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8)
248 화 달콤한 함정.
달콤한 함정.
묵빛 금속으로 이루어진 톱니들이 소리 없이 서로 맞물려 분주히 돌아갔다. 끊임없이.
톱니 덩어리 머리를 한 금인족, 호를루는 리베라티오의 은신처 그 가장 깊은 곳에서 거대한 꽃봉오리 하나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소리 없는 톱니만이 돌아가던 와중, 거대한 꽃봉오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요한 발화. 커다란 꽃봉오리가 갈라지며 나체의 사내를 토해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 막에 둘러싸인 남은 갓 태어난 태아처럼 자신의 무릎을 꼭 껴안고 있었다.
호를루는 갓 태어난 듯한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보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웅크려 있던 사내의 눈이 천천히 벌어지고 그는 자신을 둘러싼 얇은 막을 찢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한 피부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넘치는 육체. 일어선 사내는 자신의 손바닥을 확인하곤 얼굴을 매만지더니 슬픈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원래는 아직 때가 아니거늘…”
[여기 이걸 걸치시지요. 하바스님.]사람을 흉내 내는 듯한 낮은 기계음. 잠깐 자리를 떴던 호를루는 미리 준비된 가운을 건넸다.
막 꽃봉오리에서 태어난 사내이자 자연스러운 늙음을 버리고 젊음을 다시 되찾은 리베라티오의 선지자,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젖어 있는 자신의 기다란 연녹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곤 호를루가 건네는 가운을 나체 위로 받아 걸치며 입을 열었다.
“대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호를루는 선지자의 앞에 서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예상대로 이 나라의 황제가 저희를 배신했습니다.]“그런가?”
심드렁한 표정.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한 그 얼굴엔 일말의 당황이나 놀람 따윈 없었다. 맹신의 하바스는 조용히 첫 발걸음을 떼었다.
“피해 상황은 어떠한가?”
[황제가 파견했던 근위대에 의해 외곽 지역에 배치된 저희 인원들이 모조리 사망했습니다.]하바스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빙그레 웃었다.
“어차피 대계엔 크게 필요 없는 자들이었겠지?”
호를루는 하바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답했다.
[그렇습니다.]“잘했다.”
[감사합니다.]“계획의 진척상태는 어떤가?”
[지금 막 북제국의 수도 피데스를 단절하는 결계를 펼친 상태입니다.]하바스는 연녹빛 눈을 조용히 깜박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내가 조금 늦게 깨어났군. 아쉽게도. 하지만 크게 늦은 건 아니니 다행이야. 그럼 그 황제는 지금 뭘 하고 있나?”
[한창 귀족들과 교전을 이어나가는 와중입니다.]“쯧쯧. 하나하나가 아까운 목숨들인데 서로 죽고 죽이다니. 참으로 안타까워. 그릇을 완성하는 데 있어 질 좋은 재료가 되어줄 게 분명한 이들이 너무 많이 죽기 전에 대계를 궤도에 올려야 할 텐데 말이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하바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생각의 정리를 끝마친 그는 이내 자신이 미뤄두었던 젊음을 되찾게 한 이유를 떠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양팔을 잘라내고 굴욕을 선사했던 여인의 이름을.
“…프리디야, 그 푸른 머리 사제는 지금 어디에 있지?”
[예상하셨던 대로 이곳을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바스님의 말씀대로 펄리가 그릇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그녀에게 넘긴 듯합니다. 거기다 이리로 곧장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녀의 일행이 이곳으로 향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하바스의 새하얀 입가 위로 비틀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 발로 사지를 향해 뛰어 들어오는 꼴이라니. 옛 굴욕에 대한 보답을 해줄 순간이 그리 멀지 않았군. 수도에 있는 다른 사제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당장은 수도를 감싼 결계에 당황해서 그 원인을 찾고 있겠지만, 곧 저희 측과 프리디야가 맞붙게 되면, 그때 발생한 신성을 추적해 이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 봅니다.]사제들의 움직임 또한 전부 예상한 범위 내. 대계의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웬만한 상황에 대한 대비는 모두 충분했다.
하바스는 젊은 육체를 한껏 음미하며 입을 열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해둔 ‘덫’을 작동시켜라. 호를루.”
[예.]***
핏빛 막이 북제국의 수도 피데스를 집어삼키고 얼마 뒤, 하늘에서 자그마한 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 대체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핏빛 하늘에 당황한 제국 시민들이 혼란에 빠진 와중 진한 신성을 머금은 액체들이 그들 위로 감미로운 부슬비처럼 쏟아졌다.
“이, 이건?!”
“피다!!! 하늘에서 피가 떨어진다!!!”
