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41)
341
개전.
콰아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 그 짧지만 강렬한 충격파에 주변 공간이 흔들린다.
조용히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있던 구원의 사도의 눈이 열리고, 밝은 연둣빛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혼자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도시 전역에 쓸데없이 권능을 흩뿌리고 있는 사도 하나.
그 지겨운 광경에 마음속으로만 한숨을 푹 내뱉고서 구원의 사도는 작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뭔가 하기 시작했나.”
전부 다 부질없는 짓일 뿐인데.
이미 선택받지 못한 인간의 시대는 끝나버렸다.
천상과 지상의 간격이 줄어들고 옛 시대처럼 신들이 좀 더 이 지상에 개입할 수 있게 된 이상, 이미 좁아지기 시작한 그 거리가 언젠가는 무(無)가 되고 결국은 천상의 신들이 다시 한번 이 대지 위를 인간들과 함께 거닐게 될 터.
이제부터는 신들에게 선택받은 인간이 바로 이 시대를 주도한다.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질서는 이미 제 힘을 잃고 그 의미와 권위가 퇴색되어, 작금의 남제국 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광경처럼 선택받은 개인에 의해 거대한 제국의 심장이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너무나 손쉽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앞으로 기존의 질서는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그 위에 다시 세워지겠지.
신들이 주도하는 천상의 질서가.
그렇기에 그 어떤 다른 신도 아닌, 오직 자신이 모시는 ‘세계의 구원’만이 인류의 유일한 해답이다.
그분께서 주도하시는 질서만이 모든 생명의 구원일 테니.
연둣빛 눈이 천천히 다시 감긴다.
부질없는 세속의 관계에 얽매여 쓸데없이 힘을 낭비해대고 있는 사도를 지켜볼 바에야 그냥 찰나의 잠이라도 청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의미가 있을 테니까.
***
굳게 닫혀있던 켄티페스의 입이 열리고 그는 폐허가 된 수도의 일부를 보며 말했다.
“혹시 내가 봉인되어있는 동안, ‘수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파괴’와 엇비슷한 의미로 바뀌었나?”
그 담담한 질문에 나는 차마 대답해주지 못했다.
솜니아는 새하얀 눈을 깜박이며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복잡해진 머리를 겨우 정리하고서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미처 대피 못 한 사람이 남아 있으면 어쩌자고 수색 구역을 통째로 날려버린 거야?”
“…이젠 대피할 필요가 없어졌겠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왜 물어보냐는 듯한 담담한 대꾸. 나는 그 무정하면서도 지극히 무심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 꼬맹이가 어떤 꼬맹이인지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장난 같은 게 아니라 솜니아는 진짜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녀석이었지.
이 녀석은 진짜 순수한 의미로 콰르트에게 받아온 무기를 써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켄티페스에게 여러 차례 남은 사람은 없냐고 물어보고 그 답을 들은 것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는 이미 다했다고 여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애초에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하는 걸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 방식이 옳은지 틀린 지는 더욱 몰랐고.
내 고민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솜니아가 날 빤히 쳐다보며 물어왔다.
“…대체 뭐가 문제야? 나는 최단 시간 안에 최대한의 효율로 사도의 수색을 끝마쳤어. 근데 대체 왜 연은 그런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봐? 마치 내가 틀린 행동을 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새하얗고 빛나지만, 어딘가 텅 비어 버린 듯, 왠지 모르게 유리알처럼 느껴지는 한 쌍의 눈알. 그 동그랗고 반짝이는 동공에 내 얼굴이 비쳐 보인다.
솜니아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지금 내가 하는 방식이 바로 연의 방식이잖아. 안 그래?”
폐부를 찌르는 한마디. 솜니아의 말은 정확하게 내가 어머니를 되찾기 위해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솜니아가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말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솜니아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가슴을 깊숙이 찔러왔다.
그 말이 맞았다.
내가 하려는 짓은 방금 솜니아가 했던 짓보다 더 지독하고,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아니, 덜하기는커녕 더욱 명확하게 악(惡)했다.
