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6)
246 화 개막.
개막.
“여러분, 곧 날이 밝아올 겁니다.”
반황제파 ‘벌집’의 수도지부장 루보르 웨르쇼는 창백한 안색으로 자신과 뜻을 같이하기로 맹세한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비록 얼마 전 장인의 거리에서 노획해온 마검에 자신이 홀려 소중한 동료들을 베어버리는 참사가 있었음에도 그는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채 천천히 연설을 이어나갔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던 황제의 호위, 솔도스 가란디발트에게 황제가 직접 가택연금을 명했다 합니다. 이건 미친 황제가 자신의 가장 단단한 방패를 스스로 내던져버린 것이지요. 모든 조건이 우리의 거사를 돕고 있습니다.”
실은 루보르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빙의된 이후 몸을 회복될수록 자신이 저질렀던 그 날의 참사에 대한 기억이 더욱 선명해져 갔기에. 그럼에도 그는 쉴 수 없었다.
자신이 구심점이 되어 진행해온 계획이었고, 이 몸 하나 편하자고 타인의 손에 맡기기엔 너무나 위험한 계획이었다.
“아마 오늘의 거사가 성공한다고 해도 우리 중 대부분은 오늘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이곳의 모인 모두의 가슴팍엔 오늘을 위해 준비한 독단이 있었다. 먹기만 하면 얼굴이 녹아 죽어버리는.
거사가 무난하게 성공하게 되더라도 이곳에 모인 모두는 한나라의 황제를 시해한 역적. 이들을 위한 도주 계획은 짜두었지만, 그것은 마냥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아마 성공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이들은 채 몇이 안 될 게 분명.
독단은 도주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한 물건이었다.
루보르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만 저희의 희생은 작게는 바로 우리의 이웃들을, 멀리 보면 이웃을 넘어 이 나라, 제국의 모든 제국민들을 미친 황제가 만들어낼 전화의 불길 속에서 구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 내려앉은 침묵. 그 무거운 적막 속에서 시선이 루보르에게로 모여들었다.
루보르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쟁!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합니다!”
쿵!
거칠게 단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더 많은 땅이 필요한 나라였습니까! 우리의 땅은 우리의 국민들을 충분히 배를 불릴 만큼 풍요롭고, 우리의 땅은 우리의 국민들을 모두 재우기에 족할 만큼 넓습니다! 작금의 나라에 배를 곯는 이들이 생기고, 길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이 생긴 것은 모두 미친 황제의 시선이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헛된 영광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리는 건 누구인가?
전화가 얼마나 거세던 저 늙은 황제는 자신의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전장을 적실 붉은 피는 모두 귀족과 제국민들의 것이겠지.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이 전쟁을!”
루보르의 주먹이 천장을 향해 치솟자 모인 이들의 주먹이 그 뒤를 따랐다. 저마다의 외침이 주먹과 함께 튀어나왔다.
“우리는 지켜낸다!!!”
“우리는 막아낸다!!!”
“전쟁을 저지하자!!!”
“와아아아아아아!!!”
시끄러운 환호성 속에서 루보르의 귓가로 가느다란 속삭임이 들려왔다.
– 흐흐. 피가 흐르겠구만. 그것도 아주 진득한 피가.
루보르는 검에 빙의되었던 그 날 이후로 종종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일부러 외면한 채 다시금 열정적으로 외쳤다.
“우리가 지켜낸다!!!”
***
“아버지! 오늘 다녀오시면 대회의가 어땠는지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황제 폐하의 옷차림이나 그분을 지키는 기사분들의 갑옷 같은 거도 꼭꼭 자세히 보고 오셔야 해요!”
“그래.”
저 먼 북제국의 변방에서 올라온 귀족, 라브람 브라스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여운 아들은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새벽 댓바람부터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자신이 대회의에 참석하러 가기라도 하듯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큰마음 먹고 아들을 수도에 데리고 오길 잘한 듯싶었다.
‘암, 좀 더 커서 어엿한 귀족이라 자칭하려면 적어도 수도의 풍경 정도는 한 번쯤 보여줘야지.’
사실, 한적한 변방 시골 영지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수도로 여행을 간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수도를 두 눈으로 담았던 그 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 압도적이고, 웅대한 광경을.
저리도 방방 뛰는 걸 보니 귀여운 아들도 자신처럼 수도의 광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리라. 그것 하나면 예상외의 지출이 그리 아프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라브람은 원래라면 으레 그리했듯 주변 영지의 귀족 중 하나에게 자신의 대회의 의결권을 대리할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해 주고 다른 이가 대신 참여하게 했겠지만, 이번 대회의의 초대장에는 가능하다면 ‘직접’ 와달라는 문장이 적혀 있던 김에 큰마음 먹고 직접 수도행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발생한 여행 비용 탓에 아내에게 핀잔을 조금 들었지만 이젠 정말 하나도 후회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언제까지고 자신의 아들을 수도 한 번 못 가본 촌구석 귀족으로 남겨둘 수도 없지 않은가.
라브람은 사냥으로 다져진 억센 손을 뻗어 자신의 작달막한 아들은 단숨에 안아 들었다.
“대회의를 마치고 오면 같이 수도 구경이나 실컷 하자꾸나. 대대로 대회의가 끝나면 힘들게 수도를 찾아온 귀족들을 위해 황제 폐하께서 축제를 열어주시거든.”
자그마한 얼굴 위로 함박웃음이 번져나갔다.
“와아! 완전 좋아요! 황제 폐하 만세!”
