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60)
260 화 위장?
위장?
“왜? 대답이 없지? 마르낙?”
카디쇼가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아니, 따지고 보면 오해도 아닌가? 아테르랑 펄리가 카디쇼 몸에 무슨 짓을 한지 알고서도 그녀에게 숨기고 있던 건 맞으니.
어떻게 대답해야 최대한 충돌을 줄일 수 있을까.
지금 내겐 프리디야 스승님의 싸움에 끼어들기보단 다키아네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일단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더욱이 촉수덩어리 모습이 된 카디쇼와 여기서 충돌하는 건 최악의 상황이었고.
게다가 저 모습이 된 카디쇼가 얼마나 강할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일단 당장에 날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예전 폭주 때보단 훨씬 이성이 남아있는 거 같은데. 잠깐의 고민 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다 말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카디쇼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점의 거짓 없이 말해주면 좋겠군.”
“아무래도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움직이면서 이야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카디쇼가 의외로 순순히 내 말을 들어준 덕에 우리는 사람 하나 없는 거리를 천천히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일단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 카디쇼의 몸이 평범한 상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겠지. 그 펄리가 내 몸 상태를 알고 있던 걸 보면 그녀와 자주 붙어 다니는 네가 모를 리가 없었겠지.”
“혹시 어디까지 알고 계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편이 설명해 드리기 쉬울 거 같군요.”
내 질문에 카디쇼의 붉은 안광이 한층 짙어졌다.
“네가 아는 대로 먼저 말해라. 마르낙. 내가 어디까지 아는가 확인한 다음 대충 둘러댈 생각 말고. 네 말에 담긴 진실은 내가 알아서 판단하겠다.”
쉽게 안 넘어와 주네 역시. 나는 마음속으로 짧게 혀를 차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결국 정면돌파뿐인가. 여기서 괜히 머리를 굴리려다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의 틈을 찔리면 정면돌파 때보다 훨씬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카디쇼의 몸 상태가 특별하다는 건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폭주해서 날뛰던 카디쇼를 제압한 것도 저니까요.”
“…역시 흐릿하게 떠오르던 패배의 기억은 마르낙, 네가 한 것이었나. 그럼 펄리는 어떻게 내 몸 상태를 알고 있었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곰곰이 고민한 끝에 생각해보니 이건 내가 책임질 영역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곧, 나는 빠르게 결심했다.
이건 무조건 펄리를 팔아야겠다.
펄리에게 마음속으로 작게 사과한 다음 입을 뗐다.
“그야 다 죽어가던 카디쇼를 개조한 건 펄리가 후원하던 사람이니까요.”
“…뭐?”
“악신의 숭배자가 음모를 꾸미는 곳인 줄 알고, 카디쇼는 그곳으로 쳐들어갔었고 그곳의 연구는 일단 첫눈에 보기엔 무척이나 오해를 사기 쉬운 형태였던 턱에 큰 오해를 하고 날뛰다 펄리네에게 당신은 제압당했던 겁니다. 꽤나 만신창이인 상태로요. 정확히는 다 죽어가는 상태였다더군요.”
그녀는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날뛴 것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날 실험체로 쓴 건가?”
“그럼 아마 아직 정신도 못 차린 채로 시험관 속에 갇혀 있었겠죠. 당신의 신체개조는 전적으로 다 죽어가던 당신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나 펄리가 당신이 떠나겠다는 걸 막아 세운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죠. 카디쇼, 당신은 당신의 자유의지로 저희 곁에 남아있던 겁니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며 카디쇼를 마주 보았다.
“다시 한 번만 돌이켜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저희가 정말 실험체에 대한 감시 삼아 당신 곁에 있던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디쇼는 아무런 말 없이 저벅저벅 내 옆에서 걸을 뿐이었다.
‘살해…?’
‘먹혔나…?’라는 어머니의 한마디.
나는 제발 내 진심이 카디쇼에게 닿길 바랐다. 아직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지도 않은 이 순간에 굳이 새로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 특히나 내가 아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건 더욱 싫었다.
