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11)
211 화 되갚음.
되갚음.
“이거 이렇게 장난질 치다 걸리면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작게 속삭이자 펄리가 키득키득 웃으며 답했다.
“나 여기 주인이랑 아는 사이야. 걔가 나보고 적당히만 해 먹으면 괜찮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아. 괜찮아.”
하긴 귀빈 배지를 받을 정도면 괜찮으려나.
‘살햇!!!’
“와아아앗! 이제 우린 부자예요!!! 흐히히히!”
직원이 마권을 칩으로 환전해서 수북이 쌓아 가져다주자 어머니와 쟈멜의 입가는 아주 헤벌쭉 늘어나 줄어들 줄을 몰랐다.
“새 마권! 새 마권 한 장 더 가져다줘요! 오늘 행운이 우리를 따르고 있는 게 분명하거든요! 이 대운을 이대로 날려버릴 순 없죠! 저희 한 번 더 올인해요! 어때요?”
‘살해!’
참으로 옳은 말이라는 맞장구. 어느새 새 마권을 받은 어머니와 쟈멜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을 나눴다.
“아까 11번이 우승했으니까, 이번에는 우승 못 할 거 같지 않아요?”
‘살해살해.’
참으로 옳고 현명한 판단이라는 칭찬.
“그럼 11번 다음으로 배당율이 높은 거에 걸죠! 그러면 진짜 크게 한탕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살해!’
그렇게 둘은 11번마 다음으로 배당률이 높은 9번마에 걸었다. 9번마의 배당률은 98. 무려 98배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말이었다.
진짜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베팅법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신 둘을 도박장에 데리고 오지 않으리라고 살짝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도와주실 겁니까?”
내가 자그맣게 묻자, 펄리가 히죽 웃었다. 쟈멜과 어머니는 난간에 기댄 채, 경기가 끝난 경마장의 장난감 말들이 재롱을 부리는 걸 구경하느라 온정신이 팔려있었다.
“어쩔까? 또 따게 해줄까? 아니면 몽땅 잃어버리게 해줄까?”
“그냥 운에 맡겨주십시오.”
일부러 따게 하는 것도, 잃게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펄리는 여전히 한쪽 눈을 감은 채로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뭐, 네가 그걸 원하면 난 가만히 있지 뭐! 그럼 같이 구경해볼까? 이제 막 시작하려는 거 같은데!”
장난감 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같이 푸르렁 대며 차례로 걸어 나와 출발선 위에 섰다.
“저희 9번마 완전 잘 달릴 거 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살해살해.’
쟈멜과 어머니는 어느새 완전히 몰입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베팅한 말을 응원하고 있었다.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조금 걸어볼 걸 그랬나.
발코니 복도의 끝에서 누군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칼을 대충 쓸어넘긴 젊은 사내는 새카만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털이 북슬북슬 달린 옷을 입고서 여직원 둘을 대동하고 있었다.
발코니 위에 있는 걸 보니, 다른 귀빈인가.
그는 우리와 인사라도 하려는 건지, 거침없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마침내 근처에 도착한 그는 새카만 선글라스 너머로 우리 일행을 한번 슥하고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만년 꼴찌마가 우승하는 걸 보고, 펄리, 네가 온 줄 알았지.”
펄리는 시큰둥한 눈빛으로 사내를 힐끔 보곤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경마장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달려라! 달려!!!”
‘살햇!!!’
어머니와 쟈멜은 달리기 시작한 말들을 보느라 사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래서 왜 찾아온 건데?”
펄리의 짧은 물음에 사내는 씨익 웃었다.
“아니지. 아니지. 정확하게 표현해야지. 내가 널 찾아온 게 아니라. 펄리, ‘네가’ 이곳, ‘황금 유희’의 주인인 나 라구르를 찾아 이곳으로 왔잖아. 안 그래?”
“아닌데.”
평소의 펼리 답지 않게 퉁명스러운 답. 그녀는 여전히 라구르를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거래할 게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럼 왜 굳이 이곳을 찾아온 건데. 넌 어차피 하도 장난질 쳐대서 블랙리스트 등록됐으니까 베팅도 못 하잖아.”
