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82)
282 화 역시 사랑.
역시 사랑.
“케흑?!”
갑작스러운 기습. 배를 걷어차인 충격에 레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너무 강하게 걷어차인 탓에 숨이 안 쉬어졌다.
“레ㅍ…”
빡!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연이 멍청하게 이름을 부르는 틈을 타 페르카의 명치를 걷어찼다. 순간 붕 떠오른 페르카의 몸이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커흑?!”
그야말로 깔끔한 기습. 찰나의 순간에 둘을 제압한 연을 보며 케니는 마음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이야…”
이내 케니가 무어라 연을 칭찬하려 입을 연 그때.
“큭?!”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목을 얇게 긁었다. 케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물러나며 그대로 연을 향해 자신의 창을 내질렀다.
시리도록 푸르고 검은 검. 절망(絶望)과 은빛 창이 교차하고 반 토막 난 창대가 허공을 날았다.
통짜 서리 강철로 만들어진 자신의 창이 두부처럼 잘려 나간 것에 케니가 채 놀람을 표하기도 전에 연이 네 번의 선을 그었다.
튀어 오르는 붉은 피.
팔과 다리의 힘줄이 잘린 케니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포사는 자신의 동료가 쓰러졌음에도 흔들림 없이 연을 향해 전투 도끼를 휘둘렀다.
텅!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잘려 나간 도끼의 머리가 튀어 오르고 연은 그저 다섯 번 절망을 휘둘렀다.
베어낸 것은 목과 팔다리의 힘줄.
바닥에 쓰러진 케니와 포사는 절묘하게 베인 목의 상처를 틀어막느라 단 한마디의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케니는 그제야 이해했다.
연이 말했던 ‘황금 말고 전부.’의 뜻을.
정말 그는 ‘전부’를 원했던 것이었다. 황금 말고 ‘전부’를
“커흑!”
겨우 숨을 고른 페르카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너무나 끔찍했다. 아직도 바닥에 고꾸라져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레페와 완벽하게 제압당해버린 케니와 포사.
연이라는 남자는 쓰레기 같은 배신자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연을 노려보았다.
“황금이 탐나서 벌인 짓이야?”
“아니.”
대화를 시작한 건 전부 명치를 맞은 충격을 해소하기 위함. 페르카는 기회를 살폈다.
지금 케니와 포사. 그리고 소중한 레페를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기회. 그걸 위해서 자신은 반드시 신중해야만 했다.
“그럼 어째서! 이제 다 같이 황금을 들고 돌아가기만 하면 됐는데!”
“황금 같은 건 전혀 필요 없어.”
“그럼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음…”
짧게 뜸을 들인 연이 싱긋 웃었다. 그는 페르카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일단 덤벼봐. 내가 아까 너만 일부러 살살 걷어차 놓은 덕에 너는 상태도 꽤 괜찮을 텐데? 혹시 모르잖아. 네가 멋지게 이 모두를 구해낼 수 있을지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심을 유도하는 건 불가능. 페르카는 말없이 자리를 박차고 그대로 연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연은 가볍게 절망을 휘둘렀다.
텅!
반 토막 난 페르카의 검날이 허공을 날아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연은 비어있는 페르카의 가슴을 걷어찼다. 튕겨 나간 페르마가 그대로 훨훨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페르카는 가슴의 충격을 진정시키고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저 남자, 지금 일부러 봐주고 있었다.
연은 오뚝이처럼 일어난 페르카를 향해 말했다.
“어디 한 번 내킬 때까지 덤벼봐.”
페르카가 쉽게 달려들지 못하자, 연은 바닥에 고꾸라져 켈록대는 레페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
“안 덤비면 이거 밟아 터뜨린다?”
“당장 그 발 치워!!! 이 개자식아!!!”
뒤이어 이어진 일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었다. 페르카는 계속해서 달려들고 연은 그때마다 페르카를 걷어차서 벽에 처박았다.
