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95)
295 화 불 마법.
불 마법.
내가 외치기 무섭게 솜니아가 잽싸게 이것저것 챙기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론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던 거로 아는데 언제 저렇게 짐을 만들었지?
페르카랑 레페한테 돈을 좀 빌리기라도 한 건가.
“뭐해? 짐 안 싸고.”
솜니아랑 다르게 레페랑 페르카는 내 눈치만 보며 당장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둘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페르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황이 많이 위험해요?”
“그렇지? 아마 오늘 꽤 많이 죽을걸? 근데 이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멜 그놈 마음에 달린 거라 솔직히 얼마나 위험한 건지 딱 말해주진 못하겠는데.”
페르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옆에 서 있던 레페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여기 사람들한테 경고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번에 도망치라고 하실 때는 그냥 연 씨가 사고 칠 예정이라 도망치라는 줄 알고 바로 도망쳤지만,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갈 걸 알면서 저희만 딱 몸을 빼기가 좀 그래요…”
“안 빼면? 지금 당장 밖에 나가서 다 죽을 테니 도망치라고 하면 잘도 너희 말대로 도망치겠다. 응?”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나를 바라보는 레페의 연녹빛 눈동자에는 쉬이 꺾이지 않을 고집이 담겨 있었다.
이 주제도 모르는 철부지들을 어쩌면 좋지.
나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도는 무슨 시도? 어차피 잘 들어먹지도 않을 일에 목숨을 걸 이유가 있어? 너희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딱 잘 들어. 지금 이 상황은 코렌틴의 경우와는 전혀 달라.”
손가락을 하나 펼쳐 녀석들에게 내밀었다.
“우선 첫 번째로 코렌틴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하늘에 해가 떠 있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사람들이 다 깨어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당연히 이상한 일이 벌어질 낌새가 보이면 알아서 다들 재주껏 튀겠지. 그럼 어떻게 될까?”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쳐 내밀었다.
“자연히 혼비백산해서 서로 도망치느라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목에 대량의 인파가 몰리겠지. 여기서 너희 둘한테는 매우 곤란한 문제가 생기게 돼. 우리 지금 빈손으로 여기 왔어? 가방에 황금을 한가득 가지고서 리어카까지 끌고 왔지. 자연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리면 어떻게 될까? 너희가 짐을 온전히 가지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레페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희가 리어카를 끌고 다른 사람들이 몰린 길로 빠져나가요? 코렌틴에서처럼 연 씨가 벽을 부숴주시고 거기로 빠져나가면 되잖아요.”
쓸데없이 예리한 녀석.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완전 바보는 아니었네.
“나는 바쁠 예정이야.”
“그럼 미리 부숴주고 가시면 안 돼요?”
“시간 없는데.”
“시간 많으시잖아요. 딱 봐도 굳이 안 껴도 되는 일에 한 발 끼어보려고 하시는 거 같은데요.”
아니, 얘 언제부터 이렇게 또박또박 말대꾸하게 됐지? 잘 컸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안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냥 내 말 들어. 괜히 내 말 안 들었다가 개죽음당하지 말고. 너희 수준이면 남아서 괜히 뭐 해보려다가 휩쓸려서 죽고 말걸. 아직 너희 수준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문제야 이건.”
“할 수 있어야만 하나요?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해보려는 거죠.”
멋진 말이었다. 멋지긴 정말 멋진 말. 하지만 이 녀석들은 잃는다는 게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질 못했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 게 무엇인지는 더욱 모르고 있었다.
“이 철부지 같은 놈들.”
빡!
내게 얻어맞은 페르카가 쓰러지고 레페의 두 눈이 커졌다. 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다시 한 번 손날을 휘둘렀다. 레페는 재주껏 피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페르카와 별 다를 바 없었다.
풀썩.
레페가 바닥에 쓰러지고 나는 짐을 다 챙겨 든 솜니아를 향해 말했다.
“얘네가 푼 짐도 좀 싸놔 봐. 밑에 리어카에다가 실어두고 오게.”
“…응.”
솜니아는 눈치껏 빠르게 레페와 페르카의 짐을 착착 정리해나갔고 나는 그 모습을 힐긋 보곤 둘을 대충 집어 들어 여관 바깥에 맡겨둔 리어카에다가 싣고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제법 손이 빠른 건지 솜니아는 그 잠깐 사이에 둘의 짐을 다 싸뒀고, 황금으로 묵직한 두 짐까지 챙겨 내려와 기절한 페르카와 레페 옆에다 실어놓았다.
“너도 타.”
“…응.”
솜니아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자기 짐과 함께 리어카 위에 올라탔다. 나는 리어카를 끌기 시작하며 격렬한 신성이 느껴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벌써 시작됐네.”
레페랑 페르카가 알아서 도망쳐줬으면 좀 더 빠르게 하멜을 사냥하러 갈 수 있었을 텐데.
과연 이 둘은 알까.
자신들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게 됐단 것을.
