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12)
212 화 일촉즉발.
일촉즉발.
새카만 총구와 그 끝이 향하고 있는 솔도스의 머리.
나는 한가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간 항상 어머니와 함께 했기에, 나와 어머니가 모든 경험을 같이 겪었을 거란 착각.
어째서 어머니도 당연히 솔도스가 달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어머니는 숙취로 물제비호에서 끙끙 앓고 있었던 탓에 솔도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달인이란 사실을 알 방법도 없었고.
극도의 긴장으로 찰나가 한없이 늘어졌다. 느려진 시간과 반대로 생각이 탄알처럼 머릿속을 쏘다녔다.
내가 봐온 솔도스의 성격상, 자신을 위협했다 해도 어머니를 일격에 죽이진 않으리라. 그는 살인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방금 두 여자 경호원을 제압했던 것처럼 제압을 위해 어머니를 저 두꺼운 봉으로 후려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는 달인이고, 아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다. 게다가 지금 이곳엔 솔도스를 감당해줄 수 있는 스승님이 없었다.
어머니가 얻어맞는 광경. 그 광경을 본 나는 제정신일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나 내 몸뚱이는 이미 계산 따윈 내던지고 움직인 뒤였다.
***
“부디, 물러나 주십시오.”
목가에 닿은 푸른 검날. 자신을 바라보는 적의 가득한 두 눈.
솔도스 가란디발트, 황제를 지키는 방패이자 황제 직속 근위대의 고문인 그는 작금의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아직 딱히 아무런 적대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암녹빛 머리 여인은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질 않나.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멍하니 있으니 저 마르낙이라는 사제도 다짜고짜 자신의 목에 검을 들이대질 않나.
솔도스는 말없이 물끄러미 마르낙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달인의 경지에 달한 그로서는 무기를 들고 마주하는 상대의 성향의 편린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승이라던 그 푸른 머리 여인과 맞상대하며 느낄 수 있었던 건 감출 생각조차 없는 지독한 살기덩어리 자체였다. 그 스승에 그 제자란 말이 무색하게, 제자는 스승과는 달리 너무나도 정제되고 고요한 느낌이더라니.
그 푸른 스승이 발톱을 드러낸 맹수라면 제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시체를 찾아 기회를 노리는 청소부였다.
아니, 그것도 아닌가.
솔도스의 입가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단순하게 기회를 노리는 청소부라기엔 그가 내뿜는 살기가 너무나 끈적했다. 솔도스는 그 살기의 끝에 희미하게 묻은 지독한 광기의 향을 맡았다.
아직은 본인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하는 듯하지만.
솔도스는 고민했다.
이 기회를 기껍게 받아들여 마르낙이라는 사내의 실력을 가늠해볼 것인가. 아니면 허허 웃고 적대할 의사는 없다는 의사를 표할 것인가.
그는 봉을 쥔 손에 조심스럽게 힘을 더했다.
싹수가 새파란 인재를 보면 무척 기꺼운 것이 당연. 솔직히 먼저 무의 길에 입문한 선배로서 여기서 저 젊은이와 한껏 어우러지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했다.
솔도스는 이내 봉을 쥔 손에 더했던 힘을 거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주책없을 뻔했군.’
그는 마르낙과 그의 스승에 대해 고하고 들었던 황제 폐하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그들이 무얼 하든 마음대로 하게 두어라. 던 한마디를.’
솔직히 황제께서 대체 무슨 연유로 저들을 그토록 관대하게 대하시는지 이해가 가진 않지만, 폐하의 명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것.
솔도스는 가볍게 봉을 거두고 마르낙을 향해 피식 웃었다.
“내가 먼저 무기를 거뒀으니 너도 마땅한 예의를 차리는 게 어떤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낙은 푸른 검, 절망을 검집에 집어넣고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했다. 솔도스는 턱짓으로 마르낙의 등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암녹빛 머리의 여인을 가리켰다.
“네 일행에겐 무기를 꺼낼 땐 조금 더 신중하게 구는 편이 좋다고 말해두는 게 좋겠군.”
부패의 어머니는 어두운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눈을 데굴 굴려 마르낙의 눈치를 보았다.
