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49)
349
거대한…
검을 타고 느껴지는 반발에 손목에 힘을 더해 끝까지 베어낸다. 절망이 괴물의 육체 깊은 곳에서 빠져나왔다. 상처를 타고 피가 채 쏟아지기도 전에 발로 녀석의 몸을 걷어찼다.
거대한 동체가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르고, 다음 괴물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달려나왔다.
하나 같이 생긴 것이 특이해서 어떻게 생겼다고 묘사하기도 귀찮은 사람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괴물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전선 자체는 고착화된 채로 제법 그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괴물들 하나하나의 체급은 남제국 정규군 병사의 평균적인 능력을 훨씬 웃돌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머릿수보다 괴물의 머릿수가 소수였고, 이곳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이라도 떨어졌는지 괴물들에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각지에 퍼져서 각개전투로 괴물들과 산발적으로 교전하고 있던 병사들이 속속히 계속 합류하고 있었다.
거기다 정규군이라 어느 정도 훈련이 잘되어 있는 덕에 전선 자체를 형성하는데 익숙해 보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괴물들에게 이 전장이 마냥 불리하냐면 그것도 아닌게 괴물들 또한 병사들보다는 적긴 하지만 새로운 괴물들이 전장으로 속속히 도착하고 있었다.
물론, 제법 많은 괴물들이 내 쪽으로 붙어오고 있어서 조금씩 남제국군이 우세해지는 것 같았지만.
쾅!!!
공격을 피하고 바닥을 디디고 뛰어올랐다. 사람만 한 팔뚝을 즈려밟고 앞으로 뛰어올랐다.
굳이 전부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내 목표는 적 사도 하나뿐이었으니까.
음침한 인상의 검은 머리 여자는 호기롭게 내게 선언했던 것치고는 이상하게도 교전이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괴물들을 이용해서 나와의 거리를 벌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도망치는 것도 아니라 나와 일정한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먼저 패를 까보란 건가. 그런 것치고는 딱히 나 자체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당장 내 능력을 조금 보이면서 녀석을 추격하는데 박차를 가할까 싶다가도, 그게 바로 녀석이 원하는 바일까 봐 조금 주저하게 되고 만다.
사도를 상대할 땐, 신성 때문에 내 재생력이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으니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여느 평범한 인간들처럼 조심해야만 했다.
나는 뛰어올라 그녀를 향해 거리를 빠르게 좁혀나갔다. 다행히 검은 머리 여자의 몸놀림은 날렵하긴 했지만, 내 기준으로는 쉽게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속도는 아니었다.
다만.
다시금 거리가 좁아지고, 나는 절망을 재차 휘둘렀다.
그러자 여태까지 그러해 왔던 것처럼 거대한 살덩이 괴물 하나가 제 안위를 도외시한 채 검은 머리 여자를 지키기 위해 제 몸을 우리 사이에 들이밀었다.
절망이 괴물의 몸뚱이에 깊숙이 박히고, 다시금 빠져나오는 사이. 검은 머리 여자는 착실하게 나와의 거리를 벌려 나갔다.
살짝 많이 얄미울 정도로 잽싸게.
이래서 프리디야 스승님이 괴물을 잡으러 갈 때는 대검을 한 자루 더 챙기시는 건가. 살짝 답답하네.
절망은 결국 그냥 평범한 검 크기이다 보니 그 길이가 이런 덩치만 커다란 괴물을 상대할 때 검신이 짧게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절망이 대검이었다면 단칼에 반토막 났을 녀석도 검신이 짧아서 단숨에 반토막을 치지 못하곤 했으니까.
나는 다시 내가 베어낸 괴물의 목숨을 마무리하는 대신 대충 걷어차서 녀석을 치워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이야? 어? 내 머리, 껴안는 베개에 달아서 쓴다며?”
내 대화가 반가운 건지, 재차 나를 붙잡고 늘어지려던 괴물이 검은 머리 여인과 함께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음침한 인상의 여인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안달이 나는구나? 너? 나, 날 가지고 싶어서!”
“영 틀리긴 한데… 음. 아니, 생각해보니 조금 뜻이 비슷하긴 해. 그래서 왜 자꾸 도망만 치는 건데? 어? 자꾸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시원하게 한 번 붙자고.”
“나, 날 어, 얼마나 원하는데?”
나는 눈으로 녀석과의 거리를 대충 어림잡아 쟀다. 어차피 말을 건 것도 진심으로 대화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반복되는 교착 상황에 변수를 주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이 대화로 녀석이 방심하면 더없이 좋고,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내게 자그마한 틈이라도 허용한다면 나로선 만족이었다.
