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45)
345
협공.
협공
“아, 어쩌지? 진짜 어떻게 해?! 완전 사고 쳐버렸네 이거…”
모랫빛 눈동자가 떨리고 여인은 이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녹아내리는 구원의 사도를 보며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치이이이익.
마법으로 만들어진 용암이 쏟아지는 눈과 차가운 기온으로 인해 빠르게 식어 굳고, 구원의 사도는 굳어버린 용암들 속에 끼인 채 아주 잘 익다 못해 푹 익어버려서 거의 뼈만 남은 채로 새카만 돌들 사이에 끼어 죽어있었다.
뼈까지 다 녹을 줄 알았는데, 저게 안 녹네.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건가.
내 어깨를 꾹꾹 찔러오는 느낌에 고개를 슬쩍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지젤이 눈짓으로 모랫빛 여인을 가리키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건 뭐야?”
나는 모랫빛 여인의 주의가 아직도 죽어버린 구원에 사도에 꽂혀 있는 걸 확인하고서 지젤과 똑같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도. 구원의 사도 녀석이 오기 전에 둘이 한판 붙고 있었어.”
“그래서 옷이 그렇게 피 칠갑이었던 거구나?”
지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 옷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아까 목을 꿰뚫렸던 탓인지 목을 중심으로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정확히는 주변이 추운 탓에 젖은 부분이 살짝 얼어버려서 핏자국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거였지만.
“별거 아냐. 어차피 상처는 이미 다 나았고.”
어쩐지 나를 보는 지젤의 시선이 묘하게 평소와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어딘지 모르게 살짝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표현이 맞을까.
잠깐 적당한 표현을 떠올리려 고민하다 이내 적당한 표현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본인도 모르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살짝 짜증이 난 느낌이라고 할까.
지젤은 잠깐 침묵하다가 아까보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라 짧게 말했다.
“쟤도 그럼 죽여야 할 대상인 거지?”
“잠ㄲ…”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지젤의 손이 자그맣게 움직이고 바닥에서 일어난 그림자들이 모랫빛 여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살짝 보인 그림자들의 틈 사이로 붉은빛과 함께 후끈한 열기가 새어 나왔다.
또 한 번 용암으로 공격한 건가.
아니, 근데 저 그림자 양방향 통행 아닌가?
나는 다급하게 지젤에게 말했다.
“저거 용암이 나오기 전에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저 사도가 용암이 쏟아지기 전에 그림자를 먼저 넘어가 버리면 그림자 안으로 용암을 때려 붓고 있을 페리토드가 무방비하게 노출될 게 분명했다.
“하아?”
지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너,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설마 내 권능도 내가 제대로 통제 못할까봐서? 저 그림자 너머로 넘어갈 수 있는 건 오롯이 내가 허락한 대상뿐이야. 무작정 지나간다고 그 너머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고.”
그녀는 그림자를 마저 움직여 용암들이 줄줄 새어 나오는 틈새들을 가렸다.
“뭐, 가끔 방심하거나 다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이 넘어가는 거면 몰라도 이번처럼 의식적으로 신경 쓰면서 권능을 쓸 땐 내 그림자 너머로 넘어가는 대상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아무것도 그림자 너머로 못 넘어갔으니까.”
“그렇다면야…”
이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죽였는데. 그 모랫빛 사도는 딱히 재생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던 데다 어중간한 재생능력 가지고는 저렇게 펄펄 끓는 용암 속에서 살아나오긴 힘들었다.
근데 사리가 용암에도 괜찮으려나. 괜찮겠지? 곧 죽어도 신의 힘이 담긴 건데.
한가지 고민이 해결되자 쓸데없는 잡다한 걱정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때?”
지젤은 아까 언제 짜증이 났냐는 듯이 조금 우쭐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법 도움이…”
전조는 없었다. 하지만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내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찰나가 늘어진다. 지젤의 말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의 연속으로 변하고, 거의 무음에 가까운 이질적인 낌새, 소리라기보다는 미묘한 진동 그 자체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지젤의 붉은 입술이 다시금 벌어지고 그녀의 어깨너머 바닥에서 새하얀 빛이 반짝였다.
나는 다급하게 지젤을 옆으로 밀치고서 그녀가 있던 위치를 몸으로 가렸다.
푹.
대지에서 튀어나온 창이 내 등을 꿰뚫고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몸으로 막았음에도 창대에 실린 강렬한 힘은 아직도 채 해소되지 못해 내 몸을 관통하고서 지젤을 향해 뻗어 나가려 날뛰었다.