사실상 내게 솜니아를 가르치거나 계도할 자격 따윈 없었다.
구역질이 난다. 내 자신에게.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꾹 눌러 참고 폐부에 차오른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솜니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새하얀 금속들이 파편화되어 다시 꼬맹이의 몸만 한 가방으로 변했다. 솜니아는 바닥에 놓은 가방을 들어서 메더니 지젤을 향해 말했다.
“…이거 에너지 다 썼고, 가져온 폭발물도 방금 다 써버렸어. 난 이제 아무 도움도 안 되니까 이만 돌아갈래. 돌려보내 줘.”
지젤은 바로 그림자의 문을 열어주는 대신 내 눈치를 봤다. 진짜 보내주면 되냐는 듯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젤의 새하얀 손가락을 따라 일어난 그림자가 솜니아의 몸만 한 문을 만들고 솜니아는 미련 없이 그 그림자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잠시.”
내 부름에 솜니아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나는 그 꼬맹이의 얼굴을 쳐다보고서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 좀 하자. 이번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솜니아는 고개가 위아래로 작게 움직였다. 그녀는 눈알을 작게 한 바퀴 데굴 굴리고는 작게 덧붙였다.
“…내가 실수한 거라면 사과할게.”
저 사과는 혹시나 저 구역 안에 살아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내 기분이 나빠졌을까 봐 하는 사과였다.
아직 나는 솜니아에게 분명 필요한 사람이니까.
“됐어. 들어가.”
“…응.”
솜니아가 그림자 속으로 쏙하고 들어가자 형체를 이뤘던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무너져내렸다.
아직 답이 보이질 않는 문제 하나를 뒤로 미뤄두고서 나는 켄티페스에게 말했다.
“저기 폐허에 사도는 없어 보이지?”
켄티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지금 눈을 뿌려대고 있는 사도는 권능에서 흘러나오는 신성으로 그 위치를 추적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미친 녀석이 도시 전역에 권능을 마구 흩뿌려대는 통에 이 수도 전체가 온통 녀석의 신성투성이였기에 녀석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없었으니까.
켄티페스는 눈으로 폐허를 빠르게 훑고는 다시 내게 말했다.
“일단 수상 쪽에 정보 전달부터 하고 와야겠군. 저쪽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분명 당황하고 있을 테니.”
마력의 문이 일어나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켄티페스의 등에 대고 내 입장을 전했다.
“수상에겐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거라 전해. 정말 진심으로 책임질 생각 따윈 단 한 푼도 없으니까.”
솜니아의 태도가 맞았다. 어차피 이런 파괴쯤이야 내 계획이 실현된다면 곧 모두 사소하고 의미 없는 일이 될 터.
그는 고개를 돌려 날 잠깐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전하지. 잠시 기다려라. 곧 다시 돌아오겠다.”
그 대답을 뒤로하고 켄티페스는 마력의 문 너머로 사라졌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마력의 문을 건너 다시 나타났다.
나타나기 무섭게 켄티페스는 본론부터 꺼냈다.
“수상이 너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더군.”
정말 수상이 선의로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기보다는 아마 물을 수 있는 방법이 당장 없기에 수상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대답을 했을 뿐이었겠지.
이미 잃어버린 것 때문에 당장 사도를 대항하는데 쓸 전력을 포기하는 건 지금의 상황에서 지극히 멍청한 선택이었으니까.
다만, 수상의 대답으로 미뤄보아 이 남제국 수도의 전력이 내 예상보다도 훨씬 약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사도 하나 제대로 잡는 것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만약 수상에게 수도의 사도를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더라면 작금의 대답보다는 조금 더 강경한 태도를 보였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무조건적인 저자세가 아니라.
남제국쯤되면 적어도 수도에 달인 하나 정도는 상주시키고 있을 텐데.
