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2)
242 화 이상.
이상.
쩌어억.
살점 덩어리로 이루어진 바닥이 밟을 때마다 물기 가득한 진흙처럼 신발 바닥에 매달려왔다. 그 찰팍거리는 길을 따라 걸으며 펄리가 말문을 열었다.
“넌 내가 그릇을 차지하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가 궁금한 거지? 예컨대 너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 수도 시민들의 안위 같은 거 말이야!”
“일단은 그렇습니다.”
펄리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릇을 차지한 내가 어떻게 변할지 전혀 안 궁금하다는 점이 조금 서운해! 응! 서운해!”
순간,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지만, 주변은 여태 우리가 봐온 고깃덩어리 벽과 바닥들뿐.
“왜? 왜? 무슨 일 있어?”
“혹시 이 안에 저희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을 확률은 없습니까?”
“이 안에? 아마 없을걸?”
펄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고기 벽을 툭툭 두드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안에 오래 있으면 정신에 안 좋아서 이곳을 지키는 리베라티오의 사제들도 입구를 지키지 굳이 이 안에서 경계를 서진 않아! 게다가 아까 물건 건네주러 들어간 김에 거기 은신처 애들이 밖에 다 나와 있는 것도 확인해뒀거든!”
“흠, 그럼 단순한 착각이었나 봅니다.”
이 공간의 특이성 때문에 착각한 건가? 나는 일단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그릇이 발동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마 이 수도 곳곳에서 공명이 일어나서 살아있는 인간 대부분을 집어삼킨 다음 진짜 ‘신의 그릇’으로 그릇이 다시 태어날 예정이었어!”
펄리는 ‘파앗’하며 입으로 추임새를 넣곤 꼭 쥔 손바닥을 활짝 펼쳐 앞으로 벌어질 일을 묘사했다.
반쯤 장난 같은 손짓이었지만, 실제로 저 상황이 닥친다면 정말 셀 수 없는 사람이 죽어 나가겠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수도에 사는 제국민들 태반이 죽을 일인데 북제국의 황제는 어째서 리베라티오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겁니까?”
펄리가 히죽 웃었다.
“당연히 그렇게 많이 죽을 줄 모르니까 그렇지! 내가 듣기론 북제국 황제에겐 그릇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인간의 수를 감쪽같이 속여서 가르쳐 줬다던데? 그런데 음…”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몇 번 토닥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늙은 황제도 속에 구렁이 백 마리는 넣어둘 위인이라 아마 나름 숨겨둔 수들이 꽤 있을 거야! 리베라티오한테 마냥 편하게 상황이 돌아가진 않을 거라 그거지! 황제라면 너도 한 번 만나봤으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지 않아?”
정원을 손질하던 늙은 황제. 내가 만났던 그 노인은 확실히 마냥 속아 넘어가기만 할 위인이 아니어 보이긴 했다. 게다가 리베라티오에 적대하는 게 분명한 내게 리베라티오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열쇠 파편을 줬던 걸 보면 분명 그는 확실히 뭔가 나름의 꿍꿍이속이 있었다.
“쉽지 않군요.”
“인생이 원래 그렇지 뭐!”
“그래서 펄리가 이렇게 장난을 쳐두면 결과가 어떻게 변한다는 겁니까?”
“사실, 그건 엄청 간단해! 신의 그릇이 신을 담는데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를 요구하는 건 그 그릇 안에 들어갈 게 ‘신’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안에 들어갈 게 ‘신’이 아니라 무척 날씬하고 예쁜 이 ‘나’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그릇에 신을 담는 게 아니라 펄리 하나의 혼을 담는 육체로 쓴다라.
“듣기론 희생자가 많이 필요 없을 거 같군요.”
“아냐! 아냐!”
펄리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가 쓰면 아아아아예 한 명도 필요 없다구! 애초에 한 명이라도 희생자가 필요했으면 너한테 이렇게 쉽게 물어보라 못했어! 응! 응!”
쩌억.
무척이나 자그마한 소리. 하지만 분명 많이 찐득한 무언가가 벌어졌다 닫히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걔네가 그릇을 발동시켰을 때, 내가 미리 해둔 조치로 그릇의 조종권을 탈취한 다음에 그 그릇 안으로 내가 몸을 던지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그릇이 있는 곳까지 내가 직접 가야만 할 필요가 있는데…”
“펄리.”
나는 재잘재잘 떠들며 설명을 이어가던 펄리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히죽 웃었다.
“왜애?”
