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17)
317 화 날개.
날개.
쾅!!!
검은 금속질 동체가 그대로 벽을 뚫고 튕겨났다.
예상외의 거력. 프리무스는 허공을 체공하는 와중,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손상된 부위는 없다.’
어두운 청남빛 안광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동감으로 넘치던 저택엔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 죽어버린 사람투성이였다.
‘권능의 형태로 보건대, 높은 확률로 ’말라붙은 맥동‘의 사제. 방금 보였던 힘으로 유추해보건대 1옥(玉)을 복용한 상태인 건가.’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로 상대의 역량을 대충 분석 완료했지만, 그녀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1옥(玉) 상태의 사제보다 발휘하는 힘이 강했다.
‘사제들의 권능이 옛 시대에 비해 강하게 측정되는 까닭은 아마도 천상과 지상의 거리가 가까워진 탓일 확률이 높겠지.’
상대가 만에 하나라도 ‘사도’라면 자신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애초에 그녀가 활동하던 고대 제국의 시대에서도 사도란 옛 시대의 존재였기에 마주친 적이 없었으니.
찰나의 사고가 끝나고, 검은 동체 곳곳이 갈라지며 푸른 불길을 분사해 튕겨 나가던 동체를 멈춰 세웠다.
적당하게 벌어진 거리. 애초에 튕겨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전투 성향상 상대와의 거리는 적당히 벌어져 있을수록 좋았다.
애초에 자신의 육체는 둘째나 셋째, 넷째에 비해 가변적인 영역이 많았고, 육체에 가변적인 영역이 많다는 것은 즉, 그 육체의 견고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근접전은 나보단 둘째나 셋째…’
탈주해버린 셋째 테르지오를 떠올리자 기분이 축 처졌다.
대체 어째서 테르지오는 조용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예정이었던 자신들을 구원하고 두 번째 삶을 허락해준 후계자님의 뜻을 부정하고 떠난 것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맞붙었을 때, 테르지오 녀석은 이것이 진정으로 후계자님을 위하는 길인 동시에 옳은 길임을 누차 강조했었지만, 프리무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 몇이 죽는 게 그리 큰일인가. 그 시절 전쟁 속에서 죽었던 사람 수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건만.
‘설마, 옛 주인님께선 언젠가 머리가 굵어진 우리가 테르지오처럼 자신의 뜻에 반기를 들 걸 아시고 우리를 버리셨던 걸까.’
우울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프리무스의 오른팔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빠르게 변형을 끝마쳤다.
옛일은 옛일. 작금은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새 주인님에게 충실할 시간이었다.
조준, 격발.
지극히 단순한 과정 끝에 뻗어 나간 탄환은 정확하게 테스타의 머리통에 꽂혔다. 사제의 머리가 급격하게 꺾였음에도 그는 여전히 굳건히 두 다리를 땅에 붙인 채 서 있었다.
손가락 끝에 맺히는 자그마한 빛의 구슬.
테스타는 고개를 들며 2개 째의 옥(玉)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미간에 틀어박혔던 탄환이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은 채 튀어나왔다. 프리무스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생각보다 전투가 길게 이어질 거라 계산했다.
상대는 ‘말라붙은 맥동’의 사제.
‘가진 것 없는 자들’이라 불리우는 저 사제들의 권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접촉한 타인의 생명력을 갈취하는 ‘취하는 손’과 방금 저자가 직접 입으로 집어넣은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는 ‘옥(玉)’이라는 권능. 그 단순한 두 가지 권능만이 말라붙은 맥동을 모시는 사제들에게 허락된 권능의 전부였다.
저들이 ‘가진 것 없는 자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기껏 가진 권능이 단 둘뿐인 데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두 번째 권능인 옥(玉)은 ‘취하는 손’을 통해 타인의 생명을 취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는 발동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신의 사제들이라 불리기엔 무척이나 악랄한 그들의 권능은 타인의 생명을 취해댐으로써 강해져갔고, 흡수해둔 생명력만 충분히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노쇠를 거의 멈출 수 있는 데다 대부분의 부상을 복구해낼 수 있었다.
그 단순하고 강력한 권능 탓인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한 시대에 ‘가진 것 없는 자들’로 선택받는 자들의 수는 극히 적었으나 개개인의 무력은 무척이나 강력했다.
프리무스는 멈추지 않고 세 번째 옥(玉)을 입안으로 집어넣는 테스타를 보며 다음 탄환을 장전했다.
‘문제는 저 사제가 몇 번째 옥(玉)까지 섭취할 수 있냐는 점인데.’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무력 수준은 그들이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옥(玉)의 개수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었다. 프리무스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기록된 옥(玉)의 최대 섭취 개수는 다섯까지.
