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29)
329
화물운송.
마라트의 억울함 호소가 끝나자 불편한 침묵만이 우리 사이에 감돌았다.
나는 당사자인 지젤이 먼저 입을 열어서 결정하길 바랐지만, 지젤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조금 더 이어지고 마침내 지젤의 입이 열렸다.
“…그러게 그때는 그게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 우리 교단이 조금 음습하기는 해도 인신 공양하고는 거리가 제법 먼 교단이었는데 말이야.”
아마 그 이유는 사도가 그리하자 했으니, 일반 사제였던 지젤은 무의식적으로 그 사도의 영향을 받았던 거겠지.
반면, 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마라트는 ‘달인’이다보니 사제들이 다들 사도의 사상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이상함을 느끼고 홀로 제 의지를 관철해낼 수 있었던 거고.
이것이 바로 몇몇 신들을 제외하고는 손쉽게 강한 사제를 얻을 수 있음에도 굳이 ‘달인’을 자신의 사제로 삼지 않는 이유였다.
만약 신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사제들을 선별하고, 사도를 내려보냈다고 해도 ‘달인’인 사제는 저 마라트처럼 그 뜻을 거슬러버릴 수 있었으니까.
팔짱을 끼고 지젤의 판단을 기다리길 조금. 지젤은 결심이 섰는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도와주고 싶다면 내가 호구인 건가?”
“호구랄 거까지야 있나. 그냥 원래 속해 있던 단체고, 따지고 보면 실제로 피해 입은 것도 없는데 그간 정이라도 들었으면 도와주고 싶기도 한 거지.”
“흐응.”
짧게 콧소리를 낸 지젤이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마라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마라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사도의 머리에서 꺼낸 사리, 그거 왜 반으로 쪼개서 나한테 먼저 먹인 거야? 너, 본인이 먹기엔 찜찜해서 나 가지고 먼저 실험해 본 거지? 응? 내가 그거 먹고 죽었으면 어쩌려고 한 건데?”
그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나와 지젤의 눈치를 봤다. 조금의 뜸을 들인 후, 마라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답해드려요? 아니면 예의상 답해드려요?”
“당연히 솔직하게지. 임마!”
“솔직하게 말했다가 기분 상해서 안 도와준다고 할까 봐 걱정돼서 말 못 하겠는데요.”
일리가 있었다. 마라트의 말대로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가 지젤의 빈정이 상해서 도와주려던 마음이 안 도와주려는 쪽으로 충분히 기울 수 있었으니까. 내가 마라트라도 말 못 했지. 암.
지젤은 구겨진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눌러 펴며 말했다.
“뭐라 말하든 도와주긴 할 테니까. 일단 말해봐. 교단엔 같이 한솥밥 먹던 식구들이 있으니 네가 아무리 밉상이어도 그거 상관없이 일단은 도와줄 거야.”
지젤이 도움을 보장하자, 마라트는 그제야 설명을 시작했다.
“그 사리인지 뭔지를 본 순간, 저는 직감적으로 이걸 먹으면 성녀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강렬한 예감이 들었죠. 문제는 이걸 먹는 순간, 제 머릿속이 성녀가 품었던 사상으로 물드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가능성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마침 지젤이 제가 성녀를 죽이는 광경을 봤겠다. 좋은 걸 나눠서 공범으로 만든다는 명분으로 먹여본 거죠. 물론, 그냥 무턱대고 먹인 건 아니고, 혹시나 사리를 먹으면 성녀의 사상으로 물들 위험도 낮출 겸 반으로 나눠서 먹였죠. 결과는 이미 겪으셨다시피 대성공이었고요.”
“실패했으면? 내가 전대 성녀랑 똑같은 사상으로 물들었다면? 어떻게 할 셈이었는데?”
마라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무척이나 가볍게 대답했다.
“전대 성녀랑 똑같은 꼴로 만들었겠죠?”
“야! 이 나쁜 새끼야! 넌 그냥 나가 뒈져!!!”
지젤이 당장에 마라트에게 달려들려는 걸 내가 뒤에서 끌어안아 막았다. 마라트를 위해서는 아니고, 혹시나 지젤이 녀석에게 달려드는 순간 저놈이 지젤을 납치해서 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젤은 내 품에서 몇 번 더 버둥대고는 겨우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그럼에도 완전히 흥분이 가시지는 않는지 여전히 씩씩대며 마라트를 노려보고는 소리쳤다.
