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1)
21 화 재회.
재회.
‘부패의 구덩이’를 해제하자, 나는 화신(化身)의 시체와 함께 지상으로 튀어나왔다. 군데군데 썩어들어가 잘 안 움직이는 몸으로 주변을 살폈다.
나는 타버린 잔해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불타던 영주의 저택이 결국 무너져버린 듯했다.
바닥에 누운 채로 다시금 눈을 감고 내면으로 침전하자, 하나의 숫자가 떠올랐다.
[신성 : 10001]신성은 부패의 사제에게 스킬 포인트와 같은 것이기에 당연히 새로운 권능을 얻는 것 말고도 다른 사용처가 있었다. 바로 1만의 신성을 지불하고 기존의 권능을 강화한다는 선택지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는 그동안 고생해준 ‘부패의 거인’이나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부패의 문’을 강화하는 것이겠지. 능력의 특성상, ‘부패의 구덩이’를 강화하는 건 약간 뒤로 미뤄도 괜찮을 거 같고.
하지만 나는 부패의 거인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굳이 권능 강화라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 예정이었다. 내겐 3개의 권능을 얻은 뒤에 실험해봐야만 하는 문제가 있었다.
원래 게임 속 부패의 사제는 한 번에 장착할 수 있는 권능이 세 개.
아무리 여러 개의 권능을 얻어도 한 전투에선 세 개의 권능을 활용하는 게 최대였다.
하지만 그 제한이 이 세계가 현실이 된 지금에도 적용될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어머니. 신성을 바치겠습니다. 새로운 권능을 내려주십시오.”
[신성 : 10001] [신성 : 1]열심히 모은 신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권능이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시 현실이 된 지금은 장착 칸의 제한이 없었다. 한 손에 반지를 여러 개 낄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 어머니.”
‘살해?’
“이번에 내려주신 권능은 대체 무슨 의미이신 겁니까?”
‘살해…?’
권능은 내가 골라서 주는 게 아니니 잘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대답. 그런 것치곤 매번 묘하게 딱 필요한 권능을 얻긴 했지만, 나는 어머니를 믿기로 했다. 굳이 이런 일로 내게 거짓말을 하시기엔 어머니께선 조금···.
나는 마음 속에 깃들었던 신성모독적인 생각을 재빨리 떨쳐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본격적인 권능이지 않습니까?”
‘살해!’
부담 갖지 말고 팍팍 쓰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나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새로운 권능 ‘부패의 저주’는 정말로 논란의 여지 없이 악(惡)에 지극히 가까운 권능이었기에.
‘부패의 저주’는 이전의 권능들과 달리, 아무런 대가 없이 사용하는 권능이 아니었다. 한 번의 저주를 시전 하기 위해서는 일백의 신성이 필요했다. 거기에 대상은 돌멩이 같은 일정 크기 이상의 무생물에 한정되었고.
이렇게 보면 별다른 쓸모가 없는 권능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부패의 저주’의 진면목은 저주가 걸린 대상이 대지에 닿는 순간부터 나타났다.
단지 부패의 저주가 걸린 물건 하나를 대지 위에 놓아두기만 해도 자그마한 도시 전체를 감싸는 저주가 걸렸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아주 느리고 천천히 썩어들어가게 하는 저주가.
저주가 퍼진 뒤로 모든 식량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썩어들어가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아가기 시작하며, 대지 위를 노니는 짐승들 또한 야위어가고 흔들리는 식물들은 원래 제가 맺을 결실의 반도 맺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 권능의 화룡점정은 따로 있었다.
부패의 저주가 내려진 대지 위에서 죽은 인간은 죽는 그 순간, ‘수확’되어 신성으로 화해 내게 스며든다. 즉, 내가 아무런 행동을 안 해도 끊임없이 신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권능이니만큼 당연히 단점들도 즐비했다.
우선, 저주의 진행이 무척이나 느리게 진행되는 만큼 그전에 저주의 매개체가 파괴되면 당연히 모든 저주가 풀렸다.
