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21)
321 화 단기결전.
단기결전.
길게 늘어난 암녹색 선이 세계를 긁었다.
세난은 뒤로 몸을 숙여 검격을 피해냈다. 쓸데없이 과하게 위험한 칼날이 저 혼자서 늘어나기까지 한다니.
암녹빛 검날은 집요하게 세난을 노리고 따라왔다. 소년 사도는 재차 몸을 놀리며 눈앞의 권능을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누가 뭐래도 낯선 권능을 상대하는 데 있어 상대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중요한 부분이었으니.
소년의 푸른 눈이 부패의 검이 훑고 간 지역을 쫓았다.
단 한순간이라도 저 암녹빛 검날에 닿았던 모든 것들이 삭아 들어가며 부스러졌다. 조금 전, 자신의 몸에 꽂혔을 때와 달리 심지어 그 검날이 계속 닿아 있지 않더라도 저 상대를 안 가리는 부식이 사그라들 기세가 없어 보였다.
자신이 암녹빛 검을 피해낼 때마다 차근차근 세계를 잠식하는 부식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건 무슨 까도 까도 새로운 게 튀어나오는 양파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양파는 적어도 껍질을 까도 양파가 나오지 양파가 사과가 되거나 하진 않았다. 저 악신의 숭배자는 무슨 한 번 제압했다 싶을 때마다 너무 확확 변하는 통에 뭔가 싶었다.
‘양파보다 심하네.’
이런저런 상념 속에서도 세난은 공격을 피하며 연을 관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사실, 아직 충분한 여유가 있기도 했다.
7옥(玉) 삼킨 자신에게 이 정도 공격을 피하는 것쯤이야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으니. 그럼에도 굳이 세난이 당장 반격을 가하지 않는 것은 연에게 혹시나 숨겨둔 수가 더 있을 경우를 고려한 판단이었다.
찰나 속에서 길게 이어진 관찰 끝에 세난은 한 가지 결과를 도출해냈다.
‘저 상태, 그리 오래 유지하진 못하겠어.’
망가진 헤일로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유형화된 신성의 방울은 그저 장식이 아니라 진짜 헤일로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신성의 방울들이 조금씩 떨어져 내리며 대지를 썩게 함과 동시에 망가진 헤일로 또한 조금씩 그 형체를 잃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당장 싸워 줄 이유가 있는가? 아니, 전혀 없었다.
세난은 몸을 젖혀 위에서 떨어지는 검격을 피해내고는 빙그레 웃었다.
“저, 갑자기 확 도망쳤다가 조금 뒤에 다시 오고 싶어졌어요.”
연도 그 웃음을 보며 마주 미소지었다.
“해봐. 재주껏.”
다시 한번 암녹빛 검격이 가로로 길게 허공을 긁고, 세난은 여태 해온 대로 몸을 뒤로 젖혀 검격을 피해냈다. 아니, 피해내려 했다.
‘이렇게 멍청한 방식으로 공격하는 사람이었나? 아닐텐…’
그제야 세난의 시선이 바닥에 닿았다. 바닥을 확인한 세난은 자그마한 침음성을 흘렸다.
‘…젠장.’
자신을 베어내기 위한 척, 수없이 허공을 긁어대며 심어놓았던 부패들이 모든 걸 집어삼키며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몸을 젖히면 덮쳐오는 저 살아 움직이는 부패에 닿게 될 수밖에 없을 터.
몸을 젖혀서 피해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쾅!!!
자리를 박찬 세난의 육체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세난은 거세게 느껴지는 공기의 저항을 느끼며 생각했다.
‘내가 오만했나?’
저 권능이 그 어떠한 소리도, 냄새도 없이 모든 것을 부식시키며 사방에서 조여오긴 했어도 그걸 못 알아챘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지극히 무뎌져 있음을 뜻했다.
‘하긴, 목숨을 걸고 싸울만한 일이 꽤 오래 없긴 했었지.’
6옥(玉)을 삼킬 수 있게 된 뒤로부터 전투라는 것 자체가 긴장감을 주지 못하게 된 것도 꽤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애초에 자신이 굳이 쓸데없이 강자를 찾아다니며 힘을 겨뤄대는 종류의 인간도 아니었고.
