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7)
37 화 펄리.
펄리.
“뭘 원하십니까? 아니, 일단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죠.”
내가 손을 놓자, 펄리는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고서 히죽 웃었다.
“왜? 왜 지금 안 물어봐?”
나는 눈짓으로 아직 날뛰고 있는 카펠과 설원 박쥐들을 가리켰다. 펄리에게 정보를 캐내는 것보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펄리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역시 특이하네! 역시 특이해! 너도 악신의 숭배자면서 다른 사람들은 대체 왜 구하려고 하는 거야? 응?”
“일단 숲으로 다시 돌아가 계십시오.”
“차가워! 차가워! 너무 차가워! 한겨울 눈보다 네가 더 차···.”
더 들어줄 필요를 못 느꼈다. 나는 펄리를 뒤로 한 채, 눈밭 위를 내달렸다. 도살자가 다시 한 번 거칠게 비명을 질렀다.
왜애애애애앵!
눈밭을 박차고 뛰어올라 그대로 내리그었다. 카펠의 머리가 떨어지고, 채 식지 못한 피가 쏟아졌다.
설원 박쥐들도 그 덩치가 위협적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설원 박쥐들은 덩치에 비해 몸이 굉장히 가벼웠기에 상단의 호위병들이 어찌저찌 설원 박쥐들을 잘 저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카펠들이었다. 타고난 전사인 녀석들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면 강력한 흉기가 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남은 카펠은 이제 다섯, 아니 넷.
방금 막 사지타의 창이 카펠 한 놈의 턱을 꿰뚫었다. 다키아와 카르멘도 둘이서 한 마리의 카펠을 거의 다 잡아가고 있었고.
나는 남은 카펠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을 다음 사냥감으로 점찍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도살자를 쥐고서 달려나가자, 상단 호위병을 내려치려던 카펠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도살자를 왼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손으로 뼈 검을 빼 들었다. 붙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팽팽히 당겨진 근육이 뇌의 명령과 동시에 제 힘을 터뜨렸다.
푹.
날아간 검이 카펠의 왼쪽 다리를 꿰뚫었다. 갑작스럽게 무게중심을 잃어버린 괴물이 바닥을 굴렀다. 빠른 속도로 좁혀지는 거리. 도살자가 게걸스러운 비명을 터뜨렸다.
왜애애애애앵!
또 한 번의 피와 살점이 하얀 눈밭 위로 비산했다. 나는 피 칠갑이 된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서 주변을 살폈다.
괴물들이 물러가고 있었다.
정말 한계까지 정신을 갉아먹을 셈인가. 적은 지극히 집요하면서도 노련했다. 여기서 무작정 추격하는 건 분명히 위험하겠지. 일단은 정보다.
내가 죽인 카펠의 시체를 질질 끌고서 상단으로 향했다. 설원 박쥐보다는 카펠의 시체가 훨씬 더 가치 있었다. 상단 호위병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서 분주하게 시체들을 정리했다.
그들을 도와 대충 뒷정리를 끝마친 나는 슬쩍 눈치를 보고서 틈을 노려 펄리가 튀어나왔던 숲 쪽으로 몰래 향했다.
조금 깊숙이 들어가자 나무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 늦어!”
나뭇가지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펄리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거 다 해줄 거야?”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헛소립니까?”
“아냐?”
“전혀 아닙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일단 들어보고 제가 정한 선을 넘는 요구면 그냥 여기서 베어버릴 겁니다.”
스릉.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서리강철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도살자는 쓸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단의 주둔지까지 소리가 다 들릴 게 뻔했으니까.
펄리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살벌해! 살벌해! 그래서 더 좋은 거지만!”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으음. 으으으음.”
그녀는 자신의 턱을 부여잡고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그럼 제 질문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물어볼 게 많으니, 그동안 천천히 생각해보시지요.”
“좋아! 좋아!”
나는 시체들을 정리하며 정리해둔 질문 중 하나를 꺼냈다.
“상단을 습격하는 데 투입된 악신의 숭배자는 몇 명입니까?”
“보자··· 몇 명이더라··· 하나, 둘··· ”
펄리는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차례대로 손가락을 접었다. 세 개의 손가락이 접혔다.
“나 빼면 셋이네!”
