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5)
245 화 사전답사
사전답사
넓다른 방안에 오래된 침대가 하나. 침대는 비록 세월을 먹어 여기저기 낡긴 했어도 솜씨 좋은 장인이 혼을 담아 만들었단 게 보이는 물건이었다.
다만, 방의 물건들 중 침대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양질의 가구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 아니었다.
한나라 황제의 침실이라기엔 너무나도 검소한 방안에서 북제국의 황제는 자신의 오랜 지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일 쉬어도 좋네.”
“폐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솔도스 가란디발트. 황제의 호위이자 달인인 그는 어이가 없는 걸 넘어 저 밖으로 탈출한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에도 내일 대회의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다들 수군대는 와중에 호위인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겠다니.
“이건 폐하답지 않은 판단이십니다!”
오랜 지기가 분노하는 와중에도 늙은 황제는 평온한 표정으로 창 너머만을 바라보았다.
“자네 말고도 호위는 많지 않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 지금 너무 흥분했네. 차 한 모금하고 다시 이야기하지.”
쨍!
솔도스는 단숨에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전부 마셔버리곤 시끄럽게 잔을 내려놓았다. 늙은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어 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찌 보면 작금의 행동은 신하로서 지극히 무례한 것이었지만, 솔도스는 지금 한 명의 신하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황제를 지켜봐 온 형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솔도스는 한층 더 무거운 표정으로 눈앞의 동생을 노려보았다.
“요즘 들어 갑자기 대체 왜 이러는 건가?”
늙은 황제는 나른한 표정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즐겼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모르는 척하지 말게! 내가 비록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나 눈과 귀까지 막은 채 지내는 줄 아나? 요즘 들어 너는 내게 숨기는 게 너무나 많아졌어!”
수십년 전과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솔도스가 황제를 질타했다. 늙은 황제는 세월이 비껴간 그를 보며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생각했다.
달인이 되면 시간마저 그를 닳게 못 하는 것인가. 자신은 세월에 깎여나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건만.
아니, 그 옛날의 자신이 어떠하였는가 막상 생각해보면 먹먹한 안개 속을 내딛는 것 같았다.
그 옛날의 자신이라면 지금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늙은 황제는 스스로가 던진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에겐 너무나 오랜 옛날의 이야기였기에.
그렇기에 눈앞에서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그 옛날처럼 화내는 솔도스가 기꺼웠다. 이미 잊어버린 추억과 마주하는 것만 같아서.
그는 주름진 얼굴을 움직여 미소를 그려냈다.
“위정자란 본디 숨기는 게 많은 법이지.”
“나는 지금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닐세! 내일, 네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내린 명령을 취소해! 제발!”
이젠 반쯤 매달리듯 말하는 솔도스를 봤음에도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라면 솔도스가 저런 식으로 진심 어린 충심을 맞부딪혀왔을 때 결국은 그 뜻을 꺾고 말았겠지.
이것은 성장한 것인가, 노쇠해져 판단이 흐려진 것인가.
황제로서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본디 평가란 타인이 함으로서 완성되는 것. 개인이 스스로를 평가한다고 한들 그것은 의미가 없는 헛것.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해 하는 평가엔 언제나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옳은지 틀린 것인지. 황제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솔도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솔도스의 표정 위로 환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드디어 자신이 진심이 통한 것이라 믿으며.
황제는 언제나 제 속을 훤히 다 내보이는 친우를 보며 웃었다.
“내일은 집에서 푹 쉬게. 이건 황제로서 그대에게 내리는 명령일세.”
솔도스의 고개가 푹 꺾였다. 황제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환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그의 결론은 제국의 어느 기둥보다도 단단했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이 나라는 다시 한번 화려하게 빛나게 되리라.
그는 솔도스를 물리고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 나라, 제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
삐익!
펄리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호루라기를 삑삑 불면서 주위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이자 그제야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 우리가 할 게 뭐라고? 맞추면 사탕 줄게!”
“저요! 저요저요!”
쟈멜이 힘차게 손을 내뻗었다. 펄리는 씨익 웃으며 쟈멜을 가리켰다.
“그래! 쟈멜! 말해봐!”
