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33)
233 화 계란후라이
계란후라이.
천상의 신들이 숨겨둔 치부.
그 위험한 단어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살해살해!’
데스페라시오의 말을 다 들으셨을 텐데도 어머니는 그저 이쪽 테이블 사람들이 데스페라시오의 말에 신경이 팔린 틈을 이용해 전투적으로 고기를 집어 먹고 계셨다.
‘…살햇?’
그러다 내가 빤히 바라보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입안 한가득 다람쥐처럼 넣어둔 고기를 꿀떡 삼키시곤 고개를 갸웃하셨다.
내가 눈짓으로 데스페라시오를 가리키자 그제야 어머니는 내 눈빛의 의미를 이해하시곤 짧게 답하셨다.
‘살해!’
뭔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한마디.
내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다시금 전투적으로 고기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치부란 게 뭔데요?”
다키아의 질문에 데스페라시오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가볍게 답했다.
“그걸 알아내려고 한창 연구 중이지요.”
“알아내서 뭘 하시려고요?”
“그냥…”
데스페라시오는 자신의 청남색 가면을 툭툭 두드리며 키득댔다.
“그냥 궁금하지 않습니까? 드높으신 분들의 비밀이란 언제나 저희 같은 필멸자에겐 흥미로운 화제지요. 공녀님도 제가 겨우 한마디 말을 던졌을 뿐인데 바로 궁금해하시지 않았나요?”
“그럼 신들의 비밀을 알아내서 뭘 하려고 하는 건 아니란 거예요?”
“그건 그 비밀이 뭔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지극히 정론인 대답. 다키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아버지는 한적한 시골에서 여자를 돌보고 계신다는 거죠?”
“요약하자면 그렇죠?”
“아버지가 누굴 돌보다니…”
황금빛 두 눈이 잠깐 감겼다. 그녀는 홀로 조용히 무언가를 상상해보는 듯했다. 잠깐의 여백 후 다키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누굴 돌보는 모습이라니, 전혀 상상이 안 가요.”
“그건 공녀님이 미소공의 한 단면만을 보고 계시기 때문이겠죠. 사람이란 본디 여러 모습을 품은 존재니까요.”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당신은 진짜 말투가 미묘하게 재수 없네요? 정말 없던 적도 만들어내는 말투예요.”
데스페라시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대꾸했다.
“제가 좀 곧 죽어도 할 말은 하는지라.”
옆에서 고기를 열심히 집어먹던 검은 토끼 여인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자기가 모시는 신한테도 일상적으로 개길 정돈데, 겨우 필멸자 공녀 따위한테 할 말 못할 리가 없지.”
릴리는 그렇게 툭 한마디를 던지곤 강력한 고기 경쟁자인 어머니와 견제하듯 전투적으로 고기를 먹어 치웠다. 다키아는 릴리를 힐긋 보곤 잠깐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부활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당연하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흥겹게 고개를 까딱였다.
“제가 누누이 말했지만, 저는 약속을 하면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죽은 이들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제가 흥미롭게 연구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기도 하고요!”
“…어떻게 사람을 다시 되살려내는 건데요.”
다키아는 애써 흥미 없는 척 말을 꺼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녀가 작금의 주제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자신을 낳느라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일단 제 이론은 이렇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혼은 삶을 거쳐 흘러가며 업(業)을 쌓아간다고 했었죠?”
그는 누군가에게 무얼 설명하는 것에 무척이나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이용해 원을 그리며 이해를 도왔다.
“흐름에 따라 영혼에 쌓인 업(業). 이 업 속엔 그 전 삶의 본질이 잠들어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당신 말은, 영혼 속에 잠들어 있는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서 환생한 사람에게 전생의 기억을 되찾아 주는 걸 ‘부활’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아뇨! 뭔갈 잘못 이해하셨네요! 제가 여태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렇게 세세한 기억까진 영혼에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런 세세한 기억들은 대개 여기에 담겨 있죠.”
데스페라시오는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제 이론에 따르면 육신의 죽음과 함께 대부분의 기억은 소실된다고 봐요. 영혼 깊숙이 새겨질 만큼 정말로 인상적인 기억들을 제외하고요.”
“그럼 대체 사람을 어떻게 살린다는 거예요?”
“당연히 어떻게든 전생의 기억을 되찾아줘야죠.”
다키아는 잠깐 곰곰이 생각에 잠겨 들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요? 기억만 되찾게 해준다고 해서 사람을 부활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억만으로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면 굳이 같은 영혼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잠시만요. 아, 남은 계란 몇 개 있어요?”
“여기.”
잠자코 고기를 먹던 릴리가 날계란을 건네자 데스페라시오는 계란의 윗부분을 살짝 깨더니 안에 든 내용물이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다키아에게 깨진 계란을 내밀었다.
“잠깐만 들어주세요.”
다키아가 계란을 건네받자 데스페라시오는 아까와 똑같이 새로운 달걀을 윗부분만 깨곤 내용물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었다.
“잘 보세요. 이 계란의 껍질이 바로 ‘기억’이에요. 그 안에 든 노른자와 흰자, 이것들이 ‘영혼’이죠.”
그는 마치 잔을 부딪치듯 다키아의 손에 들린 계란을 툭 치더니 작게 속삭였다.
“친구들아, 잠깐 자리를 바꿔보렴.”
단순한 한마디. 그 한마디가 끝나자 날계란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껍질 밖으로 기어나와 서로 자리를 맞바꿨다.
말로써 현상까지 지배하는 권능이라.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데스페라시오의 권능에 대한 경계를 더욱 높였다.
내가 경계를 높이든 말든 데스페라시오는 자신의 손에 들린 계란을 내밀며 다키아에게 물었다.
