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24)
224 화 제안
제안
한 사내의 머리통이 너무나 어이없이 터져버리자 남은 네 사내는 여태 건들대던 태도를 버리고 침묵했다. 그들은 말없이 검을 고쳐 잡고서 간격을 벌렸다.
도망치거나 당황하지 않는 그 노련한 태도에 다키아는 당면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가 마냥 쉽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적은 넷. 펄리가 한 명을 제거해준다는 가정 하에 자신이 직접 베어야 할 상대는 총 셋이었다.
과도한 마법을 사용한 후유증이 허한 탈력감이 되어 다키아의 어깨를 짓눌렀다. 다키아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며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지금 물러난다면 전부 없었던 일로 해드릴게요.”
“쳐라!”
퍼져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다키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 자루의 검이 다키아의 사지를 향했다.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제압해서 그녀를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라는 듯이.
까앙!!!
먼저 맞닿은 검을 흘려낸다. 다키아는 첫 검을 밀어내자마자 사내의 품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서로의 검이 엇나가고 생긴 틈. 그 틈을 파고들어 그녀는 사내의 명치를 걷어찼다.
한 사내가 바닥을 나뒹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자루의 검이 그녀를 노리고 다가왔다. 다키아는 내질렀던 발의 회전력을 이용해 중심을 다시 잡고 또 한 번 검을 쳐냈다.
까앙!
금속이 서로 맞부딪히며 불티가 튀었다. 검이 튕겨 나가는 사이, 세 번째 검이 그녀를 노렸다. 다키아는 유연하게 허리를 젖혀 가까스로 검을 피해냈다. 무심한 검날에 잘린 은빛 머리칼 몇 가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마지막 네 번째 검이 파고들었다. 검 끝이 향하는 곳은 그녀의 왼팔.
‘왼팔을 내어주고 한 명을 처리하자.’
이대로 계속 넷의 합공을 받아내는 것은 무리. 어떻게든 적의 수를 줄여야만 했다. 다키아는 굳게 마음을 먹고 적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빵!”
숨 막히는 정적을 끊어내는 한마디. 그 한마디에 모든 결과가 비틀렸다. 검을 내려치던 사내가 잠깐 움찔거린 틈을 타고 다키아의 검날이 정확하게 사내의 목을 꿰뚫었다.
다키아가 검을 뽑자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거리를 물들였다.
사내들의 시선에 펄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뭐? 억울해? 누가 보면 내가 ‘빵!’ 소리를 낼 때마다 한 발씩 쏘기로 너희랑 약속한 줄 알겠다? 응?”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검지를 까딱였다.
“이제 셋밖에 안 남았네? 그치?”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몰라도 펄리가 능글맞게 몇 마디를 던져준 덕에 다키아는 잠깐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세를 낮추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돌아가세요.”
“여기서 죽나 빈손으로 가나, 우리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란 말이지.”
맨 처음 걷어차여 처박혔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놓쳤던 검을 주웠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보기엔 그쪽 마법사 아가씨는 우리가 지금 셋이 아니라 둘 정도였으면 충분히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는 조용히 한 손을 허리춤으로 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 뒤에 주저앉은 보라 머리 아가씨는 당장에 우리의 머리통을 터뜨리지 않을까? 그래, 사실은 저 보라 머리 아가씨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다키아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만둬요!”
“늦었어!”
세 명의 사내가 일제히 투척용 단검을 내던졌다. 다키아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지만, 그녀가 쳐낼 수 있었던 단검은 단 두 자루뿐이었다.
푹.
마지막 단검이 정확하게 펄리의 한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펄리의 하얀 옷을 붉게 물들였다.
“역시나 한 발 남았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펄리는 자신의 어깨에 박힌 단검을 힐긋 내려다보곤 키득키득 웃었다.
“아, 들켰네…”
그 말을 끝으로 펄리의 고개가 푹 꺾였다.
“펄리!!!”
펑!
사내들이 터뜨린 연막이 다키아의 시야를 가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 연막의 범위를 벗어났다. 싸구려 연막이 걷히고, 다키아의 시야에 비친 건 비어있는 거리였다.
그녀는 곧, 펄리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빠르게 주변을 훑자 좁은 거리 사이로 펄리를 들쳐멘 사내들이 달음박질로 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이 보였다.
사내 중 하나가 다키아를 향해 소리쳤다.
“생각해보니 너랑 우리가 계속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있나? 우리는 너만 데리고 가면 되는 데 말이지! 자자, 이 여자를 구하고 싶으면 제 발로 얼른 따라오라고! 하하하!”
다키아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맞는가? 그게 아니면 당장 되돌아가서 마르낙 사제님을 부르는 것이 맞을까.
‘저 펄리는 그냥 인형일 수도 있잖아. 늘 그랬듯이.’
진한 탈력감 속에 피어난 비겁이 그녀를 흔들었다. 그러나 다키아는 마르낙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아까 펄리가 말했던 것처럼 저 몸이 진짜라면?’