딴 돈을 못 받게 됐다는 상황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일단 학살자를 꺼내 솔도스를 위협해버리고 말았지만, 그녀는 솔도스를 조준함과 동시에 그의 손가락 개수를 읽고 굉장히 당황했다.
솔도스는 무려 손가락 네 개짜리의 인간이었기에.
마르낙은 눈치만 보는 부패의 어머니를 향해 한숨을 폭하고 내쉬곤 빙그레 웃었다.
“다음부턴 저한테 이야기라도 좀 해주시고 움직이시면 좋겠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다치실 뻔하지 않았습니까.”
작게 고개가 끄덕이고, 한풀 기세가 꺾인 어머니가 마르낙의 허리에 매달려왔다. 마르낙은 그런 어머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하지만.”
툭 튀어나온 한마디에 마르낙이 고개를 돌렸다. 솔도스는 마르낙과 눈을 마주했다. 솔도스의 두 눈이 약간의 짓궂음으로 반짝였다.
“목숨의 위협을 받고도 이대로 마냥 넘기기엔 아무래도 내 체면이 살지 않는군.”
“혹시 무언가 바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내일 밤은 바쁠 예정인가?”
“딱히 정해진 일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솔도스는 손가락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펴서 슬쩍 기울인 후, 혀로 가볍게 딱 소리를 냈다.
“내일 밤, 남자 대 남자로 둘이서만 술 한잔하지. 이런저런 일로 생긴 감정이야, 독한 술 한 잔에 털어내는 게 진짜 사내들 아니겠는가. 거절은 받지 않겠네.”
저 마르낙이라는 사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라는 황제의 명은 따라야만 하는 것이었지만.
‘약간의 호기심 정도는 풀어도 괜찮겠지.’
솔도스의 제안에 마르낙의 고개가 끄덕였다.
“좋습니다.”
솔도스쪽에서 먼저 호의로 이번 위협을 묻어주려는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그릇이 준비될 때까지 딱히 일정이 없었던 마르낙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철컥철컥.
묵직한 갑옷의 맞물림 소리와 함께 근위대의 일원이 솔도스를 향해 다가왔다.
“이곳에 있던 귀족들의 이름은 모두 기록했고, 나머지 이들은 모두 제압을 끝마쳤습니다.”
“잘했다. 저기 주저앉아 있는 사내가 이 도박장의 주인이니 체포하고 그에게 물어 이곳의 모든 재산을 궁으로 환수해라.”
“예.”
“마, 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물려받은 재산인…”
빡!
금속 건틀릿이 라구르의 턱주가리를 주저없이 후려갈겼다. 피와 함께 몇 개의 이가 튀어나와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근위대원은 라구르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턴 단 한마디를 내뱉을 때도 신중을 기해라. 내가 해주는 경고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힉…”
라구르는 그렇게 근위대원에게 질질 끌려 사라졌다. 솔도스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눈으로 근뒤대의 등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보았듯이 오늘 밤은 이것저것 일을 좀 하느라 바쁠 것 같으니, 너는 이만 가봐도 좋을 것 같군.”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음에도 마르낙은 그 자리를 곧장 떠나지 않았다. 솔도스가 의문이 담긴 눈으로 그를 보자, 마르낙은 어머니를 슬쩍 보곤 입이 천천히 열었다.
“혹시 일행이 딴 돈을 조금 챙겨가도 괜찮겠습니까?”
솔도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되네. 이곳의 모든 재산은 국고로 환수될 예정이니. 그리고…”
그는 마르낙의 등 뒤에 선 부패의 어머니를 힐긋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한 번 따는 것. 다들 그렇게 도박을 시작하게 되기 마련이지. 도박으로 딴 돈은 일확천금이란 이름의 독을 품고 있다네. 나는 누가 내 눈앞에서 독을 품은 돈을 삼키는 걸 보고 싶진 않군.”
여태까지와 다르게 무척이나 단호한 말투. 마르낙은 몇 마디 말로는 솔도스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곤 순순히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죠.”
“그래, 잘 가게. 아, 내일 술 약속은 잊지 말고.”
“예.”
그렇게 솔도스의 배웅을 뒤로하고 마르낙과 그의 일행은 도박장을 떠났다.
***
“딴 돈을 다 계산하면 금화 백 닢이 넘는 돈이었는데!!! 이건 너무해요!!! 진짜로요!!!”
