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72)
272 화 처리 수단.
처리 수단.
…살았다.
비록 내장이 대충 다 썩어버려 몸 안 어딘가가 텅 빈 느낌이기는 했지만, 한고비 넘겼다는 안도감이 너무 달콤한 탓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살햇!!!’
당장에 마르낙한테서 떨어지라는 어머니의 외침. 나는 어머니가 방방 뛰시는 와중에도 내 품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카디쇼를 잠깐 그대로 놔두었다.
솔직히 진짜 설득이 되려나 싶어 마음속으론 몇 번이고 흔들렸었지만, 어찌저찌 잘 해결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좀 진정된 것인지 카디쇼가 알아서 내 품에서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믿는 게 아니다. 마르낙.”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카디쇼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저 잠깐의 유예를 두고 널 지켜보겠다는 것일 뿐.”
그야말로 츤데레의 정석 같은 한마디에 나는 비로소 상황이 나름 끝맺어졌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껏 지켜보셔도 됩니다.”
“…그래.”
짧게 답한 카디쇼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싸울 수 있겠나?”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잠깐 눈을 감고 내 몸 상태를 살폈다. 썩어버렸던 내장은 부패의 문을 해제한 뒤로 빠르게 재생을 해나가고 있었다. 역시나 최대한 카디쇼의 권능이 담긴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그녀의 봉부터 쳐낸 게 유효했다.
신성이 담긴 공격에 얻어맞지만 않으면 내 몸이야 웬만한 괴물 저리 가라 할 만큼 빠르게 재생하니까.
“쿨럭.”
멀쩡한 장기가 돋아나면서 썩어버린 찌꺼기가 다시금 내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헛기침하며 바닥에 내장 조각을 뱉어내자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카디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지켜보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싸울만한 몸 상태가 아닌 거 아닌가?”
나는 씨익 웃었다.
“누가 보면 제가 맞기라도 한 줄 아시겠군요. 생각해보십시오. 카디쇼. 사실 저는 몇 대 맞지도 않았습니다. 맞는 역할은 주로 카디쇼가 했지요.”
개싸움으로 몰고 가면서 마음껏 두들겨 팬 쪽은 바로 나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방금 전투에 대한 내 평가는 99대1로 바로 내 판정승이었다.
“솔직히 제 승리라고 봐도 무방한 거 아닙니까?”
카디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인정 못 하겠다만? 사실 나는 어느 정도 손속에 여유를 너를 상대했다. 마르낙.”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도 손속에 여유를 엄청나게 많이 뒀었지요.”
“방금 바닥에 네가 쓰러졌을 때 내가 일격만 가했어도 너는 완전 빈사 상태였다.”
“근데 못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제가 이긴 셈이지요.”
“…”
잠깐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며 눈싸움을 하던 우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카디쇼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누가 우위인지 제대로 알려주도록 하지.”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 가아아아아아아악!!!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교차하는 포효. 미묘한 대지의 울림에 우리는 무언가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카디쇼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래. 처리해야 할 게 남아 있었군. 마르낙. 가자.”
그녀는 지체없이 자리를 박차고 붉은 거인이 있을 방향을 향해 뛰쳐나갔다. 나는 카디쇼의 뒤를 따라가려다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분에 잠깐 발을 멈췄다.
저거 말고도 잊고 있던 게 하나 더 있는 거 같은데. 뭐였지?
“…흐응.”
등 뒤에서 들려온 콧소리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또 하나의 존재를 마주했다.
쫑긋거리는 한 쌍의 검은 토끼 귀, 릴리가 저 멀리 먼저 달려가는 카디쇼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내게 하도 뾰로통하게 구는 통에 당연히 붉은 거인의 처리는 하지도 않고 카디쇼랑 치고받은 나한테 잔뜩 뿔이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저 표정을 보니 나한테 화는 티끌만치도 나지 않은 듯했다.
“저건 말이 안 되는데.”
“뭐가 안됩니까?”
