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65)
265 화 오발탄.
오발탄.
동족? 갑자기 무슨 개소리지?
내가 무어라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격렬한 반응이 내 품속에서 튀어나왔다.
‘살(殺)!!!’
어머니는 지독한 불쾌함을 한 푼도 감추지 않으신 채 괴물을 향해 어디서 감히 되다만 찌꺼기 따위가 제 주제도 모르고 헛소리를 하냐며 일갈했다.
‘살해!’
저딴 미물의 몰지각한 헛소리는 무시하고 당장에 죽여버리라는 한마디.
평소의 어머니보다 배는 격렬한 반응에 나는 오히려 저 괴물이 말한 헛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품속에서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감정.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심각한 모독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분노하고 계셨다.
“알겠습니다.”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한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곳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저 괴물을 살려둘 이유 따윈 내게 단 하나도 없었다.
[동족…이라면…알지…않나…?]그르럭대는 소리와 함께 붉은 괴물이 말했다.
[우리가…태어난…그…순간…함께…느꼈던…바로…그…]다 들어줄 이유 또한 없다. 내 발이 바닥을 디딤과 동시에 나는 빛살처럼 거리를 좁히고서 그대로 절망을 녀석의 머리에 찔러넣었다.
푹.
지독하게 날 선 검날은 단 한 장의 보호구조차 없는 괴물의 미간 정중앙을 부드럽지만,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붉은 액체가 튀고 이마부터 파고 들어간 푸른 검날이 녀석의 뒤통수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괴물의 눈도 코도 없는 붉은 얼굴에 단 하나 있는 구멍인 입이 꿈틀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넌…어째서…읽히지…않지…?]미간에 박혔던 절망을 잡아뽑고 그대로 가로로 그어낸다. 푸른 선이 괴물의 목을 스치듯 지나자 붉은 괴물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머리를 날렸으니 다음은 몸을.
목을 베어낸 검의 궤도를 틀어 그대로 녀석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아니, 가르려 했다.
괴물의 어깨를 베어 가르던 검날이 멈췄다. 여태까지 무척이나 부드럽게 베이던 녀석의 살갗과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들어 내 검을 붙잡았다.
역시 머리를 딴 걸로는 안 죽는가.
상정 내의 변수. 그대로 괴물의 가슴팍을 걷어차며 검을 잡아뽑았다. 억센 근육이 내 검, 절망을 끈덕지게 붙들고 늘어졌지만, 힘으로 잡아 뽑자 녀석의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나가며 검이 빠져나왔다.
베어서 죽이긴 쉽지 않겠네. 이런 종류의 생명체는 베어내기보단 좀 더 강한 화력이 필요했다. 내 의지에 화답하듯 검은 이모탈리움이 내 오른손을 뒤덮고 손등에서 포구가 튀어나왔다.
콰아앙!!!
마력포가 토해낸 빛이 사라지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녀석의 상반신에서 떨어져나온 붉은 양팔이 바닥을 굴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덩그러니 남은 괴물의 하반신을 옆으로 걷어차 벽에 처박았다.
고요했다. 주변이 지독하리만큼 고요했다.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에 내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냈다.
내 등 뒤에 그 수다쟁이 데스페라시오가 있을 터인데, 그 자식이 여태 한마디도 안 하는 게 말이 되나? 아니, 말이 안 됐다.
찰나의 시간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뒤를 봐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정면을 계속 보는 것이 맞나?
사방이 적막한 지금, 내 코는 저 괴물이 나타날 시점부터 이 도시에 내려앉은 지독한 혈향 때문에 반쯤 망가진 상태였다. 기이하게도 이 혈향을 맡고 있으면 다른 냄새를 전혀 맡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가장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감각은 바로 시각.
인간의 시각은 홀로 모든 위협을 파악하기엔 그 각도가 너무나 좁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영원히 앞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뒤를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야 한두 방 먹는다고 해서 쉽게 죽는 몸도 아니었고.
고개를 돌리자 처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열심히 바닥을 구르고 있는 데스페라시오였다. 그의 뒤를 쫓는 붉은 괴물이 보이는 것만 해도 최소 셋. 괴물들의 연계에도 데스페라시오는 용케도 간신히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피한다기보다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것에 가까웠지만.
