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32)
232 화 바베큐
바베큐.
고요한 복도, 벽 위에 설치된 램프의 불길만이 일렁이며 복도를 밝혔다. 로브를 눌러쓴 여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진득이 눌러앉은 고요를 깨뜨렸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 여인은 굳게 닫힌 새카만 문 앞에 잠시 멈춰섰다. 그녀는 품속에서 꺼낸 자그마한 손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잠깐 비춰보았다.
얼굴을 절반 넘게 집어삼킨 울퉁불퉁한 화상 자국과 붉게 빛나는 눈. 여인은 조용히 자신의 화상 자국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얼굴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러 인형을 조종할 수 있지만, 원형의 체형과 얼굴형을 크게 벗어나는 인형은 오래 조종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영혼과 육체가 괴리되는 이질감과 무언가 붕괴되는 듯한 상실감.
본능이 경고하는 위험을 굳이 거스를 이유는 없었다.
‘머리 색과 눈 색, 상처와 화장을 이리저리 조합하면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건 너무너무 쉬운 일이니까.’
“흥흥~”
작금의 배역을 연기할 준비를 마친 펄리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곤, 손거울을 품속에 집어넣고 눈앞의 문을 천천히 밀었다.
얕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싱그러운 냄새와 함께 방안의 광경이 그녀를 반겼다.
방안을 가득 채운 환한 초록빛. 거대한 줄기들의 고치에서 뻗어 나온 초록빛 줄기 다발들이 마치 넝쿨식물처럼 방안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툭.
펄리는 눈앞에 늘어진 줄기 다발을 옆으로 밀어젖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불만이 한가득 담긴 눈빛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주문하신 물자는 약속한 장소에 가져다 뒀어요.”
끼릭끼릭.
강철로 이루어진 톱니가 서로 맞물리며 나직한 금속음을 내뱉었다. 머리를 이루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톱니들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줄기로 이루어진 고치 앞에 앉아 있던 묵빛 금인족, 호를루는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기계적으로 살피며 답했다.
[대금은 평소처럼 받아 가면 된다.]탁한 기계음. 금인족은 펄리에게 단 한 푼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다. 펄리는 여느 때와 같은 호를루의 모습에 의자 하나를 가져와 그의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녀는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릇의 제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끼릭.
그릇이라는 단어에 호를루의 고개가 들렸다. 온통 톱니만이 가득한 호를루의 머리에는 딱히 눈이라고 할만한 장치가 없었지만 펄리는 직감적으로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혀있음을 알았다.
[그걸 왜 궁금해하지?]펄리는 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빙글빙글 꼬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거래 기간이 처음 얘기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길어지고 있어요. 손님분 신분이 신분이신지라 예정했던 것보다 거래 기간이 길어지면 저희로서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건 아시죠?”
원래라면 묻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펄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그릇’의 제작 기간이 조금 많이 늘어지고 있던 탓에 그녀는 조금 더 정보를 긁어모을 필요를 느꼈다.
호를루는 잠깐의 침묵 후 짧게 답했다.
[네가 알 필요 없는 문제다.]“그러지 마시고요.”
가벼운 콧소리가 섞였다. 펄리가 샐쭉 웃자 얼굴의 반을 뒤덮은 화상자국이 일그러졌다. 호를루는 톱니를 딸깍이며 잠깐 고민했다.
눈앞의 상인은 그들의 무리한 주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유능함을 입증하듯 기한에 맞춰 물자를 구해왔었다.
특히나 정말 구할 거라 생각하고 주문한 것도 아닌 ‘용의 피’마저 기한에 맞춰 납품한 것으로 보아 비단 이번 대계만이 아니라 다른 작전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만한 인재였다.
호를루는 마음속으로 몇 가지 요소를 저울질한 끝에 짧게 입을 열었다.
[그릇의 제작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것은 상정 외의 변수의 등장에 하바스님께서 원래 그릇의 재료로 쓰일 예정이던 물자들 중 일부를 취하셨기 때문이다.]한마디 대답이었지만, 펄리에게 충분한 답이 되었다.
그릇의 제작이 자꾸만 늘어진 이유는 바로 마르낙의 스승, 프리디야에게 참패한 맹신(盲信)의 하바스가 그릇의 재료까지 일부 사용하며 저 거대한 줄기 고치로 틀어박힌 탓이었다.
