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42)
42 화 사고뭉치… 어셈블!!!
사고뭉치… 어셈블!!!
“구해··· 주지 않아도 괜찮겠죠···?”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기다려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게다가 카르멘을 끌고 간 게 다른 이들도 아니라, 이곳 수도의 경비분들이시기도 하고요.”
나와 다키아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 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아우렐리우스가 슬쩍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검은 들개’ 카르멘 발타스가 수도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거든. 워낙에 사고를 자주 쳐서 말일세.]그렇게 유명한가?
나는 주로 왕국 북동부 지역에서 돌아다닌 탓에 수도를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카르멘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녔다는 겁니까?”
딱딱대며 금속 턱을 몇 번 마주친 아우렐리우스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본인에게 듣는 게 어떤가? 나중에 경비부대를 찾아가서 카르멘을 면회하러 왔다고 하면 경비들이 알아서 만나게 해줄걸세. 뭐, 정말로 궁금하다면 내가 직접 말해주겠네만. 딱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아니거든.]“본인한테 듣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일세.]다키아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다시 밝게 웃었다.
“그럼 일단 숙소부터 잡고 카르멘 면회라도 하러 가죠! 제가 나름 수도의 맛집들을 꿰고 있기도 하니 그다음엔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요!”
묵묵히 서 있던 사지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결정났나.
“좋습니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님은 어쩌실 겁니까?”
[내가 잘 아는 곳이 있네. 자네들도 거기 묵는 게 어떤가? 어차피 자네들한테 약속했던 보상도 줘야 하니까 말일세.]우리는 가볍게 눈빛을 교환한 끝에 아우렐리우스의 제안에 동의하기로 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황금빛 턱들이 즐겁게 딱딱거렸다.
[좋은 생각일세. 한동안 얼굴은 자주 보겠군.]***
어느덧 봄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걷던 푸른 머리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저 먼 곳. 새하얀 성벽으로 둘러싸인 알고르 왕국의 수도, 프루이나가 보였다.
“수도···.”
잠깐 멈춰 섰던 청염의 사제는 다시 걸음을 뗐다. 수도를 향해.
***
아름답게 빛나는 샛노란 비늘.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몸.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용이 천천히 지상을 향해 내려왔다.
쿵.
거대한 피막 날개를 접은 용(龍)이 바닥에 착지했다. 용왕국 삼 왕자, 바티스 드라코는 날개 한쪽을 펼쳐 등에 탄 사내가 내리기 쉽도록 길을 만들었다.
– 내려.
“예, 예!”
털옷을 겹겹이 껴입은 일레흐의 동부지부장 힐덴이 콧물을 훌쩍거리며 재빨리 날개를 밟고서 바닥에 착지했다. 그가 내리자, 거대한 용의 몸이 천천히 줄어들어 샛노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벌거벗은 왕자는 힐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옷 내놔.”
“옙!”
힐덴이 재빨리 가방에서 바티스의 옷을 꺼내 건넸다. 그는 느긋하게 옷을 챙겨입는 바티스를 보며 혹시 이 도마뱀 왕자놈이 자신을 데리고 온 건 움직이는 옷장이 필요해서 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옷을 다 입은 바티스가 긴 노랑 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으며 턱짓했다.
“수도가 코앞이잖아. 안내 안 하고 뭐해?”
무척이나 거만한 말투. 하지만 이미 바티스의 말투에 퍽 익숙해진 힐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하죠!”
사실, 그는 조금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 콧대 높은 본부 놈들에게 이 용왕국 삼왕자라는 폭탄을 터뜨릴 생각에.
‘매번 지부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본부 놈들이 당황하는 꼴을 아주 느긋하게 감상해주지! 흐흐흐.’
힐덴은 활짝 웃으며 힘차게 말했다.
“얼른 가도록 하죠!”
“뭐? 너 지금 나 재촉하는 거야? 응? 너 많이 컸다?”