‘아까 좀 더 상대하기 쉬울 때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고 제압했어야 했네. 실수했…’
쿵!!!
상념을 끊어내는 물리적 충격이 뒤통수와 등에서부터 퍼졌다. 세난은 대지를 박차고 뛰어오른 속도 그대로 보이지 않는 벽과 충돌했다.
“…큭?!”
미리 쳐둔 ‘산 자는 넘을 수 없는 선’의 안배가 적중하고, 세난이 자그마한 틈을 내보인 그때.
연은 허공에 처박힌 부패의 검을 내질렀다. 암녹빛 신성의 선이 주욱 늘어나며 허공에 멈춰선 세난을 향해 고속으로 뻗어 나갔다.
세난은 정확하게 자신을 노리고 뻗어오는 부패의 검을 보며 이미 피하긴 글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길한 신성으로 빛나는 검날이 자신의 몸에 꽂히기까지 반의반 호흡도 채 안 남은 지금, 세난은 쾌속하게 반응했다.
푹.
그 찰나 간에도 몸을 비틀어 부패의 검이 꽂히는 부위를 몸의 중심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틀었다. 검에 꿰뚫린 부위를 중심으로 육체가 빠르게 산 채로 썩어들어간다. 소년 사도는 가차 없이 손날로 자신의 우반신을 몸에서 뜯어냈다. 부패의 검에 의해 허공에 꿰여있던 육체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생명력을 쏟아붓자 뜯겨나간 우반신이 빠르게 복구되었다. 우반신을 뜯어내는 와중, 왼손에 들러붙은 부패가 왼손을 좀 먹어가기 시작하자 세난은 재생된 오른손으로 왼손을 손목에서부터 뜯어냈다.
세난의 몸에서부터 떨어져 나간 왼손과 우반신은 채 대지에 닿기도 전에 썩어빠져 허공에서 바스러졌다.
연은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세난을 향해 부패의 검을 내리그었다. 소년 사도는 연의 동작을 보자마자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직으로 추락하던 소년의 몸이 옆으로 튕겨났다. 간발의 차이로 부패의 검이 허공을 긁었다.
그 어이가 없는 광경을 보며 연은 탄식했다.
“…저게 돼?”
힘으로 허공을 때려서 떨어지던 궤도를 강제로 꺾는다니,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걸 미친듯한 육체 능력으로 현실화한 것이었다.
놀란 건 놀란 것이고. 연은 재차 길게 늘인 부패의 검을 휘둘러 떨어지는 세난을 쫓았다.
무척이나 놀랍긴 했어도 찬찬히 살펴보니 허공을 때려서 궤도를 꺾어 이동하는 건 땅에 있을 때 비해 그리 멀리 이동하지도, 빠르게 이동하지도 못했다. 사실, 지상도 아닌 허공을 때려서 지상에 있을 때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했지만.
공기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이어지고, 세난은 계속해서 아슬아슬한 차이로 검격을 피해내며 마침내 땅에 착지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지를 부식시키며 번져나가던 부패들이 일제히 세난을 향해 모여들었다.
세난은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상황을 보니 이건 무조건 뭔가가 더 있었다. 자신이 여기서 자리를 박차고서 일직선으로 저 악신의 숭배자에게로 달려드는 순간, 미리 준비해둔 함정이 아가리를 벌리고 자신을 삼키겠지.
그 함정을 극복해낼 수 있느냐에 앞서 함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낭비하게 될 건 자명한 사실.
아직 긴 세월 동안 비축해둔 생명의 여분이야 차고도 넘쳤지만, 자신이 쌓아온 이 생명력의 대부분은 자신의 교단을 믿는 신도들이 기부한 소중한 생명력이었다. 당연히 그런 소중한 생명력을 낭비하는 선택은 옳지 못한 일이었고.
한숨을 내쉬고 주변을 살피던 세난은 무언가를 발견하곤 연을 향해 싱긋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당장은 제가 불리한 듯하네요. 그러니 조금 이따 다시 뵙는 거로 해요.”
연은 피식 웃었다.
“네가 과연 도망칠 수 있을 거 같… 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세난의 시선을 쫓던 연은 이내 저 소년 사도가 무엇을 봤는지 깨달았다.
