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40)
340
수색?
잠깐의 인사를 뒤로하고 남제국의 수상은 자신을 급히 찾는 외침에 자리를 비웠다. 그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슬쩍 옆을 쳐다보자 지젤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새카만 동공이 약점이 드러난 초식동물을 찾아낸 하이에나처럼 빛나고,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또 존댓말 했네?”
“그냥 적당한 인사말이 안 떠올랐을 뿐이야.”
한 나라의 수상 정도 되는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나한테 인사하는데, 막상 반말로 대답하려니까 적당한 말이 안 떠올랐다.
‘안녕.’으로 시작하자니 사람이 가볍다 못해 경박해 보일 것 같았고, 그렇다고 다른 반말로 또 나 자신을 소개하려니 진짜 떠오른 말들이 하나 같이 다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아직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한테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남아있는 건가.
“역시 반말을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거지?”
“아니라니까.”
히죽히죽 웃으면서 놀리려는 지젤이 너무 얄미워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슬쩍 밀어냈다. 지젤을 겨우 밀어내자 그녀의 뒤에서 날 지켜보고 있던 페리토드의 모습이 보였다.
페리토드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물었다.
“그럼 만약에 내가 황제가 되면 나한테도 존댓말 써주나?”
“안 되겠다. 그냥 너 황제 하자. 아주 황제 하고 싶어서 못 참겠지? 응? 켄티페스. 얘 황제하고 하고 싶대. 다시 데려가 그냥.”
“아, 아니야!!! 황제 하나도 안 하고 싶거든?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날 놀리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는데. 무슨.
페리토드가 당황하든 말든, 켄티페스는 그녀를 황제 시키는 일에는 정말 관심을 끊어버린 건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수상이 다시 이곳으로 오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
페리토드는 켄티페스의 무반응에 조금 안심한 건지, 조금 여유를 가지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그녀의 시선은 이내 한 곳에 꽂혔다.
바로 더벅머리 수상의 얼굴로.
페리토드는 무언가를 고민하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서 수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민이 끝나자 그녀는 시선을 켄티페스에게로 옮겼다. 페리토드는 이번엔 켄티페스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 나랑 수상 아들이랑 정략 결혼시키려고 했다고 했었지?”
“그래.”
“근데 아무리 봐도 나이가 그렇게 안 많아 보이는데…”
페리토드의 말이 맞았다. 내가 보기엔 수상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 봐야 삼십 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였다. 그것도 엄청 동안이라는 가정하에.
솔직히 수상의 얼굴만 보면 삼십 대 초반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페리토드는 수상과 켄티페스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보고 나서야 여태 고민하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나랑 결혼시키려고 했던 수상 아들은 대체 몇 살이야?”
켄티페스는 지극히 태연한 얼굴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수상 자식이 둘인데 듣기론 큰 쪽이 열 살이고, 작은 쪽이 일곱 살인가 그랬지. 아, 열 살은 여자애고, 아들 쪽이 일곱 살이다.”
“…”
파르르 떨리는 손. 으득 거리며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침내 폭발한 페리토드의 성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미친놈아!!!”
그녀는 두려움도 잊어버리고 켄티페스에게 달려들어서 그의 멱살을 붙잡고 앞뒤로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일곱 살짜리랑 지금 나를 결혼 시키려고 했던 거였어?! 응? 아니, 이거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 아냐!!! 그리고 뭐? 애를 만들어? 일곱 살짜리랑? 진짜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아니, 너만 죽이고 나만 산다! 이 개자식아!!!”
당장에라도 반격할 줄 알았는데, 켄티페스는 의외로 페리토드에게 탈탈 흔들리면서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그녀의 말에 대답했을 뿐.
“…십 년 정도만 기다리면 충분히 자라서 아이도 만들 수 있다. 세월은 무상하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법. 우리 같은 이들에게 십 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
“미친 개소리 하고 있어!!! 내가 이 나이에 일곱 살짜리랑 결혼하는 게 어떻게 결혼이냐! 그건 육아지!!! 그리고 일곱 살부터 키운 애랑 어떻게 애를 만들어! 아니, 만들어도 문제야! 너는 대체 도덕이나 윤리라는 게 없는 인간이니? 응?”