눈앞의 사제는 벌써 세 개째의 옥(玉)을 입안으로 밀어 넣은 차였다.
다행인 점은 네 개째의 옥(玉)을 흡수하지는 않았다는 점.
‘일단은 세 개인가.’
타앙!!!
한쪽 팔 전체와 일체화된 총구가 불을 뿜고 두 번째 탄환을 테스타를 향해 발사했다. 세 번째 옥(玉)까지 흡수를 끝마친 테스타는 가볍게 목을 꺾어 총탄을 피해냈다.
사제는 프리무스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금인족이신줄 알았는데 아니시군요.”
‘취하는 손’은 생명력의 근원을 취하는 것이기에 금속 껍데기를 둘렀더라도 엄연히 생명의 범주에 속하는 금인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찰나 간 권능을 발동했음에도 아무런 생명력을 취하지 못했단 것은 눈앞의 저 검은 금속 인간이 그가 아는 생명의 범주 밖에 속한 존재라는 것.
푸른 안광이 바삐 움직이며 상대방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레페 일행이 없었다면 일단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테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테스타와 거리를 더 벌리는 건 그의 시선이 레페 일행 쪽으로 향할 우려가 있었다.
프리무스는 통신 장치를 발동시켜 기지 쪽에서 쉬고 있을 넷째를 호출했다.
– 내 장비 사출해.
– 몇 번.
지극히 단조로운 어조의 짧은 대답. 프리무스는 짧은 계산 끝에 장비를 결정했다.
– 4번으로 부탁…
뚝.
대답도 없이 끊어진 통신. 맞이인 자신을 향한 존중이 결여된 그 지극히 시건방진 태도에 자그마한 짜증이 치솟아 올랐지만, 넷째 녀석이 저런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기에 눈앞에 상대에게 다시 집중했다.
변형된 오른팔로 다시 한번 테스타를 조준하자, 그가 움직였다.
콰앙!
사제가 자리를 박차는 굉음과 동시에 탄환이 발사됐다. 프리무스는 탄의 명중도 확인하지 않고 반동에 몸을 맡겨 그대로 뒤로 크게 물러났다.
계산한 시나리오 중 최선의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저 사제가 레페 일행을 먼저 정리하고 자신과 맞붙으려 했다면 굳이 억지로 접근전을 상정하고 움직였어야만 했는데, 이처럼 자신을 쫓아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텅!
3개의 옥(玉)을 흡수한 테스타는 이젠 탄환을 피하지도 않고, 돌진하면서 손을 휘둘러 탄을 쳐내버렸다. 쉴 새 없이 프리무스와 거리를 좁히는 그의 두 눈은 명백한 흥미로 반짝이고 있었다.
뒷정리를 위해 일방적으로 나약한 자들의 목숨을 취하는 나날에서 가끔씩 맞이하는 이런 강자와의 싸움은 언제나 격렬하게 환영이었다.
타앙! 타앙! 타앙!
프리무스는 쉴새 없이 거리를 벌리며 기계적으로 다음 탄환을 쏘아댔다. 테스타는 그때마다 너무나도 쉽게 탄을 모조리 쳐내며 프리무스와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물러나면서 탄환을 쏘아대는 프리무스와 끊임없이 그 뒤를 쫓는 테스타의 거리가 엄청난 속도로 좁혀져 갔다.
마침내 테스타가 프리무스를 따라잡았다. 프리무스는 눈앞의 사제를 향해 다시 한번 변형된 오른팔을 내밀었다.
테스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잡았…”
변형된 오른팔의 형태가 여태까지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아까보다 확연히 커진 총구가 테스타의 가슴팍을 조준하고, 프리무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한참 멀었어.
타앙!!!
묵직한 총성이 주변을 울리며 프리무스가 쏘아낸 슬러그 탄이 테스타의 가슴팍에 때려 박혔다. 한껏 가속해있던 테스타의 몸뚱이가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튕겨 나가 그대로 벽을 부수며 처박혔다.
철컥.
짧은 재장전을 끝마치고 프리무스는 가만히 서서 테스타가 만들어낸 벽의 구멍을 쳐다보았다.
돌 부스러기가 짓밟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먼지 속에서 테스타가 걸어 나왔다. 가슴팍의 사제복이 모조리 찢겨나가 여기저기 구멍 뚫린 상체가 훤히 드러났지만, 그 상처에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짊어진 타인의 생명이 모조리 내려놓기 전까진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 없는 몸이었으니.
“하아.”