그녀가 저들을 쫓아가지 않는다면, 저 몸은 무조건 죽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다키아는 물러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를 박차 앞서 나가는 세 사내의 뒤를 쫓았다.
**
“휴우. 어떻게든 무마했군요.”
치안대의 앞을 막아서고 솔도스의 이름을 팔 때까진 상황이 좋았으나, 갑자기 강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용오름 덕분에 완전히 일이 꼬여버릴 뻔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자네 일행을 처벌하지 않는 것뿐이네. 알겠나? 오늘 밤, 자네의 일행이 때려 부순 건 한 푼도 빠짐없이 전부 변상해야 할 걸세.”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네. 저번에 자네가 날 도와준 건을 이번에 갚은 것이니.”
다행히 소란을 듣고 달려온 솔도스가 나를 발견해준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솔도스는 저 멀리 내려꽂히는 용오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법사들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것치고도 참으로 무섭게들 싸우는군. 정말 저대로 놔둬도 괜찮은 거 맞나?”
“안 그래도 이제 가서 말리려고 합니다.”
“그래. 당장 가서 말리게. 얼른.”
그렇게 내일 당장 부두를 수리할 인력을 구하라고 해야겠다며 투덜대는 솔도스를 뒤로 하고 나는 참혹한 파괴의 현장으로 향했다.
***
다키아가 도망친 사내들을 뒤쫓은 끝에 도착한 장소는 북제국 외곽의 한 저택이었다.
담장을 뒤덮은 스산한 가시덤불과 달리 저택의 정원은 안은 누군가 정기적으로 관리를 한 듯 붉은 꽃들이 가지런히 자라나 있었다.
다키아는 활짝 열린 저택의 문 앞에 서서 고민했다.
사내들을 계속 쫓아 곧장 정문으로 쳐들어갈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회로를 찾아보는 편이 나을 것인가.
저택의 입구로 이어진 길, 그 위에 옅게 흩뿌려진 펄리의 핏자국이 남아 있는 이상 더 쫓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나마 희소식은 달려오며 숨을 조금 돌린 덕인지, 자그마한 마법 한두 발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는 상태란 것.
‘역시 지금 상태론 강행 돌파는 절대 무리겠지.’
다키아가 우회해서 저택 안으로 잠입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던 그때, 저 안에서부터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며 정원을 가로질러 다키아를 향해 다가왔다.
희미한 빛무리는 곧, 샛노란 등을 든 하녀가 되어 다키아를 맞이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예의 바른 정중함. 다키아는 여인의 그 정중함이 굉장히 불쾌하게 다가왔다.
“당신들이 멋대로 납치해간 제 동료는 어떻게 했죠?”
“그건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당장 당신을 베는 것으로 당신의 주인에게 제 뜻을 전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퀭한 눈으로 다키아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짧게 답했다.
“상태가 위중한 동료분은 제 주인님께서 베푸신 자비 덕에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실 겁니다.”
다키아가 가타부타 답 없이 홀로 고민하자 여인이 말을 덧붙였다.
“주인님께선 최대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십니다.”
“대화?”
기가 찼다. 다키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짓누르고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먼저 절 납치하려 시도했으면서요?”
“그 건은 주인님께서 꼭 직접 사죄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태도가 바뀌었다는 건 무언가 저쪽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그 사이, 내 신분을 파악한 건가.’
딱히 자신의 성인 이르멜을 딱히 숨기고 다닌 적은 없었으니, 정체불명의 적이 자신의 신분을 알아냈다고 해서 당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작금의 상황을 이용했으면 이용했지.
다키아는 잠깐의 고민 끝에 일단은 이 여인을 따라가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면 돌파가 무리인 이상, 여차하면 자신과 대화를 나누려고 다가온 그 ‘주인님’이라는 작자를 인질로 삼아 펄리의 신변을 요구할 수도 있었고.
“안내하세요.”
“네.”
여인은 조용히 등을 돌려 저택 안으로 향했다. 다키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정원을 가로질렀다.
고풍스러운 양식의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어둑한 저택 안 곳곳에 붙여둔 촛불의 불빛이 다키아를 반겼다. 앞서가던 여인이 다키아를 이끌고 도착한 장소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주인님.”
벽난로의 온기를 쬐던 사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붉은 눈동자와 거뭇한 적발. 어딘가 모르게 병약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는 다키아를 발견하곤 싱긋 미소 지었다.
“이리 앉으시지요. 너는 이만 물러가도 좋다.”
“네.”
다키아는 말없이 사내가 가리킨 대로 다과가 준비된 탁자 너머 반대편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앞에 놓인 찻잔엔 방금 따라놓은 듯, 그윽한 차향과 함께 흐릿한 김이 피어올랐다.
사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킨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제가 공녀님께 저지른 무례를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다키아는 답 없이 그저 조용히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쓰게 웃고는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두었다.
