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0)
240 화 수라.
수라.
– 푸하하하하핫!!!
암녹빛 갑옷이 바닥을 뒹굴대며 그 어느 때보다 큰 웃음을 터뜨렸다. 임페트로는 한참을 더 뒹굴대며 박장대소하더니 겨우 웃음을 그치고는 드러누운 채로 나를 놀렸다.
– 그러니까 덮쳐지기 일보 직전이라 애타게 나를 찾았다? 크흣, 크흐흐흐흐하하하핫!!!
“웃지 마십시오. 저 지금 진짜 심각하니까.”
– 심각할 게 뭐 있나? 저렇게나 네 마음에 들고 싶다는데 그냥 두 눈 딱 감고 한 번 안아주면 되는 거지. 하하하하하핫!!!
제 일이 아니라고 아주 신이 난 그 모습에 나는 속에서 열불이 타올랐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시죠. 마비된 몸을 즉석에서 풀어내는 기술 같은 건 없습니까?”
– 네가 지금 뭐에 당한 줄은 알고?
“모릅니다.”
그는 느긋하게 팔베개를 하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너도 네가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풀어. 나라고 뭐든 가능한 건 아니라고. 거기다 이런 사소한 일에 끼어들기엔 내 체면이 안 서지.
“하나도 안 사소합니다!!! 이건 제 정절이 걸린 문제라고요!”
– 그렇게 중요하면 여기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던가. 뭐, 어차피 뾰족한 답은 안 나오겠지만. 큭큭.
임페트로는 딱히 날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난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홀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미 발동이 걸린 펄리를 막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특히 그녀의 마지막 움직임을 생각해봤을 때 그녀는 내가 상정하던 것보다 더 많은 힘을 감추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지난 경험상으로 보아 임페트로가 거주하는 공간에 한 번 들어온 이상 한 번 나가면 적어도 한두 시간 안으로는 아무리 그를 불러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즉, 이렇게 시간을 버는 것도 한 번뿐. 일단 나가면 뭐가 됐든 일이 다 진행된 뒤에야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언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언덕 위에 드러누운 임페트로가 발끝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암녹빛 안광을 일렁이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 야.
“말 걸지 마십시오.”
– 삐졌냐?
“대답하면 약 올릴 생각이지 않습니까?”
– 딱 맞아! 크흐흐흐. 몸만 믿고 맨날 방심하고 다니더니 내 언젠가 이럴 줄 알았지. 내가 맨날 말했지? 넌 너무 태평해서 문제라고. 네 몸이 만능에 가깝긴 해도 진짜 만능은 아니니까 조심하라고 내가 누누이 말했을 텐데.
살살 긁어대는 그 말이 완전히 정확하게 내 마음을 찔러 들어와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뭐, 제가 대체 어디까지 조심을 해야 하는 겁니까? 게다가 저도 마냥 방심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고요! 제가 잘못한 점을 펄리가 정확하게 지적하는 바람에 잠깐 마음이 풀려 사과하려다 당한 겁니다! 아시겠어요?”
임페트로는 콧구멍도 없는 투구에다가 코 파는 시늉을 하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 나라면 진작에 저런 숨기는 게 많은 여자는 말 한마디 뻥긋하기 전에 그냥 죽여버렸어. 꼭 저런 애들은 나중 가서 뒤통수를 치더라고.
“그런 식으로 구니까 맨날 혼자였던 겁니다.”
– 너는 네 방식대로 이것저것 다 주워대면서 사는 바람에 당장 범해질 위기고?
“…”
문득, 그의 지적에 내가 그간 너무 무르게 살아왔던 건가 싶은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 왜 할 말 없냐?
“하아.”
나는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푹신한 풀밭이 내 몸을 받아주고 싱그러운 꽃향기가 내 코를 간질였다. 그 한없이 아늑한 장소에 누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내가 여태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조금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생각을 끝마친 내가 다시 눈을 뜨자 임페트로는 풀밭에 앉아 멍하니 언덕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정리는 좀 됐냐?
그는 내가 깨어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뜸 말을 건네왔다.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 동료란 거추장스러운 물건이야. 특히나 힘의 수준이 맞지 않는 동료들은 말이지. 너도 잘 알 텐데.
“그래서 뭘 어쩌란 겁니까.”
나를 바라보는 암녹빛 투구의 틈 사이로 안광이 일렁였다.
