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0)
30 화 어…?
어…?
그렇게 긴 이야기는 아니다. 복잡하지도 않고.
아직 어머니께서 꿈틀거리는 것이 다이던 시절, 나는 어머니의 손을 내 두 칸짜리 인벤토리 중 한 칸에 처박아뒀었다. 그 손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던 압도적인 존재감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비루한 무적자(無籍者)였던 나는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한 채, 언제 악신의 숭배자임을 들킬까 두려워 한 곳에서 오래 지내지도 못했다. 전부 부질없는 두려움이었지만, 그 시절 나는 언제나 쓸데없는 걱정들을 덕지덕지 달고 있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았다.
하루를 벌지 못했던 때는 하루를 굶었다.
다행히 이 몸뚱이는 조금 굶어도 아주 잘 움직이는 종류의 물건이었다.
한땐 용병이 되어볼까도 했지만, 나는 누군가를 죽일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내가 다치는 것은 훨씬 더 무서웠고.
그렇게 나는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1년이 흘렀지만, 내 삶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전히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았다.
얼마 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던 날. 나는 나의 은인, 상투스를 만났다.
여느 때 처럼 근거없는 두려움에 쫓겨 도망치듯 도시를 떠난 나는 한 무리의 도적들과 마주쳤다. 나는 도적들을 피해 달렸고 다행히 도적들의 추격을 뿌리쳤지만, 결국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겨울철 산에서 먹을 걸 구하는 방법 따윈 전혀 몰랐던 나는 여전히 잘 움직이는 몸을 이끌고 걸었다. 해가 뜨는 동쪽으로 계속 걸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다니는 가도와 마주치길 바라면서.
굶고 또 굶고 또 굶었다.
언제까지고 움직일 것만 같은 몸뚱이가 쓰러졌다. 지독한 눈보라 속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 나는 작은 불빛을 보았다.
상투스는 그렇게 나를 구했다.
그는 중년과 노년, 그 사이 어딘가에 적당히 서 있던 남자였다. 상투스는 적당히 유쾌했고, 적당히 진중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내게 그는 장난스럽게 하마터면 돈 안 받고 시체를 치워줄 뻔했다면서 웃었다. 상투스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있을 만큼 있다가 가라고 했을 뿐.
그는 유지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이면서, 동시에 도시 밖에 거주하는 묘지기였다.
사실, 그가 사제라는 걸 알았을 땐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도망칠까 싶었다. 물론,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음식들과 잠자리들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눌러앉았지만.
적당히 몸이 괜찮아진 나는 그의 밑에서 시체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괜히 밥만 축내기 미안해서 그의 일을 돕겠다고 한 것이 계기였다.
나는 일을 하면서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대체 왜 나를 구한 거냐고.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그 미소는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상투스는 언제나 남들을 돕고, 돕고, 또 도왔다. 그는 입버릇처럼 사람을 돕는 데 이유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는 그런 그를 닮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그를 닮아갔다.
또 겨울이 찾아왔다. 1년간의 평온한 생활. 나는 이대로 계속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어느 날, 평소처럼 쌓인 눈을 치우던 나는 눈 위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를 주웠다. 그는 지난 겨울의 나처럼 죽기 삶의 끝에 몰려있었다.
나는 그를 구했다. 내가 여태 상투스에게 배운 것처럼.
하지만 나는 절대 그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를 구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는 웃는 낯으로 도움을 받아 몸을 회복하고는 자신이 악신의 숭배자임을 고백하며 마법으로 날 갈가리 찢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죽었다. 아니, 죽은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떻게 인벤토리에서 나왔는지 모를 ‘손’이 내 뺨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저지른 짓의 결과를 마주했다.
토막 나고 찢긴 상투스의 시체를.
전부 내 잘못이었다. 내가 그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를 구하지만 않았어도 상투스는 살았을 게 분명했다.
나는 상투스의 시체를 묻고, 그의 사제복을 챙겨 마침 빈칸이 생긴 두 칸짜리 인벤토리 중 한 칸에 집어넣었다.
힘이 필요했다. 이 세계에서 평온함이란 지킬 힘이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자비 또한 그걸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만 베풀어야 하는 것이고.