“이거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페르틸료 웨스페라고 합니다. 자그마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죠.”
“제 동료는 어디에 있죠?”
페르틸료는 일방적인 질문에 부드럽게 대답했다.
“워낙에 위중한 상태이시길래 제가 부리는 이들에게 치료를 명해뒀습니다.”
“제 동료의 상태부터 확인해야겠어요. 무슨 대화든, 대화는 그 다음에 하도록 하죠.”
말을 마친 다키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페르틸료는 느긋하게 차를 홀짝이며 말로 그녀를 붙잡았다.
“응급처치가 끝나는 대로 제게 보고하러 오라 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저는 정말로 공녀님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다키아는 차갑게 웃었다.
“그런가요.”
“관계의 시작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야 차차 맞춰나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가끔은 그 사소한 뒤틀림이 모든 걸 엉클어 버리기도 하죠.”
“이거 제 사죄의 마음이 공녀님께 닿기엔 조금 진심이 부족했나 보군요.”
페르틸료는 자신의 잔에 따뜻한 차를 다시 채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진심이 담긴 사죄로 오늘 밤 공녀님께서 파괴한 부둣가를 복구하는 비용, 그 비용을 전부 제가 지불해드리겠습니다.”
“돈이라면 저도 충분히 있어요.”
“그렇다고 헛돈을 쓰는 걸 즐기시진 않으시겠죠.”
다키아는 눈앞에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손을 뗐다. 그녀는 황금빛 눈으로 눈앞의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게 뭘 원하시는 거죠?”
“지금 악신의 숭배자들에게 반파된 베아투스가 한창 복구를 진행 중이라 들었습니다.”
이르멜가의 영지의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다키아는 대충 저 사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제 호의를 빌어 베아투스 복구 사업에 한 발 걸치고 싶다는 거군요.”
복구 사업이란 단어에 페르틸료의 눈이 반짝였다.
“맞습니다. 다키아 공녀님께서 오라버니인 데르소 공께 제가 좋은 조건으로 복구 사업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십사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다면 제가 뭘 얻을 수 있죠?”
다키아의 호의적인 반응에 페르틸료가 빠르게 답했다.
“그 복구 사업을 지원하며 생기는 이윤의 일부를 다키아 공녀님께 드리겠습니다. 그 금액은 공녀님께서 보시기에 절대 섭섭하지 않으시리라 장담하죠.”
“좋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어요. 아까 제게 보여주시겠다던 사죄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다음 제 답을 드리겠어요.”
다키아는 찻잔을 톡톡 두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의 수완 정도는 확인해보고 싶으니까요.”
‘일단은 지금의 상황을 모면한다.’
어떻게든 오늘 밤만 보내고 나면 마르낙 사제님과 상의해서 일의 뒤처리를 할 수 있었으니 당장은 저 사내가 듣기 좋은 말들을 들려주는 것이 맞았다.
“좋습니다. 절대 공녀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고 약속드리죠.”
페르틸료는 다시 차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과자 하나를 집어 먹었다.
“이야기가 좋게 끝났으니, 이제 경계는 푸시고 동료분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차라도 한잔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래 달려오시느라 목도 타실 테니 말이죠.”
“네.”
마침 목이 타던 것도 사실이라, 다키아는 습관적으로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려 했다. 아직 따뜻한 차의 향긋한 향이 코끝을 간질이자 목이 더욱 탔다. 게다가 차의 향마저 무척이나 익숙했다.
선홍색 도톰한 입술이 찻잔에 닿기 직전, 다키아는 문득 일이 너무 쉽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쉬워도 너무 쉬웠다.
상대는 건달과 얽혀 있으면서 숙련된 무장 병사들까지 운용하는 자인데,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저렇게 쉽게 수긍한다?
머릿속에 꽃밭이라도 활짝 피어있지 않은 이상, 그럴 리 없었다.
서늘한 긴장감이 다키아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사내의 사교적인 태도와 분위기에 잠시 이성이 둔해져 있었다.
그제야 다키아는 한 쌍의 붉은 시선이 자신의 입술에 꽂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자신이 이 차를 마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다키아는 입에 대려던 차를 천천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차향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향이 너무 진해요.”
페르틸료의 붉은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귀한 차니, 한 모금 마셔보시면 향이 조금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그 깊은 맛에 반하게 되실 겁니다.”
“제가 차 취향은 확고한지라 죄송하게 됐네요.”
“흐음…”
그는 다키아의 찻잔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상하네요. 공녀님께서 즐겨 드시는 차로 제가 일부러 준비했는데 말이죠. 편히 마시실 수 있도록 말이죠.”
“최근에 차 취향이 바뀌었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대답과 함께 분위기가 일변했다. 페르틸료가 조용히 의자에 몸을 파묻자, 방금 전까지 한 없이 사근사근하던 사내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무겁게 가라앉은 흐릿한 붉은 눈엔 짜증만이 가득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군. 계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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