셋이라. 악신의 숭배자들은 최소 셋 이상 몰려다니는 지침이라도 있는 건가. 저번부터 최소 셋 이상 몰려다니네.
“그 셋은 각각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건 몰라!”
“어째서요?”
펄리는 히죽 웃었다.
“안 물어봤거든! 안 궁금해서! 게다가 나 걔네한테 합류한 지도 얼마 안 됐어! 그런데 그거 알아?”
“뭘요?”
주변을 힐끔힐끔 살펴본 펄리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걔네가 자꾸 나 없는 사람 취급한다? 솔직히! 솔직히!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해!”
나 같아도 그랬을 거 같은데. 나는 목 끝까지 튀어나온 말을 꾹꾹 눌렀다. 굳이 기분을 상하게 해서 재잘재잘 정보를 떠들어대는 저 입을 다물게 할 필요는 없었기에.
기분 좋으라고 가볍게 추임새를 넣었다.
“참으로 너무한 자들이로군요.”
“그치! 그치!”
“계속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들이 저 상단을 습격하는지 아십니까?”
나는 펄리에게서 악신의 숭배자들이 어떻게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을 찾아내는 지 알아내야만 했다. 그 방법을 나도 쓸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봉인을 푸는 게 한결 편해지리라.
“으음··· 분명 들었는데···.”
들었던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지, 펄리는 곰곰이 고민한 끝에 짝하고 박수를 쳤다.
“아, 그래! 목걸이! 상단주한테서 목걸이를 빼앗아야 한다고 그랬어!”
좋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 목걸이가 상단주한테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아십니까?”
“그건 몰라!”
말하자마자 튀어나온 대답. 그래, 솔직히 별 기대 안 했다. 저렇게 입 가벼운 애한테 중요한 정보를 가르쳐 줄 리가 있겠는가? 나라면 절대 안 가르쳐줬다.
“근데 그건 알아!”
“그게 뭡니까?”
“저기 저 상단주한테 목걸이를 맡긴 의뢰인은 ‘리베라티오’ 소속이야!”
리베라티오라고?
“리베라티오면 악신의 숭배자들의 비밀결사 아닙니까?”
“맞아! 맞아!”
“당신도 거기 소속이고요.”
“그치!”
“지금 우리를 습격하는 악신의 숭배자들도 리베라티오 소속 아닙니까?”
“그것도 맞아!”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악신의 숭배자가 아우렐리우스한테 성물을 맡기고, 또 다른 악신의 숭배자들이 그걸 뺏기 위해 움직인다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내분이군요.”
그래, 이상한 애들끼리 모였는데, 짝짜꿍이 잘 맞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내분까지는 아냐! 그냥 파벌 두 개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거지! 의외로 서로 협력도 잘해! 서로 잘 죽이지도 않고!”
“어째서 파벌이 나뉜 겁니까?”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던 펄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대충 듣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당신도 속한 파벌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기억이 안 나신다고요?”
그녀는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가슴을 꾹 찌르며 웃었다.
“나는 중립이야! 그냥 돈 주면서 부탁하면 움직여! 아, 재료도 받아!”
“무슨 재료 말입니까?”
“무슨 재료긴! 당연히 내가 쓰는 인형 재료지! 나는 ‘흔들리는 실줄’을 모시는 사제니까!”
안 죽는 이유가 그거였나. 여태 내가 죽인 건, 그녀의 모습을 정교하게 본뜬 인형들이었단 거네.
“맞다, 너 조심하는 게 좋을걸? 나랑 같이 온 애들, 나 빼놓고 뭔가 열심히 준비하는 거 같더라고!”
“대체 저한테 왜 이리 호의적인 겁니까?”
보랏빛 두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녀는 여태까지와 달리, 전혀 가볍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진짜 물어봐도 괜찮겠어? 정말 내가 베푸는 호의의 ‘이유’가 궁금해? 그건 여태까지 네가 나한테 물어본 질문들과 방향성이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인형이 머리를 바꾸듯 그녀를 감싸는 분위기를 바뀌었다. 지금의 펄리는 마치, 한 마리의 뱀을 연상시켰다. 아주 지독한 독을 품고 있는 보랏빛 독사를.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갑자기 안 궁금해졌습니다.”
그녀는 이내 아이처럼 칭얼댔다.
