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33)
333
이해.
우물우물.
다키아는 한시도 쉬지 않고 입안으로 음식들을 밀어 넣었다. 어느새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음식들이 또 동나버리자 옆에 서 있던 테르지오가 새로운 음식을 그녀에게 건넸다.
테르지오가 건넨 닭꼬치 뭉치를 받아든 다키아는 닭꼬치 하나를 꺼내 다시 입안에 밀어 넣고 우물대며 걸음을 옮겼다.
사실, 혼자만 건너가고자 했다면 충분히 마르낙의 뒤를 쫓아 공간을 넘을 수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았을 뿐. 상황이 마냥 여유로운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도 아니었다.
이 건은 마르낙을 정면에서 꺾어야만 그 의미를 가지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너! 너!”
쪼르르 따라붙은 펄리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다키아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참았던 질문을 쏟아냈다.
“악마! 악마랑! 계약은 언제 한 거야?! 나 완전 깜짝 놀랐잖아!”
재미있는 걸 발견하기라도 한 듯 잔뜩 신이 난 목소리. 다키아는 우물대고 있던 닭고기를 꿀떡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조금 예전에 했죠.”
“어떤 악마랑?”
“아는 악마랑 했죠.”
“그래서 그 악마가 누군데! 이름! 이름이 있을 거 아냐!”
“제가 그걸 왜 가르쳐줘야 해요?”
“치사해! 치사해!”
다키아는 피식 웃었다. 조금 전의 조우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펄리는 자신의 편을 들 생각이 없었다. 아니, 있더라도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예상했던 바지만.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펄리의 성향상 마르낙의 계획이 무엇이든 그의 편을 들고도 충분히 남을 텐데 대체 왜 마르낙의 옆이 아닌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일까.
다키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계속 악마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는 펄리를 쳐다보다 손을 뻗어 펄리의 얼굴을 쭉 밀어냈다.
“지금 악마화의 ‘대가’를 치르느라 바쁘니까 좀 방해하지 마세요.”
내키지 않지만, 다키아는 새 닭꼬치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펄리는 그 모습을 보더니 키득키득 웃어댔다.
“마르낙을 쫓아갔다 돌아온 뒤로 하루종일 먹기만 하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또 마르낙을 놓치는 바람에 스트레스 쌓여서 먹는 줄 알았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쟈멜이 꾸역꾸역 음식들을 계속 먹어대는 다키아를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악마의 힘을 쓰는 대가가 겨우 먹을 거 많이 먹는 거면 엄청 엄청 싼 대가인 거 같은데. 근데 그렇게 먹어대면 살찌지 않나? 막 뚱뚱이처럼!”
다키아는 또 새로운 음식을 테르지오에게 건네받아 꾸역꾸역 밀어 넣고는 대답했다.
“…이거 악마화의 대가로 먹는 건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는 몰라도 살로는 안 가더라고요. 살로 갔으면 조금 귀찮을 뻔했어요. 아무리 제가 활동량이 많다지만 이렇게 먹어대면 순식간에 뚱뚱해지고 말걸요.”
“히히. 나는 이 몸이 된 뒤로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는데! 부럽지? 부럽지?”
펄리는 자신의 새롭고 온전한 몸을 지체 없이 자랑했다. 쟈멜은 그런 펄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는 건 조금 부러운데… 나도 먹은 대로는 잘 안 찌는 편이긴 해도 엄청 많이 먹고 나면 조금은 쪄서 옆구리가 살짝 잡혀.”
“쟈멜 정도면 애교 있는 살이지!”
“앗! 내 옆구리 만지지 마! 간지러우니까!”
펄리는 쟈멜의 애교 가득한 옆구리살을 살짝살짝 꼬집고는 킥킥 웃었다.
“이런 살이면 오히려 남자들은 더 좋아할걸?”
“진짜?”
“아마도? 뭐 취향마다 다르겠지만.”
“후후. 역시…”
쟈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음흉하게 웃었다.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어. 군살마저 매력적이라니. 앞으로 조금 더 쪄도 되겠는걸.”
“응응! 기왕 찌우는 김에 아주 동글동글해질 때까지 찌워보는 건 어때? 동그래진 쟈멜을 내가 데굴데굴 굴리면서 다니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 같아!”
“됐거든. 그 정도로 찌우면 안 매력적일 거란 것 정도는 나도 알아! 그나저나 다키아, 마르낙 사제님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내고서 돌아온 거야?”
쟈멜의 질문에 다키아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곤 대답했다.
“여차하면 제 뒤통수쳐서 기절시키고 투항할 거라는 쟈멜한테 제가 그걸 왜 가르쳐줘야 해요?”
쟈멜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그건 그냥 한 번 그런 경우를 생각해봤다~ 이거지. 설마 내가 진짜 그러겠어? 절대 안 그래! 응응! 그렇고말고. 맞지? 펄리?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이 쟈멜은 신의가 넘치는 사람이니까!”