펄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서 호를루의 뒤에 있는 고치를 째려보았다.
줄기에 틀어박혀서 무언갈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릇의 재료까지 일부 빼돌려서 뭔갈 하는 줄은 짐작도 못 했었다.
‘늙더니 쓸데없는 옹고집만 늘어서는. 귀찮게 하네. 진짜.’
[그래도 모든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마 네게 추가적인 납품을 주문할 일은 없을 것 같군.]“그래요?”
호를루는 톱니를 끼릭대며 처음부터 그녀에게 꺼내려던 제안을 내밀었다.
[이번 거래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는 너와 계속 거래를 이어가고 싶다.]“저도 제때제때 돈 잘 주시는 고객님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죠.”
대충 필요한 정보는 다 건진 펄리는 건성으로 답하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 네게만 특별히 일러주지.]“뭘요?”
[적어도 ‘대회의’가 개최되기 전까지는 북제국 수도를 떠나라.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정리하고서.]펄리는 장난기를 한가득 담아 질문을 던졌다.
“그때까지 떠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나는 모른다.]끼릭.
쉼 없이 맞물리던 톱니가 느려졌다. 호를루는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후 이곳의 모든 것은 현세에 강림하신 ‘신’의 뜻을 좇아 흘러갈 테니.]***
지글지글.
불판 위에 놓인 두툼한 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가며 풍기는 육즙 가득한 향이 코를 즐겁게 했다.
여섯 선지자의 일원인 ‘절망(絕望)의 데스페라시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집게로 집은 다음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 다시 불판 위로 올렸다.
“흠흠흠~”
그는 한 손으로 그릇을 들고서 잘 익은 고기를 골라내 그릇 위에 예쁘게 올리곤 팔꿈치로 자신의 옆에 서서 고기를 한 점씩 날름날름 집어먹던 까만 토끼 여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릴리, 이거 다 익은 거니 탁자 위에다 올려두고 와줘요.”
“싫은데.”
릴리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와 내 일행을 째려보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쟤네 보고 와서 직접 가져가라 그래.”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 릴리라는 토끼 여인은 정말 고기를 가져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데스페라시오를 지키기 위해 그와 떨어지길 거부하고 있는 듯했다.
아까 다키아가 기습적으로 데스페라시오를 한 번 위협한 뒤론 우리 일행을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경계 대상쯤으로 여기는 거겠지.
’살햇!‘
빨리 고기나 내놓으라는 외침과 함께 샤샥 다가온 어머니가 데스페라시오의 손에서 그릇을 낚아채 갔다.
사실, 나는 데스페라시오와 어머니가 마주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었다. 선지자쯤 되는 인간이라면 혹시나 어머니를 보고서 무언가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하지만 다키아가 얼마나 아버지의 소식을 궁금해할지 알기에 선뜻 그를 쫓아낼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고, 그 결과가 바로 작금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데스페라시오를 마냥 대책 없이 맞이한 것도 아니었다. 이곳엔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우군인 프리디야 스승님이 계셨다.
나는 데스페라시오가 어머니를 보고 약간이라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스승님에게 제압을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예상외로 어머니와 데스페라시오의 만남은 무척 싱거웠다.
데스페라시오는 어머니를 보고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데스페라시오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쪼르르 내 뒤로 달려와선 양손의 중지를 내밀었을 뿐이었다.
그 평범하고 조용한 조우 속에서 정작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건 쟈멜이었다.
쟈멜은 가면을 쓴 데스페라시오를 보자마자 ’선지자가 쳐들어왔다!!!‘며 허둥대더니 발이 꼬여서 혼자 대차게 뒤로 넘어져 뒤통수를 부딪치는 바람에 그대로 기절해서 방에 눕혀둘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일행 중엔 펄리만이 어디 볼 일이라도 있는지 외출한 탓에 배에 없었다.
“연아.”
나직한 스승님의 부름. 나는 고기를 뒤집으며 대답했다.
“예.”
“아직 멀었니?”
“거의 다 구웠습니다. 스승님.”
데스페라시오는 예상과는 달리 이런 잡일에 무척 익숙한 듯 정말 예술적으로 고기를 잘 구웠다. 그런데 스승님께선 그 잘 구워진 고기들을 마다하고 내게 예전처럼 내가 직접 구워준 고기를 오랜만에 먹고 싶다고 하셨다.