“…”
‘시발…’
***
[자, 여기 일단 지급하기로 한 보수일세.]아우렐리우스는 약속대로 두당 금화 열다섯 닢. 총 육십 닢의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내게 내밀었다.
거금. 너무 큰 거금이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만져보는 돈 중에 가장 많은 돈이 바로 저 주머니에 담겨 있었다.
나는 재빨리 제멋대로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금화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사, 살해…!’
처음 만져보는 거금에 어머니마저 당황하셨다. 비록 사 등분 해야 하긴 하지만, 금화 열다섯 닢이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특히 수도 같이 번화한 도시에서는.
“마르낙 사제님···?”
“예.”
다키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금화가 든 주머니를 왜 그렇게 빤히 바라보세요?”
“여기에 금화 육십 닢이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날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마르낙 사제님, 설마 금화 육십 닢을 처음 만져보세요?”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다키아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요.”
역시 대영주의 딸. 금화조차 자주 만져보지 못했던 나와는 돈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부터가 달랐다. 게다가 그녀는 마법사이기까지 하니, 평생 돈이 궁할 일은 없겠지.
나도 마법사를 골랐다면, 아무 걱정 없이 마법을 뻥뻥 터뜨려대면서 다녔을 텐데.
대마법사 마르낙. 참으로 멋진 이름이었다. 내가 그렇게 불릴 일은 영원히 없겠지만.
나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챙기며 툭하고 대답했다.
“제가 원래 좀 귀엽습니다.”
‘살해!’
‘마르낙 귀여워!’로 호응하는 어머니를 꾹꾹 누르며 최대한 평온을 가장했다. 다키아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농담이시죠?”
“완전 진담입니다.”
나는 농담도 잘한다며 키득대는 다키아를 뒤로 한 채 아우렐리우스한테 물었다.
“그나저나 이것 말고도 따로 주신다던 보상은 어떤 겁니까?”
이왕 준다는 건 확실히 받아야지.
[아, 추가 보상 말인가? 그건 내일 주겠네. 자네들한테 주고 싶은 걸 꺼내오려면 나름 절차가 필요해서 말이야.]내일이라. 급할 건 없었다. 이미 원래 약속한 보상을 제대로 지급해주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카르멘을 면회하러 가봐야 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세.]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대충 짐을 풀고, 우리 중 가장 수도에 익숙한 다키아의 안내를 따라 경비대로 향했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귀여운’ 마르낙 사제님.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이 경비대가 사용하는 곳이에요.”
다키아가 아까부터 자꾸 귀엽다는 말을 붙여서 내 반응을 이끌어 내려고 했지만, 그런 얕은수에 당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바로 저기가 카르멘이 감금된 곳이로군요. 딱 봐도 엄청 삼엄해 보입니다.”
요충지마다 배치된 경비병과 규칙적으로 돌아다니는 순찰병들. 높은 담벼락. 경비대의 건물은 단 한 명의 도망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작은 요새를 방불케 했다.
내 옆에 선 다키아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건물들이 ‘귀엽지’ 못한 생김새이긴 해요.
“공녀님께선 은근 집착이 심하신 분이셨군요.”
그녀는 볼을 살짝 붉히고는 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 혹시 너무 놀려서 화나셨어요?”
“아뇨. 제가 귀여운 건 사실이니 화날 것도 없습니다.”
“…!”
“사지타. 얼른 가보도록 하죠. 카르멘이 차가운 돌 바닥 위에 앉아 고독에 젖은 채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사지타와 함께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겨우 진정한 다키아가 잽싸게 따라붙었다.
“진짜로 본인이 귀엽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어렸을 적엔 생긴 게 귀엽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지나다니는 어른들도 다들 저보고 애가 참 귀엽게 생겼다고 했었죠.”
“지금은 다 컸잖아요!”
“사소한 차이죠. 크기만 조금 달라진 겁니다.”
“전혀 사소하지 않은 차이인데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건 귀엽지 못한 행동입니다. 공녀님.”
