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21)
221 화 거슬림.
거슬림.
펄리.
인정하기 싫지만, 다키아는 펄리가 예전부터 조금, 아주 조금 거슬렸다. 그래, 그녀만이 유독 거슬렸다.
어째서일까.
아직 다키아는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명확히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거슬림. 그 자그맣고 뾰족한 송곳 같은 감정에 찔려가며 힘들게 그 마음을 매일매일 저 밑으로 꾹꾹 눌러서 감출 뿐.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모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떤 호인이라도 적나라하고 추한 인간의 민낯을 사랑하는 이들은 없으리라.
원만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밑바닥을 숨길 줄 알아야만 했다. 적어도 다키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욱이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사람 앞에서는 반드시.
“딸꾹!”
짓궂은 표정의 펄리.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는 마르낙.
펄리가 무어라 떠들든, 둘 사이에 걱정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걸 다키아는 그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그가 모시는 부패의 어머니와 동행했으니.
“딸꾹! 딸꾹!”
하지만 어째서 오늘 홀로 일하러 간다던 마르낙 사제님은 펄리와 단둘이 저렇게 앉아…
빠각.
“히에엑?! 그, 금 갔어! 자, 잔에 금이 가고 있어! 다, 다키아! 그거 그러면 깨져요! 진짜 깨진다고요!”
쟈멜의 숨죽인 비명. 그 숨죽인 요란함이 다키아를 깨웠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내려 금이 간 잔을 바라보았다. 갈라진 파편 하나하나엔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저마다 담겨 있었다.
그 무엇 하나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내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지젤이 마르낙 방향을 힐긋 바라보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키아 너도 알다시피 오늘 마르낙은 ‘혼자’ 간 게 아니잖아. 네가 뭘 들었든 어차피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거기다 알다시피 마르낙은 딱히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보…”
“아까도 말했지만.”
다키아는 가볍게 말을 끊고, 지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와 있을 때만이라도 마르낙 사제님한테는 존칭을 붙여주셨으면 하네요. 부탁드릴게요.”
무척이나 부드럽지만, 선을 긋는 한마디.
지젤은 가타부타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뭐, 내가 굳이 여기서 쟤를 달래는 데 애쓸 필요가 있나? 쟤 성격이면 지금 내가 오구오구하며 달래주는 것보다, 나중에 마르낙이 말 몇 마디 해주면 바로 화 풀고 헤실헤실 웃을 텐데 말이야.’
“두, 둘이 싸우는 거 아니지…?”
말 한마디 감히 꺼내기 힘든 분위기에 쟈멜은 숨이 막혔다. 지젤은 얼굴에 속마음이 빤히 다 드러나 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곤 피식 웃었다.
“우리가 왜 싸워. 나는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맞아요. 쟈멜, 싸우는 거 아니니 걱정 말아요.”
그제야 쟈멜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 그래? 음…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까? 마르낙 사제님을 계속 더 쫓을 거야?”
“그건…”
다키아는 마르낙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펄리의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이만 가요. 어차피…”
어차피 자신은 여기서 지켜보는 것 말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다키아는 일렁이는 속마음에 찔려가며 그 마음을 꾹꾹 눌러 저 밑바닥에 다시 쑤셔 박았다.
“진짜진짜 좋은 생각인 거 같아! 어차피 마르낙 사제님 목소리도 잘 안 들리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치고 있을 바에야 우리끼리 놀러 가는 게 훠, 훨씬 나을 거야!”
쟈멜은 반쯤 장난으로 마르낙을 뒤쫓다 맞닥뜨린 이 숨 막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용의가 있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자리에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맛있는 거나 사 먹으러 가자고 지젤과 다키아를 보챘다.
다키아는 그런 쟈멜을 보며 자신이 오늘 새로운 실수를 하나 했음을 깨달았다. 평소답지 않게.
‘나중에 따로 둘 다한테 사과해야겠네.’
쟈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젤과 다키아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우리 엄청 조심스럽게 빠져나가야 해. 저번에 내가 부패의 어머니랑 펄리를 뒤쫓았던 적이 있거든? 그때 얼마나 귀신같이 알아채던…”
“우연이네? 엄청엄청 우연이야.”
