초에 그러시라고 이리로 모셔왔는걸요! 더러워진 침대보야 갈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악마는 내 자그마한 우려가 쓸데없는 것이라는 듯이 넉살 좋게 웃으며 흔쾌히 침대를 양보했다.
루보르를 침대 위에 눕히자, 배부른 곤욕은 천장에서 길게 늘어진 줄을 꾹꾹 잡아당겼다. 잠시 후,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식당의 직원이 우리를 찾아왔다.
악마는 직원에게 아래층에 있을 브레임을 데리고 와달라 이르며, 막내에게 시켜서 최대한 빨리 수복교의 사제분을 모셔오라 이르고 나서야 푹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군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한당 때문에 곤욕을 겪으셨을 텐데도 굉장히 인심이 넉넉하시군요.”
악마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투실투실한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진땀을 슥슥 닦았다.
“제 인심이 넉넉하다기보단…”
배부른 곤욕의 입가로 쓴웃음이 번져나갔다.
“재상의 아들이 제 가게에서 죽으면 곤란해서 이러는 겁니다. 마음 같아선 머리라도 한 번 제대로 쥐어박아 두고 싶지만, 제가 꿀밤을 먹였다간 당장 골로 가실 것 같아 특별히 참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루보르는 이 나라의 재상 브에르 웨르쇼의 하나뿐인 아들이라 그랬었지.
아, 맞다. 저택에서 일어난 참사의 뒷정리는 어쩌지?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그건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네.
벌집인가 뭔가에서 알아서 잘 정리하겠지. 언뜻 보기엔 무언가 큰 계획을 준비 중인 그들이야말로 이 사건이 커지면 곤란해지는 자들일 테니.
곧, 우당쾅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브레임 치안감이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들이닥쳤다. 그는 피투성이인 채로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는 루보르를 보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루, 루보르님은 살아계신가?!”
나는 빙그레 미소 지음으로 그의 물음에 답했다.
“숨은 아주 잘 붙어계십니다. 가게의 주인장분께서 수복교의 사제분을 불렀으니 곧 쾌차하고 일어나실 수는 있으시겠습니다만…”
“다만…?”
여러 계산이 빠르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몸이야 권능으로 치유하면 나을 수 있을 테지만, 한 번 잡아먹혔던 루보르의 정신과 검귀가 받아들인 악신의 권능이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정신적인 문제는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영역인 데다, 그 후유증이 어떻게 남을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거기다 검귀 탓에 졸지에 악신의 숭배자가 되어버린 그의 상태를 브레임에게 설명하는 것 또한 문제였다.
곧 찾아올 수복교의 사제가 악신의 숭배자를 판별하는 성물을 다친 루보르에게 다짜고짜 사용하진 않을 테니 당장은 괜찮겠지만, 계속 살아가다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몸에 깃든 권능을 깨달아버릴지도 몰랐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깨닫게 된다면 더 위험한 일이 되어버릴 테고.
마음 같아선 그 점을 저들에게 짚어주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자니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대외적으로 유지의 사제인 내가 악신의 숭배자를 방관한다는 것부터가 모순이었으니.
충고해줄까 말까 잠깐 고민했지만, 결심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질은 부패의 사제인 내 정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곧 내 일행을 위태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생면부지의 타인보다는 나는 역시 내 동료들이 소중했다. 따지고 보면 저들은 내 검을 훔쳐간 도둑들이기도 했고.
나는 브레임에게 해줄 말을 골라냈다.
“깨어나신다고 한들, 이분의 정신이 온전하실 거라 장담을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제압하기 직전까지 그는 본인 스스로를 검귀라 칭하며 루보르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런가.”
브레임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별다른 말 없이 루보르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루보르에게서 관심을 끈 나는 악마에게 혹시 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부엉이 로브 여인과 푸른 머리를 한 여인을 이리로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둘 다 그리 멀리 간 건 아닌지 잠시 후 스승님과 부엉이 로브 여인이 방으로 찾아왔다.
스승님은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루보르와 내 허리춤에 메인 선물 ‘절망’을 힐끔 보곤 모든 정황을 대충 이해하신 듯했다.
“일을 수월하게 해결한 것 같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스승님의 푸른 눈이 곱게 휘어졌다.
“결과를 낸 이상, 운 또한 실력의 일부란다. 연아, 그럼 우리는 이만 돌아가 보자꾸나. 이 뒤의 일은 이들의 문제니,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란다.”
“그러죠.”
브레임은 루보르가 깨어난 뒤 일어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가 이 자리에 남아줬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굳이 거기까지 호의를 베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저 부엉이 주술사 여인이 돈 때문에 이곳에 남아 자리를 지켜줄 게 분명했기에.
부엉이 여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의 의미를 오해했는지 부엉이 모양 로브를 조금 더 싸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대부분 해결했지만, 나는 이곳까지 너희를 안내함. 그러니 이미 받은 보수의 일부를 돌려달라 하는 건 부당함.”