릴리는 새카만 눈을 데굴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안 되긴 저 촉수 덩어리 사제가 네가 흔히들 말하는 악신의 사제인 걸 알면서도 그걸 용납한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카디쇼는 말이 제법 통하는 사람이라 이해해준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말을 짧게 끊어버린 릴리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야. 너, 설마 저 사제들의 대가리에 걸린 주박이 겨우 말 몇 마디로 풀리는 게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야? 그게 쉽게 됐으면 리베라티오가 괜히 음지에서 움직이겠어? 당당히 자칭 선신의 사제 놈들이랑 거래해서 양지의 조직으로 활동했겠지! 데스페라시오가 선신의 사제들이랑 최소한의 대화를 성립시켜보겠다고 실험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거 전부 다 실패로 돌아갔다고!”
그녀는 반쯤 데스페라시오를 자랑하듯이 내게 조잘조잘 데스페라시오가 했던 실험들의 일부를 설명했다.
납치에 성공한 사제를 자살 못 하게 조치를 취한 다음 몇 달에 걸쳐 어르고 달랜 끝에 실패한 실험이나, 악신의 사제 하나를 민간인인 척 사람을 접근시켜 몇 년간 관계를 쌓게 한끝에 정말 조심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 실험.
또는 혹시나 전투를 통한 유대라면 다를까 싶어 갓 순례를 떠난 사제에게 호위로 위장해 합류한 다음 수많은 위기를 헤쳐나간 끝에 순례를 완주한 날 밤에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실험.
그러나 릴리의 말에 따르면 그 모든 실험은 둘 사이에 무슨 관계를 얼마나 깊게 쌓았던 악신의 사제라는 걸 사제들이 인식한 순간부터 그간의 관계는 사라져버리고 그저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사실만이 남을 뿐이랬다.
“…그러니까 저 카디쇼란 여자가 겨우 말 몇 마디에 네게로 향하던 분노를 꺾은 건 지극히 비정상적인 행동이란 거야.”
그런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릴리가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설명했지만, 굳이 내게 와닿지는 않았다. 일단 내 일이 잘 해결됐으니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실패한 이야기쯤이야 내겐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였으니.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던 릴리는 새카만 토끼 귀를 몇 번 더 쫑긋거리고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혹시 몸이 촉수로 변해서 그런가? 데스페라시오가 말하던 주박은 결국 정신이 아닌 육체에 묶여 있던…”
뭐라 더 구시렁거리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 몰라! 애초에 내가 머리를 잘 쓰는 타입도 아니고! 뭐가 됐든 데스페라시오한테 본 대로 말하면 되겠지! 근데 너!”
“예?”
“너는 저 여자가 왜 촉수 덩어리 인간이 된 줄 알아?”
카디쇼가 촉수 덩어리 몸이 된 건 펄리랑 연관이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저 릴리가 나한테 뭐 예쁘다고 꼬치꼬치 설명해줘야 할까 싶었다.
“제가 굳이 설명해줘야 합니까?”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릴리의 이마 위로 굵은 계곡이 파였다. 그녀는 무어라 몇 마디 더 구시렁거리곤 나를 향해 뾰족한 말을 내뱉었다.
“너는 좋아할 구석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재수 없는 개자식이야! 대체 네 동료는 왜 너한테 그리 안달복달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네!”
“원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지요. 보통 이런 문제는 자신이 한 일을 돌이켜 보면 그 답이 나오는 편입니다.”
“…무슨 뜻이야?”
“전부 당신 탓이라는 뜻이지요.”
“뭐, 뭣?!”
나는 릴리에게 피식 웃어주곤 그대로 손을 뻗어 어머니를 품에 안아 들고 카디쇼가 떠난 방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내 등 뒤로 날 선 목소리 하나가 뒤따랐다.
“야!!! 이 개…”
***
– 가아아아아아악!!!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두 거인이 거칠게 충돌하고 튕겨 난 쪽은 놀랍게도 부패의 거인 쪽이었다. 수십 채의 건물을 부수며 바닥을 구른 부패의 거인이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금 붉은 거인을 향한 돌진을 시작했다.
먼저 서서 구경하던 카디쇼의 옆에 착지했다.
“조금 늦었군.”
“릴리를 데리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잠시 후 얼굴이 새빨간 릴리가 씩씩거리며 내 뒤에 착지했지만, 그녀는 카디쇼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내게 별다른 말을 쏘아붙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맞붙는 두 거인을 바라보다 달라진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저거 왜 저렇게 커졌습니까?”