“이곳, 왜 이렇게 긴 겁니까? 이렇게 얕은 지하에 길고 곧게 뻗은 통로가 끝없이 이어져 있기는 불가능할 텐데요.”
우리는 말하는 내내 쉬지 않고 계속 걸어왔음에도 고기로 된 이 복도의 끝은 아직도 보이질 않았다.
“그거야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공간은 권능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니까! 열쇠 꽂으면 들어가는 고대 제국의 유적 있지? 거기랑 비슷한 느낌이라면 보면 돼! 실제 현실에서 공명 지점이 차지하는 크기는 자그마한 방 한 칸 정도밖에 안 돼!”
“그럼 이 복도는 대체 언제쯤 끝나는 겁니까?”
“복도가 내킬 때쯤? 그런데 오늘은 특히 좀 오래 걸리긴 하… 응?”
쩌억.
고기로 된 벽면이 벌어지며 자그마한 눈이 나타났다. 그 외눈은 정확하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하네. 이런 적은 진짜 처음인데. 여태 나 혼자 다른 지점들을 갔을 땐 별일이 없었는데, 이번만 다른 걸 보면 원인은 아무래도 내가 아니라 너인 거 같지? 응?”
“저는 딱히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만…”
“흐응.”
펄리는 눈알을 향해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터뜨렸다. 꿰뚫린 눈은 부들대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더니 한줄기 피를 토해내며 쪼그라들더니 사라져 버렸다.
“호오.”
“뭔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면 어떻게 합니까?”
펄리는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피를 닦아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쟤가 눈을 이상하게 뜨잖아.”
“그렇다고 눈을 터뜨려버리는 건…”
쩌억.
성인 장정의 몸만 한 선이 고기로된 벽 위로 나타났다. 나타난 선이 천천히 갈라지며 벌어졌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커다란 눈이 나와 펄리를 바라보았다. 펄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저거까지 터뜨리면 다음엔 얼마나 더 큰 눈이 나타날까 살짝 궁금해지는데?”
“하지 마십시오. 딱 봐도 저렇게 커다란 걸 터뜨리면 터지면서 나오는 핏물이랑 살점들로 저희가 푹 젖어버릴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전 개인적으로 뽀송뽀송한 이 상태 그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문득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눈 이제 제가 아니라 펄리를 보고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보다 보면 더 이뻐서 자꾸 눈이 가는 타입이긴 해.”
“제 생각엔 좋아해서 보는 것 같진 않습… 엇?!”
붕 뜨는 감각. 순식간에 펄리와 내가 발을 딛고 있던 바닥이 사라졌다. 자연스러운 물리법칙에 따라 내 몸은 밑으로 곤두박질 치려 했다.
손을 뻗어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닥을 붙잡으려 했지만 내가 손을 뻗자 장난치듯 고깃덩어리 바닥이 멀어지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당황한 내가 고개를 돌리자 손에서 뻗어낸 실로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펄리의 모습이 보였다.
“펄리!!!”
나도 그 실로 붙잡아달라는 의미로 그녀를 불렀지만, 펄리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실을 끊어버렸다. 이내 그녀는 나와 똑같이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나는 추락하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같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거기서 절 붙잡아주셨어야죠!”
“나는 지옥 끝까지라도 함께 가달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에에에!”
대책 없는 그 말에 나는 순간 두통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짧게 한숨을 토해낸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외쳤다.
“이제 어쩔 겁니까!”
“어쩌긴!”
한두 번 자유낙하해본 것이 아닌지, 펄리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낙하속도를 조절하더니 내게 다가와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속삭였다.
“이런 초대를 받았으면 당연히 얼굴을 비춰주는 게 예의지.”
***
풀썩!
꽤 오랜 시간 이어진 추락의 끝은 생각보다 푹신했다. 풍선같이 부드러운 살점의 막이 끝 간 데 모르고 낙하하던 우리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내 위로 다시 튕겨냈다.
“히히히! 이거 은근히 재밌네!”
그렇게 몇 번을 더 튕겨대다 겨우 멈춘 우리는 그 급조한듯한 살점 덩어리 쿠션에서 내려왔다.
여태 펄리와 내가 걸어왔던 좁은 복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널찍한 공간. 살점 덩어리로 도배된 넓은 공간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옷에 묻은 자그마한 살점 덩어리들을 털어내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거 이 공간의 당최 의도를 모르겠군요. 원래도 이렇습니까?”
“아니?”
펄리는 자기 옷을 털어내는 대신 내 옷에 묻은 살점들을 나와 같이 털어냈다.