“돈 달라고 쳐다본 거 아닙니다.”
“못 믿겠음.”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갈 계획이니.”
검을 되찾은 이상 용무는 끝났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다.
“다음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좋은 일로 웃으며 마주쳤음 하는군요. 그럼 이만.”
그렇게 나와 스승님은 언제든 음식 먹으러 찾아오라는 악마의 배웅을 뒤로한 채 펄떡이는 잉어를 나섰다.
한바탕 추적을 한 탓에 아주 이른 아침에 물제비 호를 나섰음에도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스승님, 혹시 다른 계획이 또 있으십니까?”
스승님은 자신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딱히 없구나. 마침 점심때니 밥이라도 먹고 돌아갈까 생각해보았단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슬슬 배로 돌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다들 숙취 때문에 제대로 밥을 챙겨 먹을 정신이 없을 테니.”
“확실히 그렇네요. 그럼 돌아가는 길에 간단하게 먹을거리나 사 가죠. 마침 돈도 제법 벌었으니 전부 제가 내겠습니다.”
브레임에게 받은 금화가 있는 가슴주머니를 툭툭 두드리자, 스승님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역시 내가 제자 하난 잘 둔 것 같구나.”
***
마르낙이 떠나고 얼마 뒤 찾아온 수복교 사제의 권능 아래 루보르의 몸은 제 상태를 되찾았다.
“으으…”
꿈틀거리는 눈꺼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징후에 브레임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금부터 깨어날 저 껍데기 속에 든 것이 루보르가 맞는지 아직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 만약 깨어나는 것이 루보르가 아니라면 조속히 그 사실을 브에르님께 알려야만 했다.
마침내 눈꺼풀이 서서히 열리고, 눈을 뜬 루보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주위를 살폈다.
“여긴… 대체 어디…?”
처음 보는 낯선 천장에 루보르는 잠깐 당황했지만, 무거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브레임을 발견하곤 조금 안심했다.
“…브레임 수석 치안감님 아니십니까? 혹시 계획이 탄로 나서 황제에게 모두 붙잡혀버린 겁니까?”
브레임은 혹시 루보르의 몸에 씐 존재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신중하게 살폈지만, 약간 맹해 보이는 분위기의 저 얼굴은 평소의 루보르 그 자체였다.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나십니까?”
“무슨 기… 윽?!”
루보르는 브레임의 말에 따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온통 흐릿했다. 질척이는 안갯속에 들어온 것만 같이.
흐릿하게나마 겨우 떠올린 기억의 편린들이 그의 머리를 들쑤셨다. 붉은색. 피처럼 붉은 선홍색만이 그가 그 편린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불길했다. 그것도 굉장히.
루보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브레임에게 물었다.
“혹시… 저택이 습격당했습니까? 시체… 너무나도 많은 시체들이… 크윽?!”
“회복하신 지 얼마 안 되신 만큼, 일단 안정부터 취하시지요. 자세한 사정은 차차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브레임의 손길을 따라 침대에 누운 루보르가 낮게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겁니까?”
“쾌차하시면 제가 전부 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그 순간에도 브레임의 머리는 무척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루보르가 자신이 저지른 짓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브에르님과 의논해서 차라리 루보르에게 거짓된 사실을 꾸며내서 알려주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천성이 올곧은 루보르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그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거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루보르가 제안하고 기획한 계획을 보완함에 있어 그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했기에.
“자자, 일단 편히 주무시지요. 다 괜찮아질 겁니다.”
“정지.”
나지막한 한마디.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부엉이 로브 여인이 잠이 들려는 루보르의 정신을 깨웠다. 그녀는 루보르를 빤히 바라보며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의뢰대금 지불요망.”
루보르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보다 겨우 그녀가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의뢰대금은 제 방 책상 서랍에 준비해뒀습니다. 저택에 돌아가는 대로 바로 지급해드리죠.”
브레임의 몸이 움찔대고, 부엉이 여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그 주머닌 내 의뢰대금이 맞았음.”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몰라도 됨.”
부엉이 여인은 미련 없이 방의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창문턱에 발을 올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일이나, 모레. 저택으로 찾아가겠음. 대금 지급 준비 요망.”
그 한마디를 끝으로 부엉이 여인은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겨우 다시 평온을 얻은 루보르는 침대에 누워 천천히 두 눈을 붙였다.
푹신한 베개의 감촉 속에서 서서히 무의식 속으로 잠겨 들어가던 그의 머릿속으로 흐릿한 기억의 파편들이 스쳐 지나갔다.
검과 피. 그 둘로 점철된 한 남자의 편린들이.
***
이것저것 음식을 한가득 싸 들고 돌아가던 중,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평소답지 않게 스승님이 나를 자꾸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단 것을.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내 질문에 스승님은 잠깐 침묵하시다 천천히 입을 여셨다. 스승님의 시선은 내 허리춤에 메인 절망에게로 향했다.