인벤토리에서 멋대로 빠져나온 손만이 안타까운 꿈틀거림으로 나를 염려했다. 나는 그 손을 보고서 여태까지 피해왔던 내 직업을 떠올렸다.
부패의 사제.
내겐 강해질 방법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부패의 사제’로서의 나를 받아들였다.
***
왜애애애애앵!
한 점 미망도 없이 살의만을 눌러 담아 도살자를 휘둘렀다.
“어허! 위험하게!”
리버켈의 외침과 함께 신성이 움직였다. 검은 그림자들이 내 몸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림자 따위.
좀 더 다리에 힘을 준다. 힘으로 그림자를 찢어내며 거칠게 적의 피를 갈구하는 도살자를 휘둘렀다.
“죽어!”
리버켈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오른 다리로 발을 구르며 외쳤다.
“응징의 천칭이시여!”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망치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교화교 사제의 권능, ‘징벌의 망치’였다.
빛이 날 후려갈겼다. 묵직한 신성의 충격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쿨럭.”
피가 역류했다. 겨우 피를 뱉어내고 다시 중심을 잡자 리버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까 네 몸에서 느껴지는 신성은 유지의 여신께 아니네? 그런데 그 사제복에 걸린 가호가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거 보니까···”
그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도 나랑 같은 악신의 숭배자였구나!”
저 개새끼가.
“닥쳐!”
“내가 정곡을 찔렀나 봐?”
“닥치라고 했지! 어머니!”
허공이 일그러졌다. 공간을 찢고 거대한 부패의 거인이 떨어져 내렸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나는 도살자의 시동을 다시 켰다. 금속 톱니들이 고속으로 회전했다.
오늘. 저 은혜도 모르는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를 반드시 죽인다.
리버켈이 부패의 거인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이야. 꽤 재밌는 권능이네. 이거 마침 왼팔 자리가 빈 김에 네 걸 받아가면 딱 되겠네!”
대답은 필요 없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그대로 리버켈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패의 문이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며 내게 힘을 불어넣었다.
회전하는 톱날이 리버켈을 집어삼키기 위해 허공을 찢어발기는 선이 되었다.
“너 완전 마음에 들었어! 진짜로!”
아까 분명 반으로 갈라졌을 터인 보랏빛 머리의 여인이 나와 리버켈 사이에 끼어들어 팔을 내밀었다.
피와 살점이 갈려 나갔다. 한쪽 팔을 희생해 도살자를 막아낸 여인이 활짝 웃었다.
“너 나랑···.”
“비키라고!”
왜애애애애애앵!
그대로 여인의 목을 날려버리고 리버켈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도살자를 치켜들자, 리버켈이 웃으며 내 뒤를 가리켰다.
무언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겼다. 나는 리버켈을 베는 걸 포기했다. 내디딘 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해 나를 잡아당긴 존재를 찢어발겼다. 보랏빛 머리칼이 뒤섞인 피와 살점이 비산했다.
“역시 화끈해! 화끈해!”
리버켈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보랏빛 머리 여인이 활짝 웃었다.
“과연 너는 몇 번째까지 갈까! 나 완전 궁금해! 진짜로!”
저들은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만, 여기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부패의 거인의 걸음걸음이 지축을 울렸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포효를 내뱉은 거인이 리버켈과 저 여인을 으깨버리기 위해 주먹을 내려쳤다. 리버켈이 낮은 소리로 뇌까리자 보랏빛 막이 거인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콰앙!
얇은 막이 종잇장처럼 부서지는 사이, 둘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자리를 피했다. 여태 멍한 얼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붉은 머리 여인이 소리쳤다.
“어차피 같은 악신의 숭배자면 그냥 말로 해도 되잖아! 응? 그냥 받아갈 것만 받아가자고!”
“싫어! 절대! 싫어! 내가 얼마나 쟤를 기다렸는데!”
보랏빛 머리 여인의 외침을 들은 리버켈이 히죽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러고 싶은데, 저 친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을걸? 그렇지?”
나는 말없이 도살자를 움켜쥐었다. 톱날이 돌아가는 진동이 내 분노를 달랬다.
그의 말이 맞았다.
오늘 밤, 나는 리버켈을 죽인다. 반드시.
“갑시다.”
쾅!