처박히고, 처박히고, 또 처박힌 끝에 페르카는 결국 모든 힘을 다해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남은 힘을 쥐어짜 내 바닥을 기어 연을 향해 다시 나아갔다.
자신이 멈추면 모든 게 끝날 테니.
연은 기어 오는 페르카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제야 딱 적당히 다져졌네.”
몸을 일으킨 연은 케니와 포사를 질질 끌고 와 한쪽 편에 놔두고는 그 맞은 편엔 헐떡이는 레페를 질질 끌고 와 눕혔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
페르카가 고개를 들어 연을 올려다보자 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연이 절망(絶望)의 끝으로 케니와 포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너랑 동고동락해온 무고한 둘의 목숨이냐.”
푸른 검끝이 그 맞은편으로 옮겨갔다. 그 검끝엔 헐떡이는 레페가 있었다.
“아니면 사랑해마지않는 네 소중한 소꿉친구의 목숨이냐.”
페르카는 악을 썼다.
“왜 이딴 개같은 짓을 벌이는 거야! 이 개자식아!!!”
“역시 갑자기 이러면 조금 당황스럽지?”
키득거리는 연의 웃음이 뒤따랐다. 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페르카를 향해 말했다.
“내가 말이야. 진지하게 너랑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거든?”
연의 손가락이 케니와 포사를 다시 가리켰다.
“무고한 이들의 목숨이냐.”
천천히 움직인 손가락이 레페를 가리켰다.
“아니면 사랑해마지않는 이냐. 이 둘 사이에서 고르는 선택 말이야. 근데 이게 참 어렵더라고. 근데 마침 너와 레페를 만난 거지. 딱 물어보기 좋게.”
흥겹게 말을 끝낸 연이 활짝 웃었다.
“근데 역시 사랑이지? 잘 모르는 사람의 목숨 따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거지? 자, 얼른 말만 해. 말만 하면 네가 사랑하는 레페는 절대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게.”
선택할 수 없었다. 케니와 포사의 배신을 모르는 페르카로서는 절대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흐느꼈다.
“대체,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그러게. 나도 나한테 왜 그러는가 싶더라고. 충분히 이해해. 지금 네 감정.”
연은 키득키득 웃어대며 페르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너도 나처럼 두 눈 딱 감고 선택해보는 거야. 솔직히 쉬운 문제 아냐?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너한테 있어서 둘 중에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무척이나 부드럽고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당장에라도 선택해버리고 싶을 만큼.
“페르카, 양손 가득 황금을 품에 안고 네가 사랑해마지않는 소꿉친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야. 저기 널브러진 잘 알지도 못하는 둘은 그냥 내버리고 말이지.”
“…”
“자, 어서 말해줘. 네 본심을.”
“나는…”
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나는?”
“나는…선택 못 해…”
입가의 미소가 사라진다. 연은 감정 없는 눈빛으로 페르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네가 아직 실감이 덜 됐나 본데. 내가 도와줄게. 아마 내가 너한테 약간의 시간제한을 주면 너는 지금보다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거야.”
연은 그대로 절망을 들어 올렸다. 페르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저 미친놈은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하기 위해 레페에게 치명상을 입힐 작정이었다.
“자, 잠깐만!”
“왜? 지금 바쁘니까 조금만 있다가 말 걸어줄래?”
페르카는 이를 악물고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정교하게 목이 베여 말을 못 하는 케니와 포사가 페르카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결심을 굳힌 페르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선택할게. 그러니까 멈춰.”
연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환히 웃었다.
“그래. 역시 사랑이지? 사랑해마지않는 소꿉친구 맞지?”
마침내 페르카는 떨림 없는 눈으로 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반드시 누군가 죽어야 하는 거라면, 대신 나를 죽이고 저 셋을 살려줘. 그게 내 선택이야.”
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 연의 귓가로 차분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언제나 제시된 선택지와는 다른 길이 있는 법이라고.
연의 시선이 페르카에게서 떨어져 그 너머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에게로 향했다.
