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
3 화 두당 은화 서른 닢.
두당 은화 서른 닢.
깔끔하게 묶은 붉은 머리, 하얀 피부 위에 수줍게 자리 잡은 주근깨.
귀스의 용병길드 접수원은 한창때의 아가씨였다.
이건 이 세계가 게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귀스의 치안이 충분히 안정되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용병길드가 용병들에게 철저히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일까?
“사제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깔끔하게 상념을 접었다. 뭐라고 할까. 여태까지 써온 이름을 쓰는 건 제발 나 여기 살아있으니 잡아가 달라는 관종이나 할 짓이었다.
“마르낙. 마르낙이라고 합니다.”
마르낙. 나는 이 캐릭터를 만들 때 정한 이름을 이제야 처음으로 꺼냈다.
접수원은 손에 든 펜으로 서류의 이곳저곳을 채워나갔다. 주로 내 외형에 대한 묘사와 모시는 신에 대한 정보들. 잠시 후, 접수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꽤 미인이네.
“네. 마르낙 사제님.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실래요? 동패 용병패를 만드는 데엔 시간이 조금 걸리거든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접수원이 서류를 들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계단을 걸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봐도 미인. 이 세계는 기이하게도 아름다운 여자가 많았다. 이것도 역시 게임 속 세상이기 때문일까?
‘살해!’
“안 반했습니다. 부패의 어머니시여. 그저 참 곱구나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살해!’
나는 꿈틀대는 여신의 손을 토닥거린 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방금의 접수원은 손가락 몇 개짜리 인간입니까?”
내 가슴주머니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손이 두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 두 개라.
“그렇다면 분명 한가락 하는 사람이겠군요. 아니면 꽤 지위가 높은 인간이거나.”
부패의 어머니께서 펼치신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손가락 1개는 십의 신성.
손가락 2개는 일 백의 신성.
손가락 3개는 일 천의 신성.
손가락 4개는 일 만의 신성.
손가락 5개는 십 만의 신성.
부패의 사제인 내가 신성을 획득하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이었다.
바로 지성체의 죽음을 거둬들이는 것.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저 손가락 두 개짜리 접수원을 죽여서 부패의 어머니께로 올려보낸다면 나는 당장 일백의 신성을 얻을 수 있었다.
뒷감당이 매우매우 귀찮겠지만.
하지만 이 간단한 신성 획득 기준은 꽤나 관대해서 굳이 내가 직접 상대방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만 있다면 얼마든지 부패의 어머니 품으로 되돌려 보내고 신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한동안 공동묘지 근처에서 일거리를 구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공동묘지로 오는 시체들은 내가 수확하기엔 죽은 지 너무 오래된 시체들 뿐이었다.
“마르낙 사제님. 여기 신분증 받으세요.”
어느새 위층에서 내려온 붉은 머리 접수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동패를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패를 받아들며 최대한 경건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마땅한 일거리가 있을까요?”
그렇다. 사제를 사칭한 이상, 내가 신분증을 구할 방법은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병 길드에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지금 땡전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미각을 못 느끼고 꽤 오랜 기간 굶어도 괜찮은 강화인간이긴 했어도 영원히 굶어도 괜찮은 건 아니었다.
“잠시만요.”
접수원은 서류 더미를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유지의 여신님을 모시는 사제님이 하실 만한 일이 여기 어디쯤 있었는데···.”
능숙한 손놀림으로 서류를 헤집으며 접수원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요즘 한겨울 철이라 생각보다 용병 길드 쪽에 일이 별로 없거든요. 그나저나 용병 일을 찾으시다니 ‘순례’ 중에 금전이 떨어지신 건가요?”
“예. 맞습니다.”
순례.
이 게임은 자유로운 선택을 모토로 제작된 게임이라 그런지 대륙에 관여하는 신들이 굉장히 다양했다. 덕분에 각 종교들은 포교에 늘 애를 썼는데, 그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순례’였다.
순례는 단어 그대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제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신의 권능을 베풀며 포교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사제도 사람인 만큼 돈이 떨어지면 돈을 벌기 위해 용병 일을 돕기도 하는 건 꽤 흔한 광경이었고.
“아, 여기 있다! 이거예요. 마르낙 사제님.”
나는 종이를 받아들고는 빠르게 글자를 읽어나갔다. 접수원은 그 모습을 보더니 방긋 웃었다.
“역시 사제님이라 그런지 편하네요. 다른 용병분들 한테는 직접 하나하나 읽어줘야 하는 일이 다반사거든요.”
귀스의 영주가 뿌린 공고. 목표는 산적 혹은 몬스터 퇴치. 최근 귀스를 향하는 농민들 중 실종되는 인원이 미묘하게 늘어나서 내려온 임무.
성공 보수가 이 종이에 적힌 대로면 정찰 후 원인 퇴치 성공시 두당 은화 서른 닢인가. 아무것도 못 잡고 허탕 치고 오더라도 은화 한 닢은 주고.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
빠르게 눈으로 서류를 훑어 대충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접수원을 향해 겸손히 답했다.
“읽지 못하는 것은 그저 다들 기회가 닿지 않아 그런 것이겠지요. 그리 특별한 재주는 아닙니다.”
나는 그냥 여기 떨어지는 순간, 이 세계 글자를 이미 읽고 쓸 수 있었다. 참으로 편한 조건 덕분에 귀찮게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이 일은 출발은 언제 합니까?”
