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38)
238 화 질문
질문.
달달달.
소처럼 수레를 끌며 고요한 밤길을 나아간다. 펄리는 딱히 나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현재 자기가 설정한 ‘미녀 암상인’의 역할에 몰입한 건지는 몰라도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조용해서 그 모습이 살짝 어색했다.
적막 끝에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언제까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소처럼 수레만 끌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부름에 펄리는 새초롬한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차갑게 대꾸했다.
“쓸데없는 궁금증을 넣어두기엔 차고 넘치는 돈을 줬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냉담한 거절에 내가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조용해지자 잠시 후 펄리가 입을 열었다.
“…리베라티오에 물건을 건네러 가는 거잖아요.”
“예?”
리베라티오에?
펄리는 나를 힐긋 나를 보곤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왜요? 극악무도한 리베라티오에 물건을 대러 간다는 사실을 아니까 전부 무르고 싶어졌나요?”
“아니. 그보다 계속 리베라티오에 물건을 대주고 있었습니까?”
“제때 물건을 넘기기만 하면 리베라티오는 생각보다 돈을 잘 쳐주는걸요. 막상 거래해보면 꽤 괜찮은 거래처예요. 저들과 거래하다 들키면 국가나 다른 교단에게 들키면 아주 크게 잘못될 위험이 큰 만큼 리베라티오는 저같이 발품 팔아서 꼬박꼬박 제때 물건을 대주는 상인을 꽤 귀하게 대해주는 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거기다 약간 바가지를 씌워도 군말 없이 사주는 편이라서 더 좋고요.”
펄리의 연기는 출중했다. 지금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정말 펄리 말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으니.
“…펄리 맞습니까?”
그녀는 두 눈을 끔벅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제 이름은 니토인데요…?”
“그런 설정이군요. 그럼 제 이름은 뭡니까?”
“카리타죠. 그런데 본인 이름을 어째서 제게 묻는지 저는 당최 모르겠네요.”
“아니, 제 이름도 가명이 있었으면 진작에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날카로운 일침에 니토, 아니 펄리는 여태까지와 달리 평소처럼 배시시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이름은 사소해요.”
“슬슬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불안해지는군요.”
“남자가 사소한데 집착하면 매력 없대요.”
펄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더니 짐짓 엄한 목소리로 내게 꾸중했다.
“슬슬 거의 다 왔으니 역할에 집중해줘요. 돈주머니 돌려주기 싫거든!”
“흠흠.”
나는 작게 헛기침하고 다시 조용히 수레를 끌었다.
***
기묘했다. 마치 순찰을 돌아다니는 경비병들의 동선을 모조리 파악하고 동선을 짜기라도 한 듯 나와 펄리는 제법 큰 수레를 끌면서 도로를 다녔음에도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를 마주치지 않았다.
마침내 고요보다 적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어두운 거리를 나아간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범한 민가처럼 보이는 집 앞에 서서 펄리는 눈짓으로 내게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곤 눈앞의 문을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구야?”
“저예요. 니토.”
펄리의 대답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 뒤에서 나타난 건 칙칙한 옷을 입은 두 사내였다. 그들은 펄리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니토가 맞네.”
보통 이런 건 비밀 암구호 같은 거라도 주고받는 거 아니었나? 그냥 문을 대뜸 열고 안면인식으로 서로를 확인하다니.
뭔가 비밀스럽고 은밀한 접선을 기대했던 난 그냥 김이 팍 새어버렸다.
두 사내는 이내 내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펄리에게 물었다.
“맨날 혼자 수레를 끌고 오더니, 뒤에 저 남자는 누구야?”
“호위요.”
“호위? 오늘 호위가 같이 온다는 이야기는 따로 못 들었는데.”
펄리는 당황 하나 하지 않고 태연히 답했다.
“호를루님이 슬슬 몸 뺄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일부러 고용했어요. 저 남자의 신분은 제가 보증할 테니 들여보내 주세요.”
“흐음.”
두 사내 중 왼쪽에 섰던 사내가 탐탁지 않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니토 네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나는 위에서 전혀 들은 게 없단 말이지. 막말로 저 정체 모를 놈이 사고를 치면 전부 우리 쪽 책임인데, 네 보증 하나만 믿고 냅다 들여보내 주기엔 우리의 위험부담이 너무 커.”
펄리는 이런 식의 트집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한숨을 폭 내쉬더니 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사내는 펄리의 행동을 제지했다.