두 번째로 저주가 깃든 물건은 끊임없이 부패의 신성을 내뱉어낸다. 이 말은 즉, 다른 사제들이 저주가 깃든 물건 가까이 다가간다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악신에 의해 벌어진 짓이란 걸 알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위의 단점들 따윈 가볍게 무시할 만큼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이 권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저 단점들을 해결할 방법이야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는 굳이 그런 방법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을 시들시들 앓아 죽게 해서 얻는 신성이라니. 그런 신성은 완전 사양이었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이번 권능은 아무래도 조금 사용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살해!’
네 마음대로 하라는 어머니의 호쾌한 대답에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살해…?’
“저기 저 죽어있는 화신에선 아직도 다른 신의 신성이 넘쳐흐르는데, 어떻게 좀 제가 거둘 방법이 없겠습니까? 저대로 다 사라지게 두기엔 조금 아깝지 않습니까.”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이 없는 내 품에서 어머니의 손이 꼬무락꼬무락 기어 나와 은은한 빛과 함께 소녀로 화했다. 녹색 무늬가 새겨진 검은 드레스를 팔랑이며 뛰어간 어머니는 내가 잘라낸 화신의 머리통 위에 손을 올리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서 한참을 끙끙대셨다.
나는 그 용쓰는 장면을 보다 피식 웃었다.
“어머니. 안 되는 걸 너무 무리해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얼른 돌아오시지요.”
어머니께서 나를 향해 무어라 성을 냈지만, 이내 자신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것을 깨닫고는 화신의 머리통을 품에 안고는 누워 있는 내 곁으로 뛰어와 내 손 위에 한 손을 올렸다.
‘살해!’
“하나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여러 신의 신성이 이리저리 뒤섞인 거라 지금 상태론 힘들다고요? 그렇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혹시 이 주변에 있을 구슬 모양 성물은 보이십니까?”
‘살해.’
잠시만 기다려보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화신의 머리통을 내팽개치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어머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막연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냥 나중에 내가 알아서 챙길 걸 그랬나. 아니, 내가 알아서 챙겼어야지!
부정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라와 내 목을 조여···
‘살해!’
청명한 외침이 다시 한 번 내 정신을 일깨웠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니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 반으로 쪼개진 구슬을 내보였다.
이미 저것은 성물로서의 힘을 잃은 그냥 구슬 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당연한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머니의 신성을 봉인한 성물이 화신(化身)의 몸속에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부패의 어머니의 신성이 깃든 성물이 저 화신(化身)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한 매개체였다면?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한 것보다 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오늘 신성이 담긴 공격을 너무 많이 맞아서 머리보다 몸 상태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이 점차 흐릿해져 갔다.
‘살해?!’
당황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제 품 속으로 돌아···.”
***
등 뒤를 반기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과 헐렁한 옷자락이 이루어내는 안락감이 나를 좀 더 자라고 붙잡고 늘어졌다. 헐렁한 옷자락? 내 사제복이 아니라?!
“헉!”
“드디어 정신이 드셨군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르멘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제 옷! 제 옷과 소지품은 어디 있습니까?!”
“자, 잠시 잠시만 진정해주십시오. 마르낙 사제님. 제가 다 차근차근 설···.”
그딴 여유 따윈 내게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손이 내 품에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제 소지품은 어디있습니까! 당장···.”
‘살해!’
침대 밑에 놓인 바구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허겁지겁 손을 뻗어 바구니에서 어머니의 손을 집어 들고 껴안았다.
“하마터면 잃어버린 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카르멘은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역시 사연 있는 물건이었군요. 다른 이들이 사제님이 들고 다니실만한 물건이 아니라며 버리려고 하기에 제가 따로 챙겨서 가져다 놓았습니다.”
‘살해!’
하마터면 다른 시체들이랑 같이 화장당할 뻔했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카르멘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무어라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카르멘은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감사라뇨! 마르낙 사제님의 숭고한 희생이 아니었다면 저는 진작에 켈톤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조금 가슴이 진정되자, 슬슬 주변 상황을 파악할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제 막사입니다. 장소는 여전히 켈톤이고요.”