생각보다 긴 침묵 후에 카디쇼는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결국 제대로 된 답을 들으려면 마르낙, 네가 아니라 펄리에게 묻는 수밖에 없겠군. 네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펄리에게 건너 들은 것에 가까우니.”
일단은 내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일단 펄리를 찾을 때까지 협력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아무래도 마르낙 네 옆에 있는 게 가장 빨리 펄리는 찾는 방법 같으니.”
그녀는 잠깐 꿈틀거리는 촉수로 이루어진 입을 달싹거리며 고민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이 상태에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은 모르나? 이대론 아무래도 괴물이라 오해받기 딱 좋은 것 같다.”
나도 아는 게 딱히 없었다. 애초에 카디쇼가 저런 모습이 될 수 있었는지조차 몰랐으니.
“저도 딱히 들은 이야기는 없군요. 그런데 그 모습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카디쇼는 수도 중앙에서 날뛰고 있는 스승님과 하바스를 힐긋 보더니 짧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저 하바스랑 똑같이 생긴 자와 한바탕 싸우다 죽을 위기에 처했더니 이런 몸이 돼서 정신을 차렸다는 것.
“고생하셨군요.”
“제일 큰 고생은 그 뒤로 다른 사제들을 피해 다니는 것이었지. 이런 몸 상태로 그들과 마주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야 뻔하지 않은가.”
전신이 꿈틀거리는 촉수로 이루어진 여성이라니. 나라도 지금의 카디쇼를 길가에서 마주쳤다간 바로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에 대비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원래 모습으로 못 들어온다면 옷이라도 챙겨 입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마르낙 네 말이 맞다.”
마침 상가로 보이는 이 거리엔 사람 하나 없는 데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옷 한두 벌 정도는 가져가도 괜찮겠지.
우리는 일단 가까운 옷가게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카디쇼가 입을 커다란 로브를 하나 챙겼다. 카디쇼는 내가 건넨 로브를 뒤집어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더니 다른 가게들을 이리저리 들쑤셔서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붉은 가면을 구해와서 얼굴에 갖다 댔다.
“그 가면, 고정하는 끈이 없어 보이는 데 괜찮습니까?”
“고정할 거라면 이미 있다.”
그녀가 얼굴에 붉은 가면을 갖다 대자 그녀의 얼굴에서 뻗어 나온 작은 촉수 몇 가닥이 가면에 작은 구멍을 뚫고서는 그 구멍을 통과해 그녀의 얼굴에 가면을 단단히 고정했다.
카디쇼는 변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텐데 마치 제 몸처럼 촉수를 쓰고 있었다. 아니, 정말 자기 몸이니 제 몸처럼 촉수를 쓰는게 맞나?
카디쇼는 로브의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쓰고는 내게 물었다.
“어떤가?”
“솔직히 굉장히 수상해 보입니다.”
저렇게 로브를 꽁꽁 둘러싸고 수상해 보이는 가면까지 쓰고 있으니, 진짜 누가 봐도 오늘 수도에서 일어난 사건의 배후처럼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처럼 보이긴 하군요.”
“…그래.”
카디쇼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선 시집은 다 갔군. 얼굴이라도 반반할 때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아예 촉수 괴물이 되어버리다니…”
“다 잘 해결될 겁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제가 펄리에게 말해서 반드시 카디쇼를 어떻게든 원래 몸으로 되돌려놓으라고 하겠습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예?”
붉은 가면의 눈구멍 틈 사이로 진한 안광이 번뜩였다.
“내가 원래 몸으로 못 돌아가면 네가 책임질 수 있냐는 거다.”
성큼성큼 다가온 카디쇼가 내 코앞까지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기묘한 위압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질 치고서야 겨우 대답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해보겠습니다.”
“기억하겠다.”
짧게 대답한 카디쇼는 내 대답이 퍽 만족스러웠던 것인지 방금까지 풀 죽었던 모습이 전부 거짓이었던 것처럼 허리를 쭉 폈다.
“그럼 일단 우리는 뭘 하면 되지?”
“그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거리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겁니까?”
“…”
잠깐 침묵한 카디쇼는 조금 처진 목소리로 말을 두런두런 꺼냈다.