“사제님이 마침 시기가 딱 좋게 오셨어요. 이 건은 내일 바로 출발하는 일이거든요.”
이 접수원이 묘하게 나한테 사근사근한 태도로 구는 건, 다 내가 사제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에서 사제는 지식인 계층으로 일단 사제이기만 한다면 최소한의 교양은 보장된 셈인 데다 다들 그 크기가 다를 뿐 나름의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탓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제를 대함에 있어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힘과 지식 모두를 가진 계층. 그것이 바로 사제였다.
문제는 내가 그 사제 계층 전부가 증오해 마지않는 부패의 사제라는 점이었지만.
나는 접수원을 향해 최대한 친근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보수의 일부를 선금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진짜 수중에 땡전 한 푼도 없었다.
***
접수원에게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거지만, 사제님이라 특별히 선금을 드리는 거고, 아무리 사제님이라도 선금을 받은 이상 내일 출발 시간에 늦으시면 위약금을 물어내야만 한다고 누차 당부를 들은 뒤, 나는 마침내 은화 한 닢을 선금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꽤 말 많은 접수원이었습니다. 어머니.”
‘살해!’
“안 죽일 겁니다. 어머니. 사람이 말이 좀 많을 수도 있지 어찌 그런 이유로 죽이려 드십니까.”
‘살해!’
“안 반했습니다! 자꾸 그렇게 몰아가시면 저 진짜 화낼 겁니다.”
‘뒤뚱거리는 토끼’
곧 여우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은 저 이름은 내가 묵게 될 싸구려 여관의 이름이었다. 식사를 포함한 방값을 동화 열 닢으로 치르고 나니 내 품에는 이제 동화 구십 닢밖에 남지 않았다.
가난하군. 가난해.
뭐가 들어가 있는지 모를 스튜를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역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스튜를 지그시 노려봤다. 온갖 건더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그 모습은 그다지 맛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래, 내게 미각이 있었다면 오히려 이 스튜가 너무 맛없는 탓에 목으로 못 넘겼었을 수도 있잖아.
기계적으로 스튜를 떠넘기며 주변을 관찰했다. 여기저기 모여서 떠들어대는 인간군상.
그에 반해 나는 혼자였다.
약간 울적해지려던 찰나.
‘살해!’
마치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마음이 더없이 단단합니다. 그저 이번에 보수를 받으면 괜찮은 무기를 하나 구할까 고민했던 겁니다.”
스튜가 바닥났다. 나는 그릇을 놓아둔 채 방으로 올라갔다. 약간 동전을 더 쓴 덕에 내가 쓰는 방은 개인실. 딱딱한 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 나는 잠을 청했다.
***
접수원 아가씨가 누누이 강조한 장소인 귀스의 서문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서일까. 나는 누구보다도 집합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건 내가 잠을 그렇게 많이 자지 않아도 괜찮은 몸인 덕도 있었다.
‘살해!’
“제가 빨리 온 겁니다. 어머니. 조금 늦었다고 다 죽이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부패의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성에서 나온 관리가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용병패를 확인하고 출석을 체크했다. 내 이름 위에 줄이 쳐지는 걸 확인한 나는 천천히 물러나 이번 임무의 책임자를 바라보았다.
은패 용병인 중년 남성의 이름은 갈라드. 챙겨 입은 갑옷 위로 두꺼운 털옷을 걸치고 있었다. 노회한 인상이 털옷과 퍽 잘 어울렸고, 관리와 꽤 친근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귀스에서 오랫동안 일한 용병으로 보였다.
이야기를 끝마친 관리가 떠나자 갈라드는 가장 먼저 내게 다가와 웃었다.
“안 추우십니까? 사제님?”
내 복장은 흔한 털옷조차 걸치지 않은 새하얀 사제복 한 벌뿐. 강화인간인 내게 이 정도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털 달린 옷을 살 돈이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제님들의 고아한 정신에는 추위조차 파고들지 못하는가 보군요.”
갈라드는 자신이 사용한 ‘고아한’이라는 단어에 퍽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갈라드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지의 여신님을 모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어떤 권능을 사용하실 수 있는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그가 내게 기대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상처의 악화를 막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갈라드는 퍽 만족스럽게 웃었다. 기대한 권능이 맞아서 다행이라는 표정.
“역시 유지의 여신님을 모시는 사제님다운 권능이시군요.”
정확히는 상처의 부패와 악화를 지연시키는 간단한 능력이었지만, 어차피 나타나는 결과는 비슷하니 갈라드에겐 큰 차이가 없을 것이었다.
갈라드는 일행 한 명 한 명에게 차례대로 말을 걸었다. 모인 인원은 총 열 명. 나는 갈라드가 사람들을 파악하는 동안 부패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손가락 몇 개짜리입니까?”
결과는 평범했다. 저 갈라드가 손가락 한 개 반. 나머지는 반 개에서 한 개정도.
손가락 반 개는 그다음 손가락 개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의미했다. 반 개가 더 있다고 해서 수확할 때 추가적인 신성의 지급은 전혀 없었고.
즉, 손가락 한 개 반짜리나 한 개짜리나 당장에 죽이고 수확한다면 얻는 신성의 양은 같았다.
특별한 인간은 없었다.
모든 인원을 꼼꼼히 확인한 갈라드가 출발 신호를 보내왔다.
그렇게 두당 은화 서른 닢짜리 임무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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