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07)
307 화 첫 번째 기사.
첫 번째 기사.
추앙받는 아도라.
절망(絕望)의 데스페라시오가 만들어낸 가짜 사도 넷 중 하나인 괴물. 유명한 가수였던 그녀는 내가 다키아랑 보러 간 공연에서 목소리로 관람객들의 머리통을 모조리 터뜨려 버렸었지.
처음 저 빨간 머리 마법사의 이름이 아도라라고 하는 걸 들었을 땐, 조금 옛날이야기라 바로 떠올리지 못했었지만, 자꾸 듣다 보니 어딘가 뇌가 간질거렸었는데. 걸으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데스페라시오가 데리고 다니던 자칭 사도인 괴물들 중 하나와 이름이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연히 이름이 같은 거일 수도 있었지만 일단 찔러 보았고.
날 쳐다보는 저 마법사 아도라의 표정으로 보건대, 아도라라는 이름이 본인의 진짜 이름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아도라를 알아?”
“안다니까? 내가 아는 건 가수 아도라인데, 네가 아는 아도라도 가수야?”
“어. 맞아.”
아도라는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아도라가 어딨는지 알아?”
“모르는데.”
“그, 그럼 아도라는 살아있어?”
아도라가 살아있느냐는 질문. 데스페라시오가 다키아의 아버지도 살려서 데리고 간 걸 보면, 아도라도 어련히 잘 살아있을 터였다.
“살아있지?”
아도라의 얼굴이 더없이 환히 밝아졌다.
“저, 정말?! 5년쯤 전에 아도라가 북부왕국의 베아투스에서 실종됐다는 소식 뒤로 아무런 정보가 없었는데. 정말 살아있는 거야?”
아도라가 대규모 학살을 일으킨 괴물이 됐다는 정보는 통제된 건가? 그게 아니면 저 아도라의 정보력이 부족한 건가? 물론, 정보 통제 쪽이 가능성이 크겠지만.
“걔 안 죽게 주변에서 챙겨주는 놈이 있어서 아마 살아있을 거야. 근데 나도 좀 묻자. 너, 아도라랑 대체 무슨 관계야?”
아도라는 볼을 발갛게 붉히며 발로 바닥을 몇 번 문질러대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패, 팬인데.”
***
직접 꺼낸 아도라의 사정은 무척 간단했다. 어렸을 적 남제국에 순회공연 온 ‘가수’ 아도라의 공연을 보고 팬이 되었다는 지극히 뻔한 이야기.
“그럼 아도라라는 이름은 가명이야?”
“응!”
“그 이름은 대체 왜 쓴 건데?”
“이 이름으로 돌아다니면 혹시나 실종된 아도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다시 한번 아도라의 공연을 보는 게 내 인생 목표 중 하나였거든!”
“굳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는 짓이 아닌걸.”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게 분노하고 있던 아도라(가명)은 나를 보며 더 없이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내 앞에 아도라의 생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그래서 네 본명이 뭔데?”
“음?”
눈알을 한 바퀴 데굴 굴린 아도라(가명)은 조금 뜸을 들인 다음에다 다시 대답했다.
“…페리토드?”
딱 봐도 이름을 지어내느라 대답이 늦어지는 모양새라, 그냥 두 번째 가명일 게 뻔했지만, 그냥 넘어가 주기로 결심했다.
괜히 이름만 안 겹치면 크게 상관없었으니까.
“좋아. 넌 이제부터 페리토드야. 그 이름은 내가 아는 사람이랑 안 겹치니까 써도 상관없어.”
“보, 본명이 페리토드라니까?”
“알았다니까? 됐고. 궁금한 건 해결됐으니 강도놈들이나 잡으러 가자.”
리어카에서 폴짝 뛰어내린 솜니아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무조건 가명이야.”
“상관없어. 방금 대놓고 눈앞에서 이름을 지어내는 꼴을 보니 그리 똑똑하진 않은 거 같으니까. 멍청하면 위협이 안 되거든.”
“…가끔 보면 말이 심해.”
“객관적인 평가인데?”
여태 조용히 있던 레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페르카와 나를 한 번씩 바라보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굳이 우리가 나서서 강도들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요? 주변 도시에 조직적으로 습격하는 강도가 나타났다고 알리면 영주분들이 알아서 토벌대를 조직해 강도들을 토벌할 거 같은데요.”