새빨간 액체를 피라 착각한 제국 시민들은 이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피 같은 액체를 피해 저마다 가까운 가게로 피신했다.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가까운 과일 상점으로 피한 중년 사내가 붉게 물든 옷자락 털어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팔뚝 위에 잔뜩 묻은 붉은 액체를 닦아내려다 고개를 갸웃했다.
비린내와 철 냄새. 붉은 액체에선 피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질 않았다.
“이건 대체 뭐…”
“꺄아아아악!!!”
갑자기 튀어나온 날 선 비명. 그 비명의 주인은 자신과 같이 가게 아래로 피신한 아낙네였다. 그녀는 사내를 바라보며 연신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누, 눈이!!!”
채 완성되지 못한 한마디였지만, 중년 사내는 저 아낙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게 붉은 액체를 맞았던 아낙네의 두 눈이 완연한 핏빛으로 물들어 기괴함을 내뿜고 있었으니.
일단 진정하라고 중년의 사내가 그녀를 달래려 입을 열려 하던 그때. 여인의 시뻘건 눈알이 녹아내리며 왈칵 핏물을 쏟아냈다.
“무, 무슨?!”
중년의 사내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 와중 눈으로 핏물을 쏟는 아낙의 피부가 선홍빛으로 물들어가며 꿈틀댔다.
변이. 변이의 징조를 보자마자 중년 사내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게 무엇이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자신이 죽고 말리라.
그는 재빨리 주변을 설쳐 무기가 될만한 나무 작대를 들고는 그대로 꿈틀거리며 변이하는 아낙네를 내려쳤다.
“으아아아아!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어!!!”
비명을 내지르며 그는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다행히 늦지 않은 것인지, 그는 중년 여인이 괴물이 되기 직전에 막아낼 수 있었다.
“후우.”
겨우 한숨을 돌리고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는 이 대지에 들이닥친 절망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으으으…”
“으아아아…”
낮게 울리는 으르렁거림. 거리는 이미 변이를 끝마친 핏덩어리 괴물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중년 사내의 가슴 속에선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희망이 환히 불타올랐다.
그는 손에 쥔 몽둥이를 억세게 다시 쥐고는 의연하게 외치며 내달렸다.
“이 개자식들아!!! 여기서 이 내가 죽을 거 같으냐!!!”
그렇게 환각에 빠진 제국민들이 가슴 속에 누군가 거짓으로 피어올린 희망에 속아 서로를 죽이고 또 죽여대는 골육상잔이 시작되었다.
그 끊임 없는 살육 속에서도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붉은 액체들은 고요히 제국의 거리에 널브러진 살점들과 고인 피 웅덩이들을 삼키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과 함성.
멀리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격한 투쟁의 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펄리.”
“왜?”
“정말 계획대로 잘되고 있는 게 맞습니까?”
“맞다니까! 나만 믿어! 이게 정말 모든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거든!”
‘살해살해.’
손으로 변해 내 품속에 숨어 계신 어머니는 은신처 코앞까지 와서 계속 기다리기 따분하다며 투덜대셨다.
지금 우리는 우릴 위해 길을 터주었던 황제의 근위대를 지나쳐 한 지하통로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펄리가 어제 일러주었던 대로 리베라티오가 던질 거대한 신호.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슬리는 비명이 지상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며 내 청각을 괴롭혔다.
빨리 이번 사태를 정리해야 하는데.
“아.”
낮은 외마디. 펄리의 입가로 진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드디어 시작됐다.”
펄리의 말이 끝마치기 무섭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악신의 신성이 동쪽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사제라도 발걸음을 멈추고 그 방향을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막대한 악신의 신성.
우리와 함께 있던 카디쇼의 표정이 단번에 불편해졌다.
광휘교의 사제인 그녀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저 막대한 악신의 신성이 불편하게 느껴질 게 당연했으니.
펄리는 헤실거리는 웃음과 함께 카디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제 내가 말한 거 잘 기억하고 있지? 응? 응?”
카디쇼는 붉은 두 눈을 악신의 신성이 느껴지는 방향에서 도통 떼어내질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네 입으로 다시 한번 말해봐. 시선도 날 보면서! 빨리!”
그제야 겨우 악신의 신성이 있는 방향에서 시선을 떼어낸 카디쇼가 펄리를 마주 보았다.
“저곳은 ‘함정’이니, 빠르게 함정으로 가서 다른 사제들이 함정에 빠지기 전에 그들 모아 진짜 본거지인 이곳으로 되돌아오라고.”
함정에 빠질 사제들을 구하고 그들을 규합해 이곳으로 온다. 그게 바로 펄리가 카디쇼에게 부여한 역할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 사제들을 설득해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역할을 할만한 사람은 광휘교의 사제인 카디쇼만한 인물이 없었으니까.