– 네 무른 면을 베어내라. 마르낙. 당장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일은 감수하고 펄리, 그 여자는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죽여버려. 그런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은 곁에 두는 거 아니다. 그다음 네가 소꿉놀이하듯 모은 동료들에게 당장에 꺼져버리라고 소리쳐라. 특히…
잠깐 말을 멈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 네 스승, 프리디야를 가장 먼저 단호하고 비정하게 쳐내라. 네 실력으로는 무리겠지만, 만약 기습으로 죽일 기회가 생긴다면 죽이는 편이 더 낫다.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신혈(神血)이 짙은 그 여자는 슬슬 너무 위험해.
항상 여유가 넘치던 그가 이토록 진지하게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은 프리디야 스승님이 처음이었다.
“프리디야 스승님은 제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으실 겁니다. 대체 왜 그렇게 프리디야 스승님이 위험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 네가 너무 무지하기 때문에 나는 말할 수 없어.
임페트로는 자신이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그에게 다시 이유를 묻는 헛수고를 하지 않았고.
“뭐, 그렇게 다 잘라내고 어머니랑 단둘이 다니란 겁니까.”
– 그래. 그리고 이제 숨어다니면서 적당히 강하다 싶은 인간들을 사냥해서 신성을 쌓는 것에 집중해. 전에 내가 주문한 권능 다섯 개 치의 신성을 아직 멀었나?
“대충 4개 치 정도 모았습니다.”
– 꽤 많이 모았군. 너만이 할 수 있는 강점. 그것을 살리는 것이 중요해. 단기간에 강해질 방법이 있는데 굳이 얼간이처럼 돌아갈 이유는 없지.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해 최단기간으로 강해져라. 그의 말은 분명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전혀 고려치 않은 부분 또한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빠르게 강해져서 성물을 다 회수한 다음에는요?”
– 그다음?
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동료들을 다 버리고, 스승님도 위험하니 죽이고, 단지 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고한 이들을 죽이면서 힘을 쌓고 어머니의 신성을 전부 성공적으로 되찾아드렸다 칩시다. 그럼 그때 제겐 무엇이 남습니까?”
– 빛나는 신의 권좌. 그 가장 가까운 자리가 네 것이 되겠지. 이 세상 그 어떤 영광과 명예보다도 존귀하고 누구나 기꺼워할 가장 빛나는 그 자리가. 그때가 되면 아마도 너는 더 이상 필멸자로서 남지 않을 거다. 그래.
그의 안광이 그 어느 때보다 환히 피어올랐다.
– 너는 ‘승천’하게 될 것이다. 더욱 높은 존재로.
“그럼 그다음은요. 무고한 이들의 피를 뒤집어쓰고 더 높은 존재로 올라선 다음엔 제게 무엇이 남습니까.”
–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네 것이 될 것이다.
“마치 어디선가 수도 없이 들어본 적 있는 말이군요.”
– 무슨 뜻이지?
비슷한 말은 옛날에 수도 없이 들어봤다.
대학만 합격한다면, 졸업하고 취직만 한다면, 확실하지도 않은 막연한 미래의 무언가를 바라며 목줄에 메인 채 끌려가는 개처럼 앞으로 헥헥 대며 달려가기만 하는 인생.
그렇게 닿은 현재는 결국 또 다른 미래를 위한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돌려대는 쳇바퀴처럼.
“왜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까?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의 영광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내던지라는 권유는 사양하겠습니다. 절대 사양하겠습니다.”
– 등신 같이 굴지마. 신의 신성을 모은다는 게 애들 장난인 줄 알아? 네가 신성을 모아갈수록 네 안일한 방식으로 쌓은 힘으로는 감히 맞설 수 없는 적이 네 앞을 가로막을 거다.
“저는 혼자가 아니기에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네가 아무리 바둥거려도 수많은 걸 잃을 수밖에 없는 길이다. 굳이 잃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거추장스럽게 주워 담을 이유는 없어.
임페트로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샌가 그의 손아귀엔 거대한 암녹빛 대검이 쥐여있었다. 그는 자세를 낮추며 으르렁댔다.
– 힘없는 자의 논리는 언제나 강자의 논리에 짓눌릴 뿐이다. 입만 산 놈아. 너는 당장 내가 휘두르는 검격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버러지일 뿐이야.
“어디 그 잘난 쇳덩어리로 베어보십시오. 수백, 수천 번. 아니, 내키는 만큼 베어보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그를 노려보며 단호히 답했다.
“제 뜻과 당신의 검. 그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꺾일지 시험해보라 이 말입니다.”
임페트로와 난 말 없이 한참을 대치했다. 결국, 먼저 뜻을 꺾은 건 임페트로였다.
– 등신새끼. 호구새끼. 등신같은 호구새끼.
쿵.
육중한 대검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투덜댔다.
– 너는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아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답지 않게 약한 말. 나는 임페트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잃어본 적이 있는 겁니까?”
