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12)
312 화 젊음.
젊음.
“그,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노쇠한 목소리.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은 눈앞의 소년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소년은 그런 그의 손을 맞잡아주며 빙그레 웃었다.
“예. 정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젊음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마주 잡은 손을 타고 신성이 권능으로 화해 노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새하얗게 새었던 머리칼이 잃었던 색을 되찾아가고 쭈그러들었던 피부가 서서히 펴져 갔다.
“오오…”
노인은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음미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활기에 그는 격렬한 정신적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채색으로 물들던 머리칼은 다시금 새하얀 백발로 돌아가고, 피부 또한 쭈그러들었다.
“아아…!”
그는 마치 잡히지 않는 젊음을 다시 잡을 수 있기라도 한 듯 아쉬움 가득한 손길로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떠나 버린 젊음이 다시 돌아오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다.
노인의 눈을 타고 자그마한 물방울들이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렸다. 그는 바닥에 향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몇 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렸다.
“하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노인의 앞에 서 있던 소년이 웃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노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참으로 현명하고 옳으신 선택입니다. 모든 보답은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그날, 당신께 온전히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이 정도로 참아주시길.”
소년의 손끝에서 신성이 다시금 감돌고, 노인의 자글자글한 피부가 아주 조금 생기를 머금었다. 노인은 그 자그마한 젊음에서 느껴지는 유열을 음미하며 이 일의 끝에 되찾을 젊음을 더욱 갈망했다.
소년은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 싱긋 웃었다.
“인내는 쓸지라도 잠깐이며, 그 열매는 분명 달콤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노인의 손에서 부드럽고 작은 손이 떨어졌다.
노인, 아니 레포스 시의 영주 캐디런 레이다란은 그 손을 무심코 다시 붙잡으려다 무례란 것을 깨닫고 눈앞의 소년 사제를 조용히 떠나보냈다.
***
“으아아아아.”
문이 닫히자 늘어져라 기지개를 켠 소년이 하품을 쩍쩍하며 영주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제가 소년에게 말을 걸어왔다.
“들어가신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름다움과 잘생김, 그 둘이 공존하는 얼굴. 소년은 결이 고운 탁한 회색빛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피식 웃었다.
“곧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노인네가 내 제안을 쉽게 뿌리치긴 힘들지. 잠깐 젊음의 맛을 보여줬더니 정신도 못 차리고 바로 하겠다고 하던데.”
“잘 되었군요.”
“굳이 여기 서서 이렇게 떠들지 말고, 방으로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예.”
당연하단 듯한 반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제는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소년에게 존대했다. 소년 또한 그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사제는 앞서가는 소년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영주에게 젊음을 돌려주실 생각이십니까?”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안 그래? 그게 응당한 도리고.”
소년은 푸른 눈으로 사제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저잣거리 부랑배가 아니라 사제잖아. 스스로가 내뱉은 말 정도는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젊어진 영주가 다른 마음을 품고 차후, 이번 계획에 대한 진상을 떠들고 다닌다면 신께서 명하신 과업을 완수하는데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소년의 푸른 눈이 가늘어졌다. 푸른 눈 위로 명백한 짜증이 감돌고 소년은 자리에 멈춰 서서 손가락을 뻗어 뒤따라오던 사제의 명치 부근을 쿡하고 찔렀다.
“그래서 나보고 한 입으로 두말하고, 했던 약속도 어긴 채 모든 일이 끝나면 저 영주를 처리하라고?”
“굳이 직접 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그 정도는 저희 선에서 처리가 가능할 테니.”
“이 자식 이거, 사제가 아니라 상인이나 강도를 했어야 할 놈이네. 요즘 어린 사제들은 다 이런가? 아주 장해.”
짧게 비꼰 소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은 지킨다. 레포스의 영주는 반드시 살리고, 젊음도 다시 돌려줄 거야. 이 결정에 번복은 없으니까 다신 토 달지 마. 알겠어?”
“예.”
사제는 지엄한 사도(使徒)의 명에 고개를 깊게 숙였다. 소년은 눈앞의 사제를 무척이나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5년간 신들께서 너무 많은 사제들을 만드신 건가. 어찌 된 게 요즘 새로 서임 받은 사제 녀석들은 다들 걸친 옷만 사제의 것이지, 그 속은 지나다니는 시정잡배만 못해. 쯧쯧. 사제복을 걸친다고 다 사제가 아니라 그 속에든 알맹이가 중요한 법인데 말이야.”