“내일 출동할 길을 미리 봐두는 사전답사를 한다고 했어!”
“정답! 정답! 자, 받아!”
“와아!”
쟈멜은 환한 얼굴로 펄리가 던져 준 사탕을 뜯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사탕을 입안에 넣고 몇 번 굴린 쟈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녀는 펄리를 향해 항의했다.
“이거 박하 맛이잖아! 나 박하 맛 안 좋아하는데!”
“미안! 미안! 내가 지금 가진 게 박하 맛밖에 없어! 다음에 좋은 거 줄게.”
하나도 안 미안한 저 표정으로 보아, 박하맛 사탕을 준비한 건 펄리의 자그마한 장난이 분명했다.
지금 펄리의 사전답사 작전에 모인 사람은 나와 프리디야 스승님, 쟈멜, 지젤, 카디쇼, 다키아 여섯이었다. 거기에 펄리까지 합하면 총 일곱.
테르지오는 한 번 몸을 크게 다친 뒤로 사실상 전력감이 되질 못 했기에 빠졌고.
아직 어머니의 정체를 모르는 카디쇼 때문에 어머니는 공식적으론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손으로 변해 내 품에서 계속 같이하실 거지만.
역시나 카디쇼는 이번 작전의 진짜 목적이 어머니의 신성이 담긴 성물 탈환이란 것 또한 몰랐다. 그녀는 그저 광휘교 사제로써 우리가 악신의 숭배자들을 처단하러 간다고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악신의 숭배자들을 처단하러 가는 게 맞기도 했다. 덤으로 제국민들의 목숨도 구하고.
펄리가 내게 말해준 계획대로라면 아마 카디쇼는 중간쯤에 적당한 녀석을 상대하느라 발이 묶이게 될 예정이었다.
솔직히 속여서 조금 미안하지만 카디쇼는 웬만하면 가장 먼저 떼어내야만 했다. 그녀가 일행에서 떨어져 나가야 쟈젤과 지젤, 나, 그리고 펄리까지도 마음 놓고 악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카디쇼가 짐이란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명백히 빛을 다루는 광휘교 사제로써 우리의 든든한 전력이었다.
“자자, 작전은 내일 아침부터 진행될 예정이거든?”
카디쇼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펄리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카디쇼가 들어 올린 손을 바라보았다.
“아직 내가 질문해도 된다고 말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악신의 숭배자들이 숨어든 소굴을 안다면 왜 지금 당장 안 쳐들어가고 왜 굳이 내일 쳐들어가는 것인가? 거기다 왜 우리만 따로 행동하는가? 허락만 해준다면 내가 이 도시에 있는 사제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그들과 공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지극히 정론이었다. 다행히 펄리는 항상 계획이 있는 친구였다.
“아주 좋은 지적이야! 특별히 이번엔 설명해줄 테니까 이다음부턴 내 말 끊어먹지 마. 알겠어?”
카디쇼가 고개를 끄덕이자 펄리는 냉큼 설명을 시작했다.
“왜 당장 안 쳐들어가느냐면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내일 아침이 녀석들이 최고로 방심할 순간이라 그래! 우리같이 소수 정예로 적을 타격하는 데 있어서 적당한 때라는 건 언제나 제일 중요한 조건이니까! 흠흠!”
목소리를 잠깐 가다듬은 펄리가 히죽 웃었다.
“그럼 당연히 왜 우리가 굳이 소수 정예 여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 거야! 그건 내가 사람을 잘 안 믿어서 그렇다고 대답해줄게! 솔직히 나는 괜히 여기저기 지원을 요청하다가 정보가 새어나갈까 봐 무섭거든! 어디에 ‘악신의 종자’가 숨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잖아!”
펄리는 핥듯이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나를 거쳐 지젤, 그리고 쟈멜을 향했다.
“딸꾹!”
그 시선에 악신의 종자인 쟈멜이 딸꾹질을 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카디쇼는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펄리를 바라보았다.
“사제들을 못 믿겠다는 건가? 다들 알다시피 우리 사제들은 악신의 숭배자들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절대 배신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나? 마르낙?”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펄리가 카디쇼의 말을 받아쳤다.