다키아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제가 아까 금화 육십 닢 처음 만져 보냐고 놀려서 삐지시고 그런 건 아니죠?”
“설마요.”
날카롭긴.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나을 듯했다.
“슬슬 진짜 카르멘을 만나러 가보죠. 기껏 사온 사식이 식기 전에요.”
내 두 눈을 빤히 바라보던 다키아가 피식 웃었다.
“다음부턴 돈 가지고 안 놀릴게요.”
“… 저 안 삐졌습니다.”
그녀는 내 손에 들린 사식을 낚아채고는 가볍게 걸어나갔다.
“알겠으니까 얼른 가기나 해요. 사식 식기 전에”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가며 대답했다.
“저 진짜 안 삐졌습니다!”
“알았다니까요!”
***
“‘아.’ 해요.”
“아.”
카르멘이 차가운 돌 바닥 위에 홀로 앉아 서러움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예상은 완벽히 틀렸었다.
경비병들의 안내를 받아 유치장에 도착한 우리가 본 것은 웬 여인이 창살 너머로 카르멘에게 직접 밥을 먹여주고 있는 광경이었다. 카르멘은 그 밥을 잘만 받아먹고 있었고.
우리 밥도 안 먹고 일단 카르멘 사식부터 사서 온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밥부터 챙겨 먹고 올 걸 그랬나.
“저 여자분이 누군지 알겠어요. 저분은 그라타 가문의 아라스 양일 거예요.”
아라스 그라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저분이 바로 전에 말씀해주셨던 카르멘의 정인(情人)이로군요.”
“맞아요.”
진한 갈색 머리와 눈동자. 약간 작은 키와 귀여운 인상. 그리고 카르멘식으로 표현하자면 타인과 비교를 불허하는 마음의 크기.
나는 어째서 카르멘이 저 여인에게 홀딱 빠졌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그는 참으로 취향이 확고한 남자였다.
자신이 먹여준 밥을 꼭꼭 씹어먹는 카르멘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라스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어왔다.
“누구시죠···?”
아라스를 따라 우리를 발견한 카르멘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마르낙 왔구나!”
마치 제집 안방에서 맞이하듯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잠깐 여기가 유치장이 아니라 발타스가의 저택이 아닌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유치장이 맞았다.
우리는 아라스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카르멘에게 물었다.
“그 안에 있는 게 무척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유치장의 딱딱한 바닥 위에는 여러 장의 담요와 베개가 비치되어 있었다. 전부 엄청 푹신해 보이는 것들로.
카르멘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래 보여?”
“예.”
“사실, 내가 여기 좀 자주 들어오긴 했거든.”
옆에서 아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냥 자주가 아니라 엄청 자주죠.”
어색하게 웃는 카르멘에게 다키아가 물었다.
“자주 들어가 보신 건 알겠는데, 이번에는 어쩐 일로 거기 들어가신 건데요?”
“그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엔시스 발타스 경의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열쇠’를 무단으로 훔쳐갔지. 이번 수배도 엔시스 발타스 경께서 직접 내리신 거다.”
새하얀 장발. 차가워 보이는 인상. 하얀 갑옷을 입고 나타난 사내에게선 발톱을 감춘 맹수 같은 분위가 흘렀다.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카르멘을 바라보며 말했다.
“훔쳐간 ‘열쇠’는 어떻게 했나? 카르멘.”
침을 꿀꺽 삼킨 카르멘이 그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형님···”
내가 카르멘의 이름은 몰랐지만, 저 사내의 이름은 알았다.
검은 늑대 엔시스 발타스의 아들이자 여왕의 근위대 ‘서리 기사단’의 부단장.
하얀 늑대 세티안 발타스.
그게 바로 저 남자의 이름이었다.
세티안은 새하얀 눈으로 카르멘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 돌리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라. 아버지의 창고에서 훔쳐간 ‘열쇠’를 어떻게 했지?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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