나는 켄티페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국 소속 달인들은 다 어디로 갔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이곳뿐만이 아니다. 사도들이 뭔가를 벌인다고 의심되는 정황이 남제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 그에 따라 달인들은 가장 급박한 곳부터 파견되어서 상황을 처리하고 있다. 원래 수도에 상주 중인 달인이 하나 있긴 했으나, 최근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하나 터지는 바람에 그곳의 문제를 해결하러 파견 나갔다.”
“황제가 있는 수도를 텅 비워두고?”
“텅 비워?”
켄티페스는 고개를 젓고는 자신을 가리켰다.
“이 내가 이곳에 있은 덕에 자리를 잠깐 비워둔 거지. 원래라면 그 달인이 작전에서 복귀하는 대로 수색을 끝마친 사도를 나랑 달인이 협조해서 처리할 예정이었다만…”
뒷말을 완성하지 않았지만, 켄티페스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나와 교전하다 사도의 권능을 저지하던 자신의 마법이 깨지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고 모든 계획이 꼬여버렸다는 거겠지.
어차피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 우리는 굳이 입에 올리지 않고 넘어갔다.
“일단 미수색 구역에 사도가 없던 건 어떻게 할 셈이야?”
“수상은 일단 병력을 돌려서 이미 수색한 구역을 다시 수색하는 중이다. 특히 귀족들이 살았던 구역을 중심으로. 수상은 일반 병사들이 귀족들의 구역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미비함이 있었을 거라 추측하는 것 같더군.”
“그럼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켄티페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떨어지다 못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는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상 말로는 찾아내면 반드시 연락을 줄 테니,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건물 안에서 대기해 달라던데.”
***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눈들이 흩날린다. 시야를 빽빽하게 가리면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설. 이전에 미리 제설해둔 덕에 당장 도로엔 그간 쏟아져 내린 눈에 비하면 극히 적은 양의 눈만이 거리에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눈이 무릎 언저리까지 쌓여 걸음걸음을 내딛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만.
쌓인 눈을 헤치고서 두껍게 차려입은 다섯 병사가 거대한 저택의 입구를 열고 들어간다. 눈 쌓인 정원을 지나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병사가 굳게 닫힌 저택의 입구를 발로 걷어찼다.
오래 묵어 고풍스러운 문은 두어 차례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그대로 꺾여 쓰러졌고, 병사들은 부서진 문을 넘어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쌀쌀하지만,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다들 옷 위로 쌓인 눈을 털어내고 움직이는 데 걸리적거리는 눈투성이 겉옷 한 겹을 벗어 근처의 가구들 위에 대충 올려놓았다.
가장 얼굴에 주름이 많은 사내가 쓸데없이 넓은 저택을 한 번 둘러보고는 손가락으로 병사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둘, 둘씩 나뉘어서 수색한다. 너희 둘은 1층. 나머지 둘은 2층. 그 위층은 내가 혼자 수색하겠다. 1층을 수색하다 혹시 지하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하거든, 들어가지 말고 곧장 내게 알리도록.”
“예.”
“예.”
명령을 한 사내의 뒤를 따라 두 병사가 저택 중앙의 계단을 올라가고, 1층 수색을 명받은 두 명의 병사만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남았다.
선임과 후임은 세 병사가 위층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걸 지켜본 다음에야 움직였다.
아직 새파랗게 어려 갓 성인이 된듯한 후임 병사는 자신과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선임 병사를 쳐다보고서 물었다.
“1층이 엄청 넓어 보이는데 저희끼리도 한 명씩 나뉘어서 찾습니까?”
선임은 고개를 저었다.
“둘씩 짝지어서 다니라고 하셨잖아. 왜 둘씩 짝지어서 다니라고 하셨겠냐.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하나는 살아서 튀라는 의미지. 괜히 수색 빨리 끝내고 농땡이 피우겠다고 따로따로 다니다가 들키면 진짜 좆돼. 그러니까 쓸데없는 데서 짱구 굴리지 말고 따라오기나 하라고.”
후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선임 병사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거대한 저택 구석구석을 감상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귀족들의 저택을 구석구석 구경해보겠냐.”