“나는 사제들을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을 못 믿겠다는 거야! 네가 정보를 넘긴다고 해도 사제들이 일일이 발로 뛰면서 입으로 정보를 전할 게 아니잖아? 자연스럽게 사제가 아닌 사람의 손을 타게 될 텐데 그러다 정보가 새서 우리 작전이 실패하면?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실수로 죽어 나가는 건 누구일까? 우리? 사제들?”
펄리는 잠깐 뜸을 들여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이윽고 모두 그녀에게 집중하자 펄리는 웅변하듯 말을 내뱉었다.
“아니! 무고한 제국민들이 죽어 나가게 될 거야! 나는 절대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어! 그것도 내 판단 실수로 무고한 이들이 죽으면 나는 고개를 감히 들고 다니지 못할 거야!”
저 펄리가 제국민 걱정은 절대 안 할 거란 걸 아는 나조차도 잠깐 속아 넘어갈 만큼 비장한 연기였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카디쇼는 정말 조금 감명받은 듯 눈을 반짝였다.
“네가 그렇게 무고한 이들을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여태 그저 놀고먹기 좋아하는 한량인줄 알았건만. 사과하지.”
무려 카디쇼의 사과까지 받아낸 펄리는 개의치 말라며 카디쇼를 다독이고는 힘차게 손을 붕붕 휘둘렀다.
사실 펄리의 논리는 여기저기 허점이 조금씩 있었지만, 방금의 비장한 연기 한 방이 카디쇼에게 잘 먹혀든 듯했다.
“그럼 일단 배에서 내려서 이동하면서 이야기할까? 다들 가는 길 잘 기억해둬! 오늘은 걷지만 내일은 뛰어서 이동할 예정이니까 혹시라도 길 헷갈리면 안 돼!”
우리는 배에서 폴짝 뛰어내린 펄리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내일이 대회의 날인지라 거리는 지나다니는 제국 시민들로 분주했다.
“마르낙은 내 옆에 와봐! 할 이야기가 있어!”
펄리의 부름에 조용히 앞으로 나가자 그녀는 여느 때처럼 환히 웃었다.
“내일 작전에 대비해 우리 마르낙은 어디까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응? 응?”
‘살(殺)!!!’
‘우리 마르낙’이라는 단어에 어머니가 분개했다. 나는 어머니는 톡톡 두드려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무슨 마음의 준비 말입니까?”
펄리는 한쪽 손바닥을 펼치더니 다른 손의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펼친 손바닥 위를 달리는 시늉을 했다.
“내일은 속도가 제일 중요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빠르게 돌파해야 한다는 겁니까?”
“맞아! 맞아! 쟤네도 완전 바보는 아니라서 의식을 시작하는 순간, 내가 공명 지점에 장난질을 쳐둔 걸 알아챌 거야! 그럼 당연히 내가 쳐둔 장난질을 지우려고 하겠지? 리베라티오가 내가 쳐둔 장난질을 고치는데 드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야! 반드시 그 안에 ‘내’가 ‘그릇’에 닿아야만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 겁니까?”
그냥 빨리 돌파하면 되지, 굳이 이렇게 날 따로 불러낼 이유가 있나?
펄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해봐! 적이 나타났어! 다 함께 그 적을 물리치면서 나아가는 것과 그 녀석을 상대할만한 동료를 놔두고 나머지 일행은 계속 달려나가는 것! 어느 게 더 빠를까!”
나는 그제야 펄리가 꺼내고자 하는 말의 저의를 이해했다.
“내일 돌파하면서 적이 나타날 때마다 다른 이들을 남기고 저희만 계속 나아가자는 겁니까?”
“맞아! 맞아! 그래서 지금 미리 묻는 거야! 물론, 나타날 만한 적과 일행 중에 적당한 상대역도 내가 다 미리 정해뒀어! 그러니 아마 문제없이 이길 수 있을 거야! 당연히 이긴 다음엔 우리를 뒤쫓아오면 되고!”
반사적으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나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다 펄리의 계산이 틀려서 누구 하나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요? 싫습니다.”
