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14)
314 화 내기.
내기.
쾅!
“형님! 이 수배는 대체 뭡니까!”
거칠게 열어젖힌 문 사이로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새기 시작한 중년 사내가 들이닥쳤다.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고 있던 레포스의 노영주, 캐디런 레이다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기별도 없이 찾아온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어 답했다.
“…보이는 대로지.”
“보이는 대로라뇨!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생아를 찾는 수배를 온갖 곳에 뿌리시면…”
노영주는 느긋하게 말을 끊어냈다.
“뿌리면?”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그 태도에 영주의 동생, 루티마 레이다란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아무런 의욕 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형님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눈빛이 총기를 되찾고 목소리마저 맺고 끊음에 힘이 실려있었다.
루티마는 신중하게 한번 말을 고른 다음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사생아에 대한 수배를 내리면 가문의 명성을 먹칠하는 온갖 추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좀 더 은밀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먼저 시도하고 나서 공개수배를 내리는 게 낫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사생아라니. 루티마는 당최 이 날벼락 같은 이야기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의 형, 캐디런은 별처럼 반짝이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지만 무능하고 부도덕한 인간이지도 않았다.
굳이 아내를 두고 외도를 할 만한 인간이 아니었고, 그런 기미조차 없었었다. 평생을 모난 곳 없이 조용하게 할 일만 하고서 살아온 형님에게 외도로 태어난 사생아라니. 정말이지 믿기지 않았다.
“제게 먼저 귀띔이라도 해주셨으면 제가 어떻게든 조용하고 신속하게 먼저 알아봐 드렸을 텐데요.”
노영주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생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짧은 침묵 후 무겁게 닫혀있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네가?”
짧은 한마디였지만, 무척이나 많은 뜻을 품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 캐디런 슬하에 살아있는 자식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레포스 영주 자리의 다음 주인은 루티마가 될 터.
하지만 후계가 없던 캐디런이 자신의 사생아를 찾아낸다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가 무척이나 달라졌다. 특히나 루티마에게만 안 좋은 방향으로.
루티마는 늙은 형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대답했다.
“형님. 저는 정말 영주 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형님을 도와드리고 싶을 뿐이라고요.”
“루티마.”
짧게 이름을 부른 캐디런은 의자에 더욱 깊게 몸을 파묻으며 말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그건 생선을 맡긴 자의 잘못이다. 나는 그런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짧은 끊음. 조금의 여유를 두고 캐디런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생아가 어떻단 말이냐. 우리 가문에 사생아로 더럽혀질 명성이 남아있긴 한가 싶은데.”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빛이 루티마를 비췄다. 루티마는 그 눈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루티마 레이다란, 자신도 전대 영주가 늘그막에 저지른 외도로 태어난 사생아였으니. 지금 형님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형님.”
“물러가라. 너는 그저 네 업에 충실하면 된다. 처음부터 네 것이 아니었던 자리를 괜히 탐하며 이곳에 기웃대지 말고.”
단호한 축객령. 루티마는 자신의 늙은 형을 바라보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전부 오해십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무슨 말을 하든 형님께 닿지 않을 테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캐디런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봄으로 답했다. 루티마는 조용히 영주의 방을 떠났다.
노영주는 배다른 동생이 떠나고 나서야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비록 어머니가 달랐지만 사생아 동생에 대한 별다른 악감정은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영주의 자리를 물려줄 생각 또한 없었다.
영주 자리야 원래는 어떻게 되던 전혀 상관없던 문제였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으니.
***
“젠장! 대체 이게 무슨!”
루티마는 원래 영주 자리엔 전혀 관심이 없었었다. 정실의 소생인 형님은 무척이나 정정했고, 자신은 그저 아버지가 늘그막에 저지른 치부에 불과했으니.
캐디런의 자식이 이른 나이에 병사한 것, 그 뒤로도 계속 후계가 없던 것. 그 전부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 그저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되어있던 것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상황이 너무나 유리하게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주의 자리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형님을 보며 루티마는 자그마한 꿈을 품었었다.
평생을 레이다란 가문에서 겉돌던 자신이 당당히 가문의 중심에 서보게 되는 그런 꿈을.
매일 그 꿈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었다.
영주 루티마 레이다란이라는 존재를.
하지만 이제 매일 꿔오던 그 꿈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지경이었다.
상황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탓에 루티마는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제대로 마음이 잡히질 않았다.
자신은 영주가 되고 싶은 것인가?
그건 맞았다. 자신은 영주가 되고 싶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에 루티마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으니까.
그는 바삐 걸음을 옮기면서 구겨진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생아를 일단 먼저 손에 넣어야만 했다. 사생아가 형님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해볼 여지는 무척이나 줄어들 터.
“…그러니 반드시 누구보다도 먼저 손에 넣어야 해.”