미리 그어뒀던 ‘산 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연, 자신이 수차례 긁어댄 부패의 검의 여파로 암녹빛 부패에 집어 삼켜지면서.
상황을 파악한 연이 자리를 박차고 세난을 향해 달려들려던 그 순간.
콰앙!!!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세난이 허공으로 치솟아 암녹빛 부패들 사이로 쏙 빠져나가 버렸다.
“젠장.”
연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뒤로하며 세난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시간제한이 있는 저 사도화가 풀릴 때까지 여유롭게 적당히 주변을 쏘다니다 오면 자신의 승리는 이미 확정인 셈이나 다름없었다.
저 악신의 숭배자가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지만, 자신이 그보다 빠른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마침내 치솟던 육체가 힘을 다해 허공에 멈추고 추락으로 방향을 전환하던 그때, 착지할 장소를 살피던 세난의 눈에 불길한 광경이 보였다.
한낮임에도 도시가 죽은 듯이 조용했다. 길거리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투성이에 짐승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명들이 하나 같이 숨이 끊어지기라도 한 듯, 대지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져있었다.
그 모든 것은 사제들이 벌일 의식의 결과물을 찬탈하기 위해 연이 도시 곳곳에 심어둔 ‘부패의 저주’가 연의 사도화로 인해 강제적으로 한 단계 진화한 끝에 벌어진 결과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산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세난은 ‘산 자는 넘을 수 없는 선’을 빠져나온 끝에야 도시 전역을 뒤덮고 있는 숨 막힐듯한 악신의 신성을 느꼈다. 이대로 놔뒀다간 저 반쪽짜리 ‘사도화’가 풀리기도 전에 모든 시민이 다 죽고 말 것도 분명했고.
“쯧.”
짧게 혀를 찬 세난은 허공을 쳐서 도주하는 대신, 치솟아왔던 방향 그대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착지가 이어지고, 연은 기껏 도주에 성공해놓고 다시 돌아온 사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너? 도망간 거 아니었어?”
세난은 연을 마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밖에 벌어진 상황, 전부 의도한 건가요?”
“…밖?”
잠깐 말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연이 두 눈을 끔벅였다. 이내 연은 세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부패의 저주, 그것 때문에 뭔가 도시 단위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연은 침묵했다. 예상했던 결과는 아니었다. 애초에 원래는 이곳에서 사도화를 할 생각도 없었었고.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뜬 연은 웃었다. 조금 뻣뻣하게.
“그래. 전부 내가 의도한 거야.”
세난은 그 어색한 미소를 보며 밖의 상황이 연이 의도했던 결과가 아님을 깨달았다.
“도망치지 않겠다 맹세할 테니, 당장 멈추세요. 어차피 당신이 노리는 건 저잖아요.”
다 무너져가는 암녹빛 헤일로가 연을 비췄다. 연은 부패의 검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그 말할 시간에 어서 덤비기나 해. 꼬맹이 사도.”
말로는 역시 해결할 수 없었다. 세난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소년은 처음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며 낮게 말했다.
“속전속결로 갈게요. 재주껏 막아보세요.”
“바라던 바…”
쾅!!!
한시가 아깝다는 듯이 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년 사도가 자리를 박찼다. 소년의 발이 닿던 공간이 터져나가며 사도의 신형이 사라졌다. 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부패의 검으로 세계를 긁어내렸다.
이어진 교전 속에서 부패를 충분히 쌓았다. 부패의 검의 궤적을 따라 대지를 잠식하며 침묵하고 있던 부패가 신성과 함께 유형화해 순식간에 공간 전체를 뒤덮으며 일어났다.
연을 향해 다가올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점하면서.
세난은 그 부패들의 틈을 찾지도, 기회를 노리며 주위를 돌지도 않았다.
소년 사도는 그 자그마한 몸으로 유형화된 부패를 그대로 뚫어내고서 연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전신에 뒤집어쓴 부패 때문에 소년의 전신이 산채로 썩어들어갔다. 통각이 사도의 뇌를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 없는 비명 속에서도 소년의 꽉 쥔 주먹은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사도의 푸른 눈이 밝은 정광을 내뿜고 낮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좀 아플 거예요.”
