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10)
210 화 베팅.
베팅.
아삭.
펄리는 새빨간 사과를 한 입 더 베어 물곤 히죽 웃었다.
“사과 하나 먹을래?”
역시 다 알고 있었던 건가. 하긴, 이쪽은 숨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이 뒤쫓았으니 펄리의 성격상 눈치를 못 챌 리가 없었다.
쟈멜은 눈을 데구룩 굴리더니 내 눈치를 보면서 슬쩍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나만 줘.”
“자, 여기.”
펄리는 난간 위에 올려진 접시 위에 있던 사과 하나를 집어 쟈멜의 손에 올려주었다. 쟈멜은 새빨간 사과를 받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
“고맙긴, 열심히 내 뒤 캐느라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챙겨 먹어야지! 안 그래? 응? 응?”
“딸꾹!”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펄리의 한마디에 쟈멜은 깜짝 놀라 연신 딸꾹질을 해댔다. 그녀는 동공을 달달 떨며 펄리의 눈을 피했다.
“그, 그게 아니라. 딸꾹! 그냥 아주 우, 우연히 걷다 보니 여기가 나왔… 딸꾹!”
펄리는 손에든 사과를 아삭하고 한 입 더 깨물어 먹곤, 생글생글 웃으며 쟈멜에게 다가갔다. 펄리가 다가올수록 쟈멜의 손이 더욱 심하게 달달 떨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곳, 비밀도박장 ‘황금 유희’의 귀빈 전용 통로를 네가 아주 우연히 찾아냈다는 거지? 정말 우연하게 길을 걷다가 말이야. 응? 응?”
쟈멜은 다시 눈을 데구룩 한 바퀴 굴리곤 자그맣게 답했다.
“으, 응! 바, 바로 그거야!”
“여기 들어오려면 이게 있어야 하는 데도?”
펄리는 품속에서 흐릿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자그마한 배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손톱 크기 정도인 배지엔 휘황찬란한 황금빛 갈기를 자랑하는 사자의 머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쟈멜은 펄리의 눈치를 힐끔 보곤 대꾸했다.
“그거 없어도 들여보내 주던데…”
“그야! 내가 날 쫓아오는 너희를 올려보내 달라고 언질을 주고 왔으니 그렇지! 히히!”
“딸꾹!”
툭툭.
펄리는 괜찮다는 듯이 쟈멜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해해! 길가를 걷다 보면 우연히! 아주 우연히! 아는 사람 얼굴을 발견하게 되고, 인사하고 싶은 마음에 그 뒤를 살짝 쫓을 수도 있는 거지! 암암! 나는 아주 관대! 관대! 하거든! 게다가 이 조합이면…”
그녀의 눈길은 쟈멜을 지나쳐 내게로 꽂혔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요망하게 빛났다.
“이 무례한 미행을 안 말린 보호자 탓이 제일 크지 않을까?”
“마르낙 사제님은 아무 잘못 없어!!!”
빽하고 튀어나온 목청. 펄리는 쟈멜이 갑자기 소리를 크게 지른 탓에 눈살을 살짝 찡그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 안 질러도 잘 들려.”
쟈멜은 우물쭈물하다 날 힐끔 바라보곤 펄리에게 말을 덧붙였다.
“전부 내가 쫓아가 보자고 한 거야. 그냥 펄리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내가 궁금해서 떼를 쓴 거라고!”
“헤. 그 말 정말정말이야?”
펄리가 되묻자 쟈멜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정말정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보랏빛 눈동자가 쟈멜을 지나쳐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미행을 들킨 쟈멜이 허둥지둥하든 말든 지극히 뻔뻔한 태도로 펄리의 눈빛을 받아쳤다.
‘살해.’
내가 뒤쫓았는데 네가 어쩔 거냐는 한마디.
어머니의 목소리는 펄리에게 닿지 않았지만, 불쑥 튀어나온 어머니의 중지 하나는 펄리에게 똑똑히 전달되었다. 펄리는 어머니의 중지를 보곤 나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거, 나한테 욕하는 거 맞아? 맞아?”
우리 일행 중 어머니께서 내가 모시는 신이란 걸 직접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 딱 두 명 존재하는데, 그 둘이 바로 카디쇼와 펄리였다. 비록 말을 안 했더라도 그녀가 어머니의 정체를 대충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그냥 몰래 쫓아오셔서 미안하시단 의미 같군요.”
나는 어머니의 중지를 대충 얼버무렸다. 내 설명의 펄리가 입술을 샐쭉하고 웃으며 자신의 중지를 어머니의 눈앞까지 들이밀었다.
“특별히! 특별히! 사과받아줄게! 히히!”
‘살햇?!’
