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50)
50 화 고자질!
고자질!
검은 천으로 드러나는 피부를 모조리 둘러 싸맨 수십 명. 멈추라는 자신의 명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박차는 로브 쓴 인간 열댓 명.
누구보다 당당하게 소리쳤던 카르멘은 상황이 무척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달았다. 예전에도 한 번 이런 류의 불법 투기장 단속이 나온 적 있었지만, 그때는 왕국의 병사들이 들이닥치자마자 다들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순순히 단속에 협조를 해줬을 텐데.
애초에 불법 투기장 단속이라는 것은 북부 왕국에선 공식적으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지하 투기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의례적인 행사였다. 잡힌 시민들도 자그마한 벌금만 물면 얼마든지 풀려날 수 있었고. 마흔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온 것도 그냥 행정업무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수상하네. 그것도 굉장히.’
상황 파악을 끝마친 카르멘이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도주하는 인원들은 당장 정지해라! 검은 천 옷을 입은 자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그렇지 않겠다면 지엄하신 여왕 폐하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너희들에게 즉결심판을 내리겠다!”
“좆까!”
당연히 오늘을 끝으로 이 지긋지긋한 북부왕국 수도와 작별할 생각인 악신의 숭배자들은 여왕의 할머니가 오더라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반면, 내일도 이곳 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검은 천을 입은 무리, 일레흐의 요원들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 어째서 지금 불법 투기장 단속이 나온 거지?! 어째서 왕국 군이 여기 있는 거냐고!”
세티안이 카르멘을 풀어주기 위해 갑작스럽게 만든 기회라는 사실을 이들이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얼어붙은 무리와 도망치는 무리. 카르멘의 결정은 빨랐다.
“거기 너부터 너까지! 열 명을 빼고는 전부 날 따라와라!!! 도주하는 저자들을 추격···.”
“안됩니다!!!”
“뭐?”
카르멘의 말을 끊고 갑작스럽게 소리친 건, 자신의 상대역인 ‘레드헤드’부터 대피시킨 마르낙이었다. 당연히 검은 가면을 쓰고 웃통을 깐 그는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았고, 최대한 목소리를 깔아서 마르낙이 아닌 타인인 척 연기했다.
카르멘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빨리 이유를 설명해라! 저기 당장 도망치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나를 멈춰 세운 이유를!”
마르낙은 정확하게 들었다. 저들이 들어오면서 ‘다키아 공녀를 찾아라!’라고 소리치는 것을. 저들보다 적은 수의 병사만을 남기고 카르멘이 이 자리를 떠난다면 그들은 분명 병사들을 해치고 다키아와 자신을 추격할 게 분명했다.
그는 잽싸게 검은 천을 입은 자들을 가리키고 소리쳤다.
“저들은 다키아 공녀를 납치하고자 이곳에 온 겁니다!!!”
“뭐라고? 다키아가 공녀님이 여기 있다는 거냐? 대체 왜?”
카르멘은 당연히 다키아와 마르낙의 행방을 몰랐고, 마르낙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거야 저는 모릅니다!!!”
“그 말이 정말이냐?”
카르멘이 되묻자, 경기장에 앉아 있던 관중들이 ‘인간도살자’의 말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이거 잘만하면 왕국 군이 저 검은 천을 입은 자들과 싸우는 사이에 단속을 피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저, 저도 들었습니다! 저놈들이 다키아 공녀를 찾으라고 소리치는 걸 똑똑히 들었습니다!”
“나, 나도 들었어!”
“저도 입니다!!!”
카르멘은 검 끝이 검은 천을 입은 자들을 향했다.
“저 말들이 사실인가? 너희가 감히 이 나라에서 이르멜 가의 인물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르고자 한 것이 사실이냐는 거다!!! 대답해라!”
‘일레흐’의 요원들은 일이 꼬여버렸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젠장!!! 모두 산개해라!!!”
그들은 평소 훈련받은 대로 왕국 군을 피함과 동시에 어딘가에 숨어있을 다키아 공녀를 찾기 위해 일제히 흩어졌다.
일레흐의 인원들은 현재 카르멘이 데려온 마흔 명의 병사들보다 수적으로 우세했다. 카르멘은 이를 갈며 짧게 외쳤다.