“문득, 아직 선물에 대한 연이 네 감상을 듣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혹시 검이 마음에 안 들면 이야기해주렴. 이 스승님이 다른 검을 구해다 주마.”
아무래도 스승님은 내가 검 이름을 가지고 투덜댔던 것이 마음에 조금 걸리신 듯했다. 졸지에 철없이 군 아이가 된 기분이라 나는 멋쩍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자그마한 미안함 위에 감사를 듬뿍 담아 활짝 웃었다.
“검은 아주 마음에 쏙 듭니다. 그거 아십니까? 이 흉석이란 거 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이모탈리움하고 부딪혀도 흠집 하나 나지 않더군요.”
마음에 든다는 내 말에 스승님의 얼굴 위에 서렸던 희미한 걱정이 사라졌다. 스승님은 나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란다. 흉석은 자신이 품은 영혼들의 힘이 다할 때까지 부러지지도 깨지지도 않는 광석이란다. 그래서 그 흉석들을 검 모양으로 다듬기 위해 내가 직접 장인에게 권능으로 피워낸 푸른 불꽃을 빌려주었지.”
“영혼의 힘이라니…. 설마?”
네 개의 흉석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도시가 여섯. 최소 흉석 한 덩이에 수천에서 수만의 영혼이 서려 있다는 이야기였다.
“연이,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단다. 아마 네 검, 절망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검 세 자루 중 하나일 거란다.”
“다른 두 검은 스승님이 가지신 두 자루의 푸른 검이고요?”
“그렇지.”
새삼 이 한 자루 검의 무게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이거 진짜 영혼에 얽힌 사념들 때문에 오늘 밤 악몽이라도 꾸는 거 아닌가. 살짝 뒤통수가 시렸다.
“연아, 혹시 겁먹었니?”
“전혀 아닙니다.”
스승님은 양손 한가득 들고 있던 포장음식을 한 손으로 옮겨 들곤 빈손을 뻗어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오늘밤 이 어여쁜 스승님이 곁에서 깊은 잠이 들 때까지 자장가라도 불러주련?”
날 바라보는 스승님의 두 눈에 한가득 담긴 것은 명백한 장난기였다.
“…전 겁먹은 아이가 아닙니다. 스승님.”
“그러니? 혹시 마음이 바뀌거든 베개만 들고 찾아오렴. 이 관대한 스승님은 언제나 어린 제자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단…”
“스승님!!!”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두런두런 걷다 보니, 어느새 물제비호에 도착했다. 갑판 위에 올라서자 낮고 고통 어린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사…ㄹ…ㅎ…ㅐ…ㅅ…!’
“…어머니?”
살짝 다급해진 마음에 들고 온 음식들을 대충 놓아두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뛰어갔다.
‘살…해…’
잔뜩 찡그린 얼굴과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신음.
“찹쌀떡… 말랑쫀득해… 우물우물.”
잠든 어머니는 문어처럼 자신의 몸을 얽어맨 쟈멜에게 볼을 쭉쭉 빨리고 계셨다. 쟈멜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을 먹듯 어머니의 부드러운 볼을 오물오물 빨아 댕겼고.
‘살…햇…!’
번쩍 뜨이는 눈. 결국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깨어났다. 어머니는 침으로 축축한 자신의 볼 상태와 잠자리를 설치게 한 진범의 정체를 깨달았다.
일그러지는 새하얀 이마.
‘살햇!!!’
“꺄윽?!”
어머니는 그대로 가차 없이 팔꿈치로 쟈멜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졸지에 기습을 당한 쟈멜이 쪽쪽 빨던 어머니의 뺨을 뱉어내며 침대 위로 펄떡 튀어 올랐다.
“마, 마르낙 사제님!!! 기, 기습이에요!!! 적의 기습이요!!! 누군가 제 옆구리를 공격했어요!!! 비상!!! 완전 비상이에요!!!”
‘살해살해.’
어머니는 투덜대며 뺨에 흥건한 침을 닦아냈다. 그러곤 잔뜩 인상을 찌푸리다 내가 사온 음식의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킁킁댔다.
‘…살해?’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쟈멜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 몸에 매달려오며 칭얼댔다.
‘살해살해.’
쟈멜이 감히 자신을 먹어치우려 했다는 고자질. 나는 어머니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며 빙그레 웃었다.
“잠깐 나간 김에 음식을 좀 사 왔으니 같이 드시죠.”
‘살해!’
“미안하지만 그 밥, 나도 좀 얻어먹어야 할 것 같소.”
나른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칼과 세로로 갈라진 눈이 날 반겼다.
용왕녀, 르소나 드라코는 갑판 쪽 복도에 기대선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제 분명 내가 친우처럼 여기겠다 한 기억은 있소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 마르낙이라는 사제가 한 치의 거리낌 없이 내 이름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소.”
아, 달인한테 이름을 판 게 벌써 귀에 들어갔나.
르소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 사연의 자초지종을 들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보오. 마르낙,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오?”
“…따로 의자 하나 더 준비하겠습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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