블랙리스트? 아까 분명 나한테는 허락받고 조작한 거라 하지 않았나?
“나는 구경하러 온 건데.”
“아하.”
그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나와 쟈멜,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경마를 보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꽤나 오래 멈춰있었다.
“네가 베팅을 못하니까 일행을 데리고 와서 장난질을 좀 쳐보려고 한 거야?”
“이 사람들은 내가 데리고 온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같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펄리는 뭐가 그리 웃긴 건지 혼자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라구르는 진한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는 펄리는 노려보았다.
“너… 설마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이러는 거야? 조금 늦긴 했지만 물건은 제대로 건네줬잖아!”
“흐응.”
그제야 펄리는 고개를 돌려 라구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눈에 담긴 네 개의 동공이 라구르를 네 조각으로 나눠 비췄다. 라구르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그 건에 대해선 내가 양해를 구했잖아! 물건을 옮기는 도중에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았다니까? 그래도 다행히 물건은 제대로 지켰고, 조금 늦긴 했지만 제대로 전달까지 해줬다고!”
그가 무어라 항변하든 그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던 펄리는 이내 다시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난 그냥 사람 구경하러 온 거야.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 꽤 재미있거든.”
라구르는 말없이 펄리의 얼굴을 한참 살폈다. 그는 정말 펄리가 화난 게 아닌 것 같자 조금 풀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여기 이렇게 서 있지 말고, 내 방에 가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 구경이라도 하는 게 어때? 일행분도 같이.”
숨을 돌린 라구르는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일행’이라 칭하면서도 정작 단 한 명의 옆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어머니를.
벨까.
나는 절망 위에 손을 올리고, 그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그는 이미 내 간격 안에 자신의 목을 들이밀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으면 가볍게 그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내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여인 중 하나가 슬쩍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와 라구르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곳에 그리 오래 있진 않을 예정인지라.”
– 9번마!!! 9번마!!!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역전의 질주를 시작합니다!!!
라구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가는 사람 막지 않아. 바쁜 사람만 먼저 가보는 게 어때? 이쪽 숙녀분들은 금방 가실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만 하는 게 좋을걸?”
불쑥 끼어든 건 펄리였다. 그녀는 라구르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사지가 뜯어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기 싫으면 그만 찝쩍대. 찝쩍대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넌 사람 보는 눈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감을 못 잡는단 말이지. 하긴, 가진 건 죄다 물려받은 것뿐이고 제 손으로 무엇 하나 이뤄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 9번마! 9번마!!! 나머지 셋마저 제치고 앞서나갑니다!!! 이제 9번마 앞에 있는 말은 분노의 질주를 펼치고 있는 3번마 블랙 호크뿐!!!
굉장한 폭언이었다. 라구르는 처음엔 펄리가 한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지, 두 눈을 끔벅거릴 뿐이었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 9번마!!! 3번마와 반마신 차이로 좁혔습니다!!! 하지만 결승선은 눈앞!!! 과연 9번마는 블랙 호크를 제칠 수 있을…. 제쳤습니다!!! 9번마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늘은 역배가 터지는 날인가!!!”
“끼얏호!!!”
‘살햇!!!’
“저희 계 탄 거 같아요!!! 이히히히!!!”
여러 환호성 속에서 라구르는 분노를 터뜨렸다.
“펄리!!! 너 방금 뭐라고 했…”
콰아앙!!!
폭음과 함께 황금 유희의 벽이 뚫렸다. 부서진 잔해 사이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새하얀 도복과 회색빛 곤봉. 오밀조밀 자리 잡은 탄탄한 근육. 벽을 부수고 나타난 사내는 스승님에 흠씬 두들겨 맞았던 황제의 호위, 솔도스였다.
그는 자신의 탁한 금발을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렸다.
“열심히 하루하루 일해 벌어 먹고 살 생각은 하지 않고, 이따위 불법도박에서 도박질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저들 탓에 제국의 미래가 참으로 어둡게 느껴지는군. 근위대!”
“예!”
솔도스의 뒤를 따라 스무 정도 되는 사내들이 줄지어 들이닥쳤다. 그들은 하나하나 무척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황금빛 갑옷을 입고 있었다. 솔도스는 혼비백산한 채 마권을 쥐고 있는 무리를 보더니 낮게 명령했다.