“때려치워! 그냥 안 도와줄래!”
“아니, 솔직하게 대답해달라고 하셔서 대답해드렸을 뿐인데. 적어도 하신 말씀은 지켜주셔야지요.”
“뭐래. 내 대가리 깨려던 놈을 내가 왜 도와? 응? 내가 지나가던 등신 호구 새끼야? 꺼져. 정 도움을 받고 싶으면 개처럼 짖으면서 빌어보던가.”
“왈왈! 크르릉! 컹컹! 캥캥! 죄송합니다!”
마라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개처럼 짖으며 사과했다.
저걸 진짜 한다고? ‘달인’인데?
나랑 지젤이 동시에 멍청한 표정으로 무릎 꿇은 개처럼 짖어대는 마라트를 쳐다보자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서 물었다.
“또 무슨 소리로 짖을까요? 배도 까뒤집어요? 진짜 다 해드릴 수 있어요. 주문만 하세요.”
지젤은 살짝 질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안 할 이유가 있나요? 겨우 몇 번 짖어대는 거로 부도를 면할 수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지젤이 도와주지 않으면 교단이 부도나요! 부도가 난다고요! 이대론 다시 교단 전체가 그 음침하고 음울한 뒷세계 생활로 돌아가게 돼요! 저희가 지난 5년간 어떻게 쌓아온 신용이고 기반인데! 지젤도 잘 알잖아요! 저희가 다 같이 얼마나 열심히 발품을 팔며 거래처를 텄는지!”
마라트의 열렬한 주장에 지젤은 공감이 가는 바가 있기는 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열심히 좀 살긴 했어. 덕분에 교단 재정도 굉장히 좋아졌고.”
“그러니까요! 그동안 저희가 리베라티오에게 휘둘렸던 이유가 뭡니까? 네? 다 돈 나올 구석이 거기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교단 사제들 대부분을 거기에 파견했던 거지요! 이젠 돈도 더 많이 주고 바라는 건 더 적은 고객들과 거래를 트게 됐는데 여기서 망할 순 없어요! 암요! 제발 도와주세요! 지젤!”
“하아.”
폐부에서부터 차오른 깊은 한숨 소리. 지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건이 있어.”
조건부 승낙의 한마디에 마라트는 언제든 경청하겠다는 듯,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빛냈다.
“말씀만 하시죠!”
“나 혼자는 안 가. 내가 교단을 돕고자 하는 건 순전히 다 내가 그간 교단으로부터 받아온 것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나는 마르낙이랑 항상 동행할 거야.”
그거야 나도 찬성이었다. 애초에 지젤 혼자 보내줄 생각도 없었고.
“그리고 이 건을 끝으로 네 쪽에서 날 다시는 찾지 마. 한 번 도와줬다고, 내가 또 도와줄 거란 생각을 하지 말란 거야. 알겠어?”
“좋습니다. 이 건을 끝으로 완전히 남남인 셈으로 치죠.”
“너랑은 원래부터 남남이었어! 내 머리통 깨려던 개자식아!”
지젤은 그간 눈치 보느라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듯 마라트에게 무척이나 뾰족한 태도로 일관했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쏟아낸 그녀는 조금 시원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도와줄 거지? 마르낙? 우린 동료잖아.”
“도와줄 거긴 한데, 내 동료라는 걸 너무 백지수표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새하얗고 새카만 한 쌍의 눈이 나를 보며 부드럽게 휘어졌다. 싱긋 웃은 지젤 내 등을 툭툭 쳤다.
“백지수표 맞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억울하면 너도 나중에 날 쓰면 되잖아. 가자. 얼른 끝내고 다시 오자고.”
이거 지젤이 아니라 내가 호구 잡힌 거 같은데.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만.”
나는 오른쪽 손목에 낀 팔찌를 입가로 가져와 프리무스에게로 통신했다.
“프리무스, 잠깐 다녀올 일이 생겼어. 나랑 지젤이 할 예정이던 작업까지 네게 부탁할게.”
