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22)
222 화 우리집에 난 불.
우리 집에 난 불.
‘살햇!’
다키아가 펄리를 따라 물제비호를 떠났다는 외침.
‘살해살해?’
어머니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 재밌다는 듯이 저러다 둘이 대판 치고박고 싸우는 거 아니냐고 내게 물어왔다.
“펄리 쪽은 몰라도 다른 상대방이 다키아인 이상 그럴 리는 없겠지요. 다키아라면 분명 대화로 먼저 해결을 보려 할 겁니다.”
오늘 점심 즈음 식당의 상황을 봤을 때, 펄리와 다키아 사이에는 미묘한 벽이 있어 보였다. 펄리에게 슬쩍 물어보니 본인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저 자기가 오늘 밤에 다키아와 해결을 보겠다며 자신을 한 번만 믿어 달라고 했다.
‘살해!’
아무래도 구경을 가는 게 좋지 않겠냐며 어머니가 두 눈을 반짝였다. 어머니가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살해살해!’
원래 구경도 남의 집 불난 걸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다며 얼른 뒤를 쫓아가 보자는 한마디.
나는 어머니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드리며 어머니를 달랬다.
“펄리가 자기를 믿어달라고 했으니 한 번 믿어봐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기다려보다가 둘이 너무 안 돌아오면 한 번 나가보겠습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머릿결은 그 어떤 비단보다도 부드러워 저도 모르게 그 촉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리고 다키아와 펄리가 대판 싸우면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 우리 집에 난 불을 구경하는 겁니다. 어머니.”
‘살햇?!’
***
북제국을 관통하는 거대한 강, 그 강가에 지어진 부둣가를 따라 두 여인이 걸음을 옮겼다. 환히 빛나는 달만이 부둣가를 거니는 둘을 비췄다.
“그렇게 말없이 걸으니까 무섭잖아.”
장난스러운 한마디. 펄리가 먼저 말을 던졌지만, 다키아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펄리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왜? 네가 날 미워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뼈아팠어?”
“아니에요.”
“아니긴.”
피식 웃음을 터뜨린 펄리는 가볍게 두어 걸음 앞서나가 뒤를 돌았다. 그녀는 다키아를 빤히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거짓말쟁이.”
다키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인형 뒤에 숨어서 진짜 몸뚱이 한 번 내보인 적 없는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펄리의 왼쪽 동공이 자그마한 네 개의 동공으로 갈라졌다. 어딘가 거미의 눈을 닮은 네 개의 동공이 장난기를 한가득 담아 다키아를 바라보았다.
“너희랑 지내는 이 몸. 이 몸이 내가 가진 유일한 ‘진짜’ 몸일 수도 있잖아?”
다키아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당신 성격에 잘도 진짜 몸을 이런 곳에 두겠네요.”
“원래 귀한 건 안 귀한 것들 사이에 숨겨두는 거야. 뭐, 믿거나 말거나 네 자유지만.”
“네네. 그렇겠죠.”
“역시…”
“역시 뭐요?”
펄리는 양손을 뻗어 검지로 다키아를 가리켰다.
“마르낙이 없으니까 한결 솔직해지네! 그렇게 하루 종일 내숭 떨면서 살면 안 힘들어? 아, 원래 너 같이 사랑에 빠진 꼬맹이들은 내숭 떠는 게 힘든 줄도 모르긴 하지! 응응! 그래!”
펄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키아는 자그마한 짜증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저는 내숭 같은 걸 떤 적이 없어요.”
“그래그래. 그렇겠지. 원래 내숭 떠는 건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법이야. 딱 네 나이대 애들은 말이지!”
다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 다키아는 짜증이 더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이 한밤중에 절 불러낸 건, 그냥 저한테 시비를 한번 걸어보고 싶어서인 건가요? 더 할 이야기가 없다면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당신이랑 굳이 여기서 드잡이질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히히.”
잔망스러운 웃음을 뒤로하고 다키아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나지막한 한마디가 그녀의 귓가로 들려왔다.
“지금 돌아가면 마르낙은 내가 가진다?”
“그게 무슨…”
그녀가 몸을 돌리자 펄리가 장난스럽게 앙하고 허공을 깨물었다.
“무슨 소리긴 내가 그냥 마르낙을 먹어 치우겠다. 이거지. 물론…”
펄리의 갈라진 동공이 요망하게 빛났다. 펄리는 작게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성적(性的)인 의미로 말이야.”
다키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르낙 사제님이 당신 같은 여자에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요? 사제님은 당신을 여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제님은 그저 누구에게나 친절하셔서 당신은 마르낙 사제님이 쉬울 거라 홀로 착각한 것뿐이죠.”
다키아는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지만, 이내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조금 상처받고 말았다. 방금 내뱉은 말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기에.