그제야 조금 긴장이 풀린 듯 후임의 시선도 고풍스러운 저택의 내부로 향했다. 그는 그 웅장하고 멋들어진 광경에 조금 압도되는 기분마저 느꼈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 맞지. 사람 새끼들이니까 눈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다 튀었지.”
“혹시 누가 들으면…”
“제대로 된 귀족들은 한참 전에 다 튀었는데 들을 사람이 어디 있어. 됐고. 수색이나 하자. 몸 안 움직이니까 슬슬 춥다.”
“예.”
두 병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장 가까운 방부터 차례차례 뒤져나가기 시작했다. 후임은 방을 하나씩 뒤져가다 문득 한가지 감상을 느꼈다.
“여기부터는 전체적으로 좀 소박한 거 같지 않습니까?”
“저쪽부터는 사용인 구역이니까 그렇지. 높으신 분들이 지내는 곳이 아니니까. 애초에…”
선임은 슬쩍 시선을 옮겨 천장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애초에 제일 짬 덜 찬 우리한테 1층을 맡기고 셋이 위층으로 간 건 위층에 뭔가 챙길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걸.”
“아…”
어차피 정말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은 귀족들이 수도를 떠나가며 다 챙겨갔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다 이 저택들은 이미 얼마 전에 한 번 수색을 끝마친 상황. 진짜 챙겨갈 만한 것들은 옛날에 진작 다 가져갔으리라.
물론, 저택의 상태가 괜찮은 걸 보니 저번 수색 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터라 누군가 병사들을 제대로 감독하며 수색을 했던 것 같아서 털 게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지만.
후임은 조금 감탄한 표정으로 자신의 맞선임을 쳐다보았다.
“그런 거였군요.”
“됐고, 찾기나 마저 하자고. 누군지도 모르는 수상한 사람을 말이야.”
그들은 사용인의 방을 지나 저택의 주방으로 향했다. 선임은 먹을 것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주방을 뒤지며 생각했다.
‘적어도 저번에 수색할 때 음식은 싹 다 털어가긴 했네.’
자그마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는 주섬주섬 수색을 이어나갔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지만. 주방의 수색을 끝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와중, 후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폭발 있지 않습니까?”
도시의 한 구획을 날려버리는 폭발. 대부분의 병사들은 미수색 구역을 수색하기 위해 근처에서 대기중이었던 터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폭발을 관측할 수 있었다.
새하얀 무언가가 위를 훅하고 날아가더니 뒤이어 이어진 폭발. 그 폭발이 도시의 일부를 날려버렸다.
“그게 왜? 그 빈민가 쪽에 네 가족이라도 살았어?”
“그건 아닙니다.”
“솔직히 잘됐지. 거기 솔직히 있어봤자 뭐하냐. 거기 사는 녀석들은 대부분 일도 안 하고 빈둥대는 빈민 녀석들이랑 몰래 숨어든 범죄자투성이였는데. 이 기회에 싹 다 쓸어버리고 깨끗하게 구역을 정리하면 좋지. 애초에 거기 수색이 늦어진 것도 거기 주민들 때문이었잖아.”
후임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애초에 그쪽 거리는 뒤가 구린 이들이 돌아다니는 곳인지라 평범한 자들은 굳이 얼씬거리지도 않는 곳이었다.
“그것보단, 그런 폭발을 처음 봐서 정말 놀랐습니다. 마법사들이 뭔가를 한 걸까요?”
“아마 그렇겠지? 그 마법사들같이 제정신 아닌 놈들이나 수도의 일부를 과감하게 날려버릴 생각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어?”
“왜?”
“저기 한 번 봐주십시오. 저거 계단 아닙니까?”
“…어? 그렇네?”
복도의 끝에는 어두컴컴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선임은 가까이 다가가 계단 아래를 힐긋 보았지만, 어둠에 가려 그 밑바닥에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 합니까?”
후임의 질문에 선임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하긴, 계단 찾았다고 보고하러 가야지. 그러라고 했으니까. 돌아가서 보고하자.”
“예.”