겨우 도박장을 빠져나오자, 여태 솔도스의 눈치만 보던 쟈멜이 기다렸다는 듯이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근위대고 달인이라지만 저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예요!!! 마르낙 사제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쟈멜이 나를 향해 두 눈을 반짝였다. 솔직히 쟈멜과 어머니가 처음 돈을 딴 건, 펄리의 장난질 덕이었기에 따지고 보면 억울할 것도 없었다.
“쟈멜 말이 다 맞습니다.”
“역시!!!”
내 호응에 쟈멜은 고사리 같은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다시 잔뜩 분을 터뜨렸다. 저렇게 한동안 펄쩍펄쩍 날뛰다 보면 분도 조금 사그라들겠지.
“북제국의 이 무도한 처사! 이 쟈멜이 언젠가 잊지 않고 꼭 갚아주겠어요!!!”
쟈멜을 지켜보던 펄리가 히죽 웃었다. 그녀는 슬쩍 쟈멜의 곁으로 다가가서 깜짝 놀란 듯이 소리쳤다.
“엇? 안녕! 안녕하세요! 근위대가 웬일로 따라왔지? 혹시 우리한테 더 물어볼 일이 있었나?”
“히이이익?!”
깜짝 놀란 쟈멜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잽싸게 외쳤다.
“그, 근위대님!!! 저, 저는 사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정말로요!!! 제발 잡아가지만 마세…”
당연히 근위대는 없었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상황을 파악한 쟈멜은 이내 자신이 펄리의 장난에 속아 넘어간 걸 깨닫고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이, 이 나쁜!!! 이런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 진짜 숨넘어갈 뻔했잖아!!!”
“히히히! 미안! 미안!”
자그마한 주먹이 콩콩대며 펄리의 등을 두드렸다.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너무 조용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옆을 걷는 어머니를 바라보자, 어머니가 학살자의 손잡이를 꼭 쥐고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해살해.’
어머니는 조용히 있던 게 아니라 파들파들 떨면서 딴 돈을 빼앗은 솔도스를 향해 지독한 저주와 욕을 퍼붓고 있었다.
새하얀 밥을 한 숟가락 뜨다 새카만 벌레가 나와서 평생 밥을 먹을 때마다 밥을 뒤적거리게 되는 공포에 질려라는 저주,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 위에 수많은 모발들이 흩뿌려져 있고, 정수리부터 눈에 띄게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게 되리라는 저주 등.
어머니가 내뱉는 저주들은 감히 입에 담기도 무서운 저주들이었다.
그런데 달인도 탈모에 걸리나. 아직 머리카락이 없는 달인은 본 적이 없어 모르겠네.
“어머니.”
‘…살해?’
“그런데 살 게 있으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니의 두 눈이 땡그랗게 떠졌다.
‘살햇?!’
펄리를 미행하느라 깜빡 잊었다는 한마디. 안타깝게도 날은 이미 어둑해져 웬만한 상점들은 이미 문을 모두 닫은 뒤였다. 거리를 환히 빛내는 건, 아직 자리를 접지 않은 노점상들뿐이었다.
“뭐, 오늘만 날도 아니니 다음에 또 같이 나와서 사도 괜찮겠지요.”
‘살해!’
그 말이 참으로 옳다며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도스를 향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어머니의 주의를 슬쩍 돌리는 데 성공한 나는 어머니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저녁 겸 야식으로 먹을만한 걸 좀 사서 배로 돌아가도록 하죠. 특별히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들로 엄선해서요.”
‘살해!!!’
“저, 저도 고를래요!!! 같이 가요!!!”
마음이 풀린 어머니가 환히 빛나는 노점상들을 향해 앞으로 뛰어나가자, 쟈멜이 어머니의 뒤를 따라 잽싸게 따라 뛰었다.
펄리와 둘이 남겨진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솔도스와 근위대가 도박장에 찾아올 줄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녀는 사람 구경을 하러 도박장을 찾았다고 했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는 듯이. 펄리는 보랏빛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 히죽 웃었다.
“그거야! 내가 신고! 신고! 했으니까 알지!”
“예? 펄리가 그곳을 신고했다고요?”
“응! 응!”