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쟈멜은 완전! 완전! 쫄보라 절대 못 하긴 해! 쟈멜이 딱 다키아 뒤통수치려고 벽돌이라도 하나 집어 들고 다키아의 뒤통수를 쳐다보는 순간, 쟤 머릿속에서 다키아와의 추억이 사라락 지나가고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가 곧 눈물 뚝뚝 흘리면서 ‘못해! 못하겠어! 엉엉!’이러면서 다시 벽돌을 내려놓을걸?”
“아닌데! 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쟈멜인데!!! 되게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이야! 나!”
다키아는 솔직히 펄리의 말에 동감했다. 쟈멜이 아는 사람의 뒤통수를 성공적으로 치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입을 열었다.
“하아. 마르낙 사제님이 어디에 계신지는 대충 알 수 있도록 표시를 해뒀어요. 그거 해둔 탓에 이렇게 먹어대고 있는 거고요.”
문제는 지젤이었다. 여기저기로 이동해대는 그녀의 권능 탓에 추적이 마냥 쉽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다만, 이미 그 권능의 범위를 알아낸 이상. 다음번에 마주치면 이번처럼 손쉽게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여차하면 테르지오가 알려준 대로 마르낙을 직접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게 만들 방법도 있었다.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더 안 주셔도 돼요. 슬슬 대가를 다 치른 거 같아요.”
– 예. 공녀님.
테르지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침 주변을 살펴보겠다며 떠났던 르소나가 돌아왔다.
“마르낙이 여기서 뭘 했는지 조금 알아내긴 했다만…”
르소나는 다키아의 눈치를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이 다키아가 알 필요 없는 정보인 것 같은데, 알고 싶소?”
“뭔데요?”
“그게…”
르소나가 우물대며 쉽게 말하지 못하자, 보다 못한 펄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뭐긴 뭐야. 어제 여기서 축제라고 지젤이랑 마르낙이 춤추고 놀았다는 거지.”
“그, 그걸 어떻게 아시오?”
“들렸으니 알지?”
르소나는 펄리와 말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다키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가 느낀 바로 다키아는 마르낙에게 꽤나 무거운 감정을 품고 있는 듯했는데. 굳이 이런 소식을 들으면…
“그거 말고는요? 없어요?”
정말 하나도 신경 안 쓰는 듯한 그 모습에 르소나는 두 눈을 끔벅였다.
“음? 아무렇지도 않소?”
“뭐, 어차피 지젤이 하자고 해서 했겠죠. 적어도 부패의 어머니가 되살아나시기 전까진, 마르낙 사제님은 5년 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조금도 변하지 못하실 거예요. 마르낙 사제님은 그런 분이니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펄리도 다키아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낙이 좀 꽉 막힌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해. 고집도 아주 대쪽 같아서 부패의 어머니를 되살리기 전까진 그 누가 와도 절대 꼬실 수 없을걸? 아니, 되살리면 되살리는 대로 또 꼬시긴 힘들 거 같긴 해.”
쟈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자한테 빠져서 해롱대는 마르낙 사제님은 상상이 잘 안 가긴 해요. 근데… 저기 저거 뭐지?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 같은데.”
“응?”
모두의 시선이 쟈멜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두꺼운 금속질의 다리 네 개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움직이고, 육중한 금속질 동체 위에 뻗어 나온 여섯 개의 팔이 그에 맞춰 조금씩 흔들렸다.
연녹빛 안광을 내뿜으며 네 번째 기사, 콰르트는 정확하게 다키아의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 거대하고 기괴한 기계 기사의 모습을 본 거리의 시민들은 저마다 한 번씩 시선을 뺏겼지만, 어제도 그제도 도시의 거리를 콰르트가 돌아다녔던 터라 다들 그리 오래 쳐다보진 않고 이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콰르트를 확인한 테르지오의 푸른 안광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윽고, 테르지오의 앞에 선 콰르트의 금속질 입이 열렸다.
– 음. 잘 지냈나?
콰르트 답지 않게 먼저 건넨 안부 인사에 테르지오는 여전히 그를 경계하면서도 입을 열어 답했다.
– 내 뜻대로 지냈지.
– 그러면 됐다. 어차피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고. 짧게 딱 용건만 말하지. 이걸 챙겨가라. 테르지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콰르트가 등에 부착되어있던 거대한 금속 상자를 내려놓았다. 테르지오는 그 은빛 금속 상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이게 뭐지?
– 네가 없는 동안에 복구해낸 기지 시설로 만든 장비다. 프리무스야 내가 항상 점검해주니 시설이 복구되는 대로 계속 육체를 최선의 상태로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혹시나 의심되면 가져가지 않아도 좋다. 가져가 달라고 간절히 매달릴 생각도 없으니까.