빠르게 손을 뻗어 내 몸을 뚫고 튀어 나가려는 창대를 붙잡았다. 힘으로 짓눌러 억지로 비틀어 멈춘다.
“쿨럭.”
간신히 창이 멈추고 창에 꿰인 내 몸이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상황을 파악한 지젤의 두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지젤을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다. 방금 그 무음의 공격을 막아낸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 당장은 다음 공격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찾아내야만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라도.
젠장.
문득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지젤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머리가 뜨겁다.
누구지? 아까 그 모랫빛 여자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도? 우리 위치는 어떻게 정확하게 파악한 거지? 지젤에게 도망치라고 할까? 추가 공격이 없는 걸 보면 상대는 당장엔 우리 위치를 모르는 건가? 아니면 지젤이 권능을 쓰는 순간을 기다리는 건가. 그 순간, 발생하는 신성의 파동을 노리고?
“괜찮…”
지젤의 입이 말을 내뱉으려 했다.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입술에 올려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젤은 눈치 빠르게 내 신호를 알아먹고서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내버린 소리는 어쩔 수 없었지만,
고요 속에서 눈 많이 쏟아져 내렸다. 내게는 더 없이 최악의 조건이었다.
바닥에 전조 없이 튀어나오는 공격인 데다 정작 그 바닥이 눈으로 덮여서 더 알아보기 힘들었다.
내 몸을 관통한 창대를 타고서 핏방울만이 똑똑 떨어졌다. 일단은 마저 재생해서 최선의 몸 상태를 만드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내 몸에 꽂힌 창대를 뽑아내기 위해 붙잡았다.
그러자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지젤을 노리고서 또 하나 창이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무척이나 어정쩡한 자세여서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억지로 자리를 박차고서 그녀에게로 뛰어가려던 그때.
내 눈을 바라보며 지젤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각에서 날라오는 창의 정확한 위치도 알지 못했지만 내 다급한 표정을 보고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감이 잡힌 듯했다.
지젤의 머리 위로 새카만 헤일로가 떠올랐다. 헤일로의 등장과 함께 자그마한 신성의 여파가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신성과 함께 빠르게 뻗어 나간 그림자가 지젤의 피부 위를 거미줄처럼 뒤덮었다. 창이 노리는 건 지젤의 왼쪽 등. 정확하게 꿰뚫으면 반드시 그 너머에 심장이 있는 위치.
창날이 지젤의 하얀 피부 위를 닿기 전, 그림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새하얀 피부가 새카맣게 물들고 그림자에 닿은 창날이 부드럽게 그림자에 집어 삼켜졌다. 창은 그대로 지젤의 몸을 투과해서 반대편 그림자를 통해 빠져나와 허공을 향해 날았다.
지젤은 전신을 그림자로 새카맣게 물들인 채, 유일하게 새하얀 오른쪽 눈을 끔벅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그러게. 아쉽네. 방금 그걸로 죽어줬으면 딱 좋았을 텐데.”
대답은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그녀에겐 이 단단한 대지가 물과도 같은 건지, 모랫빛 여인은 마치 수영하는 듯 눈으로 뒤덮인 도로 위에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나는 일대일을 선호한다고. 이런 식으로 네 동료가 끼어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녀는 대지를 손으로 짚으며 바닥에서 자신의 몸을 빼냈다. 다시 대지 위에 선 여인은 자신의 갑옷을 대충 툭툭 털고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정식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겠네. 내 이름은 시스테르나, 나는 ‘산뜻한 수렁’께 선택받은 사도고…”
모랫빛 여인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바닥에 손을 집어넣어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투구를 꺼냈다. 그녀는 그 투구를 뒤집어쓰며 낮게 뇌까렸다.
“…지금부턴 한 명의 사도로서 너희를 상대할 예정이다. 둘 다 쳐 죽여주지.”
선언과 동시에 그녀의 머리 뒤로 사도의 존재를 증명하는 선명한 모랫빛 헤일로가 피어올랐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나는 내 몸에 꽂힌 창을 뽑아 곧장 녀석에게로 투척했다. 시스테르나는 굳이 창을 피하지도, 격렬한 반격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뒤로 조용히 넘어졌을 뿐.
뒤로 넘어지는 그녀의 몸이 대지와 닿음과 동시에 마치 물이 되기라도 한 듯 대지가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뒤이어 내가 던진 창이 언제 물렁거렸다는 듯이 단단해진 바닥에 그대로 꽂혔다.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는다.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일단 상대는 땅속을 헤엄칠 수 있는 권능인가. 분명 무언가 더 있겠지만.