펄리는 똑부러진 카디쇼의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든 듯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잘 기억하고 있네! 기특해! 기특해! 그럼 이제 얼른 가봐도 좋아!”
카디쇼는 펄리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로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늦지 않게 돌아올 테니 내가 올 때까지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걱정 마시고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녀는 내 미소에 작게 미소로 답하곤 자리를 박차고 악신의 신성이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뛰쳐나갔다.
‘살해!’
드디어 귀찮게 눈치 봐야 하는 방해꾼이 사라졌다는 어머니의 외침.
적당한 이유를 빌어 카디쇼를 떠나보내자 쟈멜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바닥을 비비며 벽을 향해 다가갔다.
“드디어 이 쟈멜이 활약할 때가 왔네요! 이히히히! 엉겨붙은 바위시여! 숨겨진 길을 드러내 주세요!”
쟈멜이 짝하고 손바닥을 마주친 다음 벽에 가져다 대자, 지금 저 멀리서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악신의 신성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자그마한 신성이 쟈멜에게서 일렁이더니 돌벽이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입구를 열었다.
다른 엉겨붙은 바위의 신도가 숨겨둔 길이 열리자, 쟈멜이 그 안을 가리키며 힘차게 소리쳤다.
“얼른 나쁜 놈들 혼내주러 가요! 덤으로 놈들이 창고에 숨기고 있는 보물도 훔치고요!”
‘살해!’
‘보물!’이라는 어머니의 거드는 한마디.
아무래도 후자가 쟈멜의 본심인 듯했다. 나는 다키아와 짧게 눈빛을 나누고는 쟈멜이 만들어낸 통로를 따라 일행과 함께 나아갔다.
***
지하통로를 벗어난 카디쇼가 마주한 참상은 실로 잔혹했다.
눈이 시뻘게진 채 서로 죽고 죽이는 제국의 시민들. 전부 수도를 둘러싼 막에서 떨어지는 액체 탓이었다. 그녀는 참상을 외면한 채 이를 악물고 거리를 내달렸다.
펄리의 말에 따르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사제들을 규합해 리베라티오의 은신처를 기습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직감이 가리키는 방향은 달랐다.
사제로서 그녀의 직감은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악신의 신성의 발원지. 그곳을 파괴하면 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붉은 액체에 의한 현상이 멈출 것이라 속삭이고 있었다.
‘이래서 함정이란 건가.’
카디쇼는 이 직감의 속삭임을 무시하고 자신을 따라오도록 다른 사제들을 설득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으리라 느꼈다.
식충식물이 달콤한 향으로 벌레를 유인하듯 강렬한 악신의 신성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사제들을 끌어당겼다.
악신의 신성이 피어오르는 근원지에 도착했을 때, 카디쇼는 여태 뛰어오며 고민했던 것들이 전부 무용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굳이 다른 사제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거대한 광장 한복판은 이미 뭉개져 버린 사제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남아있는 뚜렷한 신성의 잔향이 그 사제들의 저항이 무척 격렬했음에도 무척이나 무용했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속삭여왔다.
광장 한복판에서 홀로 깨끗한 채 서 있던 사내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연둣빛 장발을 쓸어넘기고는 카디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맙게도 또 다른 불나방이 불로 뛰어 들어왔군.”
맹신(盲信)의 하바스의 등에서 뻗어 나온 굵은 줄기들이 게걸스럽게 사제들의 잔해들을 주워 삼켰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카디쇼를 맞이했다.
“그대에게도 기회를 주겠네. 두려움에 떨며 도망쳐도 좋네. 피식자가 포식자를 보고서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自然)스러운 일이니.”
카디쇼는 주변을 훑곤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온기 없는 빛’이시여. 부디 제게 약자들을 지킬 힘을.”
기도와 그에 대한 답.
피어오르는 신성과 함께 그녀의 짧은 금속 봉 끝에서 환한 주홍빛의 날이 피어올랐다.
온기 없는 빛의 권능이자, 절대 부러지지 않는 빛이.
그녀는 이곳에서 물러설 수 없었다. 곧 이 장소로 찾아올 다른 사제들을 위해서라도.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카디쇼가 피워낸 환한 빛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자연(自然)을 버리고 인위(人爲)를 택하겠다는 건가. 어리석군. 어리석어.”
카디쇼는 굳이 세 치 혀를 놀려 악신의 종자에게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말없이 환한 빛을 내뿜으며 리베라티오의 선지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환한 주홍빛.
악신의 신성을 향해 나아가던 다른 사제들은 그 진원지에서 피어오른 환한 주홍빛을 보곤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더욱 빨리 발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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