“면목 없습니다.”
“당연히 면목이 없어야지. 있으면 너무한 거야. 그건.”
소년은 다시 등을 돌리고 걸음을 옮겨나갔다. 고개 숙인 사제는 그 발걸음 소리에 다시 허리를 펴고서 빠르게 소년의 등을 쫓았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소년은 사제가 다시 따라붙을 때까지 적당히 기다려주곤 다시 걸음을 제 속도로 돌렸다.
조용히 걷길 몇 걸음. 소년의 입이 다시 열렸다.
“레포스의 영주를 살려둬도 딱히 큰 문제는 안될 거야.”
“예.”
“이럴 때는 왜 그렇냐고 물어야지. 무조건 예만 하는 게 아니라. 너, 내가 왜 괜찮다고 하는지 이유는 알고서 예라고 말하는 거야?”
“왜 그렇습니까?”
시킨 대로만 똑같이 묻는 그 말에 소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뒤의 사제를 잠깐 째려보았다.
정말 어찌 된 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눈이 높은 건지, 요즘 새로 서임된 사제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지는 몰라도.
하지만 여기서 짜증을 터뜨려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것도 없었다. 사람이란 본디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소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눌려 인상을 폈다.
“너도 알다시피 레포스의 영주는 하나뿐인 아들도 병으로 먼저 잃고, 아내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탓에 남은 가족도 없어. 이미 너무 늙어버린 탓에 새롭게 뭘 할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죽는 날만 기다린 채로 썩어가던 노인이지. 노화라는 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간이라고. 그런 인간이 젊음을 되찾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낸 이상, 우리를 배반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한 번 젊음을 되찾아본다면 당연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젊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떠올리기 마련이거든.”
도망칠 구석이 없는 죽음은 사람을 체념하게 만들지만, 만약 그 미지의 죽음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그것도 늙어빠진 몸으로 비루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강성했던 젊음 가득했던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인생을 살아볼 기회가 주어지기까지 한다면?
그 선택지를 포기할 수 있는 노인은 과연 나타날 수 있을까.
소년은 분명 어딘가 그런 인간도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의 노인들은 절대 이 기회를 놓지 못하겠지만.
레포스의 영주도 후자의 인간이었다.
비루한 노화와 미지의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이 일평생 가꿔온 레포스 시를 대가로라도 다시 한번 젊음을 얻길 바라는 인간.
소년은 그런 영주에게 실망했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자기자신 또한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으니.
소년은 자신의 자그마한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하고 부드러운 두 손을.
“…집에 가고 싶네.”
“네?”
“너한테 한 말 아냐. 신경 쓰지 마.”
소년의 모습을 한 신의 사도는 그저 뒷짐을 진 채 조용히 걸어 나갔다.
***
“뭔 다중인격이야. 아니거든? 짜증 나게 할래?”
페리토드는 날 지그시 바라보곤 말했다.
“그럼 여태 누구랑 이야기한 건데?”
“그건 내 다른 인격이 아니라 진짜 다른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를 한 건데.”
“그거 너한테만 보이는 거지?”
“어.”
“그럼 그게 네 다른 인격들이 아니라는 증거는?”
어? 확실히 그런 증거는 없었다. 그럼 나 진짜 다중인격인 건가?
– 저는 다른 인격 같은 게 아닙니다. 명백한 타인이지요.
어느새 다시 나타난 상투스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페리토드에게 답했다.
“본인이 다른 인격이 아니라 타인이라는데?”
“본인? 너만 보이는 그 사람이 그래?”
“어.”
“근데 내가 다중인격이었던 적이 없어서 그런데, 보통 다른 인격이 본인은 그저 네 다른 인격일 뿐이라고 스스로 말할까?”
그것도 그렇네. 진짜 저 가짜 상투스나 임페트로나 전부 내가 만들어낸 가짜 인격에 불과하다면? 근데 그게 말이 되나?
임페트로가 진짜 내 다른 인격인데도 내가 만들어낸 인격인데 나도 모르는 걸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고, 심지어 내가 닿지도 못했던 달인의 경지에 먼저 닿아 있을 수가 있나?
당연히 안되지.
“됐어. 다른 인격이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정확하게 뭔지 정의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현상 유지일 뿐이니까.”
“흐으으응.”
페리토드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눈으로 날 훑었다.