“잘 보세요. 이 계란은 이전과 ‘껍질’은 같지만, 그 내용물이 다르죠. 이걸 아까와 같은 계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키아는 자신의 손에 들린 계란을 힐끔 내려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실, 저는 타인의 기억을 주입하는 실험의 결과물을 본 적이 있어요. 그 결과물은 이전의 모든 기억을 백지상태로 만든 다음에 기억을 주입한 데다 외형도 똑같이 개조했음에도 기억의 주인을 알던 사람들과 대화를 시켜보니 백이면 백 다들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더군요.”
그는 내용물이 바뀐 계란을 슬쩍 흔들었다.
“겉보기론 이 계란처럼 이전과 한 치의 틀림 없이 똑같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요. 기준을 넉넉하게 보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칭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치이익.
계란이 기울고, 그 내용물이 잘 달궈진 팬 위로 떨어지자 계란 익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데스페라시오는 계란후라이에 소금을 뿌리며 키득댔다.
“기왕에 할 거면 감쪽같이 완벽해야죠. 안 그래요?”
가만히 듣고 있던 다키아는 가라앉은 눈으로 데스페라시오를 노려보았다.
“그 기억을 주입하는 실험. 당신이 직접 한 거죠? 누군가를 되살리려고.”
“땡!”
그는 노릇노릇하게 반숙으로 구워진 계란후라이를 릴리의 접시 위에 올려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우연히’ 구경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했다면 그것보단 훨씬 잘했겠죠. 그런 조잡한 방식으로 실험하진 않았을 거예요.”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데스페라시오는 죽은 자의 기억을 어떻게 가져오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육신이 썩어감과 동시에 육신에 남았던 기억 대부분은 소실되고 마는 것임에도.
내가 소실된 기억에 관한 질문을 하려던 그때.
“으으으… 내가 왜 침대에 자고 있었지? 나는 분명… 게다가 머리도 어디 찍은 것처럼 아파…”
갑판 위로 쟈멜이 눈을 비비며 걸어 올라왔다. 코끝을 벌렁거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고기…? 고기 냄새?!”
움츠러들어 있던 동공이 활짝 열리고 쟈멜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지금 저 빼놓고 고기 파티를 하고 있… 히이이이익!!!”
쟈멜은 분노를 채 다 터뜨리기도 전에 데스페라시오를 발견하곤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히 이번에는 안 넘어진 덕에 기절하지는 않았다.
“마르낙 사제님!!! 저기 저 악독한 사람이 지금 계란후라이를 굽고 있… 응?”
그녀는 새 계란후라이를 굽는 데스페라시오를 보곤 어딘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내 뒤로 잽싸게 숨은 다음 작게 속삭였다.
“마르낙 사제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고기를 보따리로 들고 와서 같이 먹자길래 같이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는 거예요?”
원래는 안 되는 게 맞긴 한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요. 당장은 그렇게 경계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저기 잔뜩 있는 고기들을 제가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아마 거의 다 식었을 테니 먹을 만큼 담아서 가지고 오시면 다시 데워드리겠습니다. 부족하면 더 구워드리고요.”
“이예!”
폴짝 뛴 쟈멜은 당장에 빈 접시 하나를 챙기더니 잽싸게 달려 나가서 먹고 싶은 고기들을 잔뜩 집어 담기 시작했다.
‘살해…’
그동안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던 어머니는 배가 빵빵해서 더는 못 먹겠다며 의자 하나를 끌고 와 내 옆에 기대앉았다.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아침을 직접 요리해줬다고요? 제 아버지가 요리를 할 줄 알아요? 정말로?”
“꽤 하시던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가 잠깐 쟈멜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어느새 대화 주제는 미소공의 전원생활로 넘어가 버린 듯했다.
딱. 딱. 딱.
무언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처음엔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아닌 줄 알았으나 규칙적으로 계속 들려오는 그 소리에 내가 항구 쪽을 확인하자 그 소리의 주인이 우리를 부르고자 낸 것임을 깨달았다.
어두운 갈색 로브 모자 위에 마치 귀처럼 꽂혀 있는 깃털 두 가닥. 양어깨 위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부엉이와 손에 쥔 기다란 지팡이.
부엉이 로브 주술사 여인은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탁 찍은 뒤,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노려보았다.
“고기 도둑. 발견.”
“아.”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고기를 사러 내려가자마자 소란이 일어난 뒤에 고기들이 털렸는데 우리 일행이 이렇게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으니.
“너 때문에 내 이번 수당이 대폭 삭감됨. 용서 못 함.”
“이건 그러니까…”
“무슨 일이에요?”
내가 당황한 것을 눈치챈 건지, 다키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데스페라시오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곧, 주술사 여인을 보더니 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제가 해결하죠.”
그는 배에서 내려 부엉이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부엉이 여인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가 진범?”
“저 말고도 한 명 더 있지요.”
데스페라시오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부엉이 여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속삭였다. 그는 특유의 어딘가 튀는 듯한 어조로 노래하듯 말을 내뱉었다.
“여긴 아무 일도 없었으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서 푹 주무시는 게 어때요? 정말 여긴 아무 일도 없었으니 말이에…”
빡!
호쾌한 소리와 함께 옆통수에 꽂힌 타격.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데스페라시오가 쓰러졌다.
나는 솔직히 굉장히 당황했다. 그래도 명색이 리베라티오의 선지자인데 저렇게나 쉽게 당한다고?
“남의 몸을 멋대로 만지는 변태는 징벌이 필요.”
부엉이 여인은 데스페라시오가 만진 어깨를 툭툭 털어내곤 지팡이 끝을 쭉 뻗어 날 가리키며 선언했다.
“이 좀도둑의 공범. 인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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