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59)
259 화 잠깐의 이별
잠깐의 이별.
품에 안아 든 펄리의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인형 속이 아닌 장소에서는 홀로 숨을 편히 쉬기조차 힘든 듯했다.
“괜찮습니까?”
펄리는 잠깐 크게 심호흡하더니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마음속에서도 아직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조금은 남아 있거든? 근데 이렇게 발가벗은 채로 계속 안겨 있으니 뭔가 그 마지막 부끄러움마저 사라질 거 같은 기분이야. 조금만 더 꽉 껴안아 줄래?”
‘살해!!!’
저 간악한 헛짓거리에 넘어가지 말고 빨리빨리 처리해버리라며 어머니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셨다. 나는 아직도 장난칠 여유가 넘치는 펄리를 향해 쓰게 웃어주고는 턱짓으로 쉴새 없이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 신의 그릇을 가리켰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아주 쉬워. 너는 그냥 나를 저 그릇 안에 풍덩 빠뜨려 주기만 하면 되거든!”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아까 펄리가 신의 그릇에 자신의 한쪽 팔을 넣어서 저 안에든 어머니의 성물을 꺼냈을 때 그녀의 팔이 통째로 녹아떨어지는 걸 보면 그녀의 말대로 펄리의 몸을 신의 그릇에 넣었다간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몸뚱이가 그대로 젤리처럼 녹아 사라질 게 분명했다.
나는 여전히 쉴새 없이 꿈틀대는 신의 그릇을 힐긋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넣었다간 그냥 바로 죽어버리는 거 아닙니까?”
내 질문에 화상 자국으로 가득한 펄리의 입가가 미묘하게 꿈틀댔다. 아마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겠지.
“왜? 내가 죽으면 곤란해?”
내가 곤란한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야만 했다.
펄리와의 거래는 이 방에 진입해서 그녀가 어머니의 성물을 내게 꺼내준 시점에서 이미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 처음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땐 신의 그릇이 뭔지는 몰라도 여차하면 그녀에게 성물을 받자마자 신의 그릇도 강탈해버릴 생각도 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난 그녀를 저 고깃덩어리에 빠뜨리는 걸 망설이는 거지? 어째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장에 펄리를 퐁당 빠뜨려 버리고 어머니께 성물의 신성을 흡수시킨 다음 다키아네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게 맞았다.
그런데 왜?
사지도 없는 데다 전신이 화상투성이인 펄리의 본모습에 동정심을 느껴서?
아니, 나는 그런 사소한 것에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럼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펄리가 정말 죽을까 봐?
결국, 나는 내 감정을 깨닫고야 말았다.
“하하.”
문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펄리는 내 웃음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내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진한 보랏빛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웬만하면 정을 안 주려고 했는데, 그간 어쩌다 보니 꽤 정이 들었나 봅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정말 펄리가 죽어버린다면 조금 슬플 거 같아요.”
펄리는 잠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입가를 쉴새 없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쓰는 거 같았다. 잠깐 격렬하게 꿈틀거린 그녀는 겨우 웃음을 참아내고서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꽤 귀여운 면도 있네? 흐응. 물론, 이 나의 매력에서 마르낙 네가 풍덩 빠져서 못 헤어나오는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나 때문이니까 너무 절망하지는 마! 히히.”
펄리는 그렇게 또 한참이나 히죽이더니 겨우 진정했다.
“그래서 정말 괜찮은 겁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해줘? 아니면 네가 안심할만한 말을 해줄까?”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뜨더니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위험하지.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건, 그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이고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영역이니까. 아마 네 예상대로 실패하면 나는 뼛가루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그대로 죽어버리겠지. 이 신의 그릇을 완성하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처럼. 물론, 실패할 확률도 굉장히 높고 말이야. 애초에 이건 인간이 쓰기 위해 만든 물건이 아닌걸.”
“그럼 안 해도 괜찮은 거 아닙니까? 지금의 펄리도 무척이나 자유롭고 강하지 않습니까?”
“마르낙.”
단호한 부름. 펄리는 한 점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감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법이야.”
그녀는 잠깐 몸을 꿈틀대더니 한줄기 미소를 그렸다.
“네가 뭐라든 나는 이미 결정했고, 이제 와서 네 말 몇 마디에 흔들리지 않아. 아, 팔이 있었다면 지금 네 귀여운 얼굴을 쓰다듬어 줬을 텐데. 조금 아쉽네.”
펄리는 잘 안 움직이는 입을 기어코 움직여 환하게 웃었다.
“자, 어서 나를 그릇에 넣어줘.”
그 흔들림 없는 미소에 나는 펄리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펄리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아마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굳이 옆에서 지켜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그릇에 넣고 나면 다키아나 네 스승님 쪽부터 확인하러 가봐.”
“예.”
나는 꿈틀대는 고깃덩어리 위로 펄리를 부드럽게 놓았다. 그녀의 몸은 고깃덩어리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갔다. 펄리는 천천히 녹아내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자, 그럼 잠깐 안녕이야. 또 보자. 마르낙.”
그녀는 그 말만을 남기고 고깃덩어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펄리가 완전히 신의 그릇 속으로 녹아들어 간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끊임없이 신의 그릇으로 흘러 들어가던 정체불명의 붉은 액체들이 일제히 잠깐 정지했다가 이내 이 공간 한가운데 커다란 배수구라도 생긴듯이 격렬한 속도로 신의 그릇을 향해 몰려들었다.