“됐고, 언제까지 계속 도망칠 건지나 말해. 슬슬 조금 짜증 나려고 하니까.”
검은 머리 여인의 눈동자가 잠깐 움직이더니 아까부터 도망치는 내내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시스테르나의 피투성이 몸뚱이에 꽂혔다.
피투성이 몸뚱이에서 끊임없이 흐르던 출혈이 어느새 멎었는지, 그 붉은 몸은 더는 피를 떨어뜨리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금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얘, 얘가 아직 안 죽어서. 그, 그냥 빠, 빨리 죽어주면 좋을 텐데. 그래서 기, 기다리는 중이야.”
아주 조심스럽게 반보 앞으로 발을 내밀며 아무것도 안 한 척 말을 계속 이어 나간다.
“상태가 그 정도면 이미 대충 죽은 거 아냐?”
“얘, 어, 얼마나 목숨줄이 질긴데. 그, 그리고 얘, 얘가 진짜 죽기 직전이면 저, 전조가 나타날…”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지, 음침한 인상의 여인이 무어라 횡설수설 중얼중얼 대답하는 것에 대충 맞장구쳐주며 반보 더 거리를 좁혔다.
여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그저 말만 재잘재잘 내뱉어댔다.
좋았다. 저 사람 고파 보이는 여자한테 대화를 시도한 건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어.
이대로 반보만 더 거리를 좁히면 저 정지하고 있는 괴물보다 빠르게 저 여자를 베어버릴 수 있었다.
“…그, 그래서 나, 나로서는 누, 눈치도 보이고 해서 직접 숨을 끊을 수는 없어.”
“그래, 힘들겠네.”
“마, 맞아! 힘들어! 이게 참 여럿이서 지, 지낸다는 게 나, 나한테는 쉽지 않더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지.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한 사람들.”
“너, 너! 아, 아주 잘 아는구나! 더, 더 마음에 들어! 이젠 머리만 말고, 그, 그냥 네 몸 통째로 안는 베개로 쓰고 싶어졌어!”
“맞아맞아.”
아, 마지막 대답은 좀 아니었나?
뭐, 상관없었다. 이미 반보를 내디뎠으니.
다시금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여인의 얼굴을 보며 재차 자리를 박찬다. 옆에서 대기하던 살덩어리 괴물은 나보다 반 박자 느렸다. 애초에 정지하고 있던 녀석이 나보다 반응속도가 빠를 수 없었으니.
절망을 따라 푸른 선이 그어진다. 노리는 건 여인의 머리통. 사선으로 그냥 쪼개버릴 생각이었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여인의 새카만 동공이 잠깐 커졌다 빠르게 작아지더니 그녀의 머리 대신 시테르나를 들고 있지 않던 한쪽 팔이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근육들이 얼기설기 빠르게 뭉쳐 순식간에 부피를 불려 비대해진 한쪽 팔이 절망을 막아선다.
역시 제 몸도 개조했었나? 하긴, 안 할 이유가 없긴 했지.
거대한 손아귀를 가볍게 반으로 쪼개버리면서 절망은 계속 나아갔다. 처음의 목표를 향해.
그러나 자신의 손아귀 반을 희생하며 틈을 번 검은 머리 여인이 간발의 차이로 몸을 뒤로 빼서 굴렀다.
나는 굳이 더 쫓지 않았다. 쫓아봤자 벨 수 없었기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한 살덩어리 괴물이 나와 그녀의 사이를 잠깐 가로막고는 데굴데굴 굴러 지나쳤다.
나는 노리던 사냥감의 피를 머금은 절망을 대충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대검 한 자루 마련해야 하나?”
검날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머리째로 쪼개는 건데.
검은 머리 여인은 잘린 손아귀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너, 너!!! 이, 이 비겁자! 우, 우리 방금까지 서, 서로 교감하고 있었잖아! 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고 있었잖아!!!”
“뭐라는 거야. 난 하나도 안 듣고 있었는데.”
“뭐, 뭣?!”
“됐고. 이 지루한 교착은 여기서 끝내자.”
나는 자세를 낮췄다. 여기선 그냥 내 패를 먼저 까 보이는 게 아니면 언제까지고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질 거 같았기에.
내가 막 권능을 발도하려는 찰나.
“자, 잠깐!!!”