막사?
“대체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겁니까?”
“켈톤의 참사가 있은 뒤로 꼬박 열흘이 지났습니다.”
열흘이나? 하긴, 막사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들로 보건대, 한창 켈톤의 복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상세가 너무 심각해 다시 못 일어나실까 봐 무척이나 걱정됐지만, 다행히 유지의 여신께서 마르낙 사제님을 돌보셨는지, 상처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아물어서 걱정을 조금 덜었습니다.”
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곤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을 꺼냈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까?”
카르멘은 웃음을 지우고, 조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켈톤의 성벽 안쪽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건, 마르낙 사제님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혹시나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화신과 싸웠던 부패의 거인을 목격했을 게 분명하니, 목격자를 최대한 제거하는 게 맞았다. 동시에 그토록 노력했지만 한 명도 살려내지 못했다는 울적함이 내 마음을 적셨다.
‘살해!’
잘 된 일이라는 어머니의 외침에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어머니의 손바닥을 꾹꾹 눌러드리며 카르멘에게 말했다.
‘ㅅ…ㅏ…ㄹ…ㅎ…ㅐ…’
“그럼 지금 켈톤에는 누가 오신 겁니까?”
카르멘은 손을 펼치더니 하나하나 접으면서 세어나갔다.
“일단 가장 가까운 도시의 영주분들이 재건을 위한 병력과 인력을 파견해주셨고, 또 스트렌 플코르 영주님들의 인척들께서도 재건을 위한 인력을 파견해주신 데다···.”
막사의 문을 걷어내며 한 사내가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들어왔다.
“막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족을 달칵거리며 걸어온 귀스의 영주, 악마가 카르멘이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나를 향해 잠깐 방긋 웃고는 다시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열흘 동안 굶은 자가 있다면, 당연히 밥부터 먹이는 게 맞는 도리가 아닐까 하는데.”
카르멘이 깜박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정말 제가 정신이 없었군요. 마르낙 사제님이 워낙 얼굴 혈색이 좋은 바람에 착각했습니다. 얼른 사람을 시켜서 먹을 걸 좀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사제복을 챙겨 입었다.
“직접 가서 먹겠습니다. 지금 켈톤의 풍경이 조금 궁금하거든요.”
카르멘은 악마 영주와 슬쩍 눈을 마주치더니,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직접 나가시면 조금 시끄러우실 텐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 시끄러운 정도야. 뭐, 저는 괜찮습니다.”
인부들이 만들어내는 분주한 소음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카르멘과 함께 막사를 나서는 순간.
카르멘이 말한 소음이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악신의 대적자!”
온갖 외침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악신의 대적자’ 마르낙 사제님께서 깨어나셨다!”
“‘악신의 대적자’께서 배가 고프시다고 하셨다! 너 얼른 가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준비해 두라고!”
“내가 말했지! ‘악신의 대적자’께서는 반드시 깨어나실 거라고!”
나는 환호 속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카르멘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카르멘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마르낙 사제님의 위명이 널리 퍼지도록 힘을 조금 썼습니다.”
“아니···.”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튀어나오는 환호 속에 내 말이 집어삼켜졌다.
“와아아아아아아!”
나는 이 뜨거운 환호에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도 그럴게 내가 바로 악신의 사제였으니까.
‘살해!!!’
장난스럽게 ‘악신의 대적자 마르낙!!!’이라고 소리치는 어머니를 꾹 누르고 나는 등을 돌려 막사로 향했다.
“그냥 식사는 안에서 먹겠습니다.”
카르멘은 정말 순수하게 내 명성이 널리 퍼진 것에 대한 기쁨을 한가득 담고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나는 뒤로 돌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악마도살자 다음에는 악신의 대적자인가.
뭔가 부담스러운 칭호가 자꾸 늘어나는 기분인데.
이런 내 기분도 모르고 등 뒤로 힘찬 외침이 뒤따라왔다.
“악신의 대적자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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