“먼저 도주한 자들은 포기한다!!! 당장 무기를 빼 들고 흩어지는 저놈들을 쫓아라!!! 필요하다면 죽여도 좋다!!! 사지타! 너는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저들을 처리해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사지타가 보급받아온 단창 하나를 꺼내 쥐었다. 그의 근육들이 터질듯이 꿈틀댔다.
퍽!
“미친!”
허공을 찢으며 날아간 단창이 막 자리를 박차려던 일레흐 요원 하나의 머리통을 뭉개버렸다. 실린 힘을 미처 다 쓰지 못한 단창이 벽에 박힌 채 대롱거렸다.
“모두 돌격!!!”
“와아아아아아아아!!!”
카르멘의 명령을 신호로 산개하는 일레흐와 추격하는 왕국군이 동시다발적으로 충돌했다.
모든 상황을 확인한 마르낙은 재빨리 등을 돌리고 자신의 대기실로 뛰어갔다.
***
쾅!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고 대기실로 뛰어들자, 긴장한 얼굴로 검을 치켜든 다키아가 보였다.
일이 벌어지자마자 이곳으로 온 건가. 덕분에 따로 찾을 수고를 덜었다.
그녀는 문을 부수듯이 열고 들어온 것이 나임을 확인하고는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마, 마르낙 사제님. 밖의 상황은 어때요?”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으며 대답했다.
“일단 왕국군과 저희를 추격해오던 추격자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미리 봐두었던 악신의 숭배자놈들은 악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요. 일단 저희는 다키아 공녀님을 노리는 이들의 숫자가 명확하지 않은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다키아 공녀님?”
대답이 없었다. 약간의 불길함을 느낀 나는 사제복을 입는 것을 멈추고 다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터질 듯이 새빨개진 다키아의 시선이 벌거벗은 내 몸에 꽂혀있었다. 그녀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나는 검은 로브를 푹 눌러쓰며 말했다.
“이거 못 볼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받아주시지요.”
정신을 차린 다키아가 내게서 가면을 받아들었다.
“이, 이걸요? 이건 마르낙 사제님이 쓰는 가면이잖아요.”
“다키아 공녀님의 머리카락과 눈은 너무 눈에 띕니다. 누가 봐도 다키아 공녀님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로요.”
내 말뜻을 이해한 다키아가 냉큼 가면을 둘러썼다. 수백 조각으로 갈라진 유물 가면이 그녀의 얼굴에 딱 맞는 형태를 취했다.
“그럼 일단 악마가 가르쳐준 비상용 탈출···.”
“다키아 공녀를 찾아라!!! 상황이 급해졌다!!! 공녀가 아닌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너, 너희들은 뭐야?!”
“야!!! 전부 저 새끼들 족쳐!!! 컥!”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다른 대기실에서 짐을 챙기고 있던 검투사들과 추격자들이 충돌하는 비명이 들려 왔다.
양동이었나. 역시 허술하게 한쪽에서만 왔을 리가 없지.
혹시 몰라 인벤토리 한 칸에 ‘도살자’를 챙겨오긴 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도살자를 썼다간 그 굉음 때문에 당장 모든 추격자들이 나와 다키아의 위치를 파악할 게 분명했다.
나는 대기실에 준비된 검 하나를 대충 집어 들고서 다키아에게 외쳤다.
“정면돌파하겠습니다! 지금부턴 이름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네!”
그녀는 새하얀 뼈검을 꺼내고 내 뒤를 따를 준비를 했다.
‘살해!’
‘온다!’라는 어머니의 경고.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나는 침착하게 검을 빼 들고 기다렸다.
“너는 이쪽 복도 방들을 뒤져라! 나는 저쪽 복도를 뒤지겠다!”
“예!!!”
발걸음 소리가 갈라졌다. 이쪽으로 오는 건 둘, 아니 셋인가.
돌로 된 바닥 위를 달리는 소리는 무척이나 작았다. 충분히 잘 훈련되었다는 증거. 나는 숨을 죽였다.
“이 방! 문이 열려···.”
푹.
내지른 검이 검은 복면을 쓴 사내의 머리를 관통했다. 손에 힘을 준다. 뇌를 가르고 튀어나온 검이 다음 복면을 향했다. 추격자는 침착했다. 그는 빼 든 검을 휘둘러 내 공격을 빗겨내려고 시도했다.