“모조리 제압해라. 단, 귀족 신분을 먼저 밝힌 자는 제압하는 대신 보내주고, 가문과 그 이름을 기록해두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도, 도망쳐!!!”
“내, 내 마권!!! 9, 9번마가 우승했잖아!!! 이거 돈!!! 돈 내놔!!!”
“야, 이 새끼야!!! 저 새끼 칩들고 도망친다!!!”
아비규환 그 자체인 상황. 솔도스를 따라온 근위대는 단 스물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일사불란하고 무자비하게 군중들을 때려눕혀서 제압해나갔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라구르는 화를 내려던 것도 잊은 채, 입만 떡 벌리고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펄리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나 오늘 여기 ‘사람 구경’하러 왔다고.”
“너, 너 설마?! 네가 여기로 황실 근위대를 끌어들인 거냐!!! 펄리!!!”
펄리는 잽싸게 귀를 막았다. 그녀는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가볍게 대꾸했다.
“소리 안 질러도 다 들리는 거리에서 왜 자꾸 소리 질러? 그러게 진작에 잘했으면 얼마나 좋아. 눈앞의 작은 이익에 멀어서 신의를 저버리면 이렇게 되는 거야! 거야! 암암! “
저건 진짜 태어나서 들어본 것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얄미운 목소리였다. 펄리는 아주 대놓고 라구르의 약을 올려댔다.
“이익!!! 렐비! 랄라! 당장 저년을 죽여!!! 그리고 옆에 있는 저 여자들을 챙겨!!! 알겠어?”
라구르의 명령에 그의 옆에 서 있던 두 여인이 빛살처럼 튀어나왔다.
콰앙!!!
그리고 그녀들은 한 대씩 후려 맞고 튀어나왔던 것처럼 순식간에 튕겨 벽에 처박혔다.
“그 옷차림. 바로 너로구나. 이 쓰레기들이 우글거리는 쓰레기통의 주인이.”
한 번의 휘두름으로 두 여인을 벽에 처박아버린 솔도스는 난간 위에 쪼그려 앉아 라구르를 노려보았다.
“아. 아아… 레, 렐비? 랄라? 어, 어서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날 지켜야지!!!”
그 애원이 통한 건지, 낮은 신음과 함께 두 여인의 몸이 움찔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솔도스는 라구르를 볼 때와는 달리 한껏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두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제 주인을 지키려는 그 뜻은 아주 기특하다만… 주인으로 섬길 자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군. 저런 얕은 애송이를 주인으로 고르다니.”
그는 쭈그려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괬다.
“일부러 제압만 한 것이다. 정말 일어난다면, 이 솔도스의 이름을 걸고 너희가 그리 지키고자 하는 주인의 머리통을 터뜨려주마. 그대로 누워 있어라.”
“제, 젠장…”
라구르는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솔도스는 개똥만도 못한 쓰레기를 보듯이 그를 한 번 쳐다본 후, 주변에 서 있던 우리를 바라보았다.
“음…?”
나와 눈이 마주친 솔도스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그의 두 눈이 커졌다.
“너, 너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침에 뵈고 이렇게 또다시 뵙는군요.”
“네, 네가 여기 있다면…”
그는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누굴 찾는 건지는 뻔했다. 바로 스승님이겠지.
“스승님은 같이 안 오셨습니다.”
“그, 그렇군.”
한숨을 폭 내쉰 솔도스는 겨우 진정하곤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노려보았다.
“치안청 불법 점거에 이어 이번엔 불법 도박인가? 어째서 너는 내가 볼 때마다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군.”
“그게 참… 솔직히 조금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설명해드릴 기회를…”
철컥.
차가운 총구가 솔도스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흑색의 리볼버, 학살자를 든 손 반대편에는 이젠 그냥 종잇조각이 되어버린 마권이 꾸깃꾸깃하게 접혀서 들려있었다.
어머니는 몸을 파들파들 떨 정도로 분노했다.
‘살해!!!’
곧이어 당장 내 돈 내놓으라는 성난 외침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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