“아니, 오늘은 돈으로도 안 돼.”
“…그게 무슨 뜻이죠?”
왼쪽에 선 사내는 히죽 웃더니 나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은 여기 위치를 알게 된 외부인 놈을 살려 둘 수 없다는 거야.”
펄리는 이를 악물더니 낮게 으르렁댔다.
“오늘따라 장난이 심하시네요. 게른.”
왼쪽 사내가 게른인가. 나는 펄리가 어련히 알아서 저 역할놀이를 잘하겠지 싶어서 그냥 가만히 서서 상황이 흘러가는 꼴을 구경했다.
“장난? 지금 이게 장난처럼 보여?”
펄리는 무언가 눈치채기라도 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저번에 당신의 권유를 제가 거절한 것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거예요?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당신 같은 남자는 제 취향이 아니에요.”
“뭐?!”
게른이 당황하든 말든 펄리는 무척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이 이상 월권행위를 하시면 호를루님에게 보고하겠어요.”
“보자 보자 하니까 이 년이 정말!!!”
날카로운 일침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인 게른은 결국 제 화를 참지 못했다.
“꺄악!”
게른은 펄리를 밀쳐 넘어뜨리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그는 거칠게 외쳤다.
“오늘 난 네년한테 방금의 무례에 대한 사죄를 꼭 몸으로 받아내야겠다!!”
난 관객의 위치에서 한 편의 연극을 구경하듯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와중 펄리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밀쳐진 탓에 당황한 표정이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나를 째려보곤 다시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넘어졌던 펄리는 겨우 상반신만 일으키고는 대꾸했다.
“지금 감당도 못 할 일을 저지르려고 하시는 건가요? 이 일을 호를루님이 아시면 당신은 진짜 죽은 목숨이에요! 게른!”
“네년 이야기가 호를루님한테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다. 어차피 너와의 거래는 원래 이번 건으로 끝이었으니까!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면 끝이라고!”
그의 외침과 동시에 바닥의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펄리의 사지를 붙잡았다. 권능의 발현이었다.
“이거 놔요!”
그림자를 다루는 거로 보아 지젤과 같은 신을 모시는 건가.
“길거리에서 발가벗겨지고도 그 콧대를 유지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게른은 치켜든 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까앙!
펄리에게 받은 검과 그의 검이 맞부딪히며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른은 내 존재를 아예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기습적으로 검이 튕겨나자 두 눈이 커졌다.
내 힘을 버텨내지 못한 게른의 검이 허공을 날았다.
“이 무…”
그가 놀라든 말든 나는 지체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잘 갈린 검날이 그의 양 손목을 잘라냈다. 주인을 잃은 두 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베여 두 다리를 잃은 몸뚱이가 중심을 잃고 허공에서 추락했다.
당황한 게른의 입이 벌어지자, 나는 그대로 검을 내뻗어 그의 열린 입을 꿰뚫고 그대로 벽에 꼬챙이처럼 처박았다.
사지가 잘린 사내는 그렇게 벽에 꿰여 대롱거렸다.
게른은 단말마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즉사했다.
나는 게른의 옆에 서 있던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덤빌 텐가?”
여태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던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작게 하품했다.
“하암. 나는 애초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어. 게른 저놈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지. 너도 전부 다 지켜봤잖아.”
그 나른한 태도에 나는 등을 돌려 아직도 쓰러져 일어나지 않은 펄리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펄리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난 펄리는 겉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더니 내게 손짓했다.
“귀 좀 줘봐요.”
내가 귀를 가까이하자 펄리가 아주 자그맣게 속삭였다.
“다른 한 놈도 죽여요. 저놈도 똑같은 개새끼니까.”
그녀는 한 걸음 물러나더니 나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저 무뢰배가 절 밀치기 전에 막아줬어야죠. 제가 당신을 얼마에 고용한 건지 벌써 잊으신 거예요?”
말로 주의를 끈다. 펄리는 말을 하면서도 빠르게 눈짓으로 사내를 가리켰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진지라…”
“그런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세요. 돈을 받았으면 일을…”
충분히 거리를 좁혔다. 나는 벽에 박아넣었던 검을 뽑아 그대로 일직선으로 베어냈다. 나와 펄리의 말싸움을 흥미롭게 구경하던 사내의 목이 날았다.
툭.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 벽에 처박혔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곤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이러려고 저 데리고 온 겁니까?”
펄리는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을 흘겨보곤 짧게 답했다.
“보셨다시피 희롱당한 건 저예요.”