주변에 일행 중 그 누구에게도 마르낙은 동료로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할 뿐이지, 그 어떤 남녀 사이의 애정으로써 대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도 동료로서 소중히 대해줄 뿐.
그 사실이 다키아는 아팠다. 너무나 아팠다.
“헤에… 정말 그렇게 생각해? 사실 오늘말이야…”
다키아는 펄리의 말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까의 한마디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 나 마음에 안 들지?’
어째서 자신은 펄리의 그 한마디를 부정하지 못했을까?
정말 자신은 그녀를 미워하는 것일까?
어째서 펄리만이 거슬리는 걸까?
어째서 이토록 그녀가 꼴보기가 싫은 걸까?
“…마르낙이 내 배 위에 올라탔거든? 그 틈을 타서 내가 은근슬쩍 걔 몸을 여기저기 만져봤단 말이야. 역시 젠체하면서 맨날 빼긴 해도 결국 남자긴 하더라고. 그것도 아주 튼실한 남자.”
어째서 이토록 화가 나는 걸까.
펄리가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러니까 내 말뜻은 이거야. 네가 믿는 것만큼 내가 마르낙을 자빠뜨리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거 같다는 거지.”
어째서.
“아, 너무 걱정하진 마. 먼저 써보고 나중에 적당한 때 너한테 돌려줄게.”
“아.”
다키아는 마침내 깨달았다.
“아?”
자신은 펄리를 ‘질투’하고 있었다.
펄리는 마르낙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 자신과 달리, 언제나 항상 같은 눈높이로 마르낙과 마주했다.
그래, 펄리만이 일행 중 유일하게 마르낙과 수평적인 관계였다. 필요로 맺어진 수평적 관계. 서로에게 줄 건 주고 건네받을 건 건네받는.
펄리를 제외한 다른 일행은 대부분은 모조리 마르낙과 수직적인 관계였다.
마르낙에게 있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얄팍한 실로 이어진 관계.
마르낙에게 있어서 자신은 반드시 필요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마르낙에게 ‘필요’한 펄리가 부러웠던 것이었다.
부러움이 흘러넘쳐 결국 질투로 끓어 넘쳐버린 것이었다.
“왜 말이 없어? 응? 응?”
언제 다가온 것인지 모른 채 좁혀진 거리. 펄리는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짓궂은 장난기를 한가득 담고서.
“인정할게요.”
“뭘?”
다키아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떴다.
“저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요.”
“흐응.”
“그리고.”
“그리…?”
빠악!
펄리는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다키아의 주먹이 정확하게 그녀의 안면 정중앙을 후드려 갈겨버렸기 때문에.
튕겨 나간 펄리는 유연하게 몸을 움직여 깔끔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기야? 마르낙도 알아? 네가 이렇게 폭력적인…”
주륵.
얻어맞아 빨갛게 된 코를 타고 새빨간 핏줄기 하나가 흘러내렸다. 펄리는 조용히 자신의 코를 닦고선 낮게 중얼거렸다.
“코피가 났네?”
다키아는 손목을 풀며 펄리를 노려보았다.
“감히 그 같잖은 혓바닥으로 마르낙 사제님에 대한 음담패설을 내뱉지 마세요. 굉장히 거슬리니까.”
“호오.”
펄리는 손등에 묻은 자신의 코피를 혀끝으로 살짝 핥고서 히죽 웃었다.
“내가 싫다면?”
다키아는 검집째로 검을 빼들며 짧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당신에게 ‘예의’란 것을 가르쳐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펄리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아주 활짝.
“그것 참 내가 딱 바라던 대로네.”
***
‘살해!’
둘 다 너무 안 돌아온다는 한마디.
어머니의 말뜻은 간단했다.
이거 진짜 치고박고 있을 거 같으니 얼른 구경 가자는 뜻.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어머니께 손을 내밀었다.
“손으로 변해주시지요. 몰래 따라가 보려면 제 품속이 낫지 않겠습니까?”
‘살햇!’
***
빠악!
검집이 부둣가의 나무 기둥을 거칠게 후려갈겼다. 유연한 동작으로 다키아의 검을 피해낸 펄리가 이죽댔다.
“잘 맞지도 않는 검을 참 열심히 휘두르네.”
“잘 맞는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다키아는 뒤로 물러나는 펄리를 쫓아 검을 재차 휘둘렀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딘 그때.
무언가 다키아의 발목을 잡아챘다. 기우뚱하고 무게중심을 잃은 다키아를 반긴 건 펄리의 발이었다.
빡!
안면을 얻어맞은 다키아가 뒤로 굴러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발목을 잡아챈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굵은 실.
굵은 실 하나가 부둣가의 말뚝과 말뚝을 따라서 이어져 있었다. 펄리는 손가락 끝을 타고 자라난 실을 늘어뜨리곤 히죽 웃었다.