– 주인님. 저도 동행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잠깐 다녀올 거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너한테 여길 맡겨둘게. 얼른 갔다 올 테니까 콰르트랑 같이 대충 끝내놓고 쉬고 있어.”
– 예.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바라겠습니다.
“어. 고마워.”
짧은 통신을 끝내자 마라트는 벌써 권능을 발동해 우리가 이동하기 위한 새카만 그림자 덩어리 입구를 만들어 둔 상태였다.
“자자, 얼른 가시죠. 한시가 급해요. 기한이 코앞이거든요.”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어대는 그 모습에 나랑 지젤은 조금 질린 눈으로 마라트를 쳐다보다 그가 만들어낸 입구로 발을 옮겼다.
그림자 속으로 발을 내딛자 찰나의 부유감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는 어느새 거대한 창고 안으로 도착했다.
거대한 창고의 안에는 온갖 화물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심지어 그 화물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어서 얼핏 보면 웅장하게까지 느껴졌다.
지젤은 거대한 화물의 산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역별로 분류는?”
“늘 하던 대로 되어있죠.”
“그러면 애초에 내가 여기 올 거라 상정하고 화물을 쌓아놨다는 거네?”
“아니죠. 여기선 정확히 지젤이 저희를 떠날 줄 모르고 작업을 해뒀다는 게 맞겠죠.”
“하아. 됐어. 지금부터 일할 테니까 신호나 보내. 늘 하던 순서대로 할 거야.”
“그러시죠.”
지젤의 걸음걸음 그 끝자락에서 그림자들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호응하듯 들러붙었다. 파도와 같은 신성의 격류가 넘쳐흐르고 지젤의 왼쪽 머리 위로 새하얀 테두리로 둘러싸인 새카만 헤일로가 피어올랐다.
마라트는 허리춤에서 자그마한 통을 꺼내더니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떨어뜨렸다. 자그마한 통이 그대로 그림자에 빠져들어 사라졌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물었다.
“방금 뭘 한 거야?”
마라트는 언제나처럼 무척이나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신호를 보낸 겁니다. 아무리 지젤이 성녀(聖女)라 해도 저 모든 화물을 혼자서 대륙 곳곳으로 전송하는 건 당장은 무리에 가깝죠. 그래서 대륙 곳곳으로 파견해둔 저희 교단의 사제들이 제가 신호를 보내면 지젤의 권능을 유도해서 공명하며 그녀의 부담을 같이 짊어지는 겁니다. 거기에 일종의 등대 같은 역할도 겸해서 지젤이 제대로 된 곳으로 화물을 보낼 수 있도록 기준점이 되는 일도 하고요.”
지젤의 새하얀 손끝이 움직이자, 바닥에서 파도처럼 일어난 그림자의 파도가 화물 창고 한 구역의 화물들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그림자가 가라앉자, 집어 삼켜진 화물들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아마도 화물들이 성공적으로 전송된 거겠지.
그 뒤로 이어지는 건 일련의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지젤이 화물의 전송을 한 번 끝마칠 때마다 마라트는 새로운 자그만 통을 그림자를 이용해 어디론가 전송했고, 지젤은 다시 대규모 화물들을 그림자로 옮겼다.
솔직히 손짓 한 번 할 때마다 일어나는 거대한 그림자의 파도들은 제법 많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마라트 또한 그런 지젤을 보며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보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개인의 무력이야 제가 지젤에게서 앞서고 있지만, 권능에 대한 적성으로만 보면 그녀는 저를 옛적에 한참 뛰어넘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다른 사제들이 유도해준다고 하던들 저런 대규모 전송은 불가능하거든요. 기껏해야 저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자그마한 화물들만 좀 옮길 수 있을 뿐이죠. 그나저나 지젤이 못 듣고 있으니 하는 말인데요.”
그는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자그맣게 속삭였다.
“마르낙 사제님 말씀이라면 지젤이 가끔 저희 교단을 도와주러 오는 것도 영 불가능하진 않을 거 같은데.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물론, 맨입으로 도와달라는 건 아닙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저희 유통망은 대륙 단위로 이어져 있어서 원하시는 곳의 특산물이나 멀리 떨어진 이의 소식, 혹은 자잘한 정보까지도 다 제공해드릴 수 있거든요. 지젤한테도 도와줄 때마다 따로 적절한 보수도 제공해드릴 예정이고요.”