뭐, 내가 일찍 도착했다고 해서 더 적게 죽으리란 법도 없긴 했지만. 내가 사람 목숨 구하러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바닥에 떨어진 돌 몇 개를 주워 ‘부패의 저주’를 심고는 그대로 대충 바닥에 흩뿌렸다.
이제,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죽음은 신성이 되어 내게로 수확될 터.
밑준비를 끝마친 나는 짐덩이 셋을 안전한 곳에 두고 오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달달달.
***
“아아아아악!!!”
쥐 떼에 집어 삼켜진 기사들은 죽지 않았다. 그저 산 채로 집요하게 뜯어 먹혀갈 뿐. 버둥대며 하나를 뭉개면 그 빈 자리를 다른 두 마리의 새로운 쥐가 채웠다. 쥐들은 급소를 노리지 않았다. 마치 최대한 고통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부터 차근차근, 아주 잘근잘근 조금씩 씹어먹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와 병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체키타는 침착하게 지휘를 이어나갔다.
“모두 빠져라! 이미 붙잡힌 자들을 구하는 건 포기한다!”
“예!”
체키타의 명령에 따라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애당초 진입한 인원은 소수였기에 서로를 방해하는 일 없이 몰려드는 쥐들을 피해 방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찍찍! 찍찍! 찍찍! 찍찍!
거대한 쥐의 파도가 그런 도망자들을 집요하게 뒤쫓았다. 하지만 쥐들은 결국 쥐일 뿐. 작정하고 달리는 기사와 병사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병사까지 저택을 빠져나오고, 잠시 후 쥐들이 열린 문을 통해 쏟아져나왔다.
체키타는 그 광경을 보며 소리쳤다.
“부어라!!!”
‘촤악!’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끓는 기름이 쥐들에게 쏟아졌다. 고기가 익어버리는 냄새와 함께 찍찍대는 쥐들의 비명이 잇따랐다.
찌이이이이익!!!
체키타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이곳으로 곧장 온 게 아니라는 듯이 다음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두 번째 기름을 부어라!!!”
“예!”
죽은 쥐들의 사체를 밟고서 좁은 입구로 다시금 쏟아져 나오는 쥐들에게로 펄펄 끓는 기름이 쏟아졌다. 산 채로 익어가는 쥐들의 비명 속에서 마력이 요동치자 자그마한 불티가 튀었다.
화르륵!
자그마한 불씨는 기름을 만나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화염이 되어 저택 안으로 번져나갔다.
체키타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나는 불을 지르라 명한 적 없네!!! 아직 아가씨가 저 안에 있다네!!!”
“아, 시끄러워. 무슨 내가 기름 끓이는 모닥불이야? 끓는 기름 옆에 있으면 옷이랑 피부 전부 끈적해지는 건 알아? 되게 기분 더럽다고.”
타오르는 듯한 선홍빛 머리칼과 그 사이사이 주홍빛으로 몇 가닥씩 물든 머리칼들. 여인은 눌러 쓰고 있던 로브의 모자를 벗더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기름을 데우다 온 탓에 그냥 손바닥이 기름증기투성이가 돼서 끈적했다.
“아, 끈적해서 기분 나빠.”
“저택에 불이 붙었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마법사, 아도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름투성이 손을 대충 로브에 닦으며 대답했다.
“아가씨야 납치해간 놈이 알아서 챙기겠지. 네가 납치해간 놈이 실력자라서 마법사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면 겨우 집에 불붙은 거 정도는 알아서 인질 챙겨서 잘 빠져나와야 하는 거 아냐?”
마치 남 일 이야기하는 떠들어대는 그녀를 보며 체키타는 역시 마법사란 종자들이랑 얽혀서 좋을 일이 없다는 교훈을 되새겼다.
그 연이라는 자가 하도 불길한 소리를 해대는 통에 혹시나 싶어 쥐들을 상대할만한 마법사를 굳이 고용해서 데려온 것인데 안에 아가씨가 있는 저택에 다짜고짜 불을 질러버릴 줄이야.
체키타는 이미 불이 번질대로 번져버린 저택을 보며 아도라의 말대로 하멜이 아가씨를 챙기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쾅!!!
저택의 지붕이 부서지며 살아있는 쥐들의 탑과 함께 하멜과 카니스가 들어가 있는 철창이 치솟았다.
그 광경을 보며 체키타는 처음으로 하멜에게 자그마한 감사를 느꼈다. 불타는 저택에 카니스 아가씨를 내버려 두지 않고 같이 튀어나와 줘서.
체키타는 수신호로 미리 대기시켜둔 궁수들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본래는 하멜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화살로 고슴도치를 만들어줄 생각이었지만 불타는 저택의 꼭대기에 아가씨와 함께 서 있었기에 쏠 수 없었다.
혹시나 그가 죽는다면 아가씨가 들어가 있는 철창을 받치고 있는 쥐 떼가 무너질 테고, 받침이 없어진 철창은 불타는 저택으로 추락할 게 불 보듯 뻔…
“뒈져라!!!”
거친 마력의 유동이 퍼져나가고 사람 몸통만 한 화염덩어리가 하멜을 덮쳐들었다.
