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34)
234 화 거부하기 힘든 유혹.
거부하기 힘든 유혹.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은 가져온 고기를 얻어먹기는 했으니 데스페라시오를 구해보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하나?
깎인 수당만이 문제라면 일단 이야기를 해볼 여지는 있을 테니 돈으로 해결을 본 다음 데스페라시오한테 쓴 돈을 청구하면 될 듯했다.
“저기…”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부드러운 손길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시선을 돌리니 프리디야 스승님이 빙긋 미소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으셨다.
“연아,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 듯해 보인단다.”
질겅질겅.
새카만 토끼 귀가 쫑긋거렸다. 릴리는 마지막으로 고기를 한 점 더 입안에 털어 넣고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물수리 호 밑에 오연히 서 있는 부엉이 여인을 노려보았다.
“그거.”
릴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데스페라시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가만히 놔두고 지금 당장 꺼지면 특별히 봐줄게. 그러니까 몸 성히 돌아가고 싶으면 조용히 꺼져.”
쿡.
부엉이 여인은 조용히 손에 든 지팡이로 쓰러진 데스페라시오를 쿡쿡 찔렀다. 지팡이의 끝자락이 데스페라시오의 몸을 툭툭 건드릴 때마다 릴리의 이마 위로 깊은 주름이 하나씩 파여갔다.
그렇게 몇 번 더 데스페라시오를 쿡쿡 찔러댄 다음에야 부엉이 여인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녀는 짧고 나직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덤벼.”
쾅!
문답무용. 부엉이 여인의 말이 끝맺기 무섭게 릴리는 배를 박차고 뛰어올라 그대로 발뒤꿈치로 부엉이 여인을 내려찍었다. 부엉이 여인이 침착하게 뒤로 물러났다. 타격점을 잃어버린 금속 신발이 바닥에 내려찍히자 돌바닥이 무참히 부서지며 흙먼지와 돌가루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애초에 맞추려고 한 공격이 아니었다는 듯, 릴리는 자연스럽게 동작을 이어 쓰러진 데스페라시오를 발로 굴렸다. 데스페라시오는 기절한 채 데굴데굴 굴러 전투의 현장에서 조금 멀어진 곳에 처박혔다.
저건 상냥함과 무심함, 그 사이 어딘가쯤에서 방황하고 있는 그런 배려였다.
곧게 선 릴리가 목을 한 바퀴 돌리자 우드득 거리는 경쾌한 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식후 운동 거리로 딱 적당한 푸닥거리겠네.”
“짓누르는 달.”
가벼운 읊조림. 저번에 내가 몸으로 맞아본 주문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저건 아마 무형의 압력이 몸을 짓누르는 주문이었지.
“잔재주 부리기는!”
쾅!
자리를 박찬 릴리가 다시 한번 검은 잔상이 되어 부엉이 여인을 향해 쇄도했다. 부엉이 여인은 여유로운 동작으로 지팡이 끝을 가볍게 휘저었다.
“떨어지는 별.”
허공에서 시작된 새하얀 빛 한 줄기가 릴리를 향해 쏘아졌다.
“쯧.”
짧게 혀를 찬 릴리는 바닥을 한 번 걷어차 나아가던 궤도를 꺾었다. 처음 보는 공격을 맞받아치기보다는 피한다는 선택. 빛줄기가 바닥에 닿자 빛은 그저 조용히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릴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마 조용히 사라져 버린 탓에 저 빛의 위력이 가늠되질 않기에 그런 듯했다.
“떨어지는 별.”
또다시 피어나는 새하얀 빛무리. 릴리는 거리를 좁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두 줄기의 빛을 피해냈다. 부엉이 주술사는 느긋한 어조로 한 번 더 주문을 읊조렸다.
“떨어지는 별.”
이전보다 더욱 환히 빛나는 빛의 점멸. 넉넉히 잡아도 세 걸음이 채 안 되는 간격. 부엉이 여인은 나른한 손놀림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의 끝이 가리키는 방향의 너머에는 쓰러져있는 데스페라시오가 있었다.
으득.
피할 테면 피해 보라는 그 약 올림에 릴리는 이를 갈았다. 빛이 쏘아지자 릴리는 기껏 줄인 간격을 포기했다. 그녀는 뒤로 몸을 한 번 튕겨 빛을 가로막고는 발차기를 내질렀다.