“그럼 만약에 있잖아. 네가 옆을 쳐다보곤 하는 걸 보면 마치 거기에 너만이 보이는 실체가 있는 듯한데, 네가 전투를 할 때 다른 인격이 네 뒤를 봐주거나 해서 정보를 전달해주거나 할 수 있어?”
– 가능합니다. 뒤 정도야 봐 드릴 수 있죠.
가짜 상투스가 긍정을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쓸데없는 짓이야. 감각이 동시에 공유되는 것도 아니고, 말로 전하는 정도면 그 말에 내 귀에 들리는 순간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
내가 사각에 대한 시야가 필요할 정도의 난적이라면 정말 찰나가 승부를 가를 테고, 그 상황에서 입으로 내뱉어내는 언어란 너무나 그 정보전달이 느린 방식이었다.
말로 정보를 전달해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대라면 굳이 사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도 않을테고.
“그럼그럼 또 뭐가…”
“그만.”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거지.
나는 페리토드의 말을 끊어내고 말했다.
“아직 일이 안 끝나서 바쁘니까 쓸데없이 귀찮게 캐묻지 마.”
아직 부패의 저주가 담긴 상자를 세 개쯤 더 묻어야 안정권이었다. 나는 뒤에서 무어라 조잘대며 따라오는 페리토드를 달고서 걸음을 옮겼다.
***
“후. 이 정도면 됐나.”
마지막 다섯 번째 상자를 깔끔하게 묻고 기지개를 쭉 켰다. 페리토드는 내가 바닥을 발로 문지르는 광경을 지켜보다 말했다.
“이제 뭐 해?”
“뭐하긴 돌아가야지.”
이렇게 조치를 해둔 이상, 선신의 사제놈들이 뭘 하든 교역 도시 미세레 때처럼 그 알맹이는 내 것이 될 터였다. 굳이 내가 이곳에 있지 않더라도.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악신의 신성을 뿜어내는 부패의 저주 특성상, 소모품인 저 신성을 감춰주는 검은 상자가 언젠가 제 효력을 다해 그 기능을 잃어 악신의 신성이 노출되는 날이 찾아온다는 건데.
디스펜스 말로는 적어도 몇 달은 버티게 설계했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선신의 사제놈들은 악신의 사제놈들에 비해 일 처리가 빠릿빠릿하니까 말이야.
일단 선신의 사제놈들이 펼치는 의식의 전조조차 보이지 않는 이상, 레페랑 페르카를 데리고 와서 며칠 묵다가 출발해도 별문제가 없을 터였다.
“진짜 영주성 안 가봐도 돼?”
“가봤자 나한테 좋을 일이 없는데 뭐하러?”
만약 이곳을 찾은 선신 사제들 중에 사도가 있더라도 당장은 건드릴 수 없었다.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선신의 사제들을 건드리는 순간, 벌집이 든 통을 건드리는 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당장은 레페랑 페르카란 혹을 달고 있기도 하고.
걔네부터 고향에 데려다준 다음에 여길 다시 한번 들리든가 해야지.
“돌아가자. 아니, 온 김에 숙소부터 잡고 돌아갈까.”
말을 꺼내며 페리토드를 쳐다보자 그녀의 손에 들린 과일 껍질이 보였다. 아까 먹었던 바나나 모양 과일의 껍질이.
저걸 여태 안 버리고 들고 다닌 건가.
“그거 안 버리고 뭐 해?”
“보이는 쓰레기통이 없어서.”
“이 주변에 대충 버려. 어차피 과일 껍질이야. 알아서 잘 썩는다고.”
“됐거든. 알아서 버릴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마법사답지 않게 묘하게 준법정신이 투철하네.
“마음대로 해. 마침 시간도 제법 남았겠다. 숙소부터 잡고 돌아가는 게 낫겠네.”
“그러자.”
도시의 외곽을 벗어나 다시 시내로 향하자 아까와 달리 거리의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와 다른 분위기였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페리토드는 조금 궁금한 듯 보였지만.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찾아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세요?”
“으아아아!”
페리토드가 직원에게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자 직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들었던 종이를 놓쳤다.
종이는 팔랑거리며 내 앞에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종이엔 소년과 청년 사이의 앳된 얼굴이 하나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 적힌 내용 또한 요약하자면 무척이나 간단했다.
– 생포 한정. 이 자는 레이다란 영주님의 혼외자. 찾아서 영주의 저택으로 데리고 온다면 매우 후한 사례가 기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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