켄티페스는 앞뒤로 흔들리는 와중에도 무척이나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열 살, 스무 살 나이 차이나는 결혼도 찾아보면 종종 있다.”
“그건! 다! 커서! 만난! 거고!!! 누가 일곱 살짜리랑 결혼한 다음 키워서 애를 만들어!!! 적어도 나는 싫어! 싫다고!!!”
“이제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
페리토드는 켄티페스의 말도 끊어버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질타했다.
“아까까진 있었다는 게 제일 열 받는 점이야! 이 개자식아!!! 그냥 뒈져!!!”
숫제 목을 조를 기세라 나는 다급하게 페리토드를 붙잡아 켄티페스에게서 떨어뜨렸다. 딱히 켄티페스를 위해서는 아니고, 괜히 너무 자극했다가 켄티페스가 다시 생각을 바꿔버리면 사도를 찾아서 머리를 쪼개버리기도 전에 굳이 안 해도 될 싸움을 해야 했으니까.
페리토드는 내게 붙잡힌 채로 여전히 씩씩댔고, 켄티페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침착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수상의 자식이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나이대 꼬맹이들은 보통 다 예쁘고 귀여워! 이 얼간아!!!”
나는 격렬하게 퍼덕대는 페리토드를 어르고 달래 겨우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직 채 분이 가시지 않은 건지 페리토드는 여전히 얼굴을 살짝 붉힌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잠시 후, 급한 일의 처리를 끝마친 수상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페리토드의 시선은 ‘한 나라의 수상’에서 ‘일곱 살짜리 아들 팔아먹는 쓰레기’로 바뀌어있었다. 그 명백한 적의가 어린 그녀의 시선에 수상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으나 당장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쪽은 대피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났으니 이제 수색작업에 모든 걸 집중할 생각인데, 자네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수상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갑자기 닥친 상황이라 나는 딱히 별생각이 없었다. 내가 슬쩍 시선을 옮기자 나와 눈이 마주친 지젤이 내게 말했다.
“살짝 추워서 옷을 좀 입고 오고 싶은데.”
“챙겨 입을 만한 옷이라면 이쪽에도 있으니 제공해 줄 수 있다.”
지젤은 먼저 말을 꺼낸 수상을 쳐다보다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신성이 일렁이고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가 허공을 수놓으며 일어서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새카만 문을 만들어냈다.
“성의는 고맙지만, 옷은 저희가 알아서 챙겨 입을게요.”
지젤의 권능을 본 수상의 눈이 커졌다. 지젤은 어딘지 모르게 뿌듯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잠깐 가서 옷 좀 챙겨 입고 다시 오자.”
수상은 지젤이 만들어낸 검은 그림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지젤에게 물었다.
“그림자 교단 소속인가?”
“이젠 아닌데.”
“마라트에게 최근 그쪽 교단의 성녀가 교단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검은 눈과 끝이 조금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 그때 그에게 들은 인상착의 그대로군.”
지젤의 눈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그녀는 내 쪽으로 반걸음 내디뎌 나한테 다가온 다음 대답했다.
“그래서?”
“마라트에게 듣기로는 그림자 교단의 성녀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대규모 인원을 전송할 수 있다던데.”
“본론만 말해.”
수상은 가라앉은 눈으로 지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피한 시민들을 수도 밖으로 옮겨줬으면 한다. 보상은 충분히 하지.”
지젤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저어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두 다리 멀쩡하면 걸어서 빠져나가라고 해.”
“수도 외곽을 둘러싼 눈보라는 이미 평범한 사람이 쉽사리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걸어서 이 도시를 빠져나가라는 건 그들에게 자살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어.”
“그럼 다 얼어 죽기 전에 이 상황을 해결하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은근히 죄책감을 심으면서 내 대답을 유도하지마. 이 눈보라를 내가 일으켰어? 나는 이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어. 책임이 있다면 사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진작에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그 쪽에게 있겠지.”
