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55)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동시에 네마드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고요하던 공간, 그 전체에서 느껴지는 명백한 신성. 마침내 완성되어 발동된 ‘부패의 구덩이’가 제가 집어삼킨 두 먹이를 썩혀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어때? 산 채로 썩어가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진 않군.”
네마드는 이 공간 전체가 자신을 격렬하게 증오해 마지않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독한 악의 그 자체가 자신을 좀 먹는 듯한 그런 기분.
피부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신체 내부와 온몸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썩어 문드러져 죽고 말 것이라고.
네마드의 등 뒤에 떠올라 있던 헤일로가 은은한 빛을 토해낸다. 시린 신성이 네마드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와 공간 그 자체인 부패의 구덩이에 저항해나가기 시작했다.
부패가 얼어붙는다. 네마드의 몸을 갉아 먹던 부패가 느려지다 못해 정지에 가까울 정도로 둔해졌다. 막대한 신성을 쏟아부어 상대의 권능이 발현되는 것을 짓누른다.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그마저도 완벽한 해결법은 아니었다. 그저 문제를 조금 뒤로 미뤘을 뿐.
애초에 사도급의 사제가 펼치는 권능을 신성만으로 무효화시킨다는 것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마드의 범인을 초탈한 신성의 양이 아니었다면. 그마저도 오래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효율의 차이였다. 애초에 완성된 권능의 발현을 신성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상대가 그 권능을 발현하는데 소모한 신성보다 족히 몇 배에 달하는 신성을 비효율적으로 쏟아부어야만 했다.
이 대치가 이어진다면 시간을 끌기만 해도 상대에겐 끝없는 이득이 생기고 만다.
새카만 사제복을 입은 상대의 하얀 피부가 조금씩 썩어들어가는 모습이 네마드의 시선에 들어왔다.
‘권능에 피아구분이 없다. 제 주인마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권능인 이상, 일방적인 권능보다 그 지속력이나 위력이 높거나 이 권능을 발동하는 데 드는 신성이 지극히 적은 경우에 해당할 확률이 높겠군.’
그렇다면 지속력이 뛰어난 권능이라면 시간을 끌거나 하는 건 무의미했다. 이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눈앞의 사내를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동귀어진을 노리고 출구가 없는 권능으로 자신과 함께 떨어진 것이라면…
네마드는 썩어가는 와중에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 사내의 눈을 보았다. 새카만 가운데 그 깊은 동공 저 밑바닥에서 암녹빛 불티가 피어오르는 그 눈을.
그건 무언가 맹렬히 바라 마지않는 자의 눈이었다. 앞으로 무언가 해나가고자 하는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런 눈.
‘자포자기로 같이 죽자고 발동한 권능은 아니군.’
생각의 정리는 끝났다. 눈앞의 사내를 죽이고, 이 권능을 무너뜨린 다음. 예정대로 남제국의 수도에 사는 모든 인간을 얼려 죽인다.
“후우.”
새하얗게 맺히는 입김. 네마드가 마음을 다잡음과 동시에 공간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는 새하얀 숨결을 보며 마르낙은 쓰게 웃었다.
‘진짜 말이 안 되는 놈이네.’
내려간 온도와 함께 네마드의 몸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진행되던 부패마저 조금 느려졌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부패의 구덩이로 끌어들인 이상, 이대로 숨만 쉬어도 이득은 계속 생기고 있었다. 거기다 부패의 구덩이가 진화하면서 생긴 이 ‘새로운 사용법’을 녀석에게 때려 박았을 때, 저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꽤 궁금했다.
“잠깐.”
짧은 한마디. 마르낙이 내뱉은 한마디가 묘한 순간에 당장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가려던 네마드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뻔한 수였다. 멈추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한마디가 네마드의 귓가를 울린 시점이 무척이나 절묘했다.
육신의 이완과 긴장 그 절묘한 틈새. 만약 저 한마디가 조금 더 빠르거나, 느렸더라면 네마드는 그저 무시하고 마르낙을 공격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 너무나도 절묘한 순간 꽂힌 한마디에 네마드는 어딘지 모르게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몸을 우뚝 멈췄다.
“…뭐지?”
마르낙은 혀로 냉기 때문에 조금 바싹 마른 입술을 살짝 적시고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어째서 그렇게 남제국 수도의 모든 인간을 죽이는 데 집착하는 거야? 근데 또 이상한 게 내가 쭉 지켜보니까 막상 진짜로 다 죽이고 싶은 건가 싶을 정도로 방식이 너무 투박하고 우직해. 진심으로 남제국 수도의 인간을 다 죽이는 게 네게 중요했더라면 좀 더 효율적인 방식이 수없이 많잖아. 안 그래?”