역시나 저 괴물들이 이곳으로 향하는 소리를 차단한 것인지 내 눈앞에서 괴물들이 이곳저곳을 부숴대고 있음에도 내게는 단 하나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저대로 죽어도 별 상관없지만, 진짜로 당장 죽으면 살짝 곤란하니까 도와줄까.
데스페라시오치고는 잘 피하고 있었지만 결국 신체 능력의 차이 탓에 따라잡혀 한 괴물에게 얻어맞기 직전, 내가 집어던진 돌조각이 정확하게 괴물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다시 한번 바닥을 데굴 구른 데스페라시오는 그제야 내가 있는 방향을 보더니 내게로 달려오려다 반대로 튀기 시작했다. 그 불길한 동선에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를 다 가리는 거대한 붉은 살덩이.
콰앙!!!
팔로 막아 충격을 최소화했지만, 그 반작용으로 몸이 붕 뜨는 것까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내 몸은 허공을 날아 벽 몇 개를 부숴 먹고 나서야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몇 번 굴러 충격을 최소화하고 자리에서 튕겨 일어서니 아까 내가 분명 완전히 날려버렸던 붉은 괴물이 고개를 까딱이며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제…알았다…너는…동족이…아냐…깜박…속아…넘어갔다…]“전 속인 적 없습니다. 그쪽이 혼자 착각했지.”
[하지만…어떻게…우리를…속였지…?]괴물과 정상적인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지만 일단 침착하게 말을 던졌다.
“목적이 뭡니까?”
녀석은 어떻게 다시 나타났지? 재생? 아니, 재생이라기엔 녀석의 등장이 뭔가 부자연적이었다. 녀석은 갑자기 하늘에서 다시 떨어지기라도 한 듯 짠하고 나타났다.
[우리의…애원은…그…누구에게도…닿지…않았다…]저 녀석 자체는 그리 무섭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여태까지 상대해온 상대들에 비하면 저 괴물은 그다지 강한 편에 속하지도 않았다.
[우리가…누구에게도…구원받지…못했듯…그…누구도…구원받지…못하리니…]단지 원하는 대로 소리를 통제하고 다른 인간을 감염시키는 능력이 굉장히 귀찮았을 뿐.
재생능력이 있는지 한 번만 더 시험해볼까. 좋아.
결정은 빨랐고, 내 몸은 이미 녀석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절망의 푸른 검날이 번뜩이고 붉은 괴물의 몸은 8조각으로 갈라져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바닥에 떨어진 녀석의 몸뚱이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다시 붙을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나뒹구는 머리를 짓밟아 터뜨리자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용…없다…]붉은 괴물은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내 뒤에서 건들거리며 서 있었다.
역시 재생능력은 아니었네. 저건 재생이라기보다는 그저 다음 타자가 튀어나온 것과 비슷해 보이는데.
녀석과 싸우면서 느끼는 이 왠지 모를 기시감의 정체를 드디어 알아챘다.
그래, 이런 전투 방식은 그녀와 비슷했다.
펄리, 바로 그녀와.
예전부터 펄리의 인형을 진짜 본체인 줄 알고 부숴버렸지만, 자꾸만 똑같이 생긴 인형이 내 앞에 나타나는 그 일련의 상황이 지금의 이 상황과 너무나 겹쳐 보였다.
그렇다면 이건 펄리가 그릇을 차지한 영향일까? 그게 아니라면 우연히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이 세계에서 능력을 모르는 미지의 적과 싸운다는 것은 언제나 머리가 너무 아픈 일이었다.
생각이 길어졌지만, 그 누구도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내가 프리디야 스승님처럼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이런 사소한 고민 따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주변을 살피니 데스페라시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당장 주변에 곤죽이 된 녀석의 시체가 없는 거로 보아 어떻게든 잘 도망친 거겠지.
펄리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도 무한하지는 않을 테니 죽이고 또 죽여보는 수밖에 없나.
자리를 박차고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녀석은 벌써 두 번 죽어봤다고 내 움직임이 조금은 익숙해진 듯 여태까진 반응도 못 한 채 죽은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내 움직임에 맞춰 절망의 궤적에 자신의 오른팔을 들이밀었다.
푸른 검날과 딱딱하게 굳은 녀석의 오른 팔뚝이 맞부딪히던 그 순간.
은은한 빛과 함께 내 품속에서 어머니가 튀어나왔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중에서 한 바퀴 구른 어머니는 빛살 같은 움직임으로 아끼시는 애총, 학살자를 꺼내 드시더니 서슴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기셨다.