그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거절에 수상은 지젤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동료를 어떻게 설득해줄 수 없겠냐는 듯이.
지젤이 싫다면 나도 굳이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나름 생각하는 바가 있는 거겠지.
나는 수상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림자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옷 챙겨 입고 다시 오자.”
여태 조용히 있던 레페와 페르카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빨리 지젤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페리토드, 지젤이 들어가고 나는 마지막으로 뒤에 남은 수상과 켄티페스를 힐긋 쳐다본 다음 그림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야가 잠시 암전하고 다시 밝아진다. 그림자가 사그라들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볼을 살짝 붉히고서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젤이었다. 그녀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봤지? 내가 수상이 하는 제안을 거절하는 거? 나 지금 되게 거물이 된 기분이야! 진짜 아주 기분이 너무 좋아!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물의 삶이었어!”
주먹까지 꼭 쥐고서 붕붕 휘두르는 게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근데 수상의 제안은 단순히 거물이 되고 싶어서 거절한 거야?”
“아니? 너랑 다니면 앞으로 언제 어디서 싸우게 될지 모르는데, 괜히 내 능력을 다 내보일 이유가 없어서 안 도와준 거야. 그리고 몇 명이나 될지 모르는 시민들 다 옮겨줄 수 있는지는 차치해두고, 그 정도 대규모 인원을 옮겨주면 분명 내가 당장에 퍼져버릴 텐데, 그럼 널 도와줄 수 없잖아? 나는 네가 늘 우선이야. 마르낙. 우리는 한배를 탔잖아.”
통모양 기계들이 방한이 잘되는 옷들을 가지고서 우리 앞으로 나타났다. 나는 디스펜스가 조종하고 있을 그 기계를 향해 말했다.
“내 건 필요 없어. 움직이는 데 방해만 돼. 근데 지젤, 진짜 추워서 옷 챙겨 입으러 온 거야? 아까는 괜찮다며?”
지젤이 주섬주섬 털옷을 껴입으며 대답했다.
“응. 이젠 살짝 춥더라고. 사도가 일으킨 추위라서 그런가? 사도화하면 덜 추울 거 같긴 한데 쓸데없이 힘 빼고 싶진 않아서.”
나는 시선을 옮겨 방한복을 주섬주섬 껴입고 있는 페리토드와 레페, 페르카를 쳐다보곤 말했다.
“너희 셋은 이제 빠져도 돼. 집으로 보내줄게. 페리토드도 구했겠다. 무리할 이유도 없잖아.”
페르카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수도 사람들을 구하는 데 한 손 보태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요. 레페, 너도 그렇지?”
레페는 한숨을 폭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과연 크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둘의 말을 듣던 페리토드는 나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진짜 성장한 내 힘을 보여줄 때가 왔네. 크게 활약할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수도를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사도를 사냥하러 가는 건데.
뭐, 본인들이 가고 싶다면야 굳이 억지로 뜯어말릴 생각도 없었다.
탁탁탁.
발과 바닥이 맞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새하얀 머리가 그 규칙적인 소리를 따라 흔들렸다.
방한복을 꼼꼼히 챙겨입은 솜니아는 곧장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극히 새하얀 동공이 유리알처럼 빛났다. 솜니아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갈 거야.”
갑자기 나타난 솜니아는 거의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저게 바로 그건가?
콰르트의 작업실에서 한동안 틀어박혀서 두문불출하더니. 결국 받아냈나 보네.
“그래. 가자. 지젤. 문 열어줘.”
“응.”
거대한 그림자가 다시 한번 일어나 우리를 집어삼켰다.
***
다시 돌아오니 수상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켄티페스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옷을 챙겨입고 온 우리를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수색작전이 곧 시작될 거다. 사도를 찾아내면 말해주지.”
그때 새하얀 금속 가방을 맨 솜니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그거 내가 찾아낼 수 있어. 작전 중지하고 다 수색 구역에서 빠져나오라고 말해줘.”
켄티페스는 아무 말 없이 솜니아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다녀오지.”