앞으로의 인생이 걸린 문제 정도는 직접 선택하고 싶었으니.
***
레페는 얼떨결에 결성된 사생아추적모임을 보며 말했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모리츠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한테 계획이 있어. 들어볼래?”
모리츠와 야울과의 만남. 레페는 뭔가 기묘하게 맞물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저 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페리토드와 함께 거리를 종일 쏘다니다가 허탕 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결말이 될 확률이 높았을 텐데.
여기서 계획이 있는 모리츠를 만나다니. 어릴 적부터 그녀가 봐온 모리츠는 항상 꾀가 많았다. 잔머리를 굴리는 재주도 제법 있었고. 남자애들 무리가 무언가 큰 사고를 칠 때면 항상 모리츠가 껴있었다.
물론, 거기엔 페르카도 항상 껴있긴 했었지만.
“말해봐.”
“흠흠.”
모리츠는 목소리를 고른 다음 말을 꺼냈다.
“들어봐. 페르카, 너 우리 중에 내가 레포스 시를 제일 많이 와본 건 알고 있지?”
모리츠의 지명에 페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심부름 때문에 네가 제일 자주 왔다 갔다 하긴 했지.”
“맞아. 우리 아버지가 하는 만물상 일을 보러 여기를 오다니면서 난 아버지 친구분들이랑도 안면을 텄단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 거 같아?”
모리츠 특유의 질문으로 끝나는 말투에 페르카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빙빙 말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해. 기왕 움직일 거면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알았어알았어. 그냥 내 말은 이거야. 내가 아는 아버지 친구분 중에 소문에 빠삭하신 분이 있어. 특히나 이곳 레포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분이야. 그분한테 가보자고.”
“이야.”
페리토드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환히 웃으며 말했다.
“레페, 페르카. 너희 친구 제법 유능한데? 이 유능한 친구 덕에 진짜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을지도 모르겠는걸.”
낯선 미인의 칭찬에 모리츠가 쑥스러워하며 볼을 붉혔다.
“칭찬 감사합니다.”
소꿉친구가 소녀처럼 볼을 붉히며 쑥스러워하는 그 꼴불견인 모습에 레페는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숨기지도 않고서 말했다.
“정말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아내고 싶거든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그, 그렇지. 가자. 다들 나만 따라오라고.”
모리츠와 야울이 앞장서고, 레페 일행은 그 뒤를 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
와작와작.
“…연은 어떤 거 같아?”
“뭐가?”
“…페리토드가 영주의 사생아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당연히 못하지. 발 빠른 놈들은 진작에 어제부터 움직였을 텐데. 하루 푹 자고 쫓기 시작한 쟤네가 먼저 사생아를 찾아내려면 제법 많은 운이 겹쳐줘야지.”
“…내기할래?”
“무슨 내기?”
“…페리토드가 사고 한 번 칠 수 있나 없나 내기.”
“좋아. 나는 사고 친다에 걸게.”
“…응? 방금 못한다며.”
“근데 묘하게 또 사고는 한 번 칠 수 있을 거 같거든. 이게 또 마법사 놈들이 사고 내는 거 하나는 일품이거든. 진짜 무조건 사고 한 번 친다 저거. 근데 내기면 뭐 걸어야지. 뭐 걸고 할 건데?”
“…김샜어. 나도 사고 친다에 걸려고 했는데.”
“아니지. 내가 먼저 걸었으니까 네가 무조건 반대편에 걸어야지. 그래야 맞지.”
“…아냐. 하나도 안 맞아.”
“내기에 거는 건 꿀밤 백 대 정도로 할까? 딱 좋네.”
“…그거 다 맞으면 나 머리 터져.”
***
“안돼. 절대 안 되니까. 헛짓거리할 생각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 모리츠.”
낮이라 아직 열지도 않은 주점에서 잔을 뽀득뽀득 닦으며 델키움은 아직 제 주제도 모르는 어린 친구 자식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모리츠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면서요. 그리고 맨입으로 가르쳐달라는 거 아니에요. 저 돈 낸다니까요?”
델키움은 깨끗하게 닦아낸 잔을 이리저리 살피며 대답했다.
“내가 말한 도움이 이런 도움이 아니란 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모리츠. 그리고 친구 아들놈이 불나방 짓을 하려고 하는데 그걸 도와줄 미친놈이 세상에 어딨겠나. 안 그래?”
“불나방 짓이 아니라니까요? 저희 다섯 명이나 되고 다들 다 클 만큼 다 큰 데다, 심지어 저분은 마법사세요. 절대 어딜 가도 꿀리지 않는다니까요?”