“지금은 그쳤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그 비에 맞은 사람들은 서로를 괴물이라 부르며 죽여댔지. 그렇게 누군가 죽어 나자빠지면 붉은 비가 그 시체를 녹여버렸다. 그렇게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
역시 신의 그릇이 있던 방으로 끊임없이 쏟아지던 붉은 액체의 정체는 의식의 제물들이었나.
나는 카디쇼를 따라 구한 로브를 몸에 둘렀다. 어디에 적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백색의 내 사제복은 너무 눈에 띄는 표적이었으니.
“일단, 리베라티오의 선지자는 스승님께 맡겨두고 우리는 다른 일행들부터 찾도록 하죠.”
펄리는 그릇에 들어가며 내게 가봐도 좋다고 한 거로 보아 아마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할 방법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어머니의 성물도 챙긴 마당에 이제 다키아네만 찾아내면 소기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한 셈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희생 없이.
“좋다.”
카디쇼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하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르낙, 너도 들리는가?”
“예.”
발소리, 일련의 발소리가 우리가 있는 장소로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 눈빛을 교환한 다음 발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가게를 나서 거리로 나왔다.
수는 어림잡아 네다섯 정도. 거리의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로브를 쓴 남녀의 무리는 우리를 보더니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카디쇼와 나를 보더니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너희도 살아남았나!”
너희도?
난생처음 보는 사내는 마치 나와 카디쇼를 오래 알고 지내기라도 한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카디쇼에게 눈짓하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들의 장단에 맞춰주면서 저들이 누구인지 정보를 긁어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는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운이 좋았다.”
“그래, 운이 좋았지.”
카디쇼가 내가 말하기 무섭게 추임새를 넣어 맞장구를 쳤다. 나는 눈앞의 무리를 눈으로 관찰하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어디로 가긴! 은신처가 붕괴하는 바람에 그곳에 있던 모든 게 수도로 튕겨 나온 이상 우리가 해야 할 건 정해져 있잖나? 수도로 튕겨 나왔을 ‘신의 그릇’을 되찾아 하던 의식을 마저 진행해야지!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야. 호를루님이 멀쩡히 계셨으면 은신처가 붕괴할 일은 절대 없을텐데…”
역시 리베라티오 소속이었나? 그런데 왜 우리를 동료로 착각한…
나는 누구보다도 수상하게 가면을 쓰고 로브를 푹 눌러쓴 카디쇼를 보자, 어째서 저들이 우리를 리베라티오 소속으로 오해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하긴 살아있는 사람이 대충 다 죽어버린 거리에 로브를 눌러쓰고 다닐 자들이라면 리베라티오밖에 없겠지.
쓸데없이 순진하게 나를 반기는 이들을 보며 나는 슬쩍 운을 띄웠다.
“혹시 은신처에 침입했던 은발의 마법사는 보지 못했나?”
“아, 그 여자? 우리는 지원요청을 듣고 그 여자가 있던 쪽으로 지원을 하러 가던 중에 은신처가 붕괴하는 바람에 실제로 보지는 못…”
퍽.
내게 대답하던 남자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무언가에 짓눌려 그대로 곤죽이 되어버렸다. 나는 재빨리 로브를 끌어올려 돌려 비산하는 피와 살점이 얼굴에 튀는 걸 막아냈다.
피가 튀는 걸 막아내고 빠르게 로브를 내리자 눈앞의 사내를 뭉개버렸던 것이 사내 옆에 서 있던 남녀의 머리통을 걷어차서 터뜨려버리곤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절망을 꺼내 내 머리를 노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까앙!!!
검과 금속 각반이 맞부딪히는 충돌로 인한 금속음이 울려 퍼지고 자신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 예상외였는지 여인의 새카만 토끼 귀가 움찔댔다.
나름 익숙한 얼굴의 흑토끼 수인이자 속을 알 수 없는 데스페라시오와 항상 붙어 다니던 여인, 릴리는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녀는 불만이 한가득 담긴 목소리로 투덜댔다.
“너는 그 재수 없는 개자식이잖아! 아니, 네가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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