콰앙!!!
“대체 무슨 짓인가!!!”
체키타는 경악하며 아도라의 멱살을 붙잡고 윽박질렀다.
“아가씨가 옆에 있었네! 다짜고짜 거기다 불꽃을 던지다 카니스 아가씨가 다치지라도 하면 어쩌려는 건가!!!”
아도라는 늙은 기사에게 멱살을 붙잡힌 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적만 쓰러뜨리면 되는 거 아냐? 애당초 나는 쥐새끼들 부리는 놈 조지자고 해서 따라온 거야. 뭘 자꾸 귀찮게 구하느니 마느니 난리야. 일단 저 쥐 부리는 놈부터 죽이고 나서 살아있으면 겸사겸사 챙기기나 해. 그리고 이거 안 놔? 지금 되게 불쾌하거든? 너부터 죽고 싶어?”
거칠게 마력이 모여들며 아도라의 손아귀에서 마력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체키타는 이를 악물고 아도라를 놓았다.
“만약 아가씨가 다치셨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네.”
아도라는 옷깃을 탁탁 털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노땅이 진짜 정신 못 차리네. 원래 이런 건 위협부터 제거하는 거야. 누굴 구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저거 봐.”
툭. 투두두둑.
타버린 쥐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쥐들의 사체들 사이로 선명한 신성의 헤일로가 반짝이고 하멜이 아도라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마법사라… 귀찮은 걸 데려왔네요.”
***
“마법사라, 운 좋게 제대로 된 걸 데려왔네?”
사도(使徒).
한 신이 동시대에 단 한 명만을 선택해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
신의 총애를 받는 사도들은 그 총애의 증표인 빛나는 헤일로가 등 뒤에 떠 있는 동안에는 이 세계의 그 어떠한 물리적 간섭도 통하지 않았다.
무적에 가까운 사도에게 필멸자들이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
바로 마력과 신성. 거기에 예외적인 수단까지 포함한다면 섭리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달인’ 또한 그 수단에 속했다.
그런 점에서 체키타가 알고서 데려오지는 않았겠지만, 저 붉은 머리 마법사를 데리고 온 건 그에게 있어 유일한 승리의 수를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콰앙!!!
거대한 마력의 불덩이가 폭발하고 몰려든 쥐 떼가 하멜을 대신해 불꽃을 막아내며 죽어 나갔다.
하멜이 다시 한번 손짓하자 요동치며 번져나가는 신성과 함께 그의 손바닥이 갈라지며 새로운 쥐 떼가 쏟아져나왔다.
나는 조금 떨어진 건물 위에서 마법사와 하멜이 치루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실제로 사도를 사냥해보려는 건 처음이기에 무작정 하멜을 기습했다가 실패하기보다는 조금 더 녀석의 능력에 대한 정보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사도를 사냥한다는 건 나에게도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문제였기에 신중해야만 했다.
신성에 취약한 내 육체의 특성상, 그 신성의 정점인 사도들의 공격을 제대로 맞는다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하압!”
붉은 머리 마법사가 대지를 긁듯이 팔을 휘두르고 마력의 불길이 대지를 내달리며 몰려드는 쥐 떼를 불살랐다.
하지만 쥐 떼는 끝이 없었다.
한 무리를 불사르면 두 무리가, 두 무리를 불사르면 세 무리가 다른 쥐들의 사체를 넘어 파도처럼 일어났다.
붉은 머리 마법사는 끊임없이 입술을 달싹이며 새로운 주문을 외어나갔다. 마침내 가장 길었던 주문이 끝나고 여태까지와는 규격을 달리하는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에 떠올랐다.
마법사는 하멜을 향해 광소했다.
“이거면 너도 끝이야! 그만 뒈…”
콰득.
쥐의 파도에서 튀어나온 새카만 선이 마법사를 스쳐 지나가고, 붉은 피가 흩날렸다.
너덜거릴 정도로 뜯겨나간 목의 살점. 붉은 마법사는 피가 쏟아지어 나오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당황한 눈빛으로 하멜을 올려다보았다.
“저건 쥐, 쥐가 아니…”
광소하던 마법사의 목을 물어뜯어 버린 건 쥐가 아니었다.
쥐의 파도 속에서 튀어나와 목을 물어 뜯은 건 바로 새카만 늑대였다.
검은 늑대는 하멜의 발치로 돌아가 그의 다리에 머리를 부벼대며 그르렁댔다. 하멜은 그런 늑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곤 마법사를 향해 웃었다.
“저는 제가 쥐만 다룬다고 말한 기억이 없는데 말이죠.”
“말…투…개…건…방…”
풀썩.
붉은 머리 마법사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퍽.
그와 동시에 하멜의 다리에 머리를 부벼대던 늑대의 머리통이 내가 던진 돌에 맞아 터졌다. 늑대 머리통이 뭉개지며 폭발하듯 터져 나온 피가 하멜의 뺨에 튀었다.
하멜은 당황한 얼굴로 내가 서 있는 건물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나는 녀석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멍멍이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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