“대체 신고는 왜 한 겁니까?”
펄리의 두 눈이 가라앉았다. 방금까지 방방 뛰며 즐거워하던 여인이 자취를 감추고, 차분하고 무기질적인 여인만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라구르는 선을 넘었거든.”
“라구르, 그자가 대체 뭘 했길래요.”
“그 멍청이는 제 아비에게 물려받은 연줄을 통해 물건 몇 개를 옮겨달라 의뢰를 해놨더니 도적에게 습격당한 척, 시간을 끌고 물건을 몇 단계 품질이 낮은 것들로 바꿔치기해놨더라고. 그래서 몇 달 동안 그놈의 사업장을 차근차근 망가뜨려서 도박장 하나 빼곤 모조리 잃게 만들었지. 오늘은 바로 지난 몇 달 동안 했던 계획의 과실을 따 먹는 날이었어.”
펄리는 내 얼굴을 째려보더니 볼을 슬쩍 부풀렸다.
“누구 때문에 라구르가 완전히 망가지는 걸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원래 계획대로 흘러갔으면 라구르는 좀 더 비극적이고 비참하게 망가졌을 텐데. 그래서 지금은 뭔가 하다만 기분이라 아주 조금 짜증이나.”
“미행 건은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몇 번 씹더니 다시금 히죽 웃었다.
“뭐, 괜찮아. 네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닐 텐데. 어차피 평소처럼 맞춰주다 그랬겠지. 게다가 이 정도는 아직 허용범위 내야. 내가 네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한 적이 없기도 하고!”
“그런데 근위대는 어떻게 움직인 겁니까?”
펄리는 장난스럽게 양손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내가 나름 여기저기 끈이 닿아있는 편이거든. 자세한 건 좀 더 친해지면 말해줄게! 그래도 적당하게 좋은 기회가 되긴 했네!”
훅 밀려오는 여인의 체취.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펄리의 보랏빛 눈이 요망하게 빛났다.
“나를 속이거나 배신한 자가 어떤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는 지 네게 보여줬으니까.”
내가 말없이 그녀를 마주 보자, 펄리가 훌쩍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 걱정 마!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네가 약속한 것들만 잘 지켜주면 나는 네겐 언제까지고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펄리는 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미련 없이 발을 돌려 야식을 주문하는 어머니와 쟈멜을 향해 훌쩍 떠났다.
***
“오, 왔나? 따라오게. 내가 좋은 술집을 하나 알거든.”
솔도스는 물제비호로 사람을 보내 약속 시간과 장소를 고지했고, 나는 그가 사람을 보내 일러준 장소로 나왔다.
나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해 걸었다.
“그런데 왜 굳이 저 혼자 나오라고 하신 겁니까?”
솔도스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탁한 금발을 쓸어넘겼다.
“나는 아내가 죽은 뒤로 여자랑은 술은 안 마시거든.”
예상치 못한 답변에 잠깐 할 말을 고민하자, 그는 괜찮다는 듯이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았으면 하는군. 내 아내는 오래오래 나와 행복하게 살다 편안하게 눈을 감았으니. 그녀는 그저 달인인 되어버린 나와 걸어가는 시간이 조금 달랐을 뿐이네.”
솔도스는 이런 종류의 대화를 하는 것에 무척 익숙해 보였다. 그의 무던한 태도 덕에 나는 한결 마음이 편했다.
“애처가시군요.”
“애처가는 무슨. 그냥 나는 흔한 공처가였네.”
그는 겉으로 보기엔 나와 나잇대가 전혀 차이 나지 않는 젊은 얼굴을 한 손으로 매만졌다.
“자신은 이렇게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늙는데, 혼자 탱탱해서 좋겠다며 얼마나 구박하던지. 맨날 젊은 후처를 들이라고 을러대는 통에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나? 나는 그 얕은 시험에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았지. 막상 후처를 들였으면 전보다 몇 배로 구박했을 게 뻔하니 말이야! 하하하! 어림도 없지!”
투덜대는 그 말투 속에는 먼저 간 아내를 향한 진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손으로 변해 내 안주머니 속에서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어머니가 낮게 중얼거렸다.
‘살해.’
시끄럽고 아주 그냥 원형탈모나 걸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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