“히끅?!”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 쟈멜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깨닫곤 딸꾹질을 터뜨렸다.
다키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마르낙의 맞은편 자리는 어느새 비어있었다. 그 자리의 주인은 특유의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의 탁자 앞에 서 있었다.
무척이나 얄미운 표정을 짓고서.
아직 자리에 앉아 있던 마르낙은 다키아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다키아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 미소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눈앞의 펄리 때문일까. 아니면 몰래 뒤를 쫓다 걸린 탓일까.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다키아가 고민하든 말든 펄리는 저 혼자 특유의 박자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다 같이 합석해서 같이 밥 먹을래? 단둘이 먹기엔 꽤 많이 주문해서 안 그래도 남은 건 좀 싸갈까 싶었거든!”
“나, 나야 좋…엑?!”
단박에 대답하려던 쟈멜의 옆구리를 지젤의 손가락이 꾹 찔렀다. 쟈멜은 하던 말을 멈추고 의문 가득한 눈으로 지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지젤은 턱짓으로 다키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답했다.
쟈멜은 그제야 생글생글 웃는 펄리의 눈웃음이 자신과 지젤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자연히 작금의 물음 또한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다키아는 펄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보랏빛 머리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아뇨. 괜찮아요. 저희는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참이라.”
“흐응.”
짧은 콧소리. 펄리는 생글생글 얄밉게 웃었다.
“아무것도 안 시키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식당에 민폐가 아닐까? 게다가 마르낙도 저기 있는데?”
마르낙이라는 단어에 다키아의 이마가 미묘하게 꿈틀댔다.
“당신이 손님으로 번잡한 식당을 걱정해줄 정도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당연히! 당연히! 나는 그런 걱정을 안 하지!”
펄리가 히죽 웃었다.
“나는 그냥 밥도 안 시키고 우중충하게 앉아서 나를 바라본 너희를 걱정! 걱정! 한 거야! 히히! 미행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밥 먹어가면서 하는 게 좋잖아?”
금빛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죠?”
“당연히! 처음부터지!”
펄리는 장난스럽게 두 손가락을 펼쳐 자신의 눈을 가리킨 다음 주변을 슥 훑었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자주, 많이 쫓기는 편이거든! 그래서 난 누가 날 쫓아오는 데 아주! 아주! 민감해! 거기다 ‘조잡’하게 티를 내면서 쫓아오는 건 진짜 빨리 알아채고!”
‘조잡하지 않은데…’라며 쟈멜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펄리와 다키아 둘 중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다키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당신은 매사 모든 일이 그렇게 마냥 장난 같나요?”
“아냐아냐. 나는 그저 이왕 할 거 웃으며 하자는 주의인 거라고.”
펄리는 자신의 입술 양 끝을 양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끌어당겨 가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히히. 들어봐, 네가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마르낙이 저기 저렇게 혼자 앉아서 우리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잖아. 그런데도 진짜진짜 동석 안 할거야?”
다키아의 하얀 이마가 다시 한번 작게 꿈틀댔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펄리의 평범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독하게 그녀의 신경줄을 긁어댔다.
다키아는 작게 한숨을 몰아 내쉰 다음 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차여서요. 마르낙 사제님한테는 조금 있다 뵙겠다고 전해주세요. 가죠. 지젤, 쟈멜.”
“아, 네, 넵!”
다키아는 마르낙을 향해 작게 고개를 꾸벅 숙이곤 가게 입구로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쟈멜은 총총거리며 그 뒤를 잽싸게 뒤쫓았고.
“하아.”
겨우 지나간 폭풍우에 지젤은 짧게 한숨을 내쉬곤 아직 생글거리는 펄리를 향해 말했다.
“다키아를 너무 긁어대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혹시나 둘이 싸우는 줄 알았어.”
“다키아가? 싸워? 아니지. 절대 아니지. 너는 아직 다키아를 잘 모르네! 다키아는 절대 여기, 이곳에선 나와 싸우지 않아.”