펄리의 표정으로 보건대, 그녀는 저게 욕인 걸 완벽히 이해한 게 분명했다. 펄리는 어머니가 당황하는 사이에 접시에서 사과를 하나 더 집어 어머니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거! 이거! 귀빈용 배지를 가지고 온 사람한테만 제공되는 ‘황금 사과’거든? 이거 진짜 어디서 구해오는지는 몰라도 너무 상큼하고 달달하게 맛있어서 이거 먹으러 자주 여기와! 이 사과들 깨끗하게 씻어서 나온 거니까 그냥 깨물어 먹어도 괜찮아. 아, 마르낙 너도 먹어볼래?”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말고!”
펄리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손에 쥔 사과를 마저 먹더니 접시 위에 놓인 마지막 사과를 냉큼 집어서 다시 한 입 베어 물었다.
여태 추궁했던 것은 완전 장난이란 듯한 그 태도에 쟈멜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에 든 사과를 아삭하고 베어 물었다. 채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먹으면서도 펄리의 눈치만 보던 쟈멜의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오와아아아! 이거 진짜 맛있어요! 와, 태어나서 먹어본 사과 중에서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와아아아아!”
거의 팔딱팔딱 뛰어대는 쟈멜의 반응에 의심 가득한 눈으로 사과를 째려보던 어머니도 조심스럽게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살햇?!’
커지는 두 눈. 발그레 달아오르는 두 볼. 감탄사를 토해낸 어머니는 난생처음 사과를 먹어보는 아이처럼 공격적으로 사과를 먹어치우고 아직 펄리의 손에 남은 사과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눈을 데굴 굴리며 잠깐 고민하더니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살해!’
따지고 보면 저 사과는 원래 나한테 주기로 한 몫이니, 다시 건네받아서 자기한테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건가. 이렇게 다들 무언가를 맛있어할 때면 맛을 못 느끼는 몸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저…”
내가 펄리에게 다시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열자, 펄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딱 한 입만 베어 문 사과를 어머니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곤 어머니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거봐! 거봐! 엄청 맛있지? 나는 많이 먹어봤으니까. 이거 받아! 받아!”
어머니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잽싸게 사과를 잡아채곤 도도한 표정으로 펄리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렇게 권하니 어쩔 수 없이 받는다는 듯이.
“저, 저도 반만 나눠주시면 안 돼요?”
언제 사과를 다 먹어치운 것인지, 쟈멜이 어머니의 옆에 다가와 양손을 모으고 어머니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퍼부어댔다. 어머니는 쟈멜과 사과를 번갈아 보더니 말없이 사과를 반으로 쪼개 자신이 큰 쪽을 가지고 작은 쪽을 쟈멜에게 내밀었다.
‘살해.’
특별히 나눠준다는 한마디. 쟈멜의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나눠주시다니. 그 장족의 발전에 나는 가슴속 한 켠이 훈훈해졌다. 말랑한 쟈멜과 붙어 다니시면서 타인에게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같던 성격도 점점 유해지고 계셨다.
이대로 한동안 쟈멜한테 꼭 붙여둬야지.
나는 어머니가 나뿐만이 아니라 친한 이들에게도 마음을 열 수 있는 그런 분이 되시길 바랐다. 만일 내가 잘못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다른 이에게 기댈 수 있도록.
물론, 내가 알아서 내 몸을 잘 관리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사람 일이란 건 원래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이 세계 같이 위험이 항상 산재한 세계라면.
어머니와 쟈멜이 남은 사과를 다 먹어치우자, 펄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나는 오늘 여기 놀러 왔어! 너희도 온 김에 같이 놀래? 놀래? 전에 혹시 이 정도로 커다란 도박장에 와본 적 있어? 있어?”
“난 없어!”
쟈멜이 대답하자, 자연스럽게 펄리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인상을 작게 찌푸리더니 펄리의 손을 풀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펄리는 그런 둘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럼! 내가 한 번 신나게 놀게 해줄게! 분명 엄청 재밌을 거야! 암암! 자자, 따라와 봐!”
펄리가 쟈멜의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자 어머니가 그 뒤를 졸졸 따라 걸었다. 나는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저기는 주로 카드를 치는 데야. 제일 샌님 같고 재미도 없어!”
펄리는 발코니를 걸어가며 눈에 보이는 장소를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간단하게 한두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저건 딜러랑 하는 거고, 저쪽엔 고대제국의 유물인 슬롯머신이 있어! 그런데 혼자 앉아서 슬롯머신만 주구장창 돌리면 그렇게 재밌진 않을 거야! 그래서 내가 초보자인 둘에게 추천하고 싶은 종목은 바로 경마지!!!”