전신을 그림자로 꽁꽁 싸매고 있던 지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그림자로 바닥째 다른 데로 날려버리는 거 가능해? 예를 들면 이 주변만 하늘로 날려버린다든지!”
“아니! 못해! 그리고 곧장 하늘로 어떻게 날려 보내! 너 하늘에 그림자만 둥둥 떠다니는 거 본 적 있어? 응? 빠져나올 곳이 있어야 보내든 말든 하지!”
지젤이 조종하는 그림자는 저 혼자서 막 일어서고 그래서 가능할까도 싶었는데 역시 안되나.
“그럼 이 주변의 땅속만 어떻게 다른 곳으로 날려버리는 건 가능해?”
“그것도 못 해! 애초에 나는 독립된 개체만 이동할 수 있다고! 사방으로 연결된 땅을 뜯어내서 이동시킬 수 없어! 내 그림자는 넘어가거나, 넘어가지 않거나 두 결과뿐이야! 막 일부러 반만 넘겨 보낸 다음 권능을 꺼트려서 절단하는 능력 같은 건 없어! 근데…”
새하얀 눈동자 외눈이 살짝 찌푸려지고 지젤은 나를 향해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종류의 소통은 좀 진작에 좀 해주면 안 돼? 넌 너무 내 능력에 대해 궁금해하질 않잖아. 마치 같이 싸울 일은 절대 없다는 듯이.”
나는 빠르게 눈을 움직여 주변의 눈 덮인 땅을 쳐다보며 공격의 전조를 살피며 답했다.
“지금 내 생각을 정말 솔직하게 말해줘?”
“어. 말해봐.”
들으면 분명 화내겠지. 엄청 화내겠지. 그래도 해야만 했다.
고개를 들어 새카만 그림자로 둘러싸인 지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디스펜스가 있는 곳으로 혼자 먼저 돌아가 주면 안 될까? 이쪽 사도의 상대는 나한테 맡기…”
“야!!!”
내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지젤이 빽하고 내지름 고함이 귀청을 때렸다. 지젤은 씩씩 대면서 나를 향해 삿대질했다.
“이거 아주 개자식이네! 이거! 사람을 개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너, 방금 내가 쟤가 던진 창 엄청 쉽게 피해낸 거 못 봤어? 못 봤냐고! 누가 보호자 행세해달래? 난 너한테 보호받을 생각 눈곱만치도 없으니까! 닥치고 지켜보기나 해!!!”
아까와는 수준이 다른 신성이 몰아치고서 그녀의 몸을 뒤덮은 새카만 그림자들이 격렬하게 일렁댔다. 지젤은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서 낮게 말했다.
“결국, 이 밑에 숨은 게 확실한 이상, 그냥 이 주변을 모조리 들쑤셔버리면 되는 거잖아! 뒈져!!!”
지젤의 양 손바닥이 바닥을 내려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새카만 그림자들이 눈 위를 질주하고 대지 곳곳에 거대한 그림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그림자들의 면을 타고서 거대한 그림자 송곳들이 튀어나왔다. 새카만 송곳투성이의 거대한 그림자들이 일제히 대지 위로 넘어졌다.
쿵!!!
실체화한 그림자들이 대지를 모조리 들쑤신다. 저 밑에 숨어있을 적을 찾아 헤매면서.
무식하지만 무척이나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지젤이 이 주변 땅속을 모조리 들쑤시기 시작함과 동시에 모랫빛 사도가 지젤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으니까.
지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너, 아주 딱 걸렸어!”
지젤과 모랫빛 사도의 사이를 가르는 새카만 그림자가 일어선다. 이내 일어선 그림자에서 시뻘건 용암이 새어 나오려 했다.
그 순간, 모랫빛 사도의 왼손에 들린 검에 기묘한 파동의 신성이 맺혔다. 그녀는 조용히 막 용암을 내뱉으려는 그림자를 왼손에 들린 검으로 찔렀다.
은빛 검에 꿰뚫린 그림자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완성된 권능의 파괴. 누가 보아도 명백한 결과.
“어떻게…?”
전혀 예상 못 한 결과에 지젤의 두 눈이 커지고, 그림자를 꿰뚫은 은빛 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림자 너머에 있던 지젤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까앙!!!
내가 휘두른 푸른 절망이 은빛 검을 쳐올렸다. 나는 한 손으로 지젤을 안아 들고서 뒤로 몸을 날렸다.
“쯧.”
모랫빛 여인, 시스테르나는 짧게 혀를 찼다.
