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00)
300 화 하늘에서 떨어진 사내.
하늘에서 떨어진 사내.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쿠웅.
거대한 황금 식칼로 수없이 내려친 끝에 잘라낸 거대한 발라암의 머리통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도시로 떨어져 굴렀다.
“아. 축축해.”
발라암의 위액으로 푹 젖은 옷이 끈적하게 내 몸에 달라 붙어왔다.
자동으로 옷이 수복되지 않을 때마다 조금 유지의 사제복이 그립긴 했다. 시간만 있으면 언제나 보송보송한 상태로 돌아오는 그 이상적인 옷이.
그렇다고 다시 입을 생각은 없긴 했지만.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발라암의 머리통을 잘라낸 부패의 거인은 그 거대한 머리통 주위를 덩실덩실 춤추며 돌더니 머리통을 가리키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달라는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가지셔도 됩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기쁨의 포효를 내지른 부패의 거인은 발라암의 머리통을 질질 끌며 공간을 찢고는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반쯤 뭉개진 도시와 그 위에 드러누운 발라암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저 괴물도 제 주인처럼 덩칫값을 못 하긴 했지.
체급적으로 부패의 거인보다 발라암이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대지의 마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는 건지 부패의 거인에게 제대로 된 타격 한 번 주지 못한 채 산채로 난도질 되어 죽었다.
거대한 괴수의 잘린 목 단면을 따라 쏟아진 피가 도시와 건물들을 붉게 물들며 퍼져나갔다.
저걸 굳이 내가 치워줄 이유는 없겠지.
“디스펜스.”
짧게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내가 디디고 선 바닥을 뚫고 팔뚝만 한 기계 팔 하나가 튀어나왔다.
– 예! 충실한 디스펜스! 이곳에 있습니다! 후계자님!
“챙겨놔.”
– 옙!
나는 하멜에게서 채취해낸 샛노란 사리를 기계 팔 위에 올려놓았다. 기계 팔은 사리를 소중하게 꼭 쥐고서 뚫고 올라온 구멍만 남긴 채 지하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충 다 끝났네.
발라암의 위액이 내 몸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대충 손과 다리를 몇 번 털어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좀 씻고 싶네.”
***
아직 멀쩡한 가게를 대충 털어 적당히 맞는 옷을 챙기고 물도 어찌저찌 뒤져서 찾아내 몸을 대충 씻어낸 다음 구한 옷을 챙겨 입었다.
반쯤 망가진 도시를 가로질러 도시의 입구로 향하던 와중,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 보였다.
노기사, 체키타가 부하 몇을 데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걸어오던 체키타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자 나는 그를 향해 대충 손을 흔들어 답했다.
“용케도 살았네? 명줄이 제대로 질긴가 봐.”
체키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하멜은 죽은 건가?”
“다시 살아나긴 힘든 상태로 만들긴 했지.”
“저 거대한 마수도 네가 죽인 건가?”
“어. 고맙지?”
내 말에 노기사의 시선은 반 넘게 뭉개진 도시로 향했다. 비록 아무 말 안 했지만, 그가 그다지 고마워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쯤은 손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표정 관리 좀 하는 게 어때? 기껏 죽여줬는데 그렇게 죽상을 쓰면 내가 살짝 서운해질 거 같잖아.”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지라 마냥 웃기가 힘들군.”
“생각보다 별로 안 죽은 거 같던데.”
내게 들어온 신성이 예상보다 훨씬 부족했다. 아마 저 노기사 제때 사람들을 대피시킨 덕에 발라암이 날뛰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간 거겠지.
“그리고 따지고 보면 죽은 사람들은 전부 네 영주가 죽인 거야. 주제도 모르고 잡아 죽이지도 못할 상대 돈을 떼먹으려고 했다가 이 꼴이 났잖아? 안 그래?”
노기사는 음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영주님께서 먼저 잘못한 것이 맞지만, 그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군.”
“늙어서 그런가? 아직 보는 눈이 너무 옛날에 머물러 있네.”
나는 턱짓으로 도시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있는 발라암의 시체를 가리켰다.
“이미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어. 드높은 천상과 지상의 거리가 좁아져 버린 데다 연옥까지 붕괴한 이상, 옛 신화시대에서나 돌아다녔을 괴물들이 하나둘씩 제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체키타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답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천상과 지상의 거리는 왜 좁아지고, 연옥은 또 어딘가?”
“이렇게나 친절하게 힌트를 줬는데도 아직 이해를 못 했네.”