“원래는 복도도 저렇게 안 길고, 그 끝엔 조금 커다란 방이 있거든? 거기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살점 그릇에 내 피를 조금 쏟아 넣고 몇 가지 조치를 취하면 돼! 내 생각엔 이거 나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같이 들어왔기 때문인 거 같은데! 뭐, 짐작 가는 거 없어?”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전혀 없습니다. 그나저나 넓긴 해도 완전히 꽉 막힌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군요. 떨어진 구멍으로 다시 기어 올라가기엔 저희가 너무 오래 떨어진 거 같고 말이죠.”
“내 생각은 달라. 아마 벽을 타고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떨어진 복도로 올라갈 수 있을 거 같거든?”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감이지! 게다가 우리가 오랫동안 떨어진 이유는 진짜로 그만큼 깊어서 오랫동안 떨어진 게 아니라 단지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아! 그 구멍을 만들어낸 존재한테 말이야!”
내 옷에 묻은 살점을 대충 다 털어내자 펄리는 씨익 웃더니 나를 향해 자신의 몸을 내밀었다.
“내가 너 터는 거 도와줬으니 너도 내 몸을 털어줘야 형평성에 맞지! 맞지! 자자! 어디든 마음대로 털어도 좋아!”
“하아, 제발 장난은 그쯤 치십시오. 이젠 여길 빠져나갈 수 있냐조차 확실하지가 않은…”
쩌어억.
거대한 공동의 바닥이 갈라지며 살점 덩어리들이 뭉쳐 솟아나기 시작했다. 펄리는 그 광경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충분히 시간을 줬으니, 뭐가 됐든 나타날 때가 되긴 했지! 암!”
모여든 살점 덩어리들은 천천히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갖춰나갔다.
“저게 뭐라고 봅니까?”
“뭐, 아마 다른 데 중앙에 있던 그릇이랑 비슷한 역할이겠지! 조금 변질되긴 했지만!”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자라 오른 살점들은 무릎과 배, 어깨를 지나 마침내 머리의 모양까지 갖춰갔다. 살점이 뭉쳐 만들어진 얼굴에 마침내 입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생기고 무어라 소리를 내뱉으려 했다.
“….ㅇ”
퍽!
빛살처럼 날아간 새하얀 무언가에 기껏 만들어진 머리가 터져나갔다.
“저 괴물, 뭔가 말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만…”
살덩어리를 던져 머리를 터뜨린 범인인 펄리가 환히 웃었다.
“애초에 우리 대화하러 온 거 아니잖아? 그러니 당연하게도 쟤랑 굳이 대화를 할 필요가 없지!”
“아니, 그렇다고 말이 통할 것처럼 보이는 상대한테 무턱대고 힘을 쓰는 건 좀 그렇다고 봅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
“응? 이제보니 저 괴물 널 따라 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예?”
그제야 나는 살점 덩어리 괴물의 몸을 자세히 보았다. 나와 체형이 비슷한 그 괴물의 겉면은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의 형태를 베껴나가고 있었다.
꾸물거리며 자라나는 머리. 이번에는 펄리가 공격하지 않았다. 이윽고 입구멍이 다시 파이고 괴물은 마침내 다시 말을 내뱉었다.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아ㅃ…”
콰앙!!!
나는 무척이나 불길한 단어가 완성되기 전에 반사적으로 괴물을 향해 팔찌를 발동시켜 마력포를 쏴갈기고 말았다.
펄리는 그런 날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럼 엄마는 난가?”
“닥치십시오. 전 쾌락 없는 책임은 딱 질색입니다.”
마력포에 뭉개진 형태가 어느새 다시 뭉쳐 들었다. 저 살점덩어리들이 형태를 붙여나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학습이라도 한 건지 머리 대신에 가슴 한복판에 입을 만든 괴물이 그르렁대는 목소리로 다시금 말을 꺼냈다.
“아빠…먹고…내가…아빠가…된다…”
펄리는 괴물의 말을 듣더니 짧게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애는 엄마보다 아빠가 많이 좋나 봐!”
나는 허리춤에서 절망을 꺼내 들며 답했다.
“저 괴물 성격을 보니, 딱 봐도 펄리쪽 외탁인 거 같군요.”
“…뭐?! 어딜 봐서!”
어느새 괴물은 만들다만듯 뭉개진 얼굴을 제외한 내 모습을 거의 똑같이 모방해냈다.
펄리는 그 광경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생긴 건 널 똑 닮았는데? 흐음, 그럼 우리 둘을 반반씩 닮은 건가!”
펄리의 말에 괴물이 가슴에 뚫린 입으로 그르렁댔다.
“너…엄마…아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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