검은 머리 여인이 반으로 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아귀를 내 쪽으로 내밀며 소리치고는 허리춤에 들고 있던 시스테르나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마치 대화를 하기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 죽기 싫다고? 왜, 왜? 그, 그냥 죽어주면 안 돼? 시, 시체는 나한테 주기로 했잖아!”
다만, 이상하게도 내 예민한 청각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검은 머리 여인이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는 목소리만이 들릴 뿐.
저거 진짜 대화하는 거 맞긴 하는가? 사도들끼린 나도 모르는 나름의 대화 수단이 있는 건가?
당장 덮쳐들까도 싶었지만, 아까와 다르게 살덩어리 괴물들이 나와 검은 머리 여인의 사이를 촘촘하게 막아서고 있는 탓에 마냥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뭐가 됐든 저쪽이 먼저 패를 깐다면 내게 상황이 좋기도 했고.
잠시 기다려주지 뭐.
두런두런 나누던 대화는 이내 끝으로 치달았다.
“…하아. 그, 그럼 너 나한테 하, 하나 빚진 거야? 나, 나중에 꼬, 꼭 갚아! 시, 시체는 무, 무조건 주는 거고!”
푹.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괴물들 너머로 무언가 살을 찌르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괴물들이 갈라지며 검은 머리 여인과 나 사이로 하나의 길을 텄다.
여태 음침한 여인의 한쪽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잔뜩 구겨지고 깨진 피투성이 갑옷 여인, 시스테르나가 어느새 자신의 두 발로 대지를 디디고 서 있었다.
시스테르나는 머리가 살짝 아프기라도 한 듯 휘청이더니 이내 그 특유의 모랫빛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무척이나 반가운 듯이.
“하아. 하마터면 진짜 골로 갈 뻔했네.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내가 실수했네. 괜히 신중하게 행동하다가 쓰러뜨렸던 적이 다시 살아날 시간을 주다니. 역시 간 보면서 싸우는 건 나랑 조금 안 맞아.”
다 내가 압도적으로 이길 힘이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만.
시스테르나는 깨진 투구를 벗어 던지고는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훔쳐내며 말했다.
“또 한번 붙고 싶긴 한데, 지금 몸 상태가 영 아니라서 말이야. 나는 이만 여기서 빠지려고.”
“누가 보내준대? 너희 둘 다 오늘 나한테 머리 쪼개질 예정이라 보내주긴 조금 힘들겠는데.”
그녀는 시원스레 웃으며 오랜 친구처럼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좀 보내주면 안 돼?”
그 말과 동시에 선명한 모랫빛 헤일로가 그녀의 머리 뒤로 떠오르더니 대지가 바다처럼 울렁이기 시작했다.
쾅!!!
녹아내리는 수렁같이 변한 대지에서 거대한 사람의 손아귀 하나가 튀어나오고, 이내 다음 손이 뒤따라 치솟아 올라 대지를 눌렀다.
그러자 뒤이어 그 손들이 연결된 몸뚱이와 얼굴이 대지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저 막대한 신성 덩어리 거인의 상반신을 보자마자 여태 저 사도들이 어디에 숨어있었던 건지 깨달았다.
녀석들은 저 거인의 몸속에서 시스테르나의 권능으로 이 남제국의 수도의 대지 저 밑바닥에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저러니 이 잡듯이 수도를 뒤져도 절대 못 찾아내지.
가이이이이이이!!!!
상반신을 드러낸 거인이 기괴한 포효를 내뱉자 음침한 인상의 여인이 더없이 밝게 히죽댔다.
“저, 저게 바로 내, 내! 최, 최고의 걸작이야! 어, 어때!!!”
거인에는 거인으로 상대해야지. 나는 주저 없이 권능을 발동했다.
공간이 찢어지고 찢어진 공간 너머에서 반가운 포효가 아주 멀리서 들려온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콰아아아앙!!!
대지에서 솟아나던 거인을 거대한 은빛 주먹이 후려갈겼다. 음침한 인상의 여인의 새카만 눈 위로 경악이 스쳐 지나가며 거대한 육신이 기우뚱거리며 쓰러졌다.
거대화한 여섯 개의 금속 팔이 번쩍이고, 대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거대한 사족 보행 기계가 녹색 안광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 후계자님. 네 번째 기사 콰르트, 지금 참전하겠습니다.
나는 조금 멍청한 목소리로 거대화한 콰르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 너, 여기 언제 왔…”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뒤이어 나타난 부패의 거인이 공간을 찢으며 멋들어지게 등장했으나, 이미 한 대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거대한 거인과 거대화한 콰르트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 그 아 아 아 아 앗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