나는 체키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활짝 웃었다.
“약해빠졌으면 눈치껏 잘 기어 다니기라도 하라는 거잖아. 웬만하면 돈 떼먹지도 말고, 방금 대판 싸운 사람 붙잡고 시시콜콜 자꾸 캐묻지도 말고 말이야. 너희 영주 살았지?”
대답은 없었지만, 저 일 잘하는 노기사가 시민들도 잔뜩 대피시켜놓고 정작 영주를 못 구해냈을 리가 없었다.
“영주한테 전해. 나 씻고 푹 쉬고 싶으니까 알아서 한번 잘 준비해보라고.”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군.”
나는 체키타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올렸다.
“대답이 또 눈치 없네. 설마 도시를 구한 영웅이 푸짐하게 대접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푹신한 침대 몇 개랑 씻을 물 좀 준비해달라는 것도 안 들어줄 셈이야? 응? 나 슬슬 하멜이 무슨 기분이었는지 이해가 가려고 하는데.”
내 협박 아닌 협박에 체키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말씀드려보지.”
“잘 생각했어. 내가 소소한 감사의 표시로 좋은 정보 하나 알려줄게.”
“…뭔가?”
나는 손가락으로 도시 밖을 가리켰다.
“도시 근처를 좀 뒤져봐. 나랑 싸우는 와중에 하멜 그놈이 영주 딸이 들어있던 철창을 도시 밖으로 빼돌렸었거든. 덕분에 아마 별일 없으면 살아있지 않을까?”
“그걸 가장 먼저 이야기했었어야지 않나!”
노성을 토해낸 체키타가 자신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를 부르더니 빠르게 명령했다.
“당장 날이 저물기 전에 철창에 갇혀계신 아가씨를 찾아낸다! 도시밖에 피난한 시민들에게도 아가씨를 먼저 찾아내는 자에게 포상을 내리겠다고 전해라!”
“예!”
주변의 기사들이 물러나고 나는 하품하며 말했다.
“하암. 이 정도면 대접받기 충분하지? 나 도시 밖에 놔두고 온 얘들 좀 챙겨 올 테니까 그때까지 내가 쉴 장소 마련해놔.”
영주의 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아까보다는 조금 안색이 나아진 체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훌륭한 대답이야. 이제야 눈치가 조금 빨라진 거 같네. 굳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보람이 있어. 음음.”
“…”
***
후웅.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황금빛 동체가 바닥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금빛 용이 한쪽 날개를 내려 등에 탄 사람들이 내리기 쉽게 배려했다. 다키아와 펄리가 짐을 챙겨 날개 위를 걸어 내려오자 금빛 비늘 덩어리 몸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키아는 미리 꺼내두었던 옷가지를 꺼내 알몸이 된 르소나에게 건넸다. 르소나는 옷을 받아들며 싱긋 웃었다.
“고맙소.”
“뭘요. 항상 태워주시는데 제가 오히려 고맙죠.”
펄리가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편하긴 해! 애완용으로 타고 다닐 용 한 마리 키우고 싶을 만큼 말이야! 히히!”
제법 무례한 발언에 다키아가 펄리에게 눈짓하며 눈치를 줬다. 펄리는 왜 자기를 쳐다보는지 전혀 모르겠단 듯이 눈을 깜박이고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왜 온 거야? 교역 도시 미세레까지 쭉 날아가는 거 아녔어? 응? 응?”
다키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출발하기 전에 말했잖아요. 이 마을에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가 지내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고요.”
“아, 맞다! 맞다! 수상하니까 한 번 가는 길에 확인해보고 가자고! 기억났어!”
5년 만에 만난 펄리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뭐라 콕 집어서 설명해야 할까 싶었지만, 굳이 달라진 점을 짚자면 펄리는 예전보다 어딘지 모르게 더 나사 빠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안 좋은 쪽이라기보다는 좀 더 좋은 쪽으로.
옛날에는 뭔가 어딘지 모르게 위험해 보이는 느낌으로 나사가 빠져있었다면, 지금은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느낌으로 나사가 빠져있었다.
삶에 여유가 넘치는 느낌이라고 할까.
“좋았어! 좋았어! 하늘에서 떨어진 놈 잡으러 출발하자!”
다키아는 엉겨 붙어오는 펄리를 밀어내며 말했다.
“왜 자꾸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들러붙어 오는 거예요! 대체!”
펄리는 다키아에게 찰싹 붙어서 히죽댔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렇지! 그렇지! 너는 내가 안 반가워?”