“왜! 왜! 물어봐! 얼른 물어봐!”
“싫습니다. 그러게 물어볼 때 대답하셨어야지요. 이 이상 오래 시간을 끌다간, 제가 사라진 걸 다들 눈치챌 테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얼른 저한테 할 부탁이나 말씀해보시지요.”
부탁을 들어본다면, 과연 저 인형술사가 대체 뭘 원하고 있는지 조금은 추리해볼 수 있겠지.
펄리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다음에 만났을 때 말해줄게!”
“그렇습니까?”
“응! 응!”
“그럼 안녕히 가시길.”
서걱.
서리강철 검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펄리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머리를 잃어버린 목이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눈밭을 구르는 펄리의 머리가 큰소리로 외쳤다.
“또 봐!”
그 말을 끝으로 펄리의 숨이 멎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인형이.
“역시 이것도 인형이었나.”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피와 살점들은 진짜 사람의 것과 완벽히 똑같았다. 도저히 인형이라고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펄리가 인형을 잘 만드는 걸까, 아니면 ‘흔들리는 실줄’의 권능이 뛰어난 것일까. 아마 둘 다겠지.
‘살해!’
대충 다 끝났으니, 얼른 돌아가서 아까 약속한 손바닥 마사지를 할 차례라며 들썩거리는 어머니를 토닥이며 답했다.
“마사지는 일단 몸부터 다시 씻고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왔던 길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단의 막사들 사이에 설치된 불들이 저마다 넘실거리는 빛을 뿜어댔다.
새하얀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상단의 이동속도가 느려지겠네.
내일도 악신의 숭배자들한테 지긋지긋하게 습격당할 생각을 하면 지금 조금이라도 쉬어둬야만 했다.
내 막사를 향하는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불러세웠다.
“마르낙 사제님?”
나는 고개를 돌려 다키아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공녀님, 악신의 숭배자들이 언제 습격해올지 모르니 지금 같은 때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두셔야 합니다.”
다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까 막사에 찾아갔었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주변에서 악신의 숭배자의 신성이 느껴지기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진짜요?”
“예. 아쉽게도 제가 도착했을 땐, 악신의 숭배자는 이미 떠난 뒤였지만요.”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내게 다가와서 손에 든 천으로 내 얼굴 위에 딱딱하게 굳은 피를 세심하게 닦아냈다.
‘살(殺)!’
어딜 감히 멋대로 손대느냐는 어머니의 외침과 함께,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천이 더러워집니다. 공녀님.”
“애초에 얼굴 닦을 천 갖다 드리려고 찾았던 거예요. 아, 도망치지 좀 말아봐요.”
어떻게든 얼굴을 닦아주겠다는 그녀의 강렬한 의지에 나는 결국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다키아는 내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준 다음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 됐다.”
“어차피 씻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아까보단 개운하잖아요. 그렇죠?”
“그렇긴 합니다만···.”
그녀는 내 손에 여분의 천을 쥐여주며 잘자란 인사를 했다.
“그럼 씻고 푹 주무세요. 마르낙 사제님!”
“공녀님도 좋은 꿈 꾸시길.”
그날 밤, 괴물들의 추가 습격은 없었다.
다시 씻을 필요가 없었던 대신, 나는 다키아 때문에 잔뜩 뿔이 난 어머니가 내 머리를 자기가 직접 감겨주겠다고 날뛰는 걸 달래야만 했다.
***
아침이 밝고 빠르게 준비를 끝마친 상단은 여전히 내리고 있는 눈을 맞으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별다른 바람이 불지는 않아, 눈은 그저 천천히 떨어져 어깨 위로 내려앉기만 했다.
콰앙!
새하얀 숲과 산. 온통 눈밭인 가도에 흔적을 새기며 걸어가던 와중, 어디선가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자, 나는 어젯밤 펄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너 조심하는 게 좋을걸? 나랑 같이 온 애들, 나 빼놓고 뭔가 열심히 준비하는 거 같더라고!’
새하얀 눈. 눈이 거친 파도가 되어 산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정확히 우리를 향해.
악신의 숭배자들이 펄리를 빼놓고 열심히 준비한 건, 또 다른 습격이 아니었다.
그건 눈사태였다.
나는 상단을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가진 거 전부 놓고 도망치십시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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