짧게 말을 끊은 펄리의 눈이 요망하게 반짝였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저 겁쟁이 꼬마는 마르낙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낼 만한 용기가 없거든! 그리고…”
펄리가 한 걸음 내딛자 지젤과 펄리 사이의 거리가 훅 줄어들었다. 펄리는 몸을 살짝 숙여 지젤의 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야.”
***
너무 식당에서 서서 이야기하며 너무 시선을 끌어버린 탓일까. 다키아는 식당을 빠져나오자마자 가끔 겪던 사소한 문제에 부닥쳤다.
“저기 아가씨? 아가씨네 일행도 셋이고 이쪽도 마침 셋인데 우리 다 같이 놀지 않을래?”
자연스럽게 식당에서 따라 나온 남성 중 하나가 그녀에게 말을 건네왔다. 쟈멜이 가타부타 말을 꺼내기 전에 다키아는 조용히 허리춤에 찬 검을 툭툭 두드리며 나직이 말했다.
“가세요.”
그녀는 늘상 북부 왕국에서 써먹던 방법으로 대처했다. 대개 이런 경우, 평범한 사내들은 그녀가 허리춤에 찬 검과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가 된 행색을 보곤 그냥 한 번 물어봤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말을 걸어온 사내는 튕기는 다키아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거침없이 손을 뻗어 다키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에이. 예쁜 얼굴이 아깝다. 그러지 말고 우리랑 놀자. 이 근처는 우리가 아주 빠삭해서 재밌게 놀게 해줄…”
평소. 평소였다면, 다키아는 이 무례한 사내에게 그저 마법으로 자그마한 불꽃을 내보이는 걸로 물러나게 했을 터였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생글거리던 펄리에게 잔뜩 속을 긁힌 다키아는 참지 못했다.
빡!!!
다키아의 오른 주먹이 남자의 턱주가리를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첫 한 방으로 사내는 깔끔하게 정신을 잃었다. 다키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쓰러지는 사내의 어깨를 붙잡고 명치를 무릎으로 찍었다.
그녀의 무릎을 타고 무언가를 부수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 아니. 시발!”
“야!”
사내의 뒤에 서 있던 그의 동료 둘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허리춤에서 자그마한 단도를 꺼내 들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솜씨로.
그 일련의 행동을 보며 다키아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는 쓰러지던 사내를 그의 일행들을 향해 집어던지고 자리를 박찼다.
짧은 중얼거림.
그녀의 바람과 낮은 뇌까림이 맞물리자 마력이 작게 요동쳤다. 마법이 발현되자 다키아의 앞으로 적당한 돌이 솟아났다.
딱 맞는 발받침.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돌을 밟고 뛰어올랐다. 날아오른 그녀의 몸뚱이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회전했다.
빠각.
회전의 끝. 힘이 가득 실린 다키아의 발끝이 정확하게 두 번째 사내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정신을 잃은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이런 젠…”
이제 홀로 남은 사내가 어떻게든 대처하려 했지만, 그는 방금 막 날아온 자신의 동료 몸뚱이에 부딪히곤 바닥에 쓰러졌다.
동료의 몸뚱이를 치우고 잽싸게 자리를 잡고 일어선 그를 반긴 건 검집이었다. 다키아가 휘두른 검집.
빠악!
검집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사내의 관자놀이를 두들겼다. 마지막 사내가 시원하게 바닥에 쓰러지자 다키아는 묘하게 홀가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막 가게를 나온 지젤을 향해 싱긋 웃었다.
“우리 어디 가서 맛있는 거 좀 먹는 게 어때요? 몸을 움직였더니 배가 살짝 고프네요.”
***
다키아가 외출을 끝내고 돌아온 그날 밤.
별이 한가득한 그 밤에 누군가 다키아의 선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답은 없었다. 다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스한 자신의 모습을 대충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다키아를 반겼다.
한밤중에 다키아를 찾아온 여인, 펄리가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히죽 웃었다.
“단둘이 산책 한 번 하지 않을래?”
다키아는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싫어요.”
“역시…”
펄리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녀는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슬쩍 말을 덧붙였다.
“너 나 마음에 안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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