혀가 맛이 간 탓에 간도 제대로 못 보는 내가 구운 고기는 딱히 맛있을 리 없을 텐데도.
내가 고기를 뒤집고 있자 내 옆에 서 있던 프리디야 스승님은 옛날 내가 스승님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검을 배우던 시절처럼 젓가락을 뻗어 덜 익은 게 분명한 고기 한 점을 낼름 집어 드셨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옛날과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덜 익었습니다. 스승님. 고기는 다 익고 나면 드시지요.”
그러자 스승님의 푸른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 휘어졌다.
“연이, 네 말이 꼭 맞구나. 이 고기는 확실히 덜 익었단다.”
“스승님은 꼭 한 점씩은 덜 익은 걸로 집어 드시는군요.”
“굽는 사람 몰래 한 점 슬쩍 먹는 맛이란 게 있단다.”
그릇 위에 잘 익은 고기를 올리며 답했다.
“웬만하면 다 익은 걸 슬쩍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그릇을 스승님께 건네며 조용히 눈짓으로 열심히 고기를 뒤집고 있는 데스페라시오를 가리켰다. 데스페라시오를 주시해달라는 무언의 부탁에 스승님은 내 머리를 두어 번 토닥여 주시곤 고개를 끄덕이셨다.
스승님이 고기를 담은 그릇을 들고 카디쇼가 밥을 먹고 있는 탁자로 돌아가자 여태 조용히 있던 다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데스페라시오를 향해 다가갔다.
다키아는 황금빛 눈으로 데스페라시오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언제쯤 제 아버지의 근황을 말할 생각이에요?”
“언제든 가능하죠!”
데스페라시오는 가면의 아랫부분을 살짝 들춰서 자신이 굽던 고기를 집어 입안에 밀어 넣고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그는 목으로 씹던 고기를 꿀떡 넘기곤 집게를 빙글 돌렸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릴까요?”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죠?”
“정확한 장소는 비밀이지만, 대충이라도 말씀드리자면 일단 미소공께선 남제국쪽에 계세요. 거긴 꽤 한적한 시골이거든요. 반쯤 요양차 가 계신 거나 다름없죠.”
“요양?”
다키아는 요양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버지는 건강하시다면서요. 그런데 요양이 왜 필요한 거죠?”
데스페라시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여상한 말투로 답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양을 하고 있는 건 미소공 쪽이 아니지만요. 미소공께선 요양하고 있는 분을 돌보는 쪽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죠.”
그의 대답에 다키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버지가? 누굴 돌봐? 대체 누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중얼거림. 데스페라시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소공께서 손수 누군가를 돌보신다면 그게 누군지는 뻔하지 않나요?”
다키아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다키아는 분명 지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미소공 칼토 이르멜이 데스페라시오의 제안대로 사도가 되어 그가 다스리던 베아투스의 시민들을 학살한 이유. 그 이유와 관련이 있는 상대겠지.
정말 데스페라시오가 미소공의 아내이자, 다키아의 어머니를 되살린 건가?
“…설마?”
데스페라시오는 다키아의 표정을 보곤 잽싸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뇨.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죽은 사람을 간단하게 부활시킵니까? 지금 미소공께서 돌보고 계신 분은 아내분을 부활시키기 위한 첫 단추에 가깝죠.”
“첫 단추…?”
“왜냐하면 요양하고 있는 그 여자분이 바로 죽은 아내분의 영혼이 깃든 여인이거든요. 그분을 찾아내느라 대륙을 뒤지면서 고생했던 걸 생각하니 아직도 눈물이 찔끔 나네요. 정말 힘들었어요.”
장난스럽게 키득댄 데스페라시오가 손가락 하나를 뻗어 다키아의 눈앞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웃었다.
“모든 영혼은 흘러요. 끝없이 흐르고 흐르면서 그렇게 업(業)을 쌓아가는 거죠. 저는 그 흐름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엔 영혼의 흐름과 업, 그 안엔 아주 은밀하고도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거든요. 예를 들자면…”
청남색 가면이 고개를 돌려 나를 직시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듯 특이한 음양과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저 드높은 천상에 계신 신들께서 꼭꼭 숨겨둔 자신들의 가장 지독한 치부라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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