나는 내 소중한 이들이 다칠 가능성을 수수방관할 생각 따윈 없었다. 어디까지나 성물 회수는 모두가 함께 몸 멀쩡히 회수하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펄리의 표정이 일순 가라앉았다. 그녀는 내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동료들은 애가 아냐. 넌 언제까지 어미 닭마냥 동료들을 품고 있을 생각인데? 너한테는 ‘믿고’ 그 자리를 네 동료에게 맡긴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야? 어떻게 보면 너는 지금 네 동료를 무시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사실 너는 네 동료를 일 인분도 못 하는 반푼이들이라 여기는 거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로 들리는걸?”
“저는 괜찮아요.”
“저도요!”
나직한 한마디. 뒤를 돌아보니 다키아와 쟈멜이 어느새 우리의 뒤로 다가와 있었다. 다키아는 그 황금빛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필요한 순간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동안 계속 노력해왔는걸요. 한 번만 믿고 맡겨주세요. 저희는 잘 해낼 수 있어요.”
“맞아요! 저 쟈멜을 믿어보세요! 그, 근데 저 호, 혼자 말고 한명 더 해서 둘 정도씩 같이 남겨주시면 진짜 믿어도 돼요!”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 저 둘. 나는 이 장면이 전부 펄리가 미리 준비해둔 무대 위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다키아와 쟈멜에게 미리 언질을 줘둔 거겠지.
펄리는 제가 등장할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쟈멜 말대로 만약을 대비해서 절대 누구 하나 혼자 남겨두는 법은 없을 거야! 최소한 둘씩! 물론, 네 스승님은 예외고! 이런 조건이면 어때?”
“하아.”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낯선 뭉클한 감촉이 가슴팍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니 내 품으로 달려든 다키아가 황금빛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살햇!!!’
격분하는 어머니. 다키아는 그녀답지 않게 도로 한복판에서 나를 껴안고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진짜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진짜 잘 해낼 자신이 있어요. 이번 기회에 제가 한 명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드릴게요.”
“증명 같은 건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다키아는 이미 충분히 잘 해주고 있…”
“아뇨.”
다키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원해요.”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안겨든 다키아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쓰게 웃었다.
“혹시라도 크게 다치면 화낼 겁니다. 진짜로요.”
“펄리가 다칠 거 같으면 도망쳐도 된다고 했어요. 시간만 끌면 된다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다키아가 자리를 비키자 그 뒤에서 쟈멜이 나를 보며 쭈뼛거렸다. 그녀는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도 안겨도 돼요? 안 되면 말고요!”
‘살햇!!!’
당연히 안된다는 한마디. 어머니가 품속에서 꿈틀대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펄리가 쟈멜의 등을 툭 밀며 속삭였다.
“원래 허락보다 용서가 쉬워. 그리고 너 다음엔 나다?”
기다렸다는 듯이 도도도 달려온 쟈멜이 내 품에 폭하고 안겨들었다. 나는 쟈멜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펄리를 노려보았다.
“뭘 멋대로 순서를 정하고 있는 겁니까?”
“너도 좋으면서 튕기긴!”
“하나도 안 좋습니다.”
쟈멜을 충분히 다독이고 떼어내자 펄리가 뻔뻔하게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사전답사 길 안내나 마저 하시죠.”
펄리가 장난스럽게 내 팔에 매달려왔다.
“나한테만 너무해! 나도 예뻐해 줘야지! 줘야지!”
“예쁜 짓을 해야 예뻐해 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닙니까!”
우리가 투닥이며 시끄러워지자 자연스럽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나는 매달린 펄리를 반쯤 질질 끌며 나아갔다.
“던져버리기 전에 제발 이거 놓으십시오! 다들 쳐다보지 않습니까!”
“나도 안아줘!”
“아무리 떼써도 안 해줄 겁니다.”
“왜! 왜! 닳는 것도 아니잖아!”
“내일…”
나는 잠깐 뜸을 들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모든 일이 끝나고 아무도 크게 안 다쳤으면 그때 안아드리겠습니다.”
펄리의 보랏빛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장난기를 한가득 담아 대답했다.
“그거는 포옹에 찐한 딥키스까지 얹어서 받아야 내가 수지가 맞겠는데?”
‘살해앳!!!’
차라리 다 죽었으면 다 죽었지 그건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비명이 북제국의 도로를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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