‘살(殺)!!!’
약실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학살자가 찰나의 순간에 여섯 발의 탄환을 토해냈다. 탄환들은 정확하게 괴물의 팔다리를 파고들어 녀석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붉은 핏덩이 괴물을 향해 떨어지던 어머니는 공중에서 학살자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괴물의 이마를 짚었다.
‘살햇!!!’
어두운 암녹빛이 일순 어머니의 하얀 손에 감돌자 핏빛 괴물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끈덕지게 내려앉아 있던 적막이 깨져나갔다.
쾅! 쾅! 쾅!
“꺄아아아아악!!!”
“살려줘!!!”
“이, 이 괴물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빠르게 움직이는 발소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곳저곳 건물이 부서지는 소음. 그 외의 온갖 잡음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답답한 적막이 완벽하게 깨지고 이제는 반갑기까지만 온갖 소리가 내 예민한 청각을 간질여왔다.
핏빛 괴물의 능력을 단숨에 깨버린 어머니는 학살자의 총구를 후하고 부신 뒤 멋들어지게 한 바퀴 돌리시고는 나를 향해 씨익 웃으셨다.
‘살해.’
좀 멋지냐는 한마디. 나는 어이가 없어 어머니를 향해 물었다.
“대체 뭘 하신 겁니까?”
‘살해살해.’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신 대답의 뜻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나도 몰라.’
“어머니가 다 하셔놓고 정작 어머니가 모르시면 어떻게 합니까.”
‘살해!’
그냥 가만히 보니까 왠지 될 거 같아서 해봤더니 됐다는 한마디. 솔직히 무척 어머니다운 대답이셔서 나도 대충 납득하고 말았다.
사실 지금 ‘어떻게’가 중요한 상황은 아니긴 하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미뤄보아 어머니 덕에 당장 저 본체 괴물의 능력 자체는 조금 망가진 것 같았으나 녀석이 만들어낸 괴물들 자체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괴물의 몸을 툭 하고 찬 뒤 어머니께 물었다.
“이 녀석은 이제 완전히 죽은 겁니까?”
‘살햇…?’
‘아마도…?’라는 대답.
일단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낫겠네.
어머니는 내게 대답하시면서도 목에 맨 동전 주머니에서 탄환을 하나하나 꺼내 학살자를 꼼꼼히 재장전하셨다. 듣기 좋은 철컥 소리와 함께 여섯 발의 탄환을 다 장전하자 어머니는 학살자를 다시 한번 빙글 돌리시더니 나를 향해 방긋 웃으셨다.
‘살해!’
이제 나머지 놈들을 사냥하러 가자는 한마디. 방금 느끼신 손맛이 아주 짜릿하셨던 건지 어머니는 한동안 다시 내 품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으셔 보였다.
잠깐 다시 품으로 돌아오시라고 어머니를 설득하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괴물들의 신체 능력 자체는 충분히 내가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라 굳이 어머니께 돌아오라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당장 저 표정만 봐도 품으로 돌아오라 하면 완전히 실망하고 축 처지실 게 분명했으니.
나는 어머니를 향해 미소지었다.
“가시죠. 사냥하러.”
‘살해!’
***
우리는 일단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으아아아아!”
“괴, 괴물이야!!!”
“사제님! 사제님이 오셨다!!!”
“사제님! 저기입니다! 저 문 너머에 괴물이 있습니다!!!”
비명을 따라 달린 끝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살햇!!!’
어머니는 사람들의 외침을 듣자마자 날랜 초식동물처럼 내달리시더니 닫힌 문을 벌컥 여시고는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셨다.
학살자가 불을 뿜고 순식간에 여섯 발의 탄환이 표적을 정확하게 파고들어 적중했다.
‘살해앳?!’
굉장한 당황이 담긴 외침.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떨리는 눈으로 내 눈치를 힐긋 보더니 고개를 돌려 날 외면했다.
진짜 왜 저러시지?
불길할 예감에 나는 빠르게 걸어가 문 너머를 보았다.
문 너머엔 총에 맞은 촉수 괴물이 있었다. 그래, 핏빛 젤리 같은 괴물이 아니라 검붉은 촉수로 이루어진 괴물.
바로 우리의 동료, 카디쇼가 어머니의 총에 맞은 채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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