펄리를 품은 그릇은 아까보다도 훨씬 격렬한 속도로 붉은 액체를 흡수하더니 결국 이 방안으로 흘러들어오던 붉은 액체가 모조리 그릇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게 모든 붉은 액체를 흡수한 그릇은 쉴 새 없이 꿈틀대던 고깃덩어리의 모습에서 딱딱한 고치 같은 무언가로 변했다. 그 모습은 마치 우화를 준비하는 핏빛 번데기 같았다.
더는 핏빛 액체가 흘러들어오지 않는 공간 속에서 펄리를 품은 그릇만이 조용히 존재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 물었다.
“어떤 거 같습니까?”
‘살해!’
모르겠다는 대답. 지극히 당연한 대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뭐가 됐든 변하긴 했으니 아마 일이 잘 풀린 거겠지요. 그럼 저희도 성물에 담긴 신성만 흡수하고 다키아를 도우러 가보죠.”
나는 심장 모양의 성물을 어머니께 내밀었다. 하지만 내가 내민 성물을 본 어머니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한참이나 성물을 빤히 보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살해?’
이번 일이 다 끝나고 나서 흡수하면 안 되냐는 물음. 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되물었다.
“지금 이곳처럼 성물의 신성을 흡수하기 좋은 공간이 있습니까? 게다가 신성을 미리 흡수해두면 여차할 때 제가 권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권능을 얻어서 유용하게 쓸 수 있지요. 어머니께서도 더욱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고요.”
게다가 이번 성물은 내게 나름 의미가 컸다.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13개의 성물. 이번 성물을 흡수하면 정확하게 7개째 성물을 되찾는 것이니 즉, 이제야 과반을 넘은 신성을 회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니까.
어머니께서도 무척이나 기쁜 일일 터인데 어째서 여태까지와 달리 저렇게 망설이시는 거지? 무척 이상했다.
“마음에 걸리시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어머니는 내가 내민 성물을 빤히 바라보더니 자그맣게 대답하셨다.
‘살해.’
왠지 느낌이 안 좋다는 한마디.
지금보다 성물의 신성을 회수하기에 최적의 장소와 시간은 다신 없을 텐데.
밖에서 신성을 흡수하는 건 다른 사제들에게 감지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해서 일단 격리된 이 장소에서 흡수하는 게 무조건 맞았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나중에 흡수하도록 하죠. 어머니 말씀대로.”
하지만 내겐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뜻이 우선이었다. 내가 심장 모양 성물을 품속에 챙겨 넣으려고 하자 어머니가 잽싸게 손을 뻗더니 내 손에서 성물 채가셨다.
‘살해!’
까짓거 그냥 여기서 흡수한다는 외침. 어머니가 성물을 쥐신 채 두 눈을 감고 신성을 흡수하려고 하신 그때.
쿠구궁.
굉음과 함께 이 공간 전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햇?!’
격한 흔들림에 어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성물을 놓쳐버리셨다. 나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어머니가 흘린 성물을 챙기고는 넘어지려는 어머니까지 품속에 안았다.
“손으로 변해서 일단 제 주머니로 들어가시죠! 이거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 같습니다.”
‘살해!’
어머니는 대답과 함께 잽싸게 손으로 변하셨고 나는 어머니랑 성물을 같이 품속에 넣었다.
쿠구구궁!
커져가는 굉음 속에서 흔들림이 더욱 격해졌다.
콰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일순 시야가 암전되었다. 내가 눈을 감은 것이 아닌, 정말 모든 공간이 새카매졌다 다시 빛을 찾았다.
“…음?”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지금 내가 서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공간 한가운데에 있던 신의 그릇은 어디로 가고 나는 제국 수도의 거리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방금까지 나는 격리된 공간 속에 감춰진 리베라티오의 은신처에 있었을 텐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리베라티오가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불투명한 막이 수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거리는 지독한 피 냄새로 가득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피 냄새가 지독함에도 거리엔 그 냄새의 원인인 핏자국이나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
무척이나 깨끗한 거리였다. 단지 살아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뿐.
일단 지금은 다키아를 찾는 게 우선인가. 내가 별 탈 없이 공간에서 빠져나왔으니, 다키아랑 일행도 무탈하게 빠져나왔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펄리가 신의 그릇을 사용해도 멀쩡하던 리베라티오의 은신처가 갑자기 왜 붕괴해서 우리를 뱉어낸 거지?
그 의문의 답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내 앞에 나타났다.
격렬한 신성의 파동과 함께 수도의 중심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푸른 불길로.
푸른 불기둥이 잦아들자 뒤이어 대지가 흔들리며 굉음과 함께 거대한 녹색 줄기들이 악신의 신성을 줄기줄기 뿌려대며 하늘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수도의 한가운데에서 솟아났다.
막대한 두 신성의 충돌.
리베라티오의 은신처를 붕괴시킨 범인은 바로 스승님과 맹신(盲信)의 하바스의 전투로 인한 여파였다.
저 무지막지한 광경을 보자 내가 호를루와 싸웠던 것이 얼마나 소박한 전투였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걸 도우러 가야 하나? 아니, 도우러 간다고 내가 스승님께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나 있을까? 역시 다키아를 먼저 찾아야…
“…마르낙?”
날 상념 속에서 깨운 건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괴물이 날 반겼다.
검붉은 촉수 덩어리가 마치 여인의 형상으로 뭉쳐있는 그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익숙한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은… 설마, 카디쇼입니까?”
여인의 형태로 뭉친 촉수 덩어리 카디쇼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눈으로 추정되는 부위를 가늘게 떴다.
“이 모습을 보고도 별로 안 놀라는 데다 내 이름이 바로 튀어나오다니…”
그녀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너는 펄리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군. 아니면 마르낙, 너도 펄리랑 한통속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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