“레페! 그게 무슨 말이야!”
페르카는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레페에게 물었다.
“굳이 번거롭게 주변에 알리고 토벌대를 조직하게 할 필요가 있어? 그냥 연 씨가 강도들을 처리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할 텐데? 여기 우리 고향 도시 어르신들도 가끔 멀리 가실 때 이용하는 도로잖아. 괜히 그런 식으로 늦장 부리다가 우리가 아는 사람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거나 하면 어떻게 해.”
“하지만…”
레페는 시선은 강도의 시체가 있었던 자리로 향했다. 그녀는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페르카, 너는 정말 사람이 눈앞에서 그렇게 죽어 나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 강도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찾아가서 모조리 죽여버리는 게 과연 옳을까. 연 씨가 아니라 토벌대가 간다면 혹시나 어떤 강도들은 곧장 항복할지도 모르잖아. 혹시 또 그중 누군가는 죗값을 치르고 나면 바르게 살지도 모르잖아.”
페르카는 답답하단 표정으로 레페를 쳐다보았다.
“레페, 네가 경비대에서 안 일 해봐서 그렇게 말하는 거 같은데. 내 말, 잘 들어. 사정이 있어서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빼고는, 보통 한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다시 또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서 자주 잡혀 와. 그게 특히나 죄질이 나쁜 범죄일수록 더욱. 우리랑 마주쳤던 계획적인 무장 강도들이 갱생한다는 건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그렇다고 해서…”
연녹빛 두 눈이 질끈 감겼다. 레페는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찾아 죽이는 게 정당화될까? 페르카, 넌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누가 너네한테 죽이라고 시킨대?”
나는 지지부진한 둘의 대화를 끊어냈다.
“이미 결정한 이상, 내가 직접 하나하나 찾아서 다 죽일 거야. 너희가 말리든 말든.”
다 잡아 죽이는 건 페르카가 반대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레페가 반대하다니. 예상외였다. 이건 페르카가 평소에 경비대에서 일하며 범죄자들을 많이 봐온 탓이 큰가.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바로 사람이었다.
레페와 페르카가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솜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러터졌네.”
“너처럼 과하게 바싹 메마른 것보다야 낫지. 꼬맹아.”
저 둘이 물러터질 대로 터져서 계속 데리고 다니는 거기도 하고.
“레페.”
“…네.”
레페는 여전히 뭔가 해소되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 그러면 그냥 여기서 짐 보면서 쉬던지. 어차피 오래 안 걸려.”
그녀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뇨. 따라갈 거예요.”
저 결연한 얼굴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했다. 아마 옆에서 지켜보다가 살릴 여지가 있다면 나를 말릴 생각이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었지만.
“그럼 쫓아가 볼까.”
주변을 둘러본 페르카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사방팔방으로 도망쳐버려서 어떻게 쫓죠? 연 씨는 추적도 잘하세요?”
“아니. 추적은 딱히 내 전공이 아냐.”
“그럼 어떻게 하죠?”
“잘하는 녀석을 부르면 되지.”
“여기 저희 말고 누가 있는데요?”
나는 오른 손목에 찬 검은 팔찌에 대고 말했다.
“디스펜스, 프리무스 좀 보내봐.”
팔찌가 짧게 한 번 웅웅대며 내 목소리가 제대로 전해졌다는 답을 해왔다.
쾅!!!
멀지 않은 곳의 대지에서 폭음과 함께 육중한 물체 하나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금속성 물체가 허공에서 수백 갈래로 갈라지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청남빛 동체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향해 떨어져 내렸다.
대지에 충돌하기 직전, 새카만 동체 이곳저곳이 일제히 열리며 푸른 불꽃을 분사해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탁.
부드럽게 착륙한 푸른 망토를 걸친 검은 기계 기사가 내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했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기계 기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첫 번째 기사, 프리무스가 당신께 바쳐야 할 마땅한 경의를 바칩니다.
첫 번째 기사 프리무스는 테르지오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검고 푸른 이모탈리움으로 이루어진 데다 그 금속 육체의 형상이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에 가까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내 부름에 나타난 기계 여기사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인사하지 말고 편하게 말하라고 했잖아.”
– 첫 번째 기사로서 제 소임 하나 제대로 못 해낸 저 같은 반푼이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멋들어지고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무척이나 울적하고 소심한 목소리. 나는 아직도 풀 죽어있는 프리무스를 다독였다.