나는 마라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계속 궁금하던 걸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든 물어보세요. 입 몇 번 움직이는 거로 저희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구축된다면야 저야 언제든 환영이죠.”
“‘달인’이 이런 걸 하는 이유가 뭐지? 네 힘이면 어디 가서 돈 궁하거나 할 일은 없을 텐데.”
마라트는 새카만 두 눈을 끔벅이더니 피식 웃었다.
“달인은 이런 거 하면 안 됩니까? 저도 예전엔 한때, 무에만 미쳐있던 시절도 있었죠. 재미도 있고, 재능도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돌이켜 보니까 제 손에 묻어있던 건 피밖에 없더라고요. 앞으로 이 손에 묻을 것도 피뿐이었고요. 그때 느꼈죠. ‘아, 내가 그리 잘살고 있지는 못하구나.’하는 그런 느낌을요.”
그는 기계적으로 새로운 통들을 그림자로 떨어뜨리며 계속해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 생각이 든 뒤로, 그 바닥을 떴어요. 수련도 때려치우고요. 그렇게 대륙을 이리저리 한참을 떠돌다. 우연찮게 이곳의 사제로 간택 받았죠. 그렇게 교단의 중추에서 운영에 이리저리 관여하다 보니까 이게 또 엄청 재밌더라고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의 미래를 계획하고 제 계획대로 단체가 커가는 일을 지켜보니까. 아직 키워본 적도 없는 자식을 기르는 것만 같달까요. 되게 뿌듯하고 보람 있어요. 이거.”
마침내 그의 허리춤에 달려있던 마지막 통이 그림자 속으로 퐁당 사라지고 마라트는 씨익 웃었다.
“거기다 5년 전부터 선신의 사제들도 저희들을 굳이 귀찮게 괴롭히지 않아서, 드디어 처음으로 교단의 사업을 양지로 끌어올릴 기회가 찾아왔거든요. 저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단 말이죠? 그래서 한 번만 도와달라는 거예요. 어때요? 조금 궁금증이 해소되셨나요? 아, 맞다.”
마라트는 자신의 허리춤의 단검을 툭툭 두드리고는 내게 말했다.
“저번엔 오랜만에 제대로 무기를 쓰느라 몸이 굳어서 본 실력을 못 보여드렸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검을 나눠보죠. 그때는 저번이랑 다를 겁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마 똑같을걸?”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
쩌적.
유리에 금 가는 소리. 격렬한 신성의 격류가 공간 전체에서 휘몰아치고 마라트 옆의 공간이 깨져나가며 하나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목을 잡아챘다.
“컥?!”
마라트는 당황하지 않고,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자신의 목을 잡아챈 손을 잘라내고서 뒤로 훌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툭.
잘려나간 손이 바닥에 떨어지고, 잘린 팔의 단면을 따라 피가 쏟아졌다.
쩌저저적.
허공의 균열이 깨져나가는 유리처럼 번져나가고, 소리 없이 깨져나갔다. 깨져나간 공간의 틈 속에서 팔 잘린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길게 늘어뜨린 연둣빛 머리칼이 마치 우주를 품은 것처럼 홀로 반짝여대고, 긴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잘생긴 사내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손을 주워들며 투덜댔다.
“하필 ‘달인’이야. 달인한테 잘리면 이거 잘 붙지도 않는데요. 하아.”
투덜대는 것과 달리 그가 떨어진 팔을 단면에 대고 몇 번 문지르자 언제 잘렸냐는 듯이 팔이 너무나 손쉽게 달라붙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눈앞의 사내가 사도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평범한 것과 지극히 먼 사도.
애초에 공간을 깨뜨리며 나타나는 사도가 평범한 사도일 리 없었지만.
연둣빛 머리의 사내는 나를 대충 훑어보고는 이내 마라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구원(救援)의 사도예요. 내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 아니, 몰랐어도 상관 없긴 해요. 근데 너 맞지?”
구원(救援)의 사도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마라트를 향해 으르렁댔다.
“내가 너희 교단에 보냈던 성녀(聖女) 머리통 깨부순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