펄리가 발코니 난간 위로 손을 쭉 뻗어 가리킨 건, 실제 경마장이 아니라 거대한 크기의 정교한 경마장 미니어처였다. 투명한 반구로 뒤덮인 경마장 안에는 자그마한 장난감 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경기장을 내달렸다.
– 3번마 블랙 호크!!! 선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오오오!!! 2번마 레드 페퍼가 반마신 차이로 좁혀옵니다!!! 3번마!!! 직선 주로로 들어섭니다!!!
중계자로 보이는 사내는 자리에 앉아 열정적으로 장난감 말들의 질주를 중계했다.
펄리는 턱을 괸 채,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질주를 감상했다.
“저건 아주 우연하게 발굴된 고대제국의 유물 중 하나인데,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저 유물을 이곳 황금 유희가 아주 큰 거금을 들여서 통째로 이곳에 들여놓은 거야! 이 시대의 기술 수준을 아득히 넘어가는 물건이라 조작도 완전히 불가능하거든! 그래서 이곳 황금 유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박 중 하나야! 자자, 둘 다 이리 와봐!”
그녀가 품속에서 꺼낸 자그마한 종을 울리자,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 직원이 걸어왔다. 펄리는 종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단승식 마권 2장 가져다줘. 덤으로 칩도 2개도.”
“예.”
깊게 부복한 여인은 잠시 후, 종이 두 장과 검은색 칩 두 개를 가져왔다. 펄리는 칩을 쟈멜과 어머니께 하나씩 나눠주었다.
“자, 선물! 아, 혹시 경마하기 싫으면 딴 데 써도 돼! 돼!”
쟈멜은 마권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간단해! 그냥 1등으로 들어올 말을 맞추면 배당에 따라 돈을 얻을 수 있어! 자자, 봐봐. 말마다 배당이 다르거든? 저기 3번마 배당이 2니까 만약 3번마에 그 칩 한 개를 걸었는데, 3번마가 1등으로 들어오면 칩이 2개를 받는 거야! 아주 간단하지?”
“오와!!!”
펄리의 설명에 쟈멜은 새카만 칩을 이리저리 관찰하고는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칩을 가리켰다.
“이건 하나에 얼마짜리야?”
“검은색 칩은 하나에 은화 한 개로 환전해줘! 자자, 어차피 나한테 받은 공돈이잖아? 액수는 신경 쓰지 말고 걸어봐! 걸어봐!”
‘살해!’
물끄러미 종이를 읽던 어머니가 12번까지는 있는 말 중 하나를 짚었다. 어머니가 찍은 말은 바로 11번마. 12마리 말 중에 가장 배당률이 높은, 무려 배당률 108인 말이었다.
펄리의 눈이 재밌다는 부드럽게 휘어졌다.
“역시 통이 크네! 쟈멜은 어디에 걸래? 개인적으로 살짝 추천해주자면 둘이 똑같은 말에 거는 게 즐기기엔 좋지 않을까? 서로 다른 말을 응원하다 자기 말이 우승하면 조금 무안해지잖아! 어때? 어때?”
“그, 그럼 나도 11번마로 할게.”
“좋아! 좋아! 그럼 마권에 표시하고 칩을 건네!”
쟈멜과 어머니가 표시된 마권과 칩을 건네자 직원은 잠시 후, 11번마의 마권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발코니 위, 가장 경기장이 잘 보이는 장소에 서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 자자, 오늘의 12번째 경마가 지금 막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 뒤.
– 11번마!!! 11번마 만년 꼴찌 스피드 홀스터가 유력한 우승 후보 3번마 블랙 호크를 반마신 차이로 제치고 일등으로 들어옵니다!!!
“크아아아아아아!!! 믿고 있었다고!!!”
“스피드 홀스터 만세!!! 역배 드디어 터졌다!!!”
“아니, 저게 말이 돼?!”
“말이니까 말이 되지!!!”
정말 기적처럼 각성한 11번마가 모든 말들을 제치고 1등으로 경기선을 통과했다. 손에 마권을 꼭 쥐고서 경기를 관람하던 어머니와 쟈멜이 기다렸다는 듯이 펄쩍 뛰어올랐다.
“와아아아아아아!!!”
‘살햇!!!’
둘이 방방 뛰며 서로 얼싸안는 사이. 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펄리는 분명 저 경마 유물은 결과를 조작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아까 쟈멜과 어머니의 배팅마가 똑같아지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 그 말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고, 설마 저 기계는 사실 경주마들의 순위를 조작할 수 있는 건가?
고개를 돌리자 펄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한쪽 눈은 어느새 네 개의 동공으로 나뉘어 거미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펄리는 네 개로 갈라진 한쪽 눈을 슬쩍 감으며 손가락 하나를 뻗어 자신의 입술 위에 올렸다.
“쉿.”
슬쩍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내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둘 다 재밌게 놀게 내버려 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