마법사란 이야기에 델키움은 모리츠의 뒤에 서 있는 페리토드를 힐끔 쳐다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안 돼. 그리고 돈 가져왔으면 쓸데없는 거 알아내는 데 돈 버리지 말고, 그냥 좋은 술 하나 시켜서 한 잔 찐하게 하고 집 가서 두 발 뻗고 자라.”
델키움이 말하는 투로 보아 무조건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기에 모리츠는 더 애가 탔다.
“진짜 그러지 마시고요! 살짝만 알려주세요. 알려주시면 제값도 치르고 조심도 할게요.”
델키움은 눈앞의 친구 아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게 다 컸다는 녀석이 말하는 태도냐? 내가 혹할 만큼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는 못할망정 무작정 떼만 쓰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거냐. 애 같이 굴면서 본인은 무작정 애가 아니라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려줄 수 있겠어. 안 그래?”
“여기선 나한테 맡겨.”
페리토드는 모리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앞으로 나섰다.
“정보 팔아줘.”
델키움은 페리토드를 한 번 훑어보곤 새 컵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
“혼자 찾아왔으면 팔았어. 근데 내 친구 아들놈을 주렁주렁 달고 온 이상 댁한테도 못 팔아. 마법사 아가씨.”
“…무슨 일이 있어도?”
붉은 입술이 빠르게 달싹대자, 마력이 요동쳤다.
페리도트가 내민 손가락 위에서 자그마한 마력의 불티가 피어올랐다. 페리토드는 자그마한 불꽃을 가지고 손가락으로 장난치며 델키움을 쳐다보았다.
“이래도?”
그 쥐똥만 한 협박에 델키움은 다시 한숨을 폭 내쉬었다.
“협박한다고 입을 열었으면 지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알려줘도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어. 설마 나한테 정보를 구하러 온 게 너희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잠시만.”
위협이 안 먹히자 페리토드는 고개를 돌려 레페와 페르카를 보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해?”
***
솜니아는 김샌다는 표정을 지었다.
“…쟤네 사고 못 칠 거 같아. 재미없어. 난 페리토드가 막 나가면서 뭔가 할 줄 알았는데 쟤 왜 저렇게 얌전해?”
쓸데없는 데서 준법 시민이라니까. 마법사라면 화끈하게 협박도 할 줄 알아야지.
“그러게 말이야.”
오독오독 견과류를 씹어먹고 있자 솜니아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왜 봐?”
“…꿀밤 백 대. 때려도 돼? 사고 못 칠 거 같으니까.”
아니, 이 시건방진 꼬맹이가?
아까 내기는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자기가 살짝 유리해 보이니까 이렇게 나온다고?
솜니아는 자그마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딱 대.”
“아직 안 끝났어. 이 소시오패스 꼬맹아. 협박이 안 먹힐 때는 또 방법이 있지.”
“…?”
나는 오른팔의 팔찌에 대고 말했다.
“프리무스. 솜씨 좀 보여줘.”
협박이 안 먹힌다?
그럼 더 격렬하고 위협적인 협박을 해봐야지.
***
콰앙!!!
찢어지는 듯한 총성이 울리고 델키움의 머리 옆이 터져나갔다.
청남색 망토를 휘날리는 기계 기사의 푸른 안광이 번뜩이고 변형을 끝마친 프리무스의 오른팔이 델키움의 머리를 조준했다.
– 다음은 머리다.
“…무, 무슨?”
델키움은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페리토드의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뭔가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상황이 격변했다.
그는 빠르게 눈알을 굴려 페리토드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페리토드를 보곤 깨달았다.
이 상황은 페리토드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철컥.
오른팔이 변형한 차가운 총구가 델키움의 이마에 닿았다. 청남빛 기계 기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말하거나 죽거나. 네게 선택지는 둘 뿐이다. 델키움. 이미 상황은 내 통제 아래에 있다.
“갑자기 그게 무…”
– 한마디.
짧게 말을 끊어낸 프리무스의 눈구멍에서 청남빛 안광이 일렁였다.
– 지금 이 순간부터 네게 허락된 건 단 한마디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라. 델키움. 그 선택만이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고저 없는 목소리에 델키움은 신중하게 눈앞에 나타난 기계 기사를 살폈다.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내비치지 않는 금속 덩어리의 모습에 피부 위로 자그마한 소름이 돋았다.
잠시 후, 그는 세 번째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는 건 전부 말하겠다.”
– 현명한 판단이다. 델키움.
***
“…이건 반칙이야. 부정행위야. 말도 안 되는 억지야!”
“이게 바로 어른 힘이다. 꼬맹아.”
“…이건 어른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거잖아!”
“됐고, 꿀밤 백 대 맞을 준비나 해.”
“….역시 내기는 없던 거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응응. 그렇게 하자.”
“아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딱 대.’라고 했었지? 그대로 돌려줄게. 딱 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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