마력의 문을 통해 잠깐 어딘가로 갔다 온 그는 종이 한 장과 함께 돌아왔다. 켄티페스는 수도의 내부가 그려진 지도를 솜니아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 표시된 게 남은 수색 구역이다. 아마 그 안에 있는 건물 중에 사도가 있을 확률이 높지.”
“…알았어.”
켄티페스가 꼬맹이가 하는 말이라고 무시하지도 않고, 꼬박꼬박 다 해달란 대로 해주는 게 조금 놀라웠다.
역시 일곱 살짜리랑 다 큰 성인을 맨정신으로 결혼시키려면 저 정도로 선입견이 없어야 하는 건가.
다시 한번 켄티페스가 만들어낸 마력의 문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그 문을 넘자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는 건물의 옥상이 우리를 반겼다.
새하얗게 덧칠된 도시. 켄티페스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 앞이 바로 우리가 수색해야 하는 구역이다. 수색하려던 인원도 다 철수했지.”
“…사람이 없다는 거지?”
“그래.”
“…그럼 됐어.”
솜니아는 등에 멘 새하얀 금속 가방을 턱하고 내려놓더니 날 바라보며 말했다.
“…완전 멋진 솜니아 등장 예정.”
“그래. 알겠으니까 얼른 보여줘 봐. 뭘 받았는지.”
“…응. 잘 봐.”
새하얀 금속 가방 위로 솜니아가 발을 올리고 꾹 밟자 금속들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점점 부피를 불려감과 동시에 솜니아의 몸 전체를 감싸며 뒤덮었다.
부드러운 금속 이음매들이 서로 맞붙고, 솜니아를 쳐다보고 있던 내 시선이 조금씩 높아졌다. 점점 커져가던 새하얀 금속 덩어리는 성인 여성 정도 되는 크기까지 불어난 뒤에야 그 성장을 멈췄다.
조각난 금속들이 부드럽게 맞물리고, 순백색 그 자체인 동체가 드러났다.
인간 여성을 닮은 새하얀 기계 슈트. 그 파편화된 퍼즐이 모여 있는 듯한 곡선형 동체 등 뒤로 튀어나온 거대한 부속 장치는 마치 날개를 본뜬 듯했다.
새하얀 슈트 가슴팍의 정중앙 부분이 열리더니 솜니아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어때? 멋있지?”
“아니, 너 머리가 왜 거기 있어?”
“…이 슈트 머리 모양은 장식이야. 상대를 속이기 위한.”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응. 잘 봐. 내가 사도를 바로 찾아낼게.”
가슴팍이 다시 닫히고, 솜니아의 얼굴이 사라졌다. 지체 없이 뒤를 돈 새하얀 기계 슈트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등 뒤로 불꽃을 분사하며 비행을 시작한 솜니아는 고도를 조금 높인 다음 지도에 표시된 수색 구역 위로 날더니 자그마한 무언가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수색 구역 위를 한 바퀴 돌고 온 솜니아는 다시 우리가 디디고 선 옥상 위로 돌아와 가슴팍을 열고서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는 켄티페스를 향해 말했다.
“…사람 없는 거 맞지?”
켄티페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왠지 느낌이 이상한데. 왜 자꾸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는…
내 생각이 채 끝맺기도 전, 나지막한 한마디가 들려왔다.
“…쾅.”
빛. 가장 먼저 보인 건 빛이었다. 작렬하는 새하얀 빛이 수색 구역 전체를 휩쓸고 뒤늦게 거친 진동과 귀를 찢어버릴 듯한 폭음이 몰아쳤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에 깜짝 놀란 지젤이 내게 달라붙고 나는 멍한 눈으로 그 참혹한 광경을 쳐다보았다.
복잡하던 거리와 눈이 쌓인 건물들이 모두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잔해 위로 눈들이 쏟아지고 다시금 세상이 조금씩 하얗게 덮여가기 시작했다.
모든 걸 다 파괴한 솜니아가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으로 마치 내게 칭찬해달라는 듯이 선언했다.
“…수색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