– 내가? 하!
그는 낄낄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 나는 잃어본 적이 없지. 그 누구도 내게서 털끝 하나 앗아가지 못해! 암. 그렇고말고! 언제나 승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다.
“언제나 승리하는데 대체 왜 여기 계신 겁니까?”
내 날카로운 지적에 임페트로의 말이 막혔다.
– …닥쳐.
나는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었다.
“덕분에 머리가 조금 정리됐습니다.”
– 또 들판의 양치기처럼 네 양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승천인지 뭔지 하는 건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제가 걷는 이 길의 끝이 어디든. 그 끝에 도착했을 때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을 기껍게 돌아볼 수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양치기가 양을 보고 있을 때면, 양들 또한 저들의 시선 한켠으로 양치기를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 선문답은 질색이다. 내 앞에서 그런 선문답을 늘어놓던 놈들은 전부 진작에 목이 날아갔지.
살벌한 그 한마디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가 그들을 잡고 있듯, 제 동료들 또한 절 잡아주고 있단 이야깁니다.”
– 헛소리는 됐다. 그래서 지금 네 몸에 닥친 위기는 어쩌겠단 건데?
“뭐, 어떻게든 잘 해결해봐야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런 식으로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펄리와 저. 둘의 문제니까요. 당연히 저 혼자 해결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죠. 분명 대화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 줘도 못 먹는 놈.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는 완전히 흥미가 식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 뭐.
“맨날 그렇게 살벌하게 다 죽이면서 정 안 주고 혼자 다녔는데 경험이 있긴 한 겁니까?”
– 닥쳐!!!
정곡을 찌른 듯 그는 여태까지보다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는 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 답을 들어버렸다.
시커먼 갑옷과는 달리 속은 완전 백지의 새하얀 총각이었네.
이제야 나는 애초에 내가 조언을 구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이쪽 분야에 있어선 그보다 내가 나았다.
“그럼 진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넓은 언덕 위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다 짧게 대꾸했다.
– …네 몸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물건이다.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그가 내 가슴을 밀치며 말했다.
– 애초에 넌 이곳으로 비루하게 도망쳐올 필요도 없었다는 뜻이지.
***
쪽.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이 내 목 언저리에 닿았다 떨어졌다. 펄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쪽쪽 대며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정말 위험하게.
“퍼, 펄리!!! 잠깐만요!”
혀가 아까보다 잘 움직였다.
내 멈추라는 말에 당연히 펄리는 멈추지 않고 내 쇄골에 짧게 입을 맞춘 다음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너무 느려? 바로 본 게임으로 들어가 줘?”
“아니, 그게 아니라…”
꿈틀.
손가락 끝의 신경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이대로면 대충 숨을 몇 번 가다듬을 시간이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일이 아니었다.
“대화! 대화를 합시다! 분명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제가 일단 여태까지 펄리를 너무 냉대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펄리에게 너무나 불공정한 대우를 했어요!”
“히히. 네 말이 맞아! 대화 좋지! 우리 사이 일이야 대화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톡. 톡톡톡톡.
가슴의 단추가 빠르게 풀려나갔다. 그녀는 한시도 손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바로 육체의 대화로!”
점점 드러나는 내 하얀 속살들에 내 마음이 비명을 내질렀다.
임페트로와 나눴던 대화가 무색하게 나는 닥쳐오는 정조의 위협 앞에서 단박에 그 전의 나로 돌아가버렸다.
그래, 펄리랑 대화를 시도한다는 발상 자체가 틀려먹은 멍청한 발상이었다.
꿈틀.
이제 검지가 끝자락이 겨우 굽혀진다. 내 정조를 위해선 어떻게든 그녀를 잠깐 멈춰 세워야만 했다.
뇌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죽을힘을 다해 머리를 쥐어짠 끝에 마침내 내 머리가 답했다.
그래, 나는 떠올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잠시 멈춰 세울 수 있는 마법의 단어를.
“펄리!!!”
그녀는 내 가슴 한복판에 짧게 입을 맞추며 답했다.
“많이 바쁘니까 조금 이따 말 걸래?”
나는 떠올린 금기의 단어를 그대로 내뱉었다.
“사랑합니다!!!”
예상대로 그녀가 멈췄다. 내 배 위에 걸터앉은 펄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그걸 지금 말이라ㄱ…”
할 수 있다. 나.
지금부턴 난 내 정조를 위해 수라가 된다.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얼마든지 해버릴 수 있는 수라가.
나는 펄리의 말을 끊고 바로 말을 내뱉었다.
“사실, 펄리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었습니다!!!”
“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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