쾅!
빛과 금속 각반이 맞부딪히자, 둔중한 둔기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궤도가 꺾인 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내 사라졌다. 검은 토끼 여인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나오겠다?”
지팡이를 빙글 돌린 부엉이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좀도둑, 혹시 염치가 실종? 누가 보아도 도둑질이 더 비겁함.”
“좋아.”
릴리가 발뒤꿈치로 가볍게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자 은빛으로 빛나던 금속 신발이 그녀의 토끼귀 색처럼 새카맣게 물들어갔다.
“별의 울음. 달의 달램. 새벽빛의 비웃음.”
듣기 좋은 목소리가 조곤조곤 주문을 내뱉었다. 그 광경을 조용히 보고 있던 나는 스승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스승님은 그저 재밌는 재롱을 구경한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셨다.
“협력을 제안한 이들의 실력 정도는 조금 미리 봐두는 편이 낫지 않겠니?”
“흠…”
잠깐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 굳이 검은 토끼 여인의 실력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나? 내가 가늠한 토끼 여인의 수준은 내가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만약 저 여인이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힘을 숨기고 있다면 저 투닥거림은 절대 가벼운 소란으로 끝나지 않겠지.
안 그래도 다키아가 거하게 부두 일부분을 날려버린 탓에 최근 해안을 경비하는 인원들한테 찍히기도 했는데 또 한 번 부두를 거하게 부숴 먹으면 우리 배를 항구에서 빼달라고 요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역시 말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연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는 편이 낫겠지.”
프리디야 스승님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기나 마저 먹고 있으렴. 이 상냥한 스승님이 저 둘을 말리고 올 테니.”
“네?”
내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스승님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니, 스승님이 이미 배 밑으로 내려가 부엉이 여인의 목젖을 손날로 툭 하고 치는 모습이 보였다.
“켁?!”
읊조리던 주문이 끊겼다. 부엉이 여인이 캘록이는 사이, 스승님은 어느새 릴리의 앞으로 이동해 그녀의 정강이를 가볍게 툭 걷어찼다.
릴리는 한가락 한다는 걸 증명하듯 순간 몸을 뒤로 빼며 스승님의 발차기를 피해내려 했다. 스승님은 그 시도를 비웃듯이 빠르게 손을 뻗어 그대로 기다란 토끼 귀를 한 손으로 틀어쥐었다.
“엇?!”
당황한 릴리의 동공이 벌어졌다. 프리디야 스승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속닥였다.
“손님이 주인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지 않겠니?”
“이건 전ㅂ…”
빡!
“악!”
정강이를 걷어차인 릴리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프리디야 스승님은 쓰러진 릴리를 내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도망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니?”
그 한마디에 당장 내빼려던 부엉이 여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살짝 습기 어린 목소리로 낮게 답했다.
“나는 정당했음. 도둑질은 나쁜 것임…”
스승님의 푸른 눈이 부드럽게 휘어져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알겠으니, 잠시만 있어 보렴.”
***
짤랑.
묵직한 주머니를 받아든 부엉이 여인은 힐긋 스승님의 눈치를 보곤 주머니를 챙겨 넣었다. 돈주머니를 건넨 릴리는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스승님을 째려보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애초에 고깃값은 치를 생각이었어. 일을 크게 키울 생각도 없었고.”
아까 한 방 맞은 거로는 부족했는지 아직 릴리는 여전히 당당하고 뻣뻣한 태도로 스승님을 대했다.
저러다 잘못 걸리면 진짜 뼈도 못 추릴 텐데.
스승님을 잘 아는 나도 항상 스승님한테 말을 꺼내기 전에는 두 번 세 번 생각할 때가 많은데 말이지.
“뒤늦은 변명. 무의미. 매우 추해 보임.”
“조용히 해! 너 진짜 운 좋은 줄 알아! 그대로 계속 갔으면 넌 나한테 아주 묵사발이 났을 테니까!”
“계속했다면 묵사발이 나는 건 내가 아님.”
“하? 다시 붙어볼래? 응? 누가 묵사발이 나는지 끝을 봐?”
부엉이 여인은 스승님의 눈치를 힐긋 보곤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처럼 바보가 아님. 또 맞기 싫음.”
“하.”
짧게 탄식을 뱉어낸 릴리는 그 탄식을 끝으로 가타부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둘의 대화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고깃값을 치를 생각이었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의 뜻이야.”