“반가운 것도 하루 이틀이죠! 며칠째 들러붙어 오는 게 어딨어요? 아, 그만 좀 떨어져 줘요!”
“싫어싫어!”
새하얀 셔츠의 단추를 마저 채운 르소나가 그 광경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지난 몇 년간 한껏 음울한 분위기를 풀풀 풍겨대던 다키아가 펄리와 재회하고 난 뒤로 조금 표정이 풀렸다. 르소나로서는 그 변화가 무척이나 반가웠고.
“다 입었소.”
결국, 들러붙어 오는 펄리를 못 떨쳐낸 다키아는 펄리를 주렁주렁 단 채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봐요.”
셋은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평온한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르소나가 일부러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몰래 착륙한 터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무기를 들고 튀어나와 그녀들을 맞이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보이는 가장 가까운 농가로 향한 일행은 얼기설기 쳐둔 담장 앞에 서서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계세요!”
다키아가 불렀음에도 농가 안에서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담장 문 앞에 달아둔 자그마한 종을 발견한 펄리가 냅다 손을 뻗어 종을 흔들었다.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너무 과하게 울려대는 통에 다키아가 당황해서 펄리를 말렸다.
“그만 울려요! 그렇게 울려대는 건 너무 무례하잖아요!”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불러야지! 히히! 그러라고 달아둔 거잖아!”
“…누구세요?”
다키아와 펄리가 투닥대는 사이, 농가 안쪽에서 젊은 여인 하나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낯선 세 여인, 게다가 은빛, 금빛, 보랏빛같이 쉬이 볼 수 없는 머리색을 한데다 그 얼굴들조차 어디서 쉽게 볼 수 없는 미인들이라 농가의 여인은 조금 쫄아버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다키아는 여인의 표정을 보곤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 종을 시끄럽게 막 울려대서 죄송해요. 제 동료가 조금 별난지라. 저는 다키아라고 하고 이쪽은 펄리, 르소나라고 해요. 듣기론 이 마을에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있다고 들어서 왔거든요? 혹시 어디로 가면 그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
어딘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 젊은 여인은 눈을 끔벅이더니 뒤를 돌아 농가 안쪽을 향해 외쳤다.
“칼라게인 씨!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손님? 굳이 날 찾아 올 만한 사람이 이 시대엔 없는데.”
가축의 똥이 이곳저곳 묻어 꾀죄죄한 옷. 꾀죄죄한 옷 끝자락으로 드러난 양손과 발에 입은 얇은 갑옷. 붉은 건틀릿으로 새빨간 머리를 긁적인 칼라게인이 말똥 묻은 갈퀴를 어깨에 대충 걸터 메고서 걸어 나왔다.
그는 푸르고 붉은 짝짝이 눈으로 다키아의 일행을 살펴보곤 한풀 흥미가 식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뿐인 일행이라. 정말 재미없는 조합이군.”
농가의 여인, 타나는 팔꿈치로 몰래 칼라게인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초면에 무례하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고로 여행은 남녀가 어우러져 다녀야 재밌는 법이지. 특히나 그게 소꿉친구 사이면 더 좋고. 그런 점에서 레페와 페르카, 그 둘은 참으로 재밌어 보이는 친구들이었는데 말이야. 좀 더 지켜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워. 그나저나…”
칼라게인은 다키아 일행을 찬찬히 훑어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왜 찾아온 건가?”
“너, 하늘에서 떨어진 거 맞아? 맞아? 그런 거 치곤 너무 멀쩡한데?”
“별로 멀쩡하진 않은데.”
대충 대꾸한 칼라게인이 턱을 긁적였다.
“일단은 요양 중이다. 겨우 그거 물어보려고 사람을 불렀나? 용건부터 빨리 마쳐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덜 치운 말똥이 잔뜩 남아 있어서 말이야.”
“그게…”
다키아 무어라 질문을 꺼내려던 그때.
“흐응.”
콧소리를 낸 펄리가 그대로 칼라게인의 머리통을 향해 발차기를 내질렀다. 칼라게인의 푸른 눈에서 반사적으로 마력이 터져 나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간발의 차이로 펄리의 발끝을 피해냈다.
그 모습을 본 펄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마력! 너구나! 코렌틴을 날려버린 녀석이!”
“쿨럭.”
갑작스러운 마력의 운용. 일전에 코렌틴에서 연에게 입었던 상처를 채 회복하지 못한 칼라게인이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다키아는 당황해서 펄리를 붙잡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펄리?”