내 부름에 부패의 거인이 거칠게 포효하며 자리를 박찼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
퍽!
사지타의 몽둥이에 얻어맞은 남자가 바닥을 굴렀다. 다키아는 떨리는 눈으로 쓰러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죽은 건 아니겠죠?”
사지타는 쓰러진 남자를 힐끔 보곤 짧게 대답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빡!
카르멘이 휘두른 검집에 한 여인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는 살짝 미안한 얼굴로 쓰러진 여인을 바라보곤 재빨리 소리쳤다.
“얼른 움직여서 영주의 성으로 갑시다!”
모든 일은 갑자기 시작됐다. 보랏빛 막이 도시를 감싸는 순간, 시민들 중 몇이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상처를 입은 이들 또한 미쳐서 날뛰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혼란은 순식간에 도시를 집어삼켰다.
한창 숙소에 짐을 풀고 있던 일행들은 광인의 무리가 도시를 휩쓰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무장을 챙겨서 여관을 뛰쳐나왔다. 처음엔 도시를 빠져나가 보려고 시도했지만, 광인의 무리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는 탓에 결국 탈출을 포기하고 영주가 사는 내성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키아는 검집째로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날카로운 일격에 얻어맞은 광인이 바닥을 뒹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내성이었다.
“어…?”
마침내 내성의 앞에 도착한 다키아가 본 것은 절망이었다. 부서진 성문. 피와 살점들투성이인 바닥과 벽. 광증은 단순히 시민들 사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사지타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서진 내성문을 바라보곤, 손에든 둔기를 허리춤에 메고는 창을 꺼내 들었다. 카르멘과 다키아의 부탁대로 미친 사람들을 기절만 시키는 건, 여기까지였다.
“사지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카르멘을 바라보며 답했다.
“이젠 죽여야 해. 죽이고 또 죽여서라도 이 미쳐버린 도시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사지타는 카르멘에게서 시선을 떼고 공녀를 불렀다.
“공녀님.”
“네?”
광인이 하나가 튀어나와 사지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아아아아아!”
푹.
사지타는 망설임 없이 방패를 휘둘러 광인의 머리를 으깨버렸다. 그의 투구 위로 붉은 피가 튀었다. 사지타는 공녀의 황금빛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자도, 아이도, 남자도 전부 제대로 두들겨 주면 결국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살고 싶으시거든 고깃덩어리를 찌른다 생각하고 죽이십시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자리를 박찬 사지타가 광인들 무리로 뛰어들어 방패와 창으로 광인들을 뭉개며 길을 열었다.
카르멘과 다키아는 이를 악물고 검집에서 검을 꺼내들고 사지타의 뒤를 따라 달렸다. 사지타의 말대로 지금은 한때 시민이었던 광인들을 배려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지타는 앞을 막는 광인을 걷어차고 창을 내질러 목숨을 끊으며 소리쳤다.
“뒤처지지 마십시오!”
다키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검을 휘둘렀다. 살아있는 생물의 살을 가르는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첫 살인의 충격에 잠겨 있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다키아는 재차 검을 놀려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세 번째 살인도.
일행은 뚫고, 뚫고 또 뚫었다. 막는 광인들을 모조리 죽여나가면서.
“흐아아아압!”
또 한 명의 광인을 뚫어낸 사지타가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성문이 곧 눈앞이었다.
사지타는 자신의 만들어낸 틈 사이로 보았다. 거칠게 날뛰고 있는 거인과 몇 명의 사람들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마르낙이 분전하고 있었다.
창을 쥐는 방식을 바꾸었다. 내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던지기 위한 자세로.
쿵.
굳건한 다리를 기둥 삼아 근육의 힘을 쥐어짜낸다. 몸은 알고 있었다. 단 한 점의 힘도 낭비하지 않고 창에 싣는 방법을. 그는 그 방법대로 행했다.
사지타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창이 폭발적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
까앙!
마법으로 도살자를 막아낸 리버켈이 나를 향해 키득거리며 웃었다.
“좀 더 새로운 방식은 없어? 너는 너무 단순···.”
그 순간, 리버켈의 머리가 터졌다. 그의 머리를 터뜨린 창이 바닥에 꽂힌 채 대롱거렸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제자리에 우뚝 선 채로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