둘은 여태 지나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저택의 중앙 현관으로 돌아왔다. 저택에 들어오기 위해 부순 문 너머로 새어 들어온 눈 때문에 현관의 바닥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다 위층에 있을 테니까 올라가자.”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니 후임 녀석이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임은 그쪽으로 다가가며 후임을 불렀다.
“뭐해?”
“그게 말입니다…”
말꼬리를 흐린 후임 병사가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엔 새하얗게 쌓인 눈 위로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분명 문을 부수고 들어온 건 저희가 맞지만, 저희는 눈이 쌓이기 전에 흩어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럼 이 눈이 쌓인 뒤에 찍힌 발자국은 누구 겁니까? 이 주변 수색은 저희 쪽에 일임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음?”
선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는 이내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뭐, 위에 간 사람들이 잠깐 내려왔었나 보지.”
“보십시오.”
후임은 주저 없이 눈 위의 발자국 위로 자신의 발을 올렸다. 눈대중으로 볼 때와 달리 발을 올려보자 확실히 그 크기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인간의 족적이라기엔 조금 거대한 크기.
“제가 발이 조금 큰 편인데도 이 흔적은 제 발보다 훨씬 큽니다. 거기다…”
후임 병사는 조용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위층에서 피 냄새가 납니다.”
선임 병사는 재빨리 후임을 따라 검을 빼 들며 말했다.
“나는 하나도 안 나는데?”
“저는 아버지가 사냥꾼이라 코가 좀 좋습니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합니까?”
선임 병사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고민을 시작했다. 잠시 후, 선임 병사는 결단을 내리는 대신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내뱉었다.
“만약에 네 말이 다 맞다면 이대로 일단 튀어서 상부에 보고하는 게 맞아. 왜냐면 여기까지 피 냄새가 날 정도면 위로 간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보는 게 맞으니까. 근데, 만약에 전부 네 착각이고 다들 멀쩡히 위층에서 수색하고 있는 거라면 튀는 순간, 우리는 탈영으로 오해받을지도 몰라. 어떻게 할래?”
잠깐 고민한 후임이 결정을 내렸다.
“일단 튀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
탁. 탁. 탁.
발걸음 소리.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에 따라 선임의 표정이 구겨졌다.
드디어 차갑게 식어서 굳어었던 그의 코에도 비릿한 혈향이 진하게 느껴졌기에.
굵고 두꺼운 회백색 다리가 먼저 나타나고, 뒤이어 근육질 몸뚱어리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드러난 회백색 몸 위로 미처 닦아내지 못한 피와 살점들이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흘러내렸다.
본디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대충 꿰맨 자국만이 있었다. 회백색 몸뚱이 관절 마디 곳곳 또한 새카만 실로 대충 꿰맨 흔적들이 잔뜩 남아 있었다.
얼기설기 기워 붙인 인간.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기워 붙여져 있는 탓인지 그 되다만 괴물은 한마디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습한 숨을 내뱉었을 뿐.
당장에 뛰쳐나가려는 후임의 손목을 선임이 붙잡았다. 후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기워진 괴물의 눈을 가리켰다.
딱 봐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듯한 그 눈에 후임은 선임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눈치챘다. 선임은 그저 조용히 침묵한 채 턱짓으로 부숴놓은 저택의 문을 가리켰다.
튀자는 무언의 표시. 후임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는 아주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기워진 입가에서 새어 나온 숨의 온도로 새하얗게 맺힌다.
두 병사는 침착하게 누더기 인간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저택의 입구로 한걸음, 또 한걸음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널브러진 나뭇조각들을 신중하게 피해가며 뒤로 천천히 물러난다. 누더기 인간은 자신들을 감지하지 못한 듯, 멍하니 계단 위에 서서 허공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그 끈적한 긴장 속에서 병사들은 침착하게 뒤로 물러난 끝에 마침내 눈이 쏟아지는 저택의 입구까지 도달했다.
이제 이대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저 괴물과는 안녕.
그 순간.