네마드가 최선을 다했더라면 이런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눈이나 뿌려대며 수도 자체를 천천히 얼려 죽이지 않고도 수도의 모든 인간을 더 빠르고 손쉽게 모조리 죽일 수 있었다는 건 지극히 분명한 사실이었다.
투명한 하늘빛 눈동자가 마르낙을 비춘다. 그 눈을 보자 마르낙은 깨달았다. 분명 저 사내는 남제국 수도의 모든 인간들을 죽이는 데 실패하더라도 딱히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리란 걸.
‘이미 충분히 많이 죽였다 이건가? 그건 또 아닌 거 같은데.’
굳게 닫혀 있던 네마드의 입술이 떨어지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문장을 내뱉는다.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끝난다면. 이쪽을 없애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전후 맥락을 모르니까, 네 말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데.”
시간을 끌고 있다. 저 사내는 진짜로 자신의 사연이 궁금한 것이 아닌 그저 시간을 끌어 자신이 비효율적으로 신성을 낭비하는 걸 노리고 있었다.
지극히 뻔한 수작에 네마드는 잠깐 고민을 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북제국에 파견된 남제국의 간첩이었다. 남제국 정보기관 출신의 공작원. 그래, 그것이 내 예전 신분이었지. 그리고 내 부모 또한 남제국 정보기관 소속의 공작원이었다. 내 기억이 시작될 무렵엔 이미 두 사람 다 죽은 뒤였지만. 나는 정보기관의 후원을 받으며 자라 당연하단 듯이 요원으로 훈련받으며 커왔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첫 임무가 북제국으로 파견…”
마르낙은 네마드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혀가 텁텁하고, 속은 쓰린데다 전신에서 산채로 썩어가는 아릿한 고통이 몰려온다. 비록 네마드가 퍼뜨린 신성 탓에 부패의 진행이 아까보다 느렸지만 그럼에도 산채로 썩어가고 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은 움직이기엔 조금 일렀다. 좀 더 자신의 육체를 푹 썩혀야만 했다. 네마드에게 ‘효과적’으로 한 방을 먹이려면.
“…난 채 성인이 되기 전부터 위장 신분을 부여받고 북제국의 교육기관에 잠입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활동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사소한 시간들이었지. 애초에 제대로 된 간첩 활동을 위한 포석을 다지기 위한 시간이었을 뿐이었으니. 그러나 나는 충실하게..”
‘되게 말이 길고 설명이 장황한데 은근 구체적이네. 언제든 누가 물어봐 주길 기다리면서 연습이라도 했나?’
전신에 퍼진 부패들이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 몸을 좀 먹는다. 고통이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패의 진행을 충실하게 꼬박꼬박 알려주고 있으니 적절한 타이밍을 놓칠 일 따윈 없었다.
“…그래, 그렇게 나는 우연이 단서의 끝자락에 닿고 말았던 것이다. 내 부모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그건 바로…”
‘별 재미 없군. 이런 이야기를 푸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결말도 뻔해 보이고. 심지어 러브라인도 없군.’
일단 듣고 있는 네마드의 사연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요원으로 길러진 삶. 요원이었다 북제국에 의해 살해된 부모. 그들을 죽인 건 사실 북제국이 아니라 남제국이었다는 진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북제국과의 인연. 진실에 대해 파악한 걸 깨닫자 자신을 제거하려 드는 남제국의 정보기관. 운이 겹친 도망. 그와 인연이 있던 인물들을 이용한 인질극과 비극적 결말. 너무나 늦게 얻은 신의 권능.
그저 뻔한 한 편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이건 복수가 아니다. 감정은 옛적에 무뎌진 지 오래. 오히려 미래의 비극을 멈추기 위한 의식이다. 애초에 제국이 둘로 나뉘어 버린 것이 문제였다. 둘 중 하나가 사라지고 하나의 제국으로 되돌아간다면, 나와 같은 비극이 더 발생하는 건 막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 것이다.”
시리도록 새파란 눈이 흔들림 없이 마르낙을 쳐다본다.
“남제국을 무너뜨리기로.”
“수도에 궤멸적인 손해를 입힌다고 딱히 남제국이 멸망하진 않을 텐데?”
“몇 년 전부터 북제국에 미리 이 의식을 알리고 대비하게 했다. 남제국이 치명적인 손해를 입고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예정이란 것을. 북제국의 황제는 그때부터 준비하기 시작했지. 남제국을 집어삼킬 준비를. 남제국의 수도에 첫 번째 눈이 떨어졌을 때, 북제국군의 진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뭐?”
네마드가 하는 말의 뜻은 지극히 단순했다.
전쟁. 전쟁이 일어난다. 아니, 저 말대로면 이미 일어났다. 둘로 나뉜 제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쟁이.
저 말이 전부 진실이라면 국경선을 따라 주요 요새들을 향해 북제국의 기습적인 남침이 벌어졌겠지.