“나도 궁금하던 문제다.”
부패의 거인과 겨우 비슷한 수준이던 붉은 거인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금은 족히 부패의 거인의 1.5배 정도 되는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방금 부패의 거인이 튕겨 나간 것도 이제는 슬슬 체급 자체에서 밀리는 탓이 컸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
다시금 돌진하던 부패의 거인은 가만히 서서 구경하던 나를 발견했는지 갑자기 우뚝 멈춰서고는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비록 말은 서로 안 통했지만 안 봐도 그 뜻은 뻔했다. 빨리 와서 안 돕고 뭐 하고 있냐는 거겠지.
“일단 갑시다.”
‘살해!’
나는 내 목을 껴안으며 찰싹 달라붙는 어머니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자리를 박찼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부패의 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을 찢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는 한 자루의 거대한 녹슨 식칼을 꺼내 들었다.
어째서 여태 저걸 써서 붉은 거인을 토막 쳐놓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여태 안 쓴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부패의 거인이 먼저 움직였다.
한껏 팽팽히 잡아당긴 거대한 팔. 탄을 쏘기 직전의 새총처럼 한껏 잡아당긴 거대한 팔이 그 힘을 풀어놓자 거대한 녹슨 식칼이 허공을 찢으며 날아 그대로 붉은 거인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 가아아아아악!!!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다시금 시작되는 둘의 돌진.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른 부패의 거인은 붉은 거인의 어깨에 틀어박힌 식칼을 향해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다.
–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날 선 포효와 함께 넘치듯이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
쿵! 쿵! 쿵! 쿵!
부패의 거인은 집요하게 거대한 식칼을 계속 내려쳤고, 점점 깊숙이 파고들던 식칼은 마침내 붉은 거인의 한쪽 팔을 토막 내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쿠우웅!
식칼과 함께 떨어진 거대한 팔뚝이 바닥에 나뒹굴자 자욱한 먼지가 치솟았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부패의 거인은 붉은 거인의 몸에 매달린 채 연신 손가락질로 잘려나간 팔을 가리켰다.
나는 어째서 부패의 거인이 우리가 올 때까지 저 녹슨 식칼로 붉은 거인을 토막 쳐놓지 않았던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지에서 끊임없이 몽글몽글 솟아나는 붉은 살점들이 떨어진 팔뚝에 쉼 없이 달라붙었다. 이 간단하지만 쉽게 이해할 순 없는 현상. 어째서 붉은 거인의 덩치가 저렇게 불어났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어딘가에 저 붉은 살점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근원 같은 게 있는가 본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펄리가 들어간 신의 그릇 그 자체였지만, 그것보단 신을 담기 위한 그릇이었던 만큼 펄리가 내게 권하며 말했듯 그녀가 쓰고도 넘치는 힘이 갈 곳을 잃어버리고 폭주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결국 어디서 새로운 에너지원이라도 얻지 않는 이상 유한한 힘일 뿐.
– 가아아아아아아악!!!
부패의 거인을 밀쳐낸 붉은 거인이 잘려나간 절단면을 내뻗자 실 가닥 같은 살점들이 잘려나간 팔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제 원래 자리를 향해 달라붙었다.
붉은 거인이 팔을 어깨를 움직이자 떨어졌던 거대한 팔이 날아가 순식간에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다는 듯이 달라붙었다.
저거 내가 ‘부패의 검’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해 보이는데.
좋아.
수단과 방법을 정한 나는 빙그레 웃었다.
“제게 방법이 있…”
숨이 멎어버릴 듯한 강렬한 신성의 파동. 순간 번쩍인 푸른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잠시 후 무언가가 나를 향해 굴러왔다.
툭. 데구르르.
나를 향해 굴러온 건 반쯤 새카맣게 타버린 사람의 머리였다. 상대적으로 멀쩡한 자투리 얼굴을 보자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이내 나는 이 얼굴 주인의 이름을 떠올렸다.
맹신(盲信)의 하바스, 리베라티오의 여섯 선지자 중 하나.
반쯤 타버린 머리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자 푸르디푸른 아름다운 눈동자가 나를 반겼다.
시리도록 푸른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고 다정한 스승님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질였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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