“너만 무기를 들면 불공평해서 써봤어! 근데 괜찮아?”
“무슨…”
“안 닦아도 괜찮겠냐고.”
주륵.
걷어차인 코끝으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터진 코피. 다키아는 펄리가 아까 터진 코피를 그대로 자신에게 돌려준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코피를 훔치고 짧게 말했다.
“지금부터 마법을 쓸 거예요.”
“친절하네. 호구같이. 히히.”
“고마워요.”
“뭐가?”
다키아가 싱긋 웃었다.
“끝까지 개같아줘서.”
“응?”
다키아의 입술이 빠르게 달싹였다. 쉴 새 없이 뇌까리는 주문을 따라 마력이 거칠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펄리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었다.
“재밌네.”
그 말을 끝으로 펄리가 자리를 박찼다. 그녀는 빠르게 튀기는 공처럼 순식간에 다키아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펄리가 세 번째 발을 내디딘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콰앙!!!
그녀가 디딘 발판을 뚫고서 고압의 물줄기가 솟구쳤다. 펄리는 재빨리 다른 발을 튕겨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여지없이 그녀가 발을 디딘 자리에서 새로운 물줄기가 치솟아 올라 그녀의 몸을 노렸다.
쾅! 쾅! 쾅! 쾅!
솟구치는 수십 줄기의 물. 펄리는 끊임없이 물러나며 작게 감탄했다.
다키아는 보통 한두 가지 속성에만 특화된 보통의 마법사와 달랐다.
‘마침 강가에 있으니 물을 쓴다는 건가.’
그녀는 그저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율을 내보이고 있었다. 물줄기들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집요하게 펄리를 뒤쫓았다.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펄리는 마침내 깨달았다.
“이거 완전 외통수네.”
앞에도 물줄기 뒤에도 물줄기. 고압의 물줄기들이 먹이를 탐하는 뱀처럼 전방위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다키아가 짧게 선언했다.
“좀 아플 거예요.”
“좀 살살해ㅈ…”
“싫어요.”
콰앙!!!
수십 가닥의 굵은 물줄기가 펄리를 그대로 덮쳤다. 몰아친 고압의 물줄기들의 세례에 견디지 못한 부둣가가 박살 나 잔해들이 솟구쳤다.
완전히 박살 난 부둣가를 보며 다키아가 자신이 너무 심했나 잠깐 생각한 그때.
“그럼 나도 살살 안 하지 뭐.”
새하얀 빛 한줄기가 튀어나와 다키아를 후려 찼다. 다키아는 다급하게 검으로 공격을 막았지만, 그녀의 몸을 저항할 수 없는 거력에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다키아가 고개를 들자 그제야 펄리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새하얀 실들. 그 실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불어나며 뭉쳐서 펄리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이내 그녀의 몸 위를 뒤덮은 실들이 틈 없이 뭉치자 어느새 실들은 새하얀 옷이 되어 펄리를 덮고 있었다.
펄리는 장난스럽게 검지로 다키아를 가리켰다.
“탕.”
피잉거리는 새된 소리와 함께 다키아 뒤편의 기둥이 말 그대로 박살 나 흩날렸다. 펄리는 여느 때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내가 죽여본 마법사가 몇 명일 거 같아?”
“방금의 공격은 실을 뭉쳐서 쏜 건가요?”
“그거랑은 원리가 많이 다르지만, 대충 비슷해.”
“그거면 됐어요.”
짧은 달싹거림. 순식간에 다키아의 주변을 따라 넘실거리는 불길의 벽이 일어나 그녀를 감쌌다.
실을 불로 태워버린다. 그 단순한 발상에 펄리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 잡기술로 막아질까 과연?”
펄리가 자리를 박차자 그녀는 한줄기 새하얀 선이 되어 불길을 꿰뚫었다. 불길을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깨달았다.
“없네?”
“저는 당신의 공격을 막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빠악!!!
불길을 뚫고 들어온 고압의 물줄기가 펄리를 후려쳤다. 고압의 물줄기 하나하나는 아까까진 네가 다칠까 봐 힘조절을 했다는 듯이 훨씬 강한 힘을 품고서 몰아쳤다.
물줄기에 얻어맞은 몸뚱이가 튕겨 그대로 강가에 처박혔다. 펄리는 물속에서 펄쩍 뛰어올라 가볍게 물 위로 올라섰다.
“재밌네.”
물 위에 서 있는 기예. 그 모습을 보면서 다키아는 그저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새로운 마법을 외워나갔다.
저 새하얀 옷을 입은 펄리를 육체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
다키아는 흘러내린 은빛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황금빛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마법사’로서 찍어누르는 수밖에’
주문을 빠르게 뇌까리는 그녀의 입가엔 자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키아 본인도 모르는 사이 피어난 미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