병사들의 등 뒤에서 낮고 자그마한 여인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여기야.”
그 소리에 반응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던 기워진 눈구멍이 빠르게 움직여 정확하게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당황한 병사들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엔 그 누구도 없었다. 눈만이 지독하게 쏟아지고 있을 뿐.
판단은 선임이 빨랐다. 그는 빼어 든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며 소리쳣다.
“젠장!!! 좆됐다! 넌 이대로 튀어서 보고해! 내가 시간을 끈다!”
그 외침에도 후임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검을 빼든 채 싸울 준비를 했다.
“뭐해! 등신아! 도망치라니까!”
후임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눈이 무릎까지 와서 뛰어도 얼마 도망 못 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판 붙어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 지독하게 멍청한 대답에 선임의 입가로 한줄기 미소가 그려졌다.
“하. 등신 같은 새끼! 튀라니까! 뒤져서 후회해도 난 모른다!”
그는 검 손잡이를 억세게 쥐며 소리쳤다.
“가자! 내가 시선을 끈다! 그 틈에 네가 옆구리를 노려! 알겠어?”
“예!”
기합과도 같은 대답과 동시에 두 병사가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선임 병사는 빠르게 괴물과의 간격을 좁혔다. 잘 갈려진 검이 번쩍이고 검날은 정확하게 누더기 인간의 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턱.
지독하게 두꺼운 가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선임은 자신의 검이 겨우 피부를 긁어내는 데 그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더기 인간의 기워진 눈구멍이 살짝 벌어지고 텅 빈 암흑이 그를 쳐다보았다.
쾅!!!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간 몸뚱이가 바닥을 한 번 튕겨 구르다 벽에 처박혀 멈췄다. 그 충격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피가 쏟아졌다.
“쿨럭.”
역류한 피가 기침과 함께 입을 통해 튀어나오고, 뿌예진 시야 속에서 후임이 괴물에게 달려들다 자신과 똑같이 튕겨나 벽에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자신보다 좀 더 상황이 심각했다.
날아가며 어디 잘못 부딪힌 것인지. 후임의 팔다리에서 뼈가 살을 비집고 튀어나와 있었다.
선임은 흐릿해지는 정신을 최대한 부여잡으며 투덜댔다.
“그러게 도망치라니까…”
탁. 탁. 탁.
누더기 인간이 자신을 향해 걸어온다. 선임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지독하게 무거워진 눈꺼풀이 천천히 떨어지고 선임이 생을 포기하려던 그때.
푸른 선이 떨어졌다.
누더기 괴물은 무언가 반응을 해보려 시도한 듯했지만, 푸른 선은 유린하듯 그 기워 붙인 인간을 너무나 수십 조각으로 쉽게 토막 쳐버렸다.
후두둑.
괴물의 조각난 몸뚱이가 바닥으로 쏟아지고. 푸른 검을 든 긴 흑발의 사내는 대충 푸른 검을 한 번 털어내고는 투덜거렸다.
“눈뿌리는 놈 말고도 대체 사도가 몇이나 더 동원된 거야? 이거 또 아까랑은 완전히 종류가 다른 괴물이네. 하아.”
긴 한숨을 내뱉은 사내가 곧장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다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무언가를 꺼내 입안에 밀어 넣어주었다.
선임 병사가 조용히 올려다보자, 사내가 말했다.
“삼켜. 그대로 뒤질 거 아니면.”
선임은 삼키지 않았다. 대신 그저 아주 힘겹게 입을 열어 말을 쥐어짜 냈다.
“저, 저…쪽에…”
“저쪽에 사람 하나 더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일단 삼켜. 내가 보기엔 저쪽보다 네가 더 급해. 이거 바로 안 삼키면 너 숨넘어가.”
꿀꺽.
목을 타고 이물질이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은 선임의 고개가 축 처졌다.
연은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수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신성들을 감지하곤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정작 사도 본인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서 되게 귀찮게 구네. 이거.”
그 한숨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연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아직 살아있는 다른 병사의 응급처치를 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