테르지오는 침묵했다. 잠시의 침묵 후, 테르지오는 자신의 동생과도 같은 네 번째에게 물었다.
– 후계자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인가? 콰르트.
– 후계자님께서 내게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하셨으니, 이미 간접적으로 허락하신 셈이지.
– 직접 허락은 안 받았다는 말로 들리는데.
– 굳이 직접 물어봤어도 허락해주셨겠지.
콰르트의 말에 테르지오는 고개를 저었다.
– 그건 모르는 일이다. 콰르트.
– 아니. 분명 허락해주셨을 거다. 테르지오. 너나 프리무스는 정말 후계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도 모르는군. 여전히.
– …무슨 말을 하는거지?
콰르트는 무심히 빛나는 연녹빛 눈으로 테르지오를 마주보았다.
– 맹목이란 것은 이해와 제법 거리가 멀다. 테르지오. 프리무스는 제 충성을 증명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맹목적이고, 너는 네 정의만을 좇느라 맹목적이지. 그렇기에 후계자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있어.
그는 여섯 개의 팔 중 하나를 뻗어 바닥에 놔둔 금속 상자를 테르지오를 향해 밀었다.
– 내가 후계자님께 테르지오 네게 이 장비를 만들어 건네주어도 되냐고 직접 물어보았다면, 후계자님은 고민은 하셨을지언정 내가 테르지오 네게 이 장비를 건네는 것을 절대 막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지금의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여튼, 가져갈 거면 가져가고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그냥 내버려 둬라.
콰르트의 시선이 고요히 다키아를 비롯한 일행들을 훑었다.
– 이건 온전히 내 순수한 호의다. 테르지오. 어차피 네가 이걸 가지든 말든. 우리 넷 중 최강은 나일 테지만.
그 말을 끝으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콰르트는 거리를 가로질러 떠났다. 테르지오는 오만한 동생의 커다란 등이 떠나가는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고는 그가 남긴 금속 상자를 주워들었다.
***
진한 혈향과 깔끔하게 잘려 여기저기 나뒹구는 머리들. 그 난장판 속에서 일부러 깨끗하게 남겨둔 푹신한 의자에 나는 몸을 파묻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손에 든 절망을 까딱였다.
“그러길래 돈 낸다고 할 때 잘하지. 본 적 없는 얼굴이라고 털어먹을 생각부터 하면 어떻게 해. 안 그래? 지젤?”
지젤은 내가 앉은 의자에 기대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아니,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그냥 시정잡배도 아니고, 무려 남제국 수도에 자리 잡은 정보상이 정보를 파는 게 아니라, 손님 돈이 탐나서 의뢰를 받는 척해놓고 몰래 뒤쫓아와서 강도질을 하려고 해? 우리 고객이야. 고객.”
“그, 그게…”
파들파들 떨며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정보상의 입이 억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 사실 정보상은 옆 건물에 있습니다. 두, 두 분이 거, 건물을 자,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음?”
“응?”
나는 두 눈을 끔벅이다 되물었다.
“아니, 너 정보상 아니었어?”
“예, 예!”
“그럼 넌 대체 뭔데?”
자칭 정보상이었던 사내는 파들파들 떨면서 대답했다.
“저, 저는 근방에서 보호비나 소소하게 받아먹고 살아가는 소, 소시민입니다. 가, 가끔 옆 건물 정보상이 간단한 일을 시키면 돈 받고 일 처리도 해주고요.”
결론은 한량 깡패 새끼들이란 거네.
“근데 정보상도 아닌데 정보 사러 왔다니까 왜 정보상인척한 건데?”
“다짜고짜 황금을 엄청 보여주시니까요. 호, 혹해서 그랬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
푹.
내가 던진 절망이 정확하게 사내의 머리통 한가운데를 꿰뚫고 처박혔다.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지젤에게 말했다.
“네가 여기 같다며? 내가 아까 여기가 아니라 옆 건물 같다고 했잖아.”
지젤은 그림자를 뻗어 내가 던졌던 절망을 회수하며 투덜댔다.
“내가 여기 같다니까 정작 본인도 혹해놓고는. 누가 들으면 내가 여기라도 박박 우기기라도 한 줄 알겠다? 난 그냥 ‘여기 같은데?’라고 한마디만 했다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림자가 건네주는 절망을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는 검집에 집어넣으며 투덜댔다.
“하여튼 이 주변은 쓸데없이 너무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문제야. 이러면 손님이 어떻게 찾아와.”
“맞아맞아.”
나는 시체투성이 피바다가 된 건물을 가로지르며 말했다.
“옆집 정보상은 좀 정직한 쪽이면 좋겠는데.”
“자기 옆집이 이 꼴이 났는데, 알아서 정직해지겠지. 아니면 뭐, 정보상 실격인 셈이고. 안 그래?”
“그건 그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진득한 피비린내를 뒤로하고, 우리는 가는 눈이 내리는 거리로 나와 옆 건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