릴리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데스페라시오를 툭툭 건드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 우리가 고기를 훔치려고 했으면 겨우 ‘저런 애’따위한테 추적당할 것 같아? 애초에 고기를 훔친 건 전부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어.”
“어디의 이목 말입니까?”
“우리가 사고 친 곳 뒤에 누가 있는지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반황제파. 불법 도축장 뒤에 있는 반황제파의 이목을 끌려고 일부러 고기를 훔쳤다는 건가?
“이목을 끌어서 뭘 어쩌려고 한 겁니까?”
“그거야 간단한 이야기지. 쓸 수 있는 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나처럼 악신의 강림을 방해하는데 쓸 협력자로 보았단 건가. 확실히 현재 이곳에서 신의 그릇을 만들고 있는 리베라티오의 뒤를 황제가 봐주고 있으니만큼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반황제파의 협조를 구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굳이 다른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는 나라면 굳이 하지 않을 방법이기도 했지만.
“저런 애 혼자 오는 게 아니라, 좀 더 본격적으로 그쪽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인간이 우리를 찾아오면 협상을 해보려고 한 건데…”
릴리는 프리디야 스승님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조금 꼬이긴 했지.”
“왜 그 계획을 제게 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뭐라는 거야.”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 새카만 토끼 귀가 쫑긋댔다. 그녀는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우리랑 협력하는 걸 거절했잖아. 그러니 당연히 이런 사소한 계획까지 우리가 미주알고주알 네게 보고해야 할 의리는 없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일리가 있군요.”
데스페라시오가 묻는 말에 뭐든 다 대답해주길래 깜박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데스페라시오의 제안을 거절했었지.
진짜 한 십 년은 알고 지낸 친구처럼 너무 친근하게 굴어온 탓에 잠깐 착각해버렸다.
이거 부엉이 여인이 중간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의 세 치 혀에 넘어가 구렁이 담 넘듯 흐릿한 관계 속에서 데스페라시오와 공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점을 비교해보자면 저 릴리라는 여인은 데스페라시오와 달리 맺고 끊는 것이 딱딱 떨어져 상대하기가 쉬웠다.
“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
릴리는 바닥에 쓰러진 데스페라시오를 번쩍 들어 가볍게 어깨 위에 들쳐메곤 부엉이 여인에게 눈짓했다.
“뭐해. 가자.”
부엉이 여인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무슨 의미?”
“안내해. 네 상관이 있는 곳으로. 너 고기 훔쳐 간 범인 잡으러 왔다며. 너도 범인 잡아서 신용을 회복해야지 않겠어?”
“긍정.”
고개를 끄덕인 부엉이 여인이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릴리는 부엉이 여인을 쫓아 발걸음을 옮기려다 우뚝 멈춰 섰다.
“아, 맞다. 깜박할 뻔했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날 향해 손짓했다.
“데스페라시오가 이런 비슷한 상황이 생기거든 너한테도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라고 했어.”
“제가 말입니까?”
“대신 같이 갈 거면 넌 일행 없이 너 혼자서만 따라와야 한다고 했어.”
“그게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릴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궁금하거든 따라와서 데스페라시오가 깨어나거든 물어봐. 물론, 싫음 말고. 나도 널 굳이 데리고 가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간다. 안녕.”
미련 없이 돌아서는 그 뒷모습에 나는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어쩌지?
마냥 보내기엔 호기심이 동했다. 어차피 배에 남아있는다고 해도 딱히 할 일도 없었고. 거기다 입이 싼 데스페라시오에게서 캐낼 정보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얼굴에 이미 미련이 한가득이구나. 그냥 편히 다녀오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 테니.”
프리디야 스승님은 내 손을 붙잡더니 자신이 선물한 반지를 톡톡 두드리셨다. 스승님께서 낀 반지와 공명해서 언제든지 내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반지를.
“많이 늦으면 찾으러 가마. 늦지 않게 돌아오렴.”
“예, 스승님.”
결심을 굳힌 나는 릴리의 뒤를 쫓았다.
“데스페라시오 말 대로 하니까 진짜 따라왔네?”
“데스페라시오가 뭐라고 했었습니까?”
“대충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면서 미련 없이 물러나면 남자들은 다 궁금해서 쫓아온다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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