“죽일 수 있었는데. 아깝네.”
지젤은 내 품에 안긴 채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 저거 뭐야? 내 권능이 깨졌는데?”
권능이라고 해서 파훼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방금의 그림자같이 그 실체가 특정되고 쓸데없이 면적이 넓은 유형의 권능은 특히.
권능이란 것은 결국 신성을 재료로서 발생하는 기적. 그렇다면 이론상 그 기반이자 연료인 신성에 훼방을 놓아 권능의 형태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방금 저 모랫빛 여자가 보여준 테크닉은 나도 못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필요한 형태로 필요한 곳에 신성을 부여해서 상대의 권능을 깨뜨린다.
물론,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흉내를 내려면 쓸데없이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막대한 신성을 검에 때려 부어서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시스테르나는 손목만을 움직여 왼손에 들린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리고서 싱긋 웃었다.
“권능에 모든 것 맡기는 너 같은 얼치기 사제들이야 이미 산더미처럼 죽여봤거든. 혹시 내 별명을 들어본 적 없어? ‘권능사냥꾼 시스테르나’라고.”
권능사냥꾼이라고?
“…그런 이름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데.”
“…음.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어차피 여긴 내가 주로 활동하던 지역도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나는 지젤을 힐긋 보고서 슬쩍 운을 띄웠다.
“얘만 되돌려보내면 다시 권능 안 쓰고 무기로만 붙어줄 생각 있어?”
시스테르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 여자 능력을 보니까 이리저리 막 이동해 다니던데, 몰래 뒤통수치러 올 게 분명해서 안 돼. 그리고 쟤 눈빛 좀 봐. 당장이라도 날 씹어먹고 싶어서 희번덕거리는데, 돌려보내려고 하면 잘도 돌아가겠다. 안 그래?”
지젤의 눈빛이 내 품에서 아직도 분노로 이글이글거리고 있던 건 명백한 사실이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야!!! 다시 붙어! 다시 붙자고! 같은 수는 두 번 안 통하니까, 이번에는 진짜 너 딱 뒤졌어! 진짜!”
“지젤.”
“왜?”
아까보다 배는 퉁명스러운 목소리. 나는 꿋꿋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냥 여긴 나한테 맡기고 돌아가 주는 건…”
“당연히 안되지! 뭘 자꾸 물어봐! 절대 안 된다니까!!!”
“그렇지만 내가 안 막아줬으면 너, 방금 그대로 죽었어. 아까 너 내 보호는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소리쳤던 거 벌써 잊었어? 정말 느끼는 게 하나도 없어?”
“뭘 느껴!!!”
내 품에 기대고 있던 지젤이 나를 밀어내며 떨어졌다. 그녀는 더없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지금 우리가 ‘같이’ 싸우는 건데, 내가 위험하면 당연히 ‘네가’ ‘날’ 지켜줘야지! 지금 나 혼자 싸워? 응?”
‘같이’ 싸워? 전혀 예상 못 한 종류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뭔가 조금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젤의 몸을 뒤덮은 그림자들이 격렬하게 일렁거렸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날 생각이 없으니까. 네가 날 재주껏 지키고 또 지키고 또 지키라고.”
지젤은 그림자로 일렁거리는 양손으로 거침없이 바닥을 짚으며 소리쳤다.
“네가 지켜주기만 하면 이 내가 저 여자를 때려눕혀 줄 테니까!!!”
그녀의 새카만 헤일로가 선명히 빛나고,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거대한 그림자들이 주변을 뒤덮으며 일어섰다. 이내 일어선 그림자들이 모든 공간을 뒤덮으며 넘어져왔다.
시스테르나는 그 규격 외 규모의 권능을 보곤 시원스레 말했다.
“저건 못 깨겠네. 피해야지.”
마치 물속으로 뛰어들 듯 시스테르나는 훌쩍 뛰어 땅속으로 뛰어들려 했다.
“누가 보내준대?”
까앙!!!
푸른 절망과 은빛 검이 맞부딪힌다. 시스테르나는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대신, 다급하게 내 검을 막았다.
“이제 땅 속에 숨으려는 거 발목만 잡으면 내가 이기는 건가?”
내 말에 시스테르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붙는 게 어때? 응?”
구우우웅.
거대한 그림자들이 그 모습에 걸맞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점점 우리 쪽으로 넘어져 온다.
나는 그 거대한 그림자들을 힐긋 보곤 키득키득 웃으며 사도에게 대답했다.
“싫은데? 내가 유리한데 뭐하러? 역시 싸움은 다구리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