“코렌틴이 파괴되던 날, 인근 지역에 있던 마법사들이 막대한 마력을 코렌틴 방향에서 느꼈다고 했거든! 그래서 시험 삼아 무슨 힘을 쓰나 한 번 시비 걸어본 거야! 근데 코렌틴이 사라지던 시기에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가 마력을 쓰네? 거기다 마침 여기는 코렌틴 근처고? 이 정도면 제법 당연한 의심이 아닐까? 응응?”
“아니, 그런 정보를 대체 어디서 알아낸 거예요? 아니, 그보다 왜 말 안 해줬어요?”
“안 물어봤잖아?”
“아니 진짜…”
“쿨럭!”
다시 한 번 한 움큼 피를 토해낸 칼라게인이 펄리와 다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날 어떻게 할 셈이지?”
다키아는 펄리를 놓아주고 칼라게인을 향해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딱히 코렌틴을 날려버린 범인을 찾으려고 여길 찾아온 건 아니에요. 저희는 모든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도시들을 사라지게 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려고 온 거 거든요. 아마 그 범인은 악신의 숭배자들의 집단이라 추정되고요. 그런데…”
다키아가 검을 꺼내 칼라게인의 목을 노렸다.
“…당신은 악신의 숭배자인가요?”
칼라게인의 이마 위로 굵은 주름이 파였다.
“내가 가장 치를 떨게 싫어하는 게 얼간이 같은 신들을 추종하는 멍청한 사제란 종자들이다. 추측이라지만 무척이나 불쾌하군.”
“그럼 묻죠. 코렌틴은 왜 그렇게 만든 거죠?”
“악신의 숭배자 하나 죽이려다가.”
악신의 숭배자란 단어에 다키아는 진짜배기 악신의 숭배자인 펄리를 힐긋 보곤 다시 물었다.
“그래서 죽였나요?”
“모른다. 도시째로 같이 날려버리긴 했는데 왠지 살아있을 거 같아.”
다키아는 칼라게인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제 손으로 도시 한 개분의 사람을 죽였다고 고하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평온한 그 얼굴을.
악인이 분명했음에도 특유의 탈속적인 분위기 탓인지 마냥 악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여기선 뭘 하고 있는 거죠?”
“떨어진 날 간호해줘서 그 은혜를 갚으려고 몸이 나을 때까지 일해주고 있지.”
다키아는 고개를 돌려 르소나를 바라보았다. 르소나는 잠깐 고민하고는 입을 열었다.
“용왕국이었다면 당장에 내 직권으로 잡아들였겠지만, 이곳이 남제국인 이상 딱히 내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소. 코렌틴의 일이야 남제국에서 알아서 조사하고 행동할 터이니 굳이 우리가 뭘 더 할 이유는 없지 않겠소?”
펄리는 칼라게인을 힐끔 보곤 말했다.
“죽이고 싶으면 말해! 마침 완전 약해진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내가 죽여! 죽여! 줄게!”
다키아는 꺼냈던 검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르소나의 말대로 굳이 자신이 처단하지 않아도 남제국이 알아서 저 사내를 찾아내 응당한 값을 치르게 할 터.
“딱히 저희가 뭘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물어볼게요. 당신이 죽이려던 악신의 숭배자, 이름이 뭐였죠?”
“본인이 말하길 자기 이름이 연이라더군. 흔치 않은 이름이라 쉽게 기억…”
파지직!
격렬한 마력의 뇌전이 다키아의 몸을 따라 튀었다. 다키아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코렌틴에서 있었던 일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고하세요.”
그 격렬한 마력의 요동을 보며 칼라게인은 처음으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싫다면?”
꽈릉!
시끄러운 천둥소리. 칼라게인의 바로 옆을 번개로 지져버린 다키아가 그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산 채로 구워버리기 전에 당장 말해.”
“마력 자체는 훌륭하지만, 마력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조잡하군. 이 시대의 인류는 다 그런 방식으로 마력을 다루는 건가? 흠. 좋아. 코렌틴에서 있었던 일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주지. 대신… 너, 이름이 뭐지?”
“다키아.”
“그래, 다키아.”
칼라게인의 푸른 외눈이 마력을 토해내며 일렁였다. 그는 이 시대에서 처음으로 만난 진정한 ‘인간’을 보며 환히 웃었다.
“내게 ‘마력 기관’을 만드는 법을 배워라. 다키아. 인간이 그런 조잡한 방식으로 마력을 다루는 꼴을 보자니 한 명의 꼰대로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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