세난은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자그마한 몸에 담겨 있던 거력이 연의 몸을 후려치자 연의 우반신이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허공으로 튕겨 난 부패의 검이 빙글빙글 돌며 회전했다.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한 연이 웃었다. 여태까지보다 더 환히.
아직 멀쩡한 좌반신의 왼팔을 움직여 소년 사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소년 사도는 너무나 느릿한 그 동작에 연의 왼손을 쳐서 날리려 했다. 그러나 이내 소년 사도는 뭔가가 잘못되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몸이 잘 안 움직이지?”
나지막한 말 뒤로 뻗어 나온 왼손아귀가 세난의 얼굴을 붙잡았다. 세난은 뭐가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살폈다.
살아있는 몸으로 부패를 뚫고 나온 바람에 전신에서 비명을 질러대던 고통 탓에 깨닫는 게 느렸었다.
사지가 이미 거의 다 썩어들어가 힘을 주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세난은 머리를 붙잡혀 허공에 뜬 채 낮게 중얼거렸다.
“…이럴 리 없는데?”
직접 몸으로 돌파하며 느꼈던 부패의 속도로는 이렇게 빠르게 자신의 몸이 붕괴할 리 없었다.
변수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세난은 이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몸이 미끼였구나?”
우반신을 터뜨리면서 몸에 뒤집어쓴 저 사내의 살점 조각과 피. 그것들이 바로 함정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직접 몸속에 스스로의 권능을 최대한 응축한 다음 공격을 허용하며 자연스럽게 내가 그것들을 뒤집어쓰게 유도한 것이었다.
밖을 돌아다니는 부패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부패의 정수를 스스로 뒤집어쓰도록.
사지를 집어삼킨 부패가 육체의 중심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세난이 무어라 다시 말하려 했지만, 연은 허락하지 않았다.
“세 치 혀로 재생할 시간을 벌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연은 왼손에 들린 세난의 머리를 그대로 대지에 처박았다. 소년의 머리가 으깨 부서지고 사도의 증표인 회백색 사리가 튀어 올랐다.
연이 튀어나온 사리를 왼손으로 잡아챘다.
머리 잃은 소년의 몸뚱이가 바닥을 구르고, 연의 등위에 피어올랐던 망가진 헤일로가 마침내 마지막 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소멸했다.
“쿨럭.”
기도와 식도를 타고 역류한 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연은 한바탕 피를 토해내곤 왼쪽 팔뚝으로 입가를 대충 훔쳤다.
예상외로 상대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이런 식으로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써야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신성이 담긴 사도의 주먹을 맞고 터져버린 우반신은 쉽사리 재생되지 않았다. 터져버린 단면을 타고 쉴새 없이 피가 쏟아졌다. 연은 바쁘게 주변을 살폈다.
챙길 게 많았다. 절망도 주워야 하고, 어디로 튕겨 갔는지 모를 실론의 유물 팔찌도 찾아야 일단 작금의 부상을 지혈할 수 있다.
아마 전투가 대충 끝난 걸 파악한 디스펜스와 다른 녀석들이 이곳으로 곧장 오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지혈을 하지 않으면 그때까지 못 버틸 확률이 높았다.
“팔찌, 팔찌부터 찾아야…”
흐려지는 시야. 연이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잡으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던 그때.
새카만 이모탈리움 팔찌를 든 자그맣고 새하얀 손이 연의 시야로 불쑥 튀어나왔다.
“팔찌면 이거 맞아요?”
연은 멍청한 얼굴로 너무나 멀쩡한 눈앞의 소년 사제를 바라보았다. 세난은 멋쩍게 웃으며 연의 왼손에 검은 팔찌를 쥐여주곤 말했다.
“‘사도화’, 그거 너무 일찍 푸셨어요. 그거 푸시니까 나름 재생할 만하더라고요.”
연의 손에 쥐인 검은 이모탈리움 팔찌에서 수천 가닥의 이모탈리움 실들이 뻗어 나와 연의 상처를 지혈하고 응급처치를 해나갔다.
한결 나아진 상태에 연은 세난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왜 날 도와?”
“왜 돕긴요.”
세난은 시원하게 웃으며 양손을 하늘을 향해 살짝 들었다.
“제가 졌잖아요. 항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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