“그래. 황제 폐하 만세다.”
그는 아들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옆에 서서 자신의 명을 기다리는 집사를 향해 말했다.
“마차는 두고 도보로 가겠네. 자네는 남아서 내 아들을 봐주게.”
“예.”
수많은 귀족이 참여하는 북제국의 대회의엔 도보로 궁을 찾아가는 것이 관습이자 전통이었다. 대회의 날 하루만큼은 그 어떤 귀족도 평등하다는 제국의 가치 아래. 그렇기에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채비를 갖추는 것이고.
라브람은 호위인 늙은 기사 한 명과 함께 여관을 나섰다. 여관은 수도에서도 제법 외곽이었던 탓인지 거리엔 날이 밝지 않은 거리엔 아직 그 누구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나아가다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번이 세 번째지?”
늙은 기사는 추억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 가문도 대회의 하나 정도는 꼬박꼬박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가문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리되실 겁니다.”
늘 듣던 덕담에 라브람은 빙그레 웃었다.
“자네는 듣기 좋은 말을 너무 잘해. 자네랑 있다 보면 정말 그리될 것만 같거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나아가자 하나둘씩 호위를 대동한 귀족들의 모습이 라브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대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나선 길에선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 라브람은 그들과 가벼운 눈인사만 나눈 채 조용히 계속 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던 그는 평소 단련을 게을리한 것인지 걷는 걸 힘들어하는 젊은 귀족들을 보곤 짧게 혀를 찼다.
‘꾸준한 단련 또한 귀족의 덕목이거늘. 그거 조금 걸었다고 저리도 힘든 태를 낸단 말인가. 쯧쯧.’
자신의 자그마한 아들은 절대 저렇게 허약하게 안 키우겠다며 라브람은 작게 다짐했다.
그가 궁에 더욱 가까운 번화한 시내 거리로 들어서자 걸음을 옮기는 인파 사이로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화려하게 치장한 가마를 여섯 장정이 어깨에 얹고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도보’로 참석한다는 전통. 최근 그것을 살짝 비틀어 말이 끄는 마차 대신 사람이 ‘도보’로 옮기는 가마를 타고 대회의에 참석하는 무례 막심한 귀족들이 있다더니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라브람은 어이가 없다를 넘어 저 광경이 너무나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어 가마 안의 귀족을 향해 날 선 질타를 날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느 귀족들은 감히 시도하지도 못할 저 가마를 탄 자는 그가 누구든 제국에서 유력한 귀족이자 높은 권력을 지닌 자일 테니 감히 자신이 무어라 입을 열었다간 가문이 무슨 화를 입을지 몰랐다.
‘세상이 말세야. 말세.’
그가 속으로 구시렁 구시렁거리든 말든 점점 궁에 가까워질수록 속속들이 가마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마다 제 존재를 과시하듯 화려하게 수놓은 가마의 치장들은 늦게 나타나는 가마일수록 더욱 치장이 화려했고.
그 어이없는 작태에 라브람은 이젠 어이없음을 넘어 부러움까지 느꼈다.
저 마차 한 대만 팔아도 아마 자신의 영지 몇 년 치 예산일 게 분명했으니.
땀을 뻘뻘 흘리던 약골 귀족들을 볼 때는 활짝 펴져 있던 그의 단단한 어깨가 아주 조금 움츠러들었다. 라브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가마와 사람의 행렬은 떠오르는 해와 함께 대회의가 주최되는 회의장으로 몰려들었다.
***
“어디 보자… 이곳이로군.”
호위를 데리고 들어올 수 없는 곳인 탓에 노기사는 대회의장 바깥에 다른 기사들과 함께 남겨두고서 라브람은 홀로 대회의장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에게 배부된 번호표를 따라 자리를 찾았다.
대회의장은 거대한 홀이 가운데 있고 마치 오페라의 관객석처럼 여러 층에서 그 중앙의 홀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 대회의장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라 잠시 길을 헤맸지만 이내 라브람은 자신의 자리가 가장 높은 층인 3층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회의에선 한미한 귀족일수록 배부된 자리의 층이 높았다. 앉은 자리의 층이 높을수록 그들은 ‘관객’처럼 대회의를 구경하는 입장에 가깝다는 의미였기에.
실제로 이 대회의를 주도하는 귀족들은 1층에 자리를 잡았고 황제 폐하께선 모두의 시선이 모인 홀 한가운데에서 이 회의를 주도하셨다.
가마에 이어 다시 한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라브람은 자그마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마 아들이랑 같이 못 온 게 다행인 건가.’
라브람은 자신이 이 무대의 들러리로 불렸단 사실을 아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작게 안도했다.
그는 자신의 번호가 적힌 자리에 앉았다. 라브람에겐 안타깝게도 3층에 자리가 배부될 정도인 귀족들은 보통 대회의의 의결권을 다른 귀족에게 문서로 대리하게 했었기에 그의 주변 자리는 온통 공석이었다.
주변 자리가 텅 빈 탓에 대화 상대조차 없어 라브람은 자신의 수염을 몇 번 긁적이고는 쓰게 웃었다.
‘적어도 앞사람 머리 때문에 폐하를 못 볼 일은 없겠군.’
꽤나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웅성거리던 대회의장에 갑작스러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 적막의 이유는 단 하나.
늙은 노인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홀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홀을 가로질러 그 한가운데에 마련된 황금 옥좌로 다가가 앉았다.
북제국의 늙은 황제, 하마르 카이엠은 조용히 가는 숨을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대회의를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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