“그나저나 입구에 경비를 서던 사람을 다 죽였는데 이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이미 예전에 상부에 허락받은 일이에요. 호를루가 그 둘이 선을 넘거든 죽여도 좋다고 제게 허락한 지 오래예요. 당신은 그냥 수레에 실은 짐이나 들고 따라오기나 해요.”
수레에 실었던 두 자루를 양어깨에 하나씩 들쳐메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꽤 묵직한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런데 시체 정리는 안 하고 가도 됩니까?”
“이 집, 그냥 평범한 집 같아 보여도 꽤 여러 권능으로 보호해둔 장소예요. 저대로 방치하고 가도 아마 날이 밝을 때까지 누가 알아챌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등을 보인 채 앞서가던 펄리가 무척이나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듣기 어려울 만큼 자그마한 목소리로.
“…구해줘서 고마워요.”
“예?”
내가 되묻자 하얗던 펄리의 두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펄리가 수줍어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다.
저거 진짜 펄리 맞나?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뭐라고 했긴! 구해줘서 고맙다고 했지! 어때? 보호욕을 자극하는 모습! 혹시 사랑에 빠졌어? 히히히!”
언제 부끄러워했냐는 듯, 그녀는 차분했던 미녀 암상인의 모습을 벗어던졌다.
“갑자기 연기는 왜 그만둔 겁니까?”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귀를 조물조물 주무르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이제 들어가기 전에 대충 뭘 할지 설명을 해주려고!”
그녀는 문밖에 죽어나자빠진 두 놈을 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올 때마다 귀찮게 치근덕대더니 꼴좋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미녀를 구한다! 어때? 뿌듯했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거 같아서 기뻤어?”
“괜히 따라왔다가 사람 죽인 거 같아서 찝찝합니다.”
“쟤네 죽어도 괜찮은 놈들이야! 둘이 아주 쌍으로 아주 질 나쁜 애들이거든!”
별로 좋은 부류 같진 않아 보이긴 했지.
”나는 아주 재밌었어! 이런 식으로 장단 맞춰줄 사람이 없었거든! 위기에 빠진 미녀 역할도 꽤 재밌었어! 게른 쟤 눈빛이 아주 그냥 이글거려서 눈빛으로 날 범하려는 줄 알았다니까? 히히히! 잘 짜인 연극은 이래서 좋아! 대개 희망이 넘치는 편이거든!”
한참을 웃던 펄리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실에선 절체절명인 순간에 다들 혼자니까 말이야.”
“무슨 뜻입니까?”
“아무 뜻 없어! 없어!”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곤 내게 불쑥 다가와서 두 눈을 반짝였다.
”잘 들어!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예.”
“우리는 일단 들어가서 가져온 물건을 건네주고 나가는 척한 다음 여길 다시 몰래 침입할 거야! 왜냐! 여기는 ‘신의 그릇’이 제 힘을 발휘할 때 공명하기 위해 설치된 여러 장소 중 하나거든!”
그녀는 손가락 두 개로 살금살금 걷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몰래 침입해서 이 공명지점에 약간 장난을 쳐둘 거야!”
“무슨 장난을요?”
“우리 약속 잊었어? 너는 성물! 나는 그릇!”
펄리는 자신의 가슴을 엄지로 꾹 찍으며 활짝 웃었다.
“내 장난이 성공적으로 먹힌다면 리베라티오가 신의 그릇을 발동시키는 순간, 모든 공명 지점들은 신의 그릇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울기 시작할 거야!”
그녀는 입을 벌리더니 ‘앙’하고 허공을 깨물었다.
“그 상태에서 내가 신의 그릇을 차지하면 나는 드디어 완벽한 ‘몸’을 얻은 채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그 설명에 데스페라시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들었던 의문을 꺼낼 때가 바로 지금임을 깨달았다.
“다 좋은데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응! 물어봐! 물어봐!”
“그 공명이란 거 있잖습니까.”
“응! 응!”
나는 나직이 내 질문을 던졌다.
“듣기론 공명이 무고한 이 도시 사람들을 집어삼키면서 일어날 거라는데, 펄리가 계속 말하던 그 그릇을 차지하는 ‘때’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기 전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느새 원래 색으로 돌아온 어두운 보랏빛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나는 기어코 마지막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모두가 희생된 다음을 말하는 겁니까?”
내 질문에 펄리는 한참을 조용히 웃었다. 보랏빛 두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내 대답에 따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죽일 생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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