옛적 자신이 입고 다니던 새하얀 유지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 다만, 그는 얼굴을 포함한 전신이 새하얀 붕대투성이였기에 그가 누구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연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환영을 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든 상투스의 무덤을 찾아간 그날.
그는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자신이 바로 ‘상투스’라고 소개하면서.
당장에 잡아 족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불가능했다.
자신을 상투스라고 자칭하는 저 남자는 오롯이 연에게만 보이는 데다 그에겐 어떠한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다만, 그건 상투스라고 자칭하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 인지라 그는 그저 가끔씩 나타나 지금처럼 연에게 자꾸 말을 속삭여대기만 했다.
– 사실은 당신도 이 둘을 구해주고 싶어서 움직인 거지 않습니까? 저 금품에 눈이 멀어버린 자들로부터 말입니다. 이제 페르카가 대답도 했으니, 편하게 본심대로 둘을 구해주시면 됩니다. 아주 편하게요.
귀찮게 자꾸 착한 말들만을.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연은 자칭 ‘상투스’의 속삭임을 무시하며 페르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그런 자기희생을 한다고, 내가 셋을 살려줄 것 같아? 좋아. 네 선택을 결과를 보여줄게. 잘 감상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연이 절망을 내리그었다. 케니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연은 다시 한번 절망을 내리그었다. 포사의 머리가 바닥 위로 떨어져 굴렀다. 페르카의 바로 옆으로.
진득한 피가 페르카의 얼굴에 묻었다.
페르카는 떨리는 눈으로 연을 올려다보았다. 연은 페르카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 연의 손에 들린 절망이 다시 한번 고개를 쳐들었다.
페르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서, 선택할게! 레페! 레페를 선택할게! 제발 레페를 죽이지 마!!!”
절망이 멈추고 연이 웃었다.
“하하하하하! 거봐! 잘할 수 있잖아! 잘할 수 있으면서 아까는 왜 그랬대? 역시 사랑이지? 나랑 상관없는 무고한 이들이야 몇이나 희생되든 전혀 상관없잖아. 사랑은 언제나 무엇보다 무거운 법이니까!”
연은 큰 선택 하느라 고생했다는 듯이 페르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알약을 두 개 꺼내더니 페르카와 레페의 입에 하나씩 물려주었다.
“삼켜. 회복에 좋은 약이야. 먹고 한숨 푹 자면 아픈 게 싹 가실 거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페르카에게 없었다. 연이 건넨 알약을 받아 삼키자 졸음이 몰려왔다. 떨어지는 눈꺼풀에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페르카는 까무룩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레페와 페르카가 모두 잠들자, 연은 여전히 시야 한구석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자칭 ‘상투스’를 향해 말했다.
“나는 말이지…”
연은 절망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연의 시선이 잠깐 페르카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내민 선택지를 모두 거절했었던 자에게로.
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연은 기지개를 켜며 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처럼 의미 없는 자기희생 따윈 절대 안 할 거야. 당당히 살아서 모든 걸 다 되찾을 거라고.”
이내 새카만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던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진짜 단 하나도.”
상투스가 입을 열었다.
– 분명 다른 길이 있을 겁니다.
“듣기 싫으니까 오늘은 그만 꺼져.”
상투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연은 광장에 홀로 남았다.
그는 품속에서 유적의 열쇠를 꺼내 페르카의 앞에 던지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연은 자리를 지켰다. 둘이 정신을 차리기 직전까지.
***
레페와 페르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둘은 연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둘에게 남은 건 이미 죽어버린 케니와 포사의 시체와 황금뿐이었다.
유적의 출구는 황금 나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렇게 레페와 페르카는 양손 가득한 황금과 함께 교역 도시 미세레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페르카는 연이 놓였었다는 ‘선택의 기로’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연, 그 사내가 사랑을 고르며 버렸던 선택지는 바로 교역도시 ‘미세레’ 그 자체였다.
레페와 페르카, 둘은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는 ‘미세레’였던 폐허를 그저 멍한 눈으로 바라만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