“테르지오 건은 네 잘못이 아니라니까? 전부 내가 허락한 거야.”
– 그렇더라도 테르지오가 탈주 기사가 되기 전에 설득해내지 못한 건 전부 제 무능입니다. 주인님.
나는 작금의 계획을 실행하기 전, 디스펜스와 디스펜스가 복구해낸 네 기사들에게 이 계획에 대해 알려주고 이곳에 있기 원하지 않으면 자유의지에 따라 떠나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날밤, 테르지오는 내게 개인적으로 찾아와 떠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강제로 시킬 생각 따윈 없었던지라 나는 테르지오에게 떠나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사실을 안 프리무스는 떠나는 테르지오를 추격해 일련의 대화, 아니. 정확히는 교전을 벌였고 그냥 보내주라는 내 명령에 프리무스는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귀환했었다.
나를 따르는 첫 번째 기사로서 프리무스는 세 번째 기사인 테르지오의 독단적 탈주가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던 건지. 그날, 테르지오를 놓아준 뒤로 완전 축 처져서 소심해져 버렸다.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프리무스는 디스펜스에게 마지막으로 복구된 지라 프리무스와는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볼 시간이 없어서 그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됐고. 디스펜스에게 대략적인 상황 들었지?”
– 네.
“도망친 강도 놈들 추적할 수 있겠어?”
– 이미 공중에서 낙하하던 와중 주변을 분석해 대략적인 도주 경로를 알아내 뒀습니다.
“좋아. 안내해.”
– 예. 주인님. 이 무능한 제가 주인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이건 만세의 영광입…
“거기까지만 하고. 안내부터 해.”
– 네…
프리무스가 푸른 망토를 펄럭이며 먼저 움직이고, 나는 리어카의 손잡이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해? 따라가야지.”
멍하니 보고 있던 페르카가 내게 물었다.
“금인족분이에요?”
“아니. 금인족 아닌데.”
리어카에 올라탄 솜니아가 내 뒤에서 질문을 던져왔다.
“…혼자 다니는 거 아니었어?”
“내가 뭐하러 위험하게 혼자 다녀? 혼자 안 다닐 수 있는데 미련하게 혼자 다니는 건 멍청한 짓이지.”
“…그럼 왜 혼자 다니는 척해?”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야 내가 혼자인 줄 알고 방심한 놈을 효과적으로 기습하지.”
“…!”
***
프리무스의 추적은 언제나처럼 정확하고 빨랐다. 그녀의 쾌속한 인도를 따라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노상강도들의 임시 거점에 도착했다.
“음?”
“…아무도 없는데?”
다만, 막상 도착한 거점은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 같이 어디론가 강도질을 하러 갔다 보기엔 너무 과하게 인기척이 없었다.
마치 사람이 모두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 정밀 수색하겠습니다.
프리무스가 청남빛 안광을 빛내며 거점을 둘러보더니 내게 다시 말했다.
– 인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압 절차를 개시하겠습니다. 주인님.
“응.”
테르지오가 검을 든 밸런스형 기계 기사라면, 프리무스는 원거리 지원 특화의 기계 기사.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프리무스의 오른팔이 수백 조각의 금속 파편으로 나뉘더니 순식간에 변형을 끝마쳤다.
프리무스는 얇고 긴 총의 형태로 변한 오른팔을 어디론가 조준하더니 지체없이 발사했다.
타앙!!!
“아아아아아악!”
대기를 찢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동시에 찢어지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비명이 과하게 컸던 터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은 놈, 살아는 있는 거지?”
프리무스는 순식간에 팔을 원래 손 형태로 되돌리고서 내게 부복하며 대답했다.
– 관통력을 강화한 초소형 탄으로 양쪽 허벅지를 동시에 무력화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거 맞아?”
– 아직은 살아있습니다. 주인님. 평균적인 인간이라는 가정하에 삼십 분 내로는 죽지 않을 겁니다.
놔두면 죽는 시체 진급 직전 상태인 건가.
“좋았어. 죽기 전에 빨리 주우러 가자고.”
– 예. 주인님.
***
아직 따뜻한 시체가 우리를 반겼다.
“…얘, 죽었는데?”
첫 번째 기사 프리무스는 벽 구석에 고개를 처박고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난 왜 이렇게 무능하지… 역시 나 같은 건 폐기되야 맞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