뜨거운 한숨을 토해낸 테스타는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신기하네요. 충분히 힘으로 버텨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처박혀 버리다니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그쪽은 도망치고, 저만 쫓아다니다간 시간만 질질 끄는 쓸데없는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크겠어요. 아무래도 판을 다시 짜봐야겠어요. 당신이 직접 제게 다가오도록요.”
툭. 투두둑.
자그마한 알갱이 같은 탄환들이 테스타의 상처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대답 없는 프리무스와 짧게 눈을 마주치고는 그대로 옆으로 튀어 나갔다. 곧장 레페 일행이 있던 장소를 향해.
– 제길.
사출한 장비가 도착할 때까진 시간을 끌고 싶었는데. 사제놈이 눈치 빠르게 자신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타앙!!!
그의 뒤를 쫓으며 빠르게 산탄을 쏴 갈겼지만, 지근거리가 아닌 탓에 별다른 저지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프리무스의 오른팔이 수백이 넘는 조각들로 갈라지며 다시금 변형을 시작하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가던 사제가 돌아섰다.
외통수.
웃는 낯을 한 사제는 그대로 돌아서서 자신의 뒤를 한껏 쫓아오고 있던 프리무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제대로 직격한 주먹의 묵직한 충격이 프리무스의 몸속에 울려 퍼지고 금속 동체가 튕겨 나가 그대로 바닥을 굴러 처박혔다.
‘제길.’
일격을 허용한 프리무스는 마음속으로 자그마한 불쾌함을 토로했다. 애초에 자신은 이런 근접전이나 누군가를 지키는 걸 상정하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분야는 둘째나 셋째가 특출났으면 났지.
저 사제가 계속 이런식으로 레페 일행 쪽을 인질 삼아 자신에게 근접전을 강요해온다면 성가셔질 게 분명했다.
쾅!
테스타는 프리무스에게 한시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차고서 몸을 일으키는 프리무스를 향해 돌진했다.
테스타를 조준한 프리무스의 오른팔이 다시 한번 수백 조각으로 갈라지고 산탄을 발사하기 위한 변형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테스타는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잔해를 주워들고서 악력으로 잘게 쪼개 변형 중인 프리무스의 오른팔을 정확하게 노리고 내던졌다.
수백 조각으로 갈라졌던 파편들 사이로 자그마한 알갱이들이 끼어들어 변형을 방해했다.
– 변형 중 이물질 침입. 이물질 제거 후 완전 변형까지 3초 소요.
프리무스의 머릿속에 꽂히는 암울한 분석결과.
3초는 언뜻 보면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금의 눈앞에서 3옥(玉)을 복용한 사제가 달려들고 있는 상황에선 무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근접전은 정말 취향이 아닌데 말이지.’
찰나 간에 가까운 거리까지 근접한 테스타는 프리무스의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속도, 궤도, 타점.
셋 모두의 계산이 끝난 프리무스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주먹을 피해내고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뒤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회전하는 힘을 실어 테스타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빡!!!
검은 금속 발끝이 정확하게 테스타의 턱을 타격하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한 턱이 뜯겨 날아갔다.
툭.
사제의 뜯겨나간 턱이 바닥 위를 구르고 변형이 끝난 오른팔이 테스타를 향해 산탄을 토해냈다. 주변을 울리는 시끄러운 총성과 동시에 사제의 몸뚱어리가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잔해의 먼지.
바닥에 떨어졌던 턱의 일부가 마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먼지 속으로 사라지고, 먼지 속에서 테스타가 멀쩡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늘 예상치 못한 손해를 보게 되는군요. 제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십니다.”
대답은 없었다. 프리무스는 딱히 전투에 있어서 상대방과의 대화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테스타는 상대가 답하든 말든 저 혼자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이렇게나 제 삶에 재미를 주시는데, 미적지근하게 답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그의 손가락 끝에서 자그마한 빛의 구슬이 떠올랐다. 그간 그가 모아온 생명의 정수가 응축된 옥(玉)이.
테스타는 4개째의 옥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웃었다.
“지금부터는 이야기가 많이 다를 겁니다. 제발 방심하지 마시길.”
– 드디어 왔군.
쾅!!!
저택의 지붕을 부수며 새카만 금속 덩어리 하나가 프리무스의 옆에 내리꽂혔다. 매끈한 검은 기둥은 프리무스의 옆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덟 조각으로 갈라지더니 푸른 빛을 분사하며 날아올라 움직였다.
그녀의 4번 무장, 여덟 개의 무선식 유도 병기 흑익(黑翼)이 마치 한 쌍의 날개처럼 프리무스의 등 뒤에 자리했다.
검은 기사는 자신의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선언했다.
– 그 비루한 삶속에서 네놈이 비축해둔 생명, 오늘 이곳에서 모조리 불살라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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