하긴 사도쯤 되는 인간들이 굳이 도시 단위로만 놀 이유는 없었다. 저 녀석처럼 국가 단위로 노는 그릇이 큰 녀석도 당연히 나오게 되기 마련.
‘전쟁은 내가 고려해둔 변수가 아닌데.’
마르낙은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네마드를 노려보았다.
“어째 하나같이 거슬리네. 너.”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해주지.”
대화는 끝났다. 눈빛이 교차하고 두 사도는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단단해진 대지를 박차고 나아가는 네마드의 주위로 네 개의 얼음 막이 빠르게 움직인다. 아까보다 한층 더 거대해진 얼음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며 마르낙을 후려쳤다.
까앙!!!
절망을 빠르게 휘둘러 얼음 몽둥이를 흘려낸다. 담긴 힘은 아까보다 거대했지만, 어느새 한계까지 활성화된 부패의 문의 힘까지 더해 몽둥이에 실린 힘을 미끄러뜨리듯 흘려냈다.
좁아지는 거리. 얼음 몽둥이를 흘리며 만들어낸 자그마한 틈을 비집고 네마드를 향해 다가간다. 기다렸다는 듯이 얇은 얼음막 네 개가 마르낙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절망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찌른다. 그 검놀림에 얼음막 하나가 꿰뚫리며 공간이 벌어졌다.
마르낙은 다시 한번 그 틈으로 몸을 던져넣었다. 그러나 다른 세 개의 막이 빠르게 움직여 마르낙의 몸과 접촉했다. 권능이 담긴 모든 걸 부스러뜨리는 집요한 냉기가 마르낙의 몸을 파고든다.
부패의 문이 더욱 밝게 타올랐다. 일렁이는 신성이 권능으로 화해 마르낙의 몸에 깃든다. 오장육부를 우선해서 썩게 하던 부패가 냉기의 권능이 들러붙어 얼어붙어 가던 살덩이들로 옮겨갔다.
냉기가 번져가기도 전에 썩어 문드러진 살점들이 마르낙의 몸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냉기의 막들은 포기하지 않고 마르낙의 신체에 수차례 달라붙어 왔다.
거의 흩뿌리듯이 썩어가는 살들을 흘리며 내달린 마르낙은 마침내 네마드에게 닿았다.
절망이 번쩍이고, 마르낙은 현재 상태에서 펼칠 수 있는 최선의 궤적을 그려내며 네마드의 목을 노렸다.
허나, 그 궤적은 여기까지 달려오며 흘린 살점과 근육들 탓에 달인의 기예에 닿지 못했다.
까앙!!!
네마드의 발이 절망의 검면을 두들겨 쳐냈다. 튀어 오른 절망이 허공을 훨훨 날고, 네마드의 얼음덩어리 왼손이 마르낙의 배를 꿰뚫고 튀어나왔다.
푹.
줄줄 흘러내리는 내장과 핏물, 그리고 살점덩어리들.
“쿨럭.”
마르낙은 역류한 내장 조각을 토해내며 키득 웃었다.
“아니, 좀 치는데?”
“…권각술은 내 여러 특기 중 하나다.”
“…거 재주 많아서 좋겠네.”
네마드는 마르낙의 몸을 쳐다보았다. 꿰뚫린 배와 썩은 살점들이 떨어진 탓에 여기저기 뼈가 훤히 보이는 얼굴. 저 새카만 사제복 너머의 몸 상태는 굳이 보지 않아도 그 모습이 뻔했다.
그저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정도겠지.
네마드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패배로군.”
그 승리 선언에 마르낙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보통 그 말 먼저 하면 진다고. 얼간아.”
툭.
너무 가까웠던 탓일까. 빠르게 움직인 마르낙의 반쯤 썩어버린 손바닥이 네마드의 얼굴을 덮었다. 그 어떤 충격도 없이 그저 조용히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가려진 시야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게 반쯤 떠넘기겠다. 이 모든 ‘부패’를.”
“커흑?!”
네마드의 몸이 흔들리고 마르낙의 배를 꿰뚫었던 얼음의 팔이 부서진다. 하얀 얼굴이 일그러지며 전신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네마드는 하나 남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네마드의 모습과 다르게 썩어버렸던 마르낙의 몸이 빠르게 회복된다.
‘부패의 구덩이’가 진화하면서 새롭게 얻은 기능. 그건 바로 이미 부패의 구덩이로 인해 썩어버린 부상의 반을 접촉한 상대에게 떠넘기는 것.
그래서 마르낙은 말을 걸어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이었다. 부패의 구덩이가 충분히 자신의 몸을 좀 먹을 시간이 벌어주기 위해서.
마르낙은 바닥에 떨어진 절망을 줍고는 아까보다 더욱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채로 썩어버린 기분은! 짜릿하지? 하하하!”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