선명한 불티가 튀었다. 내 검을 빗겨내겠다는 선택을 한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는 그 실수를 파고들었다.
까앙!
내 검에 실린 힘을 감당하지 못한 추격자가 검을 놓쳤다. 큰 빈틈. 나는 망설임 없이 왼 주먹을 휘둘러 녀석의 얼굴을 뭉개버렸다. 살점들이 튀었다.
아직 남은 하나. 그 하나의 추격자는 동료들이 죽어감에도 침착하게 틈을 노리고 나를 향해 파고들었다.
내가 반격하려던 찰나.
자그마한 불꽃. 추격자의 눈앞에서 피어 작은 불덩어리가 그의 눈을 지져버렸다.
“끄아아아아악!”
“하아압!!!”
새하얀 뼈 검이 추격자의 목을 찔렀다. 검을 뽑아낸 다키아가 날 향해 말했다.
“저 잘했죠?”
사람을 죽이고 나서 내게 잘했냐고 묻다니. 처음 만났을 땐 사람 한 번 죽여본 적 없던 그녀에게 벌어진 장족의 변화. 이게 과연 옳은 변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는 확실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일단 여기서 살아남기에는 아주 유리한 변화였다.
“얼른 비상탈출로를 향해 움직이도록 하죠.”
“예!”
열심히 발을 놀리며 복도를 달리던 와중,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악신의 숭배자들이 악마한테 갔는데 괜찮을까요?”
같이 있으면 말 한마디도 못 붙이면서 그래도 아는 사이라고 걱정해주는 건가.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한 몸에서 오래 묵은 악마를 죽이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니까요.”
오히려 악마가 한껏 꾸며둔 방에 제 발로 들어갈 악신의 숭배자들을 걱정해야지.
***
콰득.
새하얀 이빨들이 게걸스럽게 악신의 숭배자의 머리통을 씹어먹었다.
“시, 시발!”
여인이 거칠게 발을 구르자 악신이 자신의 사제에게 답했다. 어두운 그림자들이 일어나 버둥대는 호기심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이빨 달린 촉수들을 저지했다.
“투기장의 대모(大母)가 악마란 이야기는 없었잖아!!!”
악마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물어보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직접 친절하게 답해줬을 텐데.”
“닥쳐라! 악마!!!”
새하얀 얼음의 창이 악마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악마는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갈라지며 눈 없는 머리가 튀어나와 입을 벌렸다.
꿀꺽.
벌어진 이빨들이 얼음의 창을 집어삼켰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듯이.
“고, 공격이 안 통해?!”
당황하는 목소리. 악신의 숭배자들의 무리를 이끄는 사내, 탈란이 나직이 말했다.
“전부 진정해라! 저것은 ‘악마’다! 녀석이 지불 할 수 있는 대가가 다 떨어지면 그냥 한 명의 여인에 불과할 뿐! 우리는 철저하게 소모전으로 유도한다! 거기 너랑 너는 우선 성물이 있는 위치를 찾아라!”
평소 같았으면 별거 아닌 게 또 명령질이라며 투덜대기라도 했겠지만, 눈앞에서 거칠게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 촉수들의 존재 덕분에 그들은 감히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에서도 침착한 목소리에 놀란 가슴이 살짝 진정되었다.
악마, 버둥대는 호기심의 새카만 두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내어줄 ‘대가’가 떨어지면 내가 힘을 못 쓰는 게 맞긴 해. 그런데 그거 알아? 난 언제나 너희 같은 애들이 올 줄 알고 미리 준비를 조금 해뒀거든.”
콰앙!
내려친 촉수가 벽을 부쉈다. 그 벽 속에 든 것들을 확인한 악신의 숭배자들이 경악을 내뱉었다.
“미, 미친!”
시체, 그것들은 시체였다. 이곳 지하 투기장에 죽어간 자들의 시체. 시체들은 기괴하게도 전부 막 죽은 것처럼 싱싱했다.
악마의 등에서 뻗어나간 수천 다발의 촉수들이 시체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버둥대는 호기심이 색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요염한 눈물점이 즐겁게 흔들렸다.
“내 ‘방’에 잘 놀러 왔어. 이제 우리 같이 잔뜩 뒹굴어 봐.”
***
“악신의 신성···.”